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방탄소년단
W. 백소
- 9 -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교무실로 뛰어 올라갔다.
교무실 앞에 도착해 창 너머로 안을 보자 입술이 살짝 터진 정국이와 그 옆에 얼굴 이곳저곳에 상처가 가득한 남학생이 서 있었다.
그들 앞에 딱 봐도 학생주임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긴 막대기로 정국의 머리를 탁탁 내리치며 짜증을 내고 있는 상황이 보였다.
그 모습에 울컥 화가 올라온 나는 교무실의 문을 확 열어젖혔다.
" 지금 그 행동은 폭력이라고 생각되네요 선생님. "
나의 등장에 날 아래위로 훑어보는 학생주임이었고, 갑작스러운 내 등장에 놀란 듯 쳐다보는 선생들과 정국이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들 앞으로 걸어가 날 내려다보는 정국이의 얼굴을 살폈다.
그런 날 향해 작게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 누나가 왜… "
정국이의 혼잣말을 들은듯한 학생주임의 얼굴은 ' 오호라, 누나라고? '라는 표정으로 변하는 것이 보였다.
" 아, 정국이 보호자 되시나 보네요? "
" 네. "
" 제가 드렸던 전화를 받은 분의 목소리는 남자셨던 것 같은데… "
날 되게 깔보는 듯한 억양으로 묻는 학생주임을 보며 교수님을 삼촌이라고 둘러댔다.
"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
" 아, 저 새끼가 옆에 있는 애를 일방적으로 무자비하게 팼던 것 같습니다. "
학생주임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왜 정국이는 새끼고 옆에 있는 애는 그냥 애라고 말하는 거지?
불편함에 학생주임의 얼굴을 보다 고개를 돌려 정국이와 옆에 서있는 남학생을 번갈아봤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피하는 정국이와 그런 정국이를 옆에서 쏘아보고 있는 남학생이었다.
시선을 내려 바닥을 보는 정국이의 다친 입술 밑으로 살짝 목이 조인 듯한 모습이 눈에 띄었고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인상을 더 썼던 것 같다.
" 정국아, 사실이야? "
" … "
" 네가 먼저 시작한 거니? "
" … "
아무 대답 없이 바닥만 보고 있는 정국이의 얼굴이 점점 더 굳어져갔다.
그때 정국이를 쏘아보고 있던 남학생이 말해왔다.
" 저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갑자기 저한테 오더니 다짜고짜 주먹부터 휘두르더라고요.
참나, 집에서 그렇게 교육했나 봐요? 진짜 쓰레기였네… "
그의 말에 바닥만 보고 있던 시선을 들어 자신의 옆에 있는 남학생을 무섭게 쏘아보는 정국.
그런 정국의 꽉 쥐어진 채 부들부들 떨리는 손이 보였다.
그대로 두면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아 정국이의 손목을 잡았다. 그러자 고개를 돌려 나를 내려다보는 정국이었다.
날 보는 정국이의 시선은 뒤로하고 학생주임에게 잠시 밖에서 정국이와 얘기하고 와도 되냐고 물었다.
그러자 탐탁지 않은 눈으로 나와 정국이를 번갈아 보다 마지못해 그러라고 대답했다.
정국이를 데리고 텅텅 비어 조용한 복도로 나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 정국아. "
" … "
"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어? "
나의 물음에 고개를 돌리는 정국. 그런 그의 모습에 걱정이 되어 고개를 내려 정국이의 이름표를 바라봤다.
설마 정국이가 다시 마음이 변하는 건 아닐지, 이대로 나와 처음 만났던 날로 돌아가는 건 아닐지.
그런 걱정으로 정국이를 올려다보는데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날 향해 말해오는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누나도 저 안 믿잖아요. "
" 누가 그래? 내가 너 안 믿는다고. "
내 말에 다시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마주하더니 말을 이어나가는 정국이었다.
" 다 알고 있어요. 누나 저한테 실망했잖아요. "
" … "
" 맞으면서. "
그 말과 함께 다시 고개를 돌려버리는 정국.
" 맞아, 좀 실망했어. "
" … "
" 해달라는 얘기는 안 하고 피하기만 하고 있잖아. 제멋대로 생각하고 있고. "
" … "
" 누난 너 믿어. 지금 여기서 나 아니면 누가 널 믿어? "
" … "
" 나는 말 그대로 정국이 너의 보호자로 온 거야. 교무실 안에 있는 저 애의 보호자가 아니라. 그러니까 말해봐, 무슨 일이 있었어? "
내 말에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마주하는 정국. 그러더니 교무실을 살짝 보더니 이내 다시 시선을 내려 바닥을 보며 말해왔다.
