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쎄한) 연하 박지훈이 보고싶어서 쓰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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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쉬었던 학교를 다시 복학했다.
3학년이라는 꼬리표 치고는 그리 성장은 하지 못했다.
재수까지 해서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좋은 대학교로 진학했지만,
대학교에 온다고 나라는 인간이 갑자기 바뀌지는 않았다.
여전히 자신 없고, 꺼리고, 나서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남들과 서스럼없이 어울리는 것도 힘들었다.
연애는 커녕, 동기인 남자아이들과도 그렇게 썩 친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그냥저냥, 있어도 없어도 딱히 영향을 주지 않는 평범한 엑스트라 1 같은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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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석은 나와는 정반대였다.
어딜가든 주목 받았고, 주위에 사람이 들끓었다.
예쁘장한 외모지만 털털하고 수수한 성격 덕분에 학과내에서 그 녀석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말 그대로 나와는 정반대의 타입인 사람이다.
해가 서쪽에서 뜨지 않는 한, 나와 절대 엮일리가 없는. 그런 부류.
그렇게 생각했던
그 녀석을 처음 만났던 건 내가 복학을 하고 갔던 개강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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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18학번 박지훈이라고 합니다."
원래부터 구석자리가 편한 나는 제일 먼저 벽 쪽 자리에 착석했고,
차례대로 들어오는 신입생들 중에 한 남자아이가 내 앞에 앉게 됐다.
와, 아이돌 같이 생겼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내가 이제까지 봐왔던 남자들 중에 가장 잘생긴 것 같았다.
내 옆에 앉은 혜지는 박지훈이라는 남자아이를 보자마자 얼굴에 화색이 돌아서는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여자친구 있어요?!"
혜지의 물음에 나는 적당히 하라는 뜻으로 허벅지를 탁 쳤다.
괜히 내가 미안해져 박지훈을 쳐다보니, 잔뜩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네, 있어요."
아 역시. 없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남한테 이런 평가하긴 뭣하지만 살면서 여자친구가 끊이지 않았을 것만 같았다.
줄곧 혜지와 이야기를 나누는 박지훈을 나도 모르게 계속 힐긋 힐긋 쳐다봤다.
와, 진짜 잘생겼다.
관심을 떠나서 그냥 잘생겨서 계속 쳐다보게 되는 얼굴이었다.
그러다 박지훈이 내 쪽으로 잠시 눈을 돌렸고, 눈이 마주치자 나는 급히 피했다.
나는 간간히 그 둘과 다른 신입생이 신나게 떠나는 걸 들으며 웃는 정도였다.
이게 나한테 어울리는 포지션이지.
그런데 자꾸 박지훈과 눈이 마주치는건 기분탓일 거라고 믿었다.
내가 너무 조용해서 신기해서 쳐다보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려고 해도 너무 눈이 자주 마주치는 것 같아 약간 불편해졌다.
"저 잠깐 화장실 좀."
결국 자리를 피해서 화장실로 갔다.
간간히 마주치던 눈빛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술이 들어가서 그런건지 기분이 뭐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했다.
술 좀 깨면 괜찮아 지려나.
차가운 물에 손을 씻고는 여자화장실을 나오는데,
".."
남자화장실로 들어가는 박지훈과 또 다시 마주쳤다.
계속 이 아이의 생각을 하고 있었던 탓인지 더 당황한 내가 우물쭈물거리며 서있자,
박지훈은 씩 웃으며 살짝 목례를 하고는 화장실로 들어가버렸다.
역시, 그냥 우연이겠지.
심장이 빨리 뛰는게 느껴졌다.
왜 이렇게 긴장되는 건지, 나도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그 날 일찍 술자리를 나왔다.
***
그 이후 약 한 달동안 박지훈과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 날 내가 느낀 긴장과 불편함이 무색해질 만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답지 않게 무슨 착각을 한 건지, 조금 부끄러워졌다.
"넌 오늘 수업 다 끝났지? 집에 갈 거?"
"아니, 카페가서 공부하고 가게."
"야 지금 시험기간이라 카페 자리 있는 곳 없을걸?"
"좀 걸어가면 엄청 조용한 카페 있어, 거긴 시험기간에도 사람 없더라."
"오, 그런 데가 있어? 나도 나중에 알려줘. 야 나 늦겠다, 먼저 갈게!!!"
"내일 봐."
강의실로 뛰어가는 혜지에게 손을 흔들고는, 학교를 나와서 걸었다.
시험기간마다 가는 작은 카페가 있는데,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인적드문 골목에 있어서 그런지 항상 사람이 없었다.
그나저나 혜지에게 그 카페를 알려줬다간 여기저기 퍼져서 나만의 공간이 사라질 느낌인데,
큰일이네.
잡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카페에 다다랐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역시나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어느새 익숙해진 주인 아주머니께 목례를 하고는 음료를 시켜 창가 자리에 앉았다.
봄햇살이 강해서 그런지 공부를 시작하기도 전에 몸이 나른해지는 느낌이었다.
사실, 어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날이어서 잠도 제대로 못 잔게 컸다.
몇 글자 끄적이다가 나는 도저히 못 참고 10분만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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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지 번쩍 눈이 떠졌다.
어느새 해는 내려가서 조금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급히 휴대폰을 확인하니 1시간 정도 잠들었던 것 같다.
조금만 더 잤으면 큰일났을 뻔 했네.
정신차리고 다시 펜을 쥐었다.
"안녕하세요, 선배."
응? 나 부르는 건가?
아닐거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갑자기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자연스레 고개를 돌렸다.
박지훈이었다.
나는 그대로 굳어서 몇 초간 가만히 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어, 안녕.."
"..."
뭔가 더 이상 할 대화가 생각나지 않았다.
사실 물어보고 싶은 거라면 많았다. 어떻게 니가 여기 있는지, 여긴 어떻게 안 건지.
그냥 머릿속이 순간 새하얘져서 고개를 돌려 다시 책으로 눈을 돌렸다.
아직 날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이내 박지훈도 고개를 돌려 공부를 시작하는 소리가 들렸다.
불편한 긴장감이 다시 나를 휘감았다.
*
먼저 가겠지, 먼저 갈거야.
박지훈이 먼저 카페를 떠날거라고 굳게 믿고 기다리던 나는, 어느새 카페 마감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옆을 슬쩍 바라보니 박지훈은 안경을 끼고 여전히 공부에 집중해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내가 먼저 빨리 떠날 수 밖에 없겠다.
나는 급하게 책과 필통을 정리해서 가방에 챙겨넣었다.
그래도.. 인사는 하고 가야겠지.
가방을 멘 나는 박지훈의 자리 쪽으로 걸어가 녀석의 어깨를 톡톡 쳤다.
"...왜요?"
내 부름에 귀에서 이어폰을 뺀 박지훈은 저렇게 대답했다.
생각보다 차가운 대답에 나는 또 다시 당황했다.
괜히 공부하는 데 방해했나 하는 생각이 들어 미안한 표정을 짓고는,
"아 미안. 인사하려고.."
"아."
여전히 차가운 표정을 한 박지훈에게 손을 흔들고는 등을 돌리려는데,
가려는 내 손목을 갑자기 잡아오는 박지훈이었다.
깜짝 놀란 내가 다시 등을 돌려 그를 쳐다보니,
"같이 가요, 선배. 시간도 늦었잖아요."
아까와는 다른 박지훈의 밝은 표정보다도 내가 더 놀란 건,
내가 팔을 빼려하자 그런 내 팔목을 더 세게 쥐어오는 박지훈의 손이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