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비밀
세훈x준면
w.BM
본질적으로 인간은 비밀의 총체다. 가여운 비밀 보따리.
요새 종인은 형 준면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여느 때처럼 등교준비를 하는 종인에게 오늘은 괜찮으니 일하는 곳으로 데리러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더니, 그 이후로 쭉 데리러 오지 말라는 말을 전했다. 종인은 못내 섭섭하면서도 형의 말이기에 하는 수 없이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또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면, 요새 형이 밖에서 전화 통화를 자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종인이 집에 있을 때만 말이다. 형의 변화가 종인은 꽤 많이 신경 쓰였다.
혹시, 형이 연애라도 하나?
문득 제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으로 인해 종인은 금세 시무룩해졌다. 형이 연애라니, 어쩐지 기분이 이상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세훈이 사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다르다는 것이 어떤 식으로 다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종인과 세훈의 관계는 여전했다. 가까운 듯 먼 사이. 다만 종인이 조금 더 세훈을 의식하고 신경 쓸 뿐이었다. 그리고 세훈은 종인이 자신을 의식하고 신경 쓴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으나, 종인이 먼저 말을 꺼내기 전에는 그것에 대해 가타부타 말을 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세훈은 종인의 태도가 조금 불편하긴 했다. 머지않아 종인은 결국 신경 쓰지 않는 척, 세훈에게 애인에 대해 물어보았다.
-대학생인데, 나보다 작고 하얗고 예뻐.
세훈의 대답을 듣는 순간, 종인은 어쩐 일인지 제 형의 모습이 떠올랐다.
종인은 형의 성화에 못 이겨 반강제적으로 독서실에 다니게 되었다. 야간 자율학습을 제 마음대로 불참한다고 해버린 종인으로 인해 화가 난 준면이 독서실이라도 가라며 한 달 치를 예약해두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종인은 야간 자율학습을 하지 않아도 매일 밤 10시까지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고 와야 했다.
그 날도 독서실에서 비문학 문제집을 풀다가 졸기도 하고, 영어 독해 문제집의 지문을 읽다가 게임을 하기도 하며 시간을 보낸 뒤에 정확히 밤 10시가 되자마자 집으로 향했다. 종인이 다니는 독서실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어서 빨리 집에서 쉬고 싶은 마음에 종인은 발걸음을 빨리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 형은 이미 일하러 간 것인지 집안에 불이 켜져 있지 않았었다. 벌써 갔나. 제 휴대폰의 시계를 확인하며 현관의 불을 켠 종인은, 그 자리에서 멈춰서고 말았다. 현관에 아무렇게나 벗어 던져진 두 켤레의 신발과 뱀이 허물을 벗어놓은 것 마냥 준면의 방으로 이어지는 옷가지들. 종인의 심장이 세차게 뛰고 있었다. 어떤 상황인지 예상이 갈 것 같으면서도, 아니길 바라는 심정으로 종인은 허리를 숙여 형의 옷가지들을 하나씩 주우며 준면의 방 앞으로 갔다. 준면의 옷을 쥔 종인의 손에 힘이 들어가며 부들부들 떨렸다. 심호흡을 하며 종인은 문틈으로 준면의 방을 들여다보았다.
문틈으로 보이는 준면은 완벽한 나신이었다. 남자의 허리에 감은 다리에 눈에 띄게 희고 가늘었다. 남자의 목에 매달려 쾌락에 젖은 표정이 천박하게만 느껴졌다. 줄곧 알고 있던 형과는 너무도 다른 것 같아 종인은 괴리감이 들었다.
-하으, 세훈… 아……!
준면의 입에서 불린 익숙한 이름으로 인해 종인은 손에 들고 있던 옷가지를 모조리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
나는 그 순간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질투를 느낀 것은 맞지만, 그것이 형을 향한 분노와 질투인지 아니면 세훈을 향한 분노와 질투인지 알 수가 없었다.
확실한 것은 세훈이 말한 애인이 내 형이라는 것.
아. 어쩐 일인지 형을 죽이고 싶었다.