" 먼저 때린 건 저 맞지만 저도 피해자예요. "
눈을 맞추지 않은 채 말하는 정국이의 당시 상황은 이러했다.
자리에 앉아 귀에 이어폰을 낀 채 음악을 들으며 핸드폰을 하고 있던 정국이는 그날따라 귀가 아파 끼고 있던 이어폰을 뺐다고 했다.
그때 교무실 뒤에서 못마땅하다는 듯 저들끼리 하던 얘기가 들려왔다.
' 야, 너희 그거 아냐? '
' 뭐? '
' 전정국 저 새끼, 병신이라서 정신 치료받고 있댄다. '
' 뭔 개소리야? '
' 아 진짜라니까? 내가 아는 누나가 얘기해준 건데 쟤 부모 버리고 집 나와서 어떤 형들이랑 같이 산대.
근데 그 집에 여자들이 수시로 들락거린다고 했어. '
' 뭐? 네가 그걸 어떻게 아냐? '
' 그 누나가 정신과 의사라서 그 집에 갔었던 적 있었대. '
자신을 중심으로 들려오는 그 얘기는 물론 그에게만 들린 것이 아니었다.
쉬는 시간이라 다른 반에서 놀러 온 학생들과, 자신의 반 학생들 모두가 들었다.
그 얘기를 들은 학생들 몇 명은 정국이를 쳐다봤다고 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국이는 애써 겨우 참았다.
' 근데, 그 집에 사는 형들도 다 제정신 아니래. 완전 또라이 집합소야 그냥. '
그 말에 정국이는 조금씩 화가 치밀어 올라왔다. 참자, 여기서 한번 더 일이 터지면 그땐 윤기가 학교를 뒤집어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화가 많이 났던 정국이는 주먹을 꽉 쥔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렇게 애써 참으려는 정국이를 결국 폭발하게 만드는 말을 하는 남학생이었다.
' 야, 그런데 어쩌다 그 집을 지나가던 누나가 우연히 봤는데 지금 거기 새로운 여자가 들어왔대. '
' 예쁘대? '
' 그건 모르겠는데 지금 거의 한 달인가, 계속 들어가고 있대. 근데 예쁘니까 계속 나가고 있는 거 아니겠냐? '
' 궁금하다, 어떻게 생겼는지. '
' 나도 궁금하다. 우리 다음에 한번 몰래 가볼까? 예쁘면 우리가 어떻게 얘기해보자, 안되면 힘으로 하던가. '
' 뭐? 그런 짓을 왜 하냐? '
' 어때, 그런 병신들이 사는 곳보다야 우리가 더 낫지. 그 누나도 분명 억지로… 뭐, 뭐야!! '
폭발한 정국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들의 앞으로 걸어가 열심히 시시덕거리며 말하는 남학생의 멱살을 잡으며 얼굴을 향해 주먹을 꽂았다.
자신의 주변까지 오는 걸 모르던 남학생은 자신의 멱살이 잡히자 당황해하더니 이내 정국이의 주먹을 맞으며 자리에서 넘어졌다.
자리에 넘어진 남학생을 향해 걸어가는 정국이었고, 그런 정국이를 향해 달려든 남학생이었다.
남학생의 공격에 정국이는 얼굴을 한 대 맞으며 넘어졌다.
그런 정국이의 위로 올라탄 남학생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그의 목을 졸랐다.
목이 조였던 정국이의 모습에 주변 애들이 놀라 서둘러 둘을 떼어냈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그 상황을 겨우 빠져나온 정국이는 그저 멀리서 남학생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런 정국이 못지않게 맞아서 화가 난 듯한 남학생은 비웃으며 말했다.
' 아이고~ 다 듣고 계셨어요? 쥐새끼마냥 몰래 숨어듣는 게 취민가 봐? '
' 애들 다 들리게 얘기해놓고 무슨 쥐새끼야. '
' 난 애들 향해서 얘기한 거지 너한테 얘기한 거 아니야. 근데 네가 듣고 있었으면 엿들은 거나 다름없는 거지 뭐. '
' 미친 새끼. '
' 미친 새끼? 하. '
정국이의 말에 비웃으며 고개를 돌리던 남학생은 다시 정국이와 시선을 맞추더니 중얼거리듯 말했다.
' 더러운 새끼라고 소문나도 상관없는데. '
' …뭐? '
' 내가 그 소문나게 도와줄 대상은… 뭐, 너와 잘 아는 그 여자? '
' 개새끼…! '
' 뒷감당할 수 있겠어? 우리 아빠가 어떤 사람인… '
남학생이 말을 채 끝나기도 전에 이미 눈이 돌아간 정국은 자신을 막고 있는 친구들을 뚫고 그를 향해 달려갔다.
그 이후 정국이는 남학생을 바닥에 눕혀 친구들의 말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때렸다.
