FOX or WOLF ?
2. 늑대에게 물리면
3일 정도 이웃사촌으로 살아 본 그 남자, 아 이젠 이름도 안다. 나재민이래. 나! 재민이야!가 아니라 이름 자체로 '나재민' 어떻게 알았냐면 나재민이라는 사람이 극강의 tmi맨이기 때문...
고작 3일이 지났는데 그 남자가 돈 많은 백수에 생일이 8월 13일인 것도 알아버렸다. 아, 핸드폰 번호도. 1도 궁금하지 않은데 내가 보일 때마다 자꾸 자기 얘기를 해. 자기 얘기만 하면 좋은데 내 얘기도 하나씩 들으려고 해 왜 그래 당신...
"학교 가요?"
"예."
"늦게 오나?"
"아니요."
"그럼?"
"근데 왜 계속 은근히 반말하세요?"
항상 처음에는 존댓말하다가 반존대로 바꾸고 반말한다니까. 동방예의지국에서 그런식으로 이웃을 대하면 쓰겠습니까. 게다가 난 보통 이웃이 아니라 구슬주머니 겸 이웃인데 사람이 참... 인간이 되면 뭐합니까 뭐가 중요한지 앞을 못 보는데.
"음... 아무래도 내가 나이가 더 많으니까?"
"몇 살이신데요."
"내가 빠른인데..."
아, 또 tmi.
"그래서 계산해보면 922살 정도?"
"...간 밤 강녕하셨습니까."
"오냐."
동방예의지국에서 예의 밥말아먹고 남 탓 하는게 나였구나. 계속 으른미소로 바라보길래 부담스러워서 대충 고개 숙이고 뛰쳐나왔다. 같이 5분 이상 있으면 멘탈이 가루가 되어 나빌레라...
끄윽... 집에 가고 싶다. 학교 도착한지 15분 밖에 안 됐지만 집에 가고 싶어... 집에 가서 할 건 없는데 그래도 가고 싶어... 오늘 몇 시에 끝나더라. 눈 앞이 희미해 미친. home PLZ...
"너 어디 아프냐?"
"아니 그냥 집에 가고 싶어서억."
"뭐야, 왜 그래? 취했어?"
"아니 미친놈아 심장, 심장이..."
나를 주정뱅이 취급하는 이동혁이 우거지 죽상한 나를 보더니 당연하게 와서 말 걸길래 나도 당연하게 대답 해줬는데 얼굴 보자마자 갑자기 심장이 졸라 증발하는 기분. 마이 핥 이즈 쎄긋빠... 아니 이거 사랑인가? 내가 이동혁한테 심쿵 당한거라고 하기엔 신의 장난이 지나쳐.
설마...
'이미 이름 씨 심장 한 가운데에 자리 잡았을 걸요.'
'이름 씨 심장 한 가운데에...'
'심장 한 가운데에...'
'심장 한 가운데...'
이 여우같은 새끼가 (여우 맞음) 그 때 분명히 열 달 동안은 심근경색 같은 거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구미호라 그런 거짓말도 잘 하는 거예요 아니면 구미호라 사람을 보면 구슬이 반응하는 거예요. 아니 애초에 왜 구미호세요...
내가 심장을 부여잡고 엎드리자 이동혁도 당황했는지 내 등을 내리쳐... 왜 내리쳐 미친새끼 자기 손이 무슨 솜방망이인 줄 아나봐. 잘 쳐먹긴 했지만 체한 건 아니라고. 그만 쳐 진짜 토할 거 같아.
"야 괜찮냐고."
"그냥 몸이 좀 안 좋은 것 같아."
"좀 안 좋은 거 치곤 되게 투데이 투모로우 하는 느낌인데."
"(무시) 아, 오늘 졸강 각이다."
"그건 안 아팠어도 그랬잖아."
"동혁아..."
"왜?"
"여물어..."
하면서 얼굴 봤다가 조여오는 심장에 그대로 까마득해질 뻔했다. 이쯤되면 이동혁이랑 나랑 전생에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라도 한 게 아닐까. 아가씨와 노비였다든지. 공주와 내시...는 좀 심하지 미안.
