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또 밤새 이상한 거 봤지. 눈 밑 까만 것 좀 봐.”“내가 넌 줄 알아? 악몽 꿔서 그래!”“‘왜, 꿈에서 거울이라도 봤어? 아!!! 왜 자꾸 때려!”일어나자마자 시비를 걸어대는 동생 놈 머리통을 아프게 쥐어박고는 운동화를 질질 끌며 집을 나섰다. 책이 하나도 담겨 있지 않아 책가방이라 칭하기도 뭐한 가벼운 가방을 한 손으로 들고는 하품을 쩍쩍해대며 횡단보도에 서있는데 옆에 보이는 전정국... 전정국?! 아씨, 쪽팔려. 하필 하품하고 있을 때 눈 마주칠 게 뭐람. 정국이는 못 볼꼴이라도 봤다는 듯 저를 보며 표정을 굳힌다. 나는 절대 하품을 한 게 아니라는 듯 계속 정국이를 보며 크게 입을 벌렸다 오므렸다 반복했다. 그런 나를 보며 정국이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나 하품한 거 아니야.”“어.”“진짜 하품한 거 아닌데. 나 길에서 막 입 쩍쩍 벌려대면서 하품 같은 거 안 해.”“어.”“...어제 새벽 두시까지 공부하다 잤더니 목이 다 뻐근하네.”어색하게 목을 꺾어대며 정국이를 바라보자 내가 한 손으로 들고 있는 가방에 시선을 고정시키는 정국이다. 아씨, 책 없는 거 티났나. 정국이의 눈치를 보며 반대편으로 가방을 옮기는데...“김여주는 책도 없이 공부하나보지? 엄청 똑똑한가 보네.”아씨, 역시 이번 생은 망했나봐.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자 저를 두고 발걸음을 옮기는 정국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저도 빠른 걸음으로 걸어 다시 정국이의 옆에 섰다.“내가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하면 엄청 잘할 걸? 그리고 내가 암기를 엄청 잘하거든. 너에 대한 건 다 외웠잖아. 그러니까 내 말은... 내 머리 속에 책이 다 들어있다는 소리야! 그래서 난 책이 필요 없어.”“어련하시겠어.”***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책상에 엎드려 멍하니 정국이의 뒷모습만 바라보는데, 옆에서 한심스럽다는 말투로 말을 거는 수영이다. “아직도 쟤가 좋아? 어제 바나나우유 사건 이후로 포기하는 줄 알았더니.”“수영아, 나 진짜 포기해야 될까봐.”“뭐?! 드디어 정신을 차린 거야?”“아까 횡단보도에서 하품하다가 정국이랑 눈 마주쳤어... 나 하품할 때 진짜 못생긴 거 알지? 아무래도 오늘은 고백 못 할 것 같아...”“그래, 그래. 잘 생각... 엉? 오늘은? 그럼 내일은?”“내일은 다시 해야지! 내일은 정국이가 받아줄 수도 있잖아.”제 말에 입을 다물곤 그럼 그렇지 라는 표정으로 제 머리를 꾹꾹 누르는 수영이다. “다, 조용! 오늘 아침 조회시간에는 각자 동아리를 정할 거예요. 반장은 애들한테 동아리 신청서 나눠주고 아침 조회 시간 끝나기 전까지 교무실로 걷어오도록. 동아리 활동은 여름 방학 전까지 계속 해야 되니까 신중하게 잘 선택하도록 하세요.”담임선생님이 나가시고 난 후, 금세 소란스러워진 반에 괜히 저도 들떠 동아리가 빼곡히 적힌 신청서를 유심히 쳐다봤다. 정국이는 어떤 동아리에 들어가려나. 악기를 잘 다루니까 밴드부에 들어가려나? 아님 운동을 좋아하니까 역시 운동부? 생각보다 행동이 앞선 나는 이미 정국이 앞에 서있었다.“정국아! 너 동아리 정했어?”“어.”“어디 들어 갈 거야? 나 너랑 같이 들어갈래!”“...”“밴드부? 운동부? 아, 너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하지! 그럼 같이...”“민속 놀이부.”“...민속 놀이부?”“어. 나 민속 놀이부 들어갈 거야.”“정국아, 나 너 좋아할 자격 없나봐. 너가 민속놀이에 관심 있는지 몰랐어...”“재밌잖아. 나 제기 존나 잘 차.”“너가 못 하는 게 없긴 하지! 근데 난 제기 못 차는데... 그래도 너랑 같이 할래!”“마음대로 해.”정국이 앞에서 실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제 자리로 돌아가 민속 놀이부에 크게 동그라미를 쳤다. 