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LUCKY
남고의 축제란 그야말로 후끈한 열기를 동반하면서 시작된다. 이틀에 걸친 축제에도 불구하고 첫째날보다 더 활기찬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의 이유는 역시 둘째날은 외부인에게 개방이 되기 때문일까. 수만고의 교복을 입은 남학생들 사이로 타 학교의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자연스레 섞여 축제의 분위기를 함께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축제가 벌어지는 운동장의 한 가운데에 설치되어 있는 무대. 유독 여학생들이 그쪽에 몰려 있는 것은 아마도 그들이 자연스럽게 무대 뒤쪽 그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야, 박찬열. 오늘 니 썸녀 무대 뛰러 온다고 안 했음?"
"헐, 진심? 박찬열이 그렇게 싸고 도는 애가 온다고?"
"이 형님이 좀 능력자 잖냐. 오늘 무대 뛰러 온다고 그랬으니까 이따 소개 시켜 줌."
찬열의 말에 세훈이 대박, 드디어 얼굴을 보는 구만? 하며 웃었고, 백현은 이열, 능력 좋은데? 라고 찬열의 옆구리를 찔러댔다. 히죽웃은 찬열이 예의 그 썸녀와 카톡을 하는지 핸드폰에 다시금 집중했다. 심심해진 백현은 지나가며 저들을 힐끔 보던 여학생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백현의 행동에 여학생들이 꺅 소리를 내며 뛰어갔다. 수만고의 명물, 오늘 여학생들의 절반이 보러 온 그들은 댄스팀 'EXO' 였다.
쨍쨍하게 떠있던 해가 점점 제 기력을 잃어가자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무대의 조명이 켜지고 학교에서 주최한 행사라던지 잡다한 이벤트 같은 것들이 시작을 하고 슬슬 준비를 하러 엑소 역시도 무대 뒤쪽으로 들어갔다. 곧 저들의 차례를 기다리던 엑소 앞으로 스태프로 보이는 학생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호기심이 생긴 종대가 무슨 일 있어? 라며 학생에게 물었고, 울상이 된 학생이 대답했다. 너희 앞 순서로 외부에서 댄스팀을 불렀는데, 곧 올라가야 하는데 아직 오지를 않았어... 그에 종대가 찬열에게 고개를 돌렸다. 우리 앞 순서라면 그, 니 썸녀인가 걔네 팀 아냐? 연락 좀 해봐. 찬열이 고개를 끄덕였다. 금새 카톡을 한 찬열이 지금 다 왔대. 라며 학생에게 말하자 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여러명의 여학생들이 우르르 정신없이 엑소를 지나쳐 아까 전 스태프 학생에게 무어라 말하고는 황급히 무대 위로 올라갔다. 얼굴을 볼 새도 없이 올라간 댄스팀의 뒷모습만 보던 엑소가 우리도 구경하자며 무대 앞쪽으로 나갔다. 엑소를 발견한 여학생들의 함성소리가 커졌다.
"생각보다 괜찮은데? 컨셉도 막 섹시도발 그런게 아니라서 괜찮다."
"그래서 저기서 어떤 애가 박찬열 썸녀?"
"보자... 아, 저기 머리 길게 푸르고 반지 낀 애. 나름 저 중에서 제일 예쁘다고 소문 난 애임."
오올- 박찬열! 능력 좋은데? 멤버들의 놀림에 찬열이 머리를 긁적였다. 컨셉이 교복인지 각자 개성에 맞추어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의 무대에 수만고의 남학생들이 크게 휘파람을 부르고 환호했다. 살랑살랑 춤을 춘 여학생들이 무대 아래로 내려오고, 그 중 아까 찬열이 짚었던 여학생이 엑소 쪽으로 다가왔다. 찬열이 크게 손을 흔들자 그녀가 생수병을 들고 뛰어왔다.
"박찬열!!!"
여학생이 가까이 다가와 애교스럽게 찬열을 불렀다. 그에 찬열이 나은아, 왔어? 무대 잘 하더라- 하며 여학생을 칭찬했다. 그에 나은이라 불린 여학생이 에이, 뭘. 고마워! 하며 얼굴을 붉혔다. 옆에서 멤버들은 눈을 도록도록 굴리며 나은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빠르게 스캔했다. 나은이 슬쩍 멤버들을 보자 그런 나은의 시선을 눈치 챈 찬열이 나은을 멤버들에게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손나은 입니다- 하고 나은이 인사하자 예쁘장한 외모에 맞게 애교스러운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던 것인지 멤버들 역시 밝게 웃으며 나은에게 인사했다. 아, 몇몇은 빼고.
"아...네."
"(꾸벅)"
"크리스."