"어... 수고했고, 다들 다음주까지 레포트 제출하는 거 잊지 마세요. 점심 맛있게 드시고."
오전 수업만 있어서 다행이다. 더 버틸 체력 같은 건 없어.
쳐 자지 말고 잠 깨라며 초콜릿까지 던져주고 간 이동혁 눈 피하느라 눈가락이 돌아가서 저세상을 보고 옴. 저승사자가 아직 올 때가 아니래. 그럼 황인준은요? 제가 그새끼 때문에 자원봉사자 역할 하다가 사자보다 무서운 동물을 만났는데. 구미호라고.
혹시 당이 떨어져서 심장이 아팠던 걸까봐 초콜릿 몇 개 까먹다가 황인준이랑 눈 마주쳤는데 세상에나 내가 쟤 버리고 튄데다가 전화 13통 온 걸 안 받았다지? 게다가 나 쟤랑 같은 과였네. 튀어야 하는데 몸에 힘이 하나또 없어 인준아 나를 좀 살려주겠니. 얼굴만큼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지지 않았을까...
"너는 뭐 입으로 똥 싸냐?"
인생... 우정 개박살...
"아 시발 무슨 갑자기 나타나서 족구하는 소리야... 상식적으로 초콜렛이라는 생각은 못 해?"
"네가 비상식적인 사람인데 상식이 먹혀?"
"존나 삐쳤네 미친..."
"아니거든."
"너 내가 너 버리고 가서,"
"버리고 간 거 맞네."
"... 그래 버렸다 이새끼야 너랑 내 인성이랑 같이."
내가 그 날 우정의 우 자도 붙이지 못할 마음으로 자기랑 끝까지 함께하다가 심장질환과 더불어 열 달 한정 판타지스릴러 인생을 얻은 건 모르고 저렇게 뻔뻔하게 노려보는 개놈자식은 어떻게 해야 될까... 도깨비 쓰레빠 같은 새끼...
황인준이 그딴 식으로 살지 말라고 잔소리 하길래 약 3분 동안 겨우 이제노 탓으로 미루고 급하게 짐 싸서 나옴. 4초만 더 늦었어도 황인준이 눈치 깠다. 서슬퍼런 인생아.
[이동혁]
-자기야
-어디야?
-나 배고파
-한 번만 더 그렇게 부르면
-자기장이 사라질 때까지 쳐맞을 줄 알아
월공강을 못 잡은 학기에 학교 오면 정신이나 머리 둘 중에 하나를 두고 오거나 둘 다 안 들고 오는 이동혁은 오늘 정신머리가 없습니다.
내가 아까 극강의 기피현상을 보여준 것 같은데 또 나한테 연락하는 거 보면 긍지가 있거나 눈치가 없거나 이 모든걸 눈치채고 날 죽이려 드는 거거나. 황인준을 봐도 이제노를 봐도 멀쩡한 심장이 왜 이동혁만 보면 갑갑한지 알려주세요. 아 구미호님은 아시려나 고새끼 구슬때문에 이런 거니까. 그렇다면 당장 집에 가야!
"왜 답이 없나 했더니 개무시하고 집 갈 준비나 하고 있었겠다."
"어이구 누추하신 분이 어떻게 이 귀한 곳까지 행차를."
"혼자 가다가 인생 하직할까봐 데려다 주려고 왔더니."
"오 이동혁이 생에 한 번 선심 쓰는 날이 오늘..."
이동혁이랑 집에 감 = 집 갈 때까지 심장이 운다→ 인생 하직
얼굴을 안 보고 어찌어찌 해서 감 = 분명히 내 소리 듣고 나올 구슬 주인님과의 어색한 삼자대면→ 인생 하직
같이 안 감=안 아픔. 안 불편함→ 내일까지 연명
"아니 오늘은 같이 안 가줘도 돼."
"뭐래 갑자기. 얼른 좀 가."
생각해보니까 난 이동혁 이길 힘 같은 거 없었어.
나는 심장이 없어... 나는 심장이 없어... 그래서 아픈 걸 느낄리 없어... 매일 혼잣말을 해... 내게 주문을 걸어... 아프다고 말하면 정말 아플 것 같아서... 그냥 웃지... 그냥 웃지... 그냥 웃지... 그런데 이동혁이 왜 우냐고 물어... 이렇게 웃는데...