정국이와 단 둘이 제기 차는 모습을 상상하며 동아리 신청서를 보고 웃고 있으니, 옆에서 미쳤냐는 듯 쳐다보는 수영이의 시선이 느껴졌다.“전정국이 민속 놀이부 들어가겠대? 진짜 안 어울린다.”“나도 놀랐어! 근데 정국이가 제기 차는 모습 상상하니까 너무 멋있는 거 있지. 정국이는 못 하는 게 없잖아.”“음... 그런가. 너 괜히 쟤 따라 들어갔다가 후회하지 마라. 느낌이 안 좋아.”“응, 걱정 마. 집 가는 길에 제기 사서 들어가야지. 집에서 연습 좀 해야겠어. 정국이 보다 제기 더 잘 차면 나한테 반하지 않을까?”제 말에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젓는 수영이를 뒤로 한 채, 반장에게 동아리 신청서를 제출하자 제가 선택한 동아리를 보고 배를 잡으며 웃는 반장 놈이다.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지도 않은 채 말을 거는 반장에 괜히 심기가 뒤틀려 말을 툭 내뱉었다. “왜 웃어? 민속 놀이부가 웃겨, 너? 민속 놀이부한테 된통 당해볼래?”“아니, 아니. 너랑 잘 어울려서. 우리 반에서 민속 놀이부 신청한 사람 너밖에 없는데, 너 덕분에 동아리 문 닫을 일은 없겠다.”“나만 신청 한 거 아니거든. 이따 한명 더 신청할 거야. 우리 반에서 제일 잘생긴 애!”제 말에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반장에도 아랑곳 않고, 정국이의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동아리 신청서를 보며 올라가려는 입 꼬리를 애써 내렸다.*** “김여주.”“네...”“김태형.”“넵.”“뭐야, 민속 놀이부 신청한 사람이 너희 둘 뿐이야?”“쌤, 근데 김여주 표정이 안 좋아요. 벌써 동아리 탈퇴하고 싶나 봐요!”“아니거든! 지금 기분 안 좋으니까 건들지 마!”“싸우려면 둘이 밖에 나가서 싸우고. 잠깐 물품 가져오는 동안 둘이 조용히 앉아있어라.”전정국 이 나쁜 새끼! 차마 입으로 내뱉진 못 하고 속으로만 전정국 욕을 곱씹으며 자리에 앉아있는데, 문득 김태형은 왜 들어왔나 궁금해져 뒤를 돌자 턱을 괴고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김태형이다. 그런 김태형의 행동에 깜짝 놀라 몸을 들썩였다.“왜 그렇게 봐? 놀랐잖아!”“갑자기 뒤돌아봐서 놀란 건 나거든?”“아, 미안. 아니, 이게 아니라 넌 이 동아리 왜 들어온 거야? 자의로, 아니면 타의로?”“타의로. 잠깐 똥 싸고 온다고 말했는데 어떤 새끼가 여기 넣어놨어. 잡히기만 해봐, 진짜 뒤졌어. 근데 넌 자의냐, 타의냐?”잠시 고민을 하다 한숨을 푹 내 쉬며 입을 열었다. 그래, 전정국이 무슨 잘못이야. 태양을 좋아할 자격도 없으면서 저보다 한참은 큰 태양을 좋아하는 멍청한 명왕성 잘못이지.“둘 다야.”𐤟 𐤟𐤟두 번째 에필로그“아, 쌤! 김태형이 자꾸 저한테 투호 주워오라고 시켜요!”“투호가 아니라 화살이거든? 이 멍청아.”“아씨, 나 안 해!”삐쳤다는 티를 내듯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운동장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데, 제 앞으로 굴러오는 축구공에 고개를 들자 정국이의 모습이 보인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보란 듯이 고개를 돌렸다. 진짜 미운데 축구복도 잘 어울리네, 쟤는. 다시 정국에게로 돌아가려는 고개를 애써 고정시키는데, 들리는 정국이의 목소리.“어이, 민속 놀이부. 공 좀 차줘.”흥, 누가 차 줄줄 알고. 절대 안 차줄 거야. 너 정강이를 차면 찼지, 절대 공은 안 차줄 거야. 미안하긴 했는지 이내 다가와 허리를 숙여 눈을 맞춰주는 정국이다. 아씨, 넘어가면 안 되는데.“삐쳤네.” “어! 나 지금 너한테 완전 삐쳤어!”제 말에 보조개가 깊이 들어가도록 저를 보며 말갛게 웃어 보이는 정국이다. 내가 넘어갈 줄 알고? 아니, 넘어가도 돼. 응, 명왕성은 그래도 돼. 명왕성은 멍청하니까.저를 쏘아대는 태양이 너무 뜨거워 얼굴을 붉혔다. 하늘에 있는 태양 탓인지, 제 앞에서 저를 보며 웃고 있는 태양 탓인지 모르겠지만.