쌀쌀맞은 몇 명의 대답에도 나은이 밝게 웃자 나머지 멤버들의 호감도가 높아지는 듯 싶었다. 원체 저 세 사람은 주변의 여자들에게 눈 한번 돌리지 않고 그저 본인들의 할 일에만 충실한 사람들 이었으니까.그래서 나머지 멤버들은 항상 저 세 사람은 언제쯤 여자를 만날까 싶어서 걱정하기도 했다. 잠정적으로 여자에게 관심이 없는 인간들이라 치부하고 지내고 있었다. 나은 뿐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여자에게 저렇게 말하고 대하는 사람들이기에 신경쓰지 말라 말하자 괜찮다며 웃는 나은의 모습에 괜시리 찬열이 뿌듯해 했다.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의 옆으로 똑같이 댄스팀으로 보이는 교복을 맞추어 입은 여학생들이 우르르 몰려 지나갔다. 이번에 지나간 팀은 종인이 아는 듯 해 보였다.
"어라, 쟤네 다시 활동 하나보네."
종인이 그녀들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옆에 있던 세훈이 쟤네 알아? 라며 그녀들이 사라진 쪽을 향해 턱짓을 했다. 종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쟤네 유명하잖아, 자기들이 직접 작사 작곡하고 노래부르는 애들이거든. 거기다가, 종인이 덧붙였다. 저 팀에 유독 춤을 되게 느낌있게 잘 추는 애가 하나 있거든. 그래서 나 쟤네 알아. 한동안 그 여자애가 남자한테 차여서 활동 안 한 다고 하더니 다시 시작 했나보네. 종인이 중얼거렸다. 곧 무대 위로 올라갔는지 다시금 남학생들의 함성 소리가 운동장과 빈 하늘을 가득 메웠고, 무대를 시작했다. 엑소 중에는 나은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도 있었고 종인의 말에 흥미가 생긴 것인지 무대를 지켜보는 멤버들도 있었다. 야, 쟤네 다음에 우리 무대잖아. 뒤늦게 나온 준면의 말에 멤버들이 무대 뒤로 나은과 함께 향했다. 댄스팀이 무대를 마치고 반대편 계단으로 내려가자 엑소가 무대 위로 올랐다. 그들이 무대 위로 올라가자 그들을 보러 온 수많은 여학생들이 함성을 지르며 저마다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을 열심히 외쳤다.
"그럼 지금까지 위아 원! 엑소 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열렬한 환호 속에 앵콜 무대까지 마치고 내려온 엑소가 숨을 고르며 저마다 땀을 닦거나 물을 챙겨 마셨다. 나은이 찬열에게 물을 건네며 수건으로 찬열의 얼굴을 닦아주자 부럽다는 표정으로 몇몇이 찬열과 나은을 힐끔거렸다. 제일 가까이에서 그런 두 사람을 보고 있던 경수의 옆으로 한 여학생이 자나갔다. 순식간에 코 끝으로 은은한 향기를 맡은 경수가 자신도 모르게 걸어가는 여학생의 뒷모습을 뒤돌아 바라보았다. 조금 전 종인이 말했던 댄스팀의 여자애 인 듯 했다. 성큼성큼 걸어간 여학생이 멤버들 중 한 명의 앞으로 갔다. 다들 저마다 땀을 닦고 수분 섭취를 하느라 서로에게 신경 쓸 틈이 없어 아무도 그 두 사람을 바라 보고 있지 않았지만 경수는 보고 있었다.
"땀 좀 봐. 오늘도 화이팅해서 무대 열심히 했어?"
차가운 인상과는 다르게 환하게 구김살없이 웃는 여자의 앞에 서서 묵묵히 땀을 닦는 인물은 전혀 예상 외의 인물이었다.
"치마가 이게 뭐야. 다리 너무 드러나는 거 아냐?"
"에, 이 정도는 좀 봐주지? 어차피 오빠 말고는 아무도 내 다리에 신경 안 쓰거든?
그리고 이럴때 좀 예쁘다는 소리 좀 해달라고! 매정해!"
씁, 빨리 바지로 갈아입어. 아니면 담요를 두르던가. 아, 무슨 한 여름에 바지에 담요야! 꼬장꼬장하게! 꼬장꼬장? 이여주 너 진짜 말 안들을래? 에베베베, 안들린다. 안들려- 투닥투닥 익숙한 듯이 싸우는 두 사람에게 고정되어 있는 경수의 시선을 따라 하나 둘 씩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곧 다 같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다들 자신들의 눈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들이었다. 화난 표정의 민석이 자신의 자켓을 벗었다.
"다른 새끼들이 쳐다보는 거 싫다고 그랬지. 이런 거 안입어도 예쁘다고 몇 번을 말 해."
툴툴대는 여주의 허리에 자켓을 둘러 다리를 꽁꽁 감춘 민석이 그래도 보이는 살결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민석의 미간을 여주가 살살 눌렀다. 민석이 인상을 쓰고 고개를 들며 뭘 잘했냐고 타박하자 여주가 헤, 하고 웃었다.
"우리 오빠, 오늘따라 더 잘생겼다."
민석이 자신보다 한참 작은 여주의 눈높이에 맞추어 허리를 숙였다. 시야의 높이가 같아진 후 민석이 여주에게 물었다. 우리 무대 할 때, 누가 제일 멋있었어. 민석의 질문에 여주가 우리 오빠! 하고 대답했다. 나 말고도 멋있는 놈 또 있었어, 없었어. 민석이 다시 물었다. 여주가 그런 민석에게 푸스스 웃으며 대답했다. 여주의 대답에 민석이 그제서야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하고는 웃었다.