"이제 가라."
"인간적으로 밥은 먹여서 보내주세요."
"내가 아니라 그거 때문에 왔지 너."
"내 마음을 읽었어?"
사람 몸에 뼈가 206개나 되는데 하나 부러트린다고 이동혁 뼈가 205개래! 하고 소문이 나진 않을테니 간단하게 하나 정도 부러트려볼까 하다가 그래도 아침부터 초콜렛 사다 바친 정성이 갸륵해서 한 번 정도 봐주기로 함. 그러니까 넌 내가 네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걸 좀 보고 돌아서라.
"라면만 쳐먹고 가라."
"아 걱정하지마"
"그리고 존나 조용히 올라가야 돼. 없는 것처럼."
"왜?"
"내가 온 걸 앞 집이 모르게 해야 되거든."
"앞 집 사람이 존나 예민해?"
"나 그렇게 예민한 사람 아닌데."
호랑이는 제 말하면 나온다지만 구미호가 왜 제 말하니까 나오고 그러세요. 사람이 되어도 양반은 못 되시겠네.
언제부터 보고 있었는지 팔짱까지 끼고 반쯤 열린 문에 기대서 관람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오늘 하루 심장 아파서 생사를 오갔던 (아님) 상황이 주마등처럼 지나가 욕과 폭언과 짜증이 삼박자로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혹시 날 죽이고 간을 빼갈지도 모르니 닥치기로 한다.
"욕한 거 아니에요."
"알아요, 아닌 거."
구미호가 위험한 이유는 저렇게 맨날 웃고 있어서 속을 모르기 때문일 거야. 내가 왜 대인관계와 의사소통을 교양으로 들었지 저런 사람 하나도 상대를 못 하는데. 사람이 아니라서 안 먹히나.
난 얼른 집에 들어가고 싶은데 왜...
"뒤는 동기?"
"아, 네."
"그렇구나-"
왜...
"저 사람이랑 친하다고?"
"예를 갖추거라, 저래뵈도 지긋하신 분이다..."
"딱 봐도 지긋지긋해 보이네."
왜... 둘이 그렇게 쳐다보고 난리. 사랑이라도 싹 텄어?
동네 고양이 1. 2 사이에 낀 통조림 캔의 마음이 이럴까 싶어서 조금 더 죽고 싶어졌다. 기빨려... 아무래도 3일 본 사람보단 3년 본 사람을 말리는게 세상의 이치에 더 맞는 일이겠지.
"하하, 이만 들어가 볼게요. 야, 이동혁..."
아, 맞다 나 이동혁 쥐약이지.
가까이서 볼 수록 크리티컬의 효과가 직빵으로 오는지 억 소리도 못 내고 계단 난간 붙잡고 주저 앉은 저와 괜찮냐며 나를 확인하는 이동혁 때문에 몸에 힘이라는 것이 증발하고 있습니다.
"야 너 괜찮,"
"이름씨 괜찮아요?"
"아, 괜찮... 헐 이동혁 너 괜찮냐?"
서로의 안위를 물어보는 사이좋은 5층 인구의 현장을 함께하고 계십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고 이동혁 친구 3년이면 정신이 읎고 구미호 구슬 3일이면 미래가 읎지.
우리가 모자라 보이기라도 했는지 나랑 이동혁을 번갈아 보다가 맨날 보이던 웃음을 지우시고 유례없이 안 좋은 표정을 지으시길래 나는 나보다 이동혁이 먼저 죽는 줄 알았읍니다. 구미호가 원래 남자 간 빼가는 거 아니야? 그랬던 거 같지.
"이름씨가 늑대를 달고 다니는 건 예상에 없던 일인데."
"설마 남자는 다 늑대 뭐 그런 고조선 같은 소리를 하시려는 건 아니죠?"
"당연히 아니죠. 일단 삼자대면 정도는 꼭 필요할 거 같아요."
"왜죠."
"이름씨 몸 상태는 내가 더 잘 아니까."
근데 저한테 왜 그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