“누나, 또 밤새 이상한 거 봤지. 눈 밑 까만 것 좀 봐.”“내가 넌 줄 알아? 악몽 꿔서 그래!”“‘왜, 꿈에서 거울이라도 봤어? 아!!! 왜 자꾸 때려!”
일어나자마자 시비를 걸어대는 동생 놈 머리통을 아프게 쥐어박고는 운동화를 질질 끌며 집을 나섰다. 책이 하나도 담겨 있지 않아 책가방이라 칭하기도 뭐한 가벼운 가방을 한 손으로 들고는 하품을 쩍쩍해대며 횡단보도에 서있는데 옆에 보이는 전정국... 전정국?! 아씨, 쪽팔려. 하필 하품하고 있을 때 눈 마주칠 게 뭐람. 정국이는 못 볼꼴이라도 봤다는 듯 저를 보며 표정을 굳힌다. 나는 절대 하품을 한 게 아니라는 듯 계속 정국이를 보며 크게 입을 벌렸다 오므렸다 반복했다.
그런 나를 보며 정국이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 하품한 거 아니야.”“어.”“진짜 하품한 거 아닌데. 나 길에서 막 입 쩍쩍 벌려대면서 하품 같은 거 안 해.”“어.”“...어제 새벽 두시까지 공부하다 잤더니 목이 다 뻐근하네.”
어색하게 목을 꺾어대며 정국이를 바라보자 내가 한 손으로 들고 있는 가방에 시선을 고정시키는 정국이다. 아씨, 책 없는 거 티났나. 정국이의 눈치를 보며 반대편으로 가방을 옮기는데...
“김여주는 책도 없이 공부하나보지? 엄청 똑똑한가 보네.”
아씨, 역시 이번 생은 망했나봐.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자 저를 두고 발걸음을 옮기는 정국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저도 빠른 걸음으로 걸어 다시 정국이의 옆에 섰다.
“내가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하면 엄청 잘할 걸? 그리고 내가 암기를 엄청 잘하거든. 너에 대한 건 다 외웠잖아. 그러니까 내 말은... 내 머리 속에 책이 다 들어있다는 소리야! 그래서 난 책이 필요 없어.”“어련하시겠어.”
***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책상에 엎드려 멍하니 정국이의 뒷모습만 바라보는데, 옆에서 한심스럽다는 말투로 말을 거는 수영이다.
“아직도 쟤가 좋아? 어제 바나나우유 사건 이후로 포기하는 줄 알았더니.”“수영아, 나 진짜 포기해야 될까봐.”“뭐?! 드디어 정신을 차린 거야?”“아까 횡단보도에서 하품하다가 정국이랑 눈 마주쳤어... 나 하품할 때 진짜 못생긴 거 알지? 아무래도 오늘은 고백 못 할 것 같아...”“그래, 그래. 잘 생각... 엉? 오늘은? 그럼 내일은?”“내일은 다시 해야지! 내일은 정국이가 받아줄 수도 있잖아.”
제 말에 입을 다물곤 그럼 그렇지 라는 표정으로 제 머리를 꾹꾹 누르는 수영이다.
“다, 조용! 오늘 아침 조회시간에는 각자 동아리를 정할 거예요. 반장은 애들한테 동아리 신청서 나눠주고 아침 조회 시간 끝나기 전까지 교무실로 걷어오도록. 동아리 활동은 여름 방학 전까지 계속 해야 되니까 신중하게 잘 선택하도록 하세요.”
담임선생님이 나가시고 난 후, 금세 소란스러워진 반에 괜히 저도 들떠 동아리가 빼곡히 적힌 신청서를 유심히 쳐다봤다. 정국이는 어떤 동아리에 들어가려나. 악기를 잘 다루니까 밴드부에 들어가려나? 아님 운동을 좋아하니까 역시 운동부? 생각보다 행동이 앞선 나는 이미 정국이 앞에 서있었다.
“정국아! 너 동아리 정했어?”“어.”“어디 들어 갈 거야? 나 너랑 같이 들어갈래!”“...”“밴드부? 운동부? 아, 너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하지! 그럼 같이...”“민속 놀이부.”“...민속 놀이부?”“어. 나 민속 놀이부 들어갈 거야.”“정국아, 나 너 좋아할 자격 없나봐. 너가 민속놀이에 관심 있는지 몰랐어...”“재밌잖아. 나 제기 존나 잘 차.”“너가 못 하는 게 없긴 하지! 근데 난 제기 못 차는데... 그래도 너랑 같이 할래!”“마음대로 해.”
정국이 앞에서 실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제 자리로 돌아가 민속 놀이부에 크게 동그라미를 쳤다. 정국이와 단 둘이 제기 차는 모습을 상상하며 동아리 신청서를 보고 웃고 있으니, 옆에서 미쳤냐는 듯 쳐다보는 수영이의 시선이 느껴졌다.