내 형이, 사라져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의 일기장을 든 내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일기장에는 그 당시 동생의 분노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꾹꾹 힘을 주어 쓴 것 마냥 굵은 글씨와, 뒷장에 남은 볼펜 자국이 그 예시였다. 그렇지만 동생의 일기장엔 한 가지 모순이 있었다. 그것은 나와 세훈이 원래부터 사귀는 사이였다는 것. 일기장은 동생이 고등학교에 막 입학하고서 쓰인 것이니, 동생의 일기장에 따른다면 나와 세훈이 적어도 3년은 알고 지냈다는 뜻이 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세훈을.
“이게 뭐에요?”
“그, 그거…!”
이미 일기장은 세훈의 손으로 옮겨졌다. 일기장을 읽는 세훈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려니, 세훈 역시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세훈의 팔을 잡았다. 세훈은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알 수 없어 그저 세훈을 올려 볼 뿐이었다. 세훈이 내 어깨를 강하게 그러쥐었다. 아픔이 느껴져 짧게 신음을 흘리며 인상을 찌푸렸지만, 세훈은 고개를 숙인채로 부르르 떨고 있었다. 미약하게 흐느낌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내가 사랑한 건 처음부터 형이었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어요?”
“…….”
“왜… 우리가 사랑한 3년을 기억 못해요…….”
“…….”
“도대체 당신이 기억하고 있는 건 뭔데요, 비밀뿐인 당신만의 세상을 만들어낸 이유가 뭐에요?”
비밀뿐인 나만의 세상?
세훈이 울면서 하는 말이 하나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나도 분명 세훈을 사랑하는 것이 맞지만, 내가 세훈을 알게 되고 사랑한 것은 3년씩이나 되질 않았다. 나만의 세상을 내가 만들었다는 건 또 무슨 말인가.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손등 위로 차가운 것이 떨어지는 것 같아, 확인하니 그것은 물이었다. 의아함에 손을 들어 내 눈가를 더듬으니, 어느새 나 또한 울고 있었다. 나는 복잡한 표정으로 내 손에 묻은 물기를 보았다. 왜, 눈물이 나오는 거지? 그리고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흘리는 세훈을 보았다. 다시 시선을 돌리니, 주변의 풍경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머리가 아파왔다. 맞은편을 보니 그곳에는 죽은 내 동생 종인이 서있었다.
동생은 웃고 있었다. 아니, 울고 있었다.
종인은 울면서 오토바이를 타고 있었다. 분명 집 안에 있었는데 어느 순간 도로의 한 가운데에 서있었다. 종인은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 내 쪽으로 질주했다. 내게 점점 속도를 높여 다가오는 오토바이. 위험을 감지하고 세훈에게 피하라고 말하려 고개를 돌렸을 때,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있던 세훈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부모를 잃은 아이처럼 주변을 둘러보며 세훈을 찾았다. 하지만 원래부터 세훈은 없었던 것 마냥, 존재하지 않았다.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땐, 오토바이의 전조등이 따갑게 눈을 부시게 해 눈을 감아 버렸다. 강한 충격이 느껴지고 힘겹게 다시 눈을 떴을 땐, 여전히 우는 얼굴의 종인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쿵.
내 옆으로, 종인의 헬멧이 떨어졌다.
나는 도로 위에 가만히 누워, 올곧이 종인을 보며 천천히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내 가슴께로 흰색의 봉투가 떨어졌다. 그 봉투의 끝자락이 붉은 색의 피로 물들었다. 그것을 본 순간, 동생이 죽었을 때 동생이 가지고 있던 돈 봉투가 떠올랐다.
……세훈아.
누군가 내 머리를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마냥 아팠다. 고통의 신음이 나오는 잇새로 겨우 세훈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동생의 표정도 고통으로 물들었다.
BGM. t.A.T.u - All the things she said
더보기 |
많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여러 개인 사정이 생겨서 한동안 글을 쓰질 못 했습니다. 원래 계획은 3월이 되기 전에 끝내는 것이 목표였지만, 음... 3월 첫 주까지 갈 것 같습니다. 이번 편으로 많이 혼란스러우실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주말 전에 다음편 들고 올게요.
얼른 가족의 비밀을 끝내고, 새로 구성한 글 쓰고 싶네요...흡. 아 그리고 조만간 암호닉 정리 하겠습니다! 암호닉 분들에게도 뭔갈 해드려야 할텐데 말이죠...
+아 혹시 제 친구 까치가 이걸 본다면, 사진 첨부를 못 해서 미안하다고 전하고 싶네요...하트. 애정한다 친구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