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다정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쓸데없는 걱정을 보였고, 챙겨주었다. 그 누구에게나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고 그 사소한 걱정과 다정이 점점 욕심나기 시작했다. 아프면 아픈대로, 기쁘면 기쁜대로 그의 관심을 끌기위해 노력했고 그럼에도 나는 그저 많은 사람들 중 누구에 속했다. "아파." "어디가? 약사올까?" 의무적인 말이었다. 누가 어느 얘길 하던 자신의 답은 정해져있다는 듯 그렇게 돌아오는 답은 항상 같았고 나는 그 말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을 저버릴순 없었다. 그런 기대감이 커질수록 내 심장이 밑바닥으로 쳐박히는건 신경쓸 겨를이 없어지는것도 당연지사였다. "태형아." "미안 정국아. 지민이가 아프다네. 나중에 얘기하자." 아. 넌 이런 아이였지. 입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수만가지의 말들이 맴돌았다. 박지민이 아픈게 왜 너랑 상관있냐고 따져묻고 싶지만 나는 뻗은 손을 어찌하지 못한채 그저 눈만 끔벅일 뿐이었다. 허공에 뻗어진 내 손 사이에 잡히는건 태형이의 팔도 옷자락도 뭣도 아닌 그저 새어나가는 바람뿐이었다. -정국아. 아까 왜 불렀었어? "......" -할 말 있었던거 아니야? "응. 아무것도 아니야." 왜 그래. 만날래? 섬세함이 귀찮아질만도 하건만 참으로 끈질긴 다정함이었다. 내가 이 상황에서 짜증이 나는 이유는 그저. 정말 그저, 전화임에도 불구하고 내 눈앞에 그려지는 김태형때문이었다. 아무리 눈을 감았다 떠도 보이는 환상에 기뻐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않는다. 태형의 걱정어린 말에 나는 또 다시 쓸데없는 기대감에 차올라 고개를 끄덕인다. "응. 잠깐 만나자." 천막을 들어내며 보이는 얼굴에는 여전히 걱정이 가득했다. 차마 웃지 못한 표정으로 반기는 모습에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을 때까지 좁혀진 미간은 펴질 줄 모른다는 듯 여전하다. 미안. 내가 차마 입꼬리를 올릴 수가 없어. 똑같이 입 안쪽에서만 겉도는 말이었다. 넌 모르잖아. 내가 어떤 감정으로 널 보는지. 빈 술잔을 건넨 손이 조금은 떨렸던 것도 같았다. 반쯤 따라진 술을 들이키며 감긴 눈도 떨렸을지 모른다.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술만 마시는 날 보며 태형이는 어떠한 생각들을 했을지 또한 모르겠다. 모르는 것 투성이면서 왜 자기 자신 마음은 그렇게도 잘아는지, 스스로 느낀 감정에 짜증이 날 법도 했다. "무슨 일있어?" 7년간 변함없이 하다 못해 나의 부모님보다 심한 걱정, 나쁘게 말하자면 고나리질. 정말 짜증나고 열받게만 하는 고나리질. 그냥 친구로써니까. 날 연애 감정이 아닌 친구 감정으로만 대하고 걱정하는 거니까 나 또한 친구 감정이라 애써 포장질 하며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척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니, 아무 일 없어." 태형에게 따라주는 술은 술잔에 넘치지 않을 만큼만 따라주었건만 내 마음은 차곡 차곡 쌓아올려놓은 것이 헛된 일이 된 것 마냥 흘러넘쳐서 감당이 힘들 정도인지 대체 왜 그런 것인지 나는 아무것도 알지못했다. 너무나도 아픈 날, 아무도 없는 집에서 끙끙 앓다 받은 전화는 억지로 멀쩡한 척 바쁜 척 둘러대며 내 손에 잡히는 이불을 아무렇게나 비틀 수 밖에 없었다. 이 아픔이 얼마나 오래갈진 모르겠지만 아마 내가 겪어왔던 단 한 가지 아픔보단 짧게 가겠지. 여전히 온 몸이 아팠지만 난 이불을 더욱 싸매며 앞이 보이지않을 만큼이나 부은 눈을 감았다. 잠시 자고 일어나면 내 몸은, 내 마음은 가벼워질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며칠을 앓고 나서야 무거운 눈을 뜰 수 있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고집쟁이같은 몸살은 내 몸이든 마음이든 모두 무겁고 축축하게 만들었다. 아프면 말해. 걱정이 한껏 담긴 말에도 나는 아프다는 말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혹여나 달려오지 않을까봐. 아니면 걱정 한 번 해주지 않을까봐. 다 나은것 같은데도 나는 눈만 떴지 몸은 무겁게 가라앉아 일으킬 수가 없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둘은 어쩐지 아무런 말도 내게 해주지 않았다. 둘 사이 흐르는 기류는 내가 낄 수 없게끔 부드러웠으며 한없이 다정했다. 아. 깨달음에 탄식인지 허탈함에 탄식인지 나조차도 분간할 수없는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박지민. 나 좀 봐." 동아리 문을 열고 들어선 지민이 내 앞으로 의자를 끌어다 앉는 모습을 멍청히 보고있을 수 밖에 없던 것인지 내 눈은 한 번의 깜박임을 찾아볼 수 없었다. "왜?" 웃는 모양새가 얄밉기만 하다. 어떻게 꺼내야 할지도 모르겠는 말들이 못나게 뒤엉켜 내 머릿속을 헤집고 엎어놓고. 복잡함에 입술을 깨물어도 정리는 하나도 되지않는다. "너 태형이랑...." "너 태형이 좋아하지?" 아무도 몰라야 하는데. 누구도 내 표정을 보지 말아야 하는데. 굳게 다문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차마 막지 못한 말을 나는 내 의지대로 멈출 수가 없었다. "응." 내뱉은 말을 주워담을 수 없듯이 이미 꺼내어버린 마음또한 주워담을 수 없겠지. 시작해버린 감정을 그 전으로 되돌릴 순 없겠지. 그러니까 넌. 박지민 너는, 아예 시작도 하지 말아줘. 천막사이로 보이는 얼굴은 보고싶었지만 보고있긴 힘들었다. 이 감정을 숨기기 위해선 보지말아야 했지만 자꾸만 돌아가는 시선을 감추기엔 너무 늦어버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어둡게 자리잡은 사랑이 나는 그냥 너무도 힘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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