“전정국이 민속 놀이부 들어가겠대? 진짜 안 어울린다.”“나도 놀랐어! 근데 정국이가 제기 차는 모습 상상하니까 너무 멋있는 거 있지. 정국이는 못 하는 게 없잖아.”“음... 그런가. 너 괜히 쟤 따라 들어갔다가 후회하지 마라. 느낌이 안 좋아.”“응, 걱정 마. 집 가는 길에 제기 사서 들어가야지. 집에서 연습 좀 해야겠어. 정국이 보다 제기 더 잘 차면 나한테 반하지 않을까?”
제 말에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젓는 수영이를 뒤로 한 채, 반장에게 동아리 신청서를 제출하자 제가 선택한 동아리를 보고 배를 잡으며 웃는 반장 놈이다.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지도 않은 채 말을 거는 반장에 괜히 심기가 뒤틀려 말을 툭 내뱉었다.
“왜 웃어? 민속 놀이부가 웃겨, 너? 민속 놀이부한테 된통 당해볼래?”“아니, 아니. 너랑 잘 어울려서. 우리 반에서 민속 놀이부 신청한 사람 너밖에 없는데, 너 덕분에 동아리 문 닫을 일은 없겠다.”“나만 신청 한 거 아니거든. 이따 한명 더 신청할 거야. 우리 반에서 제일 잘생긴 애!”
제 말에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반장에도 아랑곳 않고, 정국이의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동아리 신청서를 보며 올라가려는 입 꼬리를 애써 내렸다.
“김여주.”“네...”“김태형.”“넵.”“뭐야, 민속 놀이부 신청한 사람이 너희 둘 뿐이야?”“쌤, 근데 김여주 표정이 안 좋아요. 벌써 동아리 탈퇴하고 싶나 봐요!”“아니거든! 지금 기분 안 좋으니까 건들지 마!”“싸우려면 둘이 밖에 나가서 싸우고. 잠깐 물품 가져오는 동안 둘이 조용히 앉아있어라.”
전정국 이 나쁜 새끼! 차마 입으로 내뱉진 못 하고 속으로만 전정국 욕을 곱씹으며 자리에 앉아있는데, 문득 김태형은 왜 들어왔나 궁금해져 뒤를 돌자 턱을 괴고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김태형이다. 그런 김태형의 행동에 깜짝 놀라 몸을 들썩였다.
“왜 그렇게 봐? 놀랐잖아!”“갑자기 뒤돌아봐서 놀란 건 나거든?”“아, 미안. 아니, 이게 아니라 넌 이 동아리 왜 들어온 거야? 자의로, 아니면 타의로?”“타의로. 잠깐 똥 싸고 온다고 말했는데 어떤 새끼가 여기 넣어놨어. 잡히기만 해봐, 진짜 뒤졌어. 근데 넌 자의냐, 타의냐?”
잠시 고민을 하다 한숨을 푹 내 쉬며 입을 열었다. 그래, 전정국이 무슨 잘못이야. 태양을 좋아할 자격도 없으면서 저보다 한참은 큰 태양을 좋아하는 멍청한 명왕성 잘못이지.
“둘 다야.”
𐤟
두 번째 에필로그
“아, 쌤! 김태형이 자꾸 저한테 투호 주워오라고 시켜요!”“투호가 아니라 화살이거든? 이 멍청아.”“아씨, 나 안 해!”
삐쳤다는 티를 내듯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운동장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데, 제 앞으로 굴러오는 축구공에 고개를 들자 정국이의 모습이 보인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보란 듯이 고개를 돌렸다. 진짜 미운데 축구복도 잘 어울리네, 쟤는. 다시 정국에게로 돌아가려는 고개를 애써 고정시키는데, 들리는 정국이의 목소리.
“어이, 민속 놀이부. 공 좀 차줘.”
흥, 누가 차 줄줄 알고. 절대 안 차줄 거야. 너 정강이를 차면 찼지, 절대 공은 안 차줄 거야. 미안하긴 했는지 이내 다가와 허리를 숙여 눈을 맞춰주는 정국이다. 아씨, 넘어가면 안 되는데.
“삐쳤네.”
“어! 나 지금 너한테 완전 삐쳤어!”
제 말에 보조개가 깊이 들어가도록 저를 보며 말갛게 웃어 보이는 정국이다. 내가 넘어갈 줄 알고? 아니, 넘어가도 돼.
응, 명왕성은 그래도 돼. 명왕성은 멍청하니까.
저를 쏘아대는 태양이 너무 뜨거워 얼굴을 붉혔다. 하늘에 있는 태양 탓인지, 제 앞에서 저를 보며 웃고 있는 태양 탓인지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