"다른 사람이 멋있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시작부터 끝까지 오빠만 본다고 정신 없었는데. 다른 사람이 멋있는지 볼 틈이 어디있어?"
"그래, 잘했어. 저녁은 먹었어?"
"아니, 그 대신에 집에다가 장 봐놨어. 오빠 밖에서 음식 안 사먹잖아. 가서 저녁먹고 오늘 자고 가야지!"
여주의 말에 민석이 씁, 함부로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랬지. 하며 여주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뭐 어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새삼스럽게. 여주가 말하며 입고있던 조끼를 펄럭였다. 근데 오빠, 오빠 학교 조끼 엄청 크다? 이름표도 안 떼고 줬는데 오늘 안 걸렸어? 안 걸렸으니까 걱정말고 집에나 가자. 민석의 말에 여주가 고개를 쳐들었다. 오늘도 멤버들 소개 안 시켜줄거야? 왜? 어째서! 나도 소개해 줘! 안돼. 왜! 둘의 투닥임을 멤버들은 그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서로 냉기가 뚝뚝 떨어지게 생겨놓고는 하는 짓들은 아주 꿀이 뚝뚝 떨어지는 두 사람의 애정행각은 신기하기만 했다. 거기다 여주의 생김새가 묘하게 생겨서 하는 짓이 갭이 크니 꽤나 귀여워 보였기도 했다.
"응? 응? 아, 오빠아! 나도 멤버들 소개시켜줘어!"
"씁, 안된다고 했지?"
"아, 그럼 해달라는 거 다 해줄게에! 그냥 인사라도 좀 하고 가자! 그냥 가면 내가 뭐가 돼!"
"........원하는 거 다 해준다고 했다. 대신 인사뿐이야."
"어, 어어?"
순식간에 마음을 바꾼 민석이 여주의 손목을 잡아 어깨를 끌어안고는 멤버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민석을 바라보던 여주가 멤버들의 시선을 감지하고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이여주라고 합니다~ 멤버분들 얘기 많이 들었어요! 여주의 인사에 멤버들도 눈치를 봐가며 슬쩍슬쩍 고개를 숙이고 여주에게 인사했다. 다들 어리둥절한 얼굴들이었다.
"오빠가 맨날 얘기만 하고 항상 인사 하려고만 하면 그냥 가자고 하는 바람에 3년동안 한 번도 인사 못 드렸어요-"
"네? 3년이요?"
본인들의 생각보다 더 긴 연애사에 멤버들이 경악했다. 어떻게 3년동안 한 번도 말도 안하고 들키지도 않았냐는 표정으로 모두 민석을 바라보았다. 뭐, 어쩌라고. 단호박 먹은 쟈가운 음성에 금새 다들 여주에게 시선을 돌리긴 했지만. 흡. 다들 여주를 바라보자 여주가 더 환하게 웃었다. 그러다가 여주의 시선이 멈추었다. 아리송한 표정으로 여주가 나은을 바라보았다.
"어라, 손나은이네. 네가 여기 왠일이니?"
"어...아,안녕."
"별로 너한테 안녕 소리 하고 싶지는 않네, 근데 너 벌써 저번에 걔랑 헤어졌니?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시내에 있었으면서.
너도 그 악취미 좀 고쳐. 괜찮다 싶으면 무조건 좋아하지말고 정착 좀 해. 남자애들은 무슨 죄니, 너한테 걸린게?"
여주의 서슬퍼런 필터링 하나 없는 직구에 나은의 얼굴이 하얘졌다. 옆에서 듣고 있던 멤버들도 나은을 바라보았다. 찬열이 감싸고 있던 나은의 어깨에서 손을 놓고는 너 나랑 잠깐 얘기 좀 해. 라며 나은을 끌고 저쪽으로 사라졌다. 말없이 둘을 바라보는 멤버들 사이로 다시 민석과 여주가 투닥거렸다. 아, 붙지 말라니까. 왜, 뭐가 어때서. 덥다고! 그래그래, 나도 사랑해. 아 뭐라는거야 김민석!!! 덥다고!!! 쓰읍, 오빠라고 안하지.
"악취미야 진짜. 어차피 집에 가면 계속 붙어있을 건데 밖에서까지 붙고 싶어?"
"안에서도 내꺼, 밖에서도 내꺼. 특히 침대 위에서는 더더욱 내꺼라고 몇번을 말해?"
"아, 누가 오빠 꺼 아니래? 그러니까 적당히 붙으라고! 덥다고!"
"그래? 그럼 집에 가서 침실 에어컨 키고 있자. 가자."
아, 얘기가 왜 또 그렇게 흘러가는데에! 여주의 손목을 잡고 질질 끌고가던 민석이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며 짧게 말했다.
이틀만에 만난거니까 내일까지 연락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