몇 대 때리고 있자 그들의 반으로 달려온 선생들이 정국이를 겨우 말렸고 지금 이렇게 교무실까지 끌려오게 된 것이다.
정국이의 말을 듣고 있던 나는 어이가 없었다.
방금 내가 들은 말이 잘못된 건 아닌지. 만약 정국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저 교무실 안에 있는 남학생에게 어떻게 되었을까.
그 생각에 나는 눈을 꾹 감았다 뜨며 정국이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 그래서 이런 상황이 일어났던 거구나… "
" …미안해요, 나 때문에 누나가… "
" 아니야 정국아. 누나 지켜주려고 그런 거 아니야. 오히려 너 덕분에 산 걸수도 있어. "
" … "
" 그리고 사실대로 다 말해줘서 고마워. "
" … "
고맙다는 내 말에 울컥해진 건지 고개를 푹 숙이며 자신의 팔을 들어 눈가를 소매로 가리는 정국이다.
그런 정국이를 안아주며 등을 토닥여주었다.
" 정국아, 교무실 들어오지 말고 여기서 잠시 기다리고 있어. 누나가 들어가서 얘기하고 올게. "
품에 안았던 정국이와 살짝 거리를 주다가 교무실 쪽으로 몸을 돌리는데 옷자락이 잡히는 느낌에 자리에 멈춰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자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옷자락을 쥔 정국이의 모습이 보였다.
" 같이 들어가요… "
눈물을 애써 참으려는 정국이의 목소리에 옷자락을 쥔 그의 손을 잡았다. 손을 잡자 쥐었던 옷자락을 풀은 정국.
" 그런 얼굴 보여주려고? "
" … "
" 누나가 잘 해결하고 올게.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니까 여기서 진정하고 있어. "
그렇게 말하자 정국이는 눈가를 가리고 있던 팔을 내렸다.
그러자 촉촉해진 그의 눈가가 보였고 그런 정국이를 보며 생긋 웃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교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교무실 안에는 학생주임과 남학생이 서로 얘기하는 게 보였고, 그런 둘을 보며 교무실로 들어갔다.
재등장한 날 보던 학생주임은 내 뒤를 힐끔 봤다. 아무래도 정국이가 없어서 그런 걸지도 몰랐다.
둘을 향해 앞으로 걸어갔고 날 아래위로 물끄러미 쳐다보는 남학생의 시선이 느껴졌다.
정국이의 얘기를 듣고 난 이후라 그런지 남학생의 시선이 되게 불편했다.
" 정국이의 얘기를 다 듣고 왔어요. "
" 다 변명이겠죠. "
고개를 돌려 날 쳐다도 보지 않으며 말하는 학생주임의 태도에 기가 막혔다.
도대체 내가 정국이가 없는 동안 둘 사이에 무슨 말이 오갔던 건지. 들어는 보고 변명이라고 하던가.
" 변명 같지는 않던데요. "
" 보호자분이 계시지 않을 때 이 학생이랑 얘기를 나눠봤는데 쟤가 다 잘못했더라고요? "
" 무슨 말을 들으셨길래 그런 말을 하시죠? "
" 친구들이랑 얘기하고 있었을 뿐인데 갑자기 와서 멱살을 잡고 얼굴을 때렸다고 했다네요. 반 애들도 다 봤다고 물어보라던데요? "
" 그전에 무슨 상황이었던 건지는 자세히 들으셨나요? "
" 그냥 친구들이랑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던데 뭐 중요한 말이라도 있나요? "
학생주임의 말에 고개를 돌려 남학생을 쳐다봤다. 고개를 돌리자 날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남학생과 눈이 맞았다.
역겨운 그 표정에 나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복도에 서 있는 정국이를 생각하며 애써 참으며 주먹을 꾹 쥐었다.
" 왜 사실대로 말 안 해? 무슨 말을 했는지 내가 다 들었는데. "
" 제가 말한 게 사실인데 뭘 안 해요? 못 믿겠으면 저희 반 애들 다 부르던지요~ "
자신만만한 남학생의 태도에 헛웃음이 나왔다. 이거 아무래도 집에서 막아주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나올리야 없지.
도대체 어느 집안의 대단한 아드님이시기에 이렇게 여유 부리는 건지.
" 듣자 하니 아버님께서 높은 자리에 계시나 봐? "
" 들으면 다 알죠. 저희 학교에서도 소문이 자자한데. "
남학생의 말에 옆에 있는 학생주임을 봤다. 그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미 학교와 손잡고 입도 잘 맞춘 모양이네. 설마 드라마에서나 보던 상황이 이렇게 현실에도 있을 줄이야.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데, 부모가 그딴 식으로 나오니 자식들도 이렇게밖에 성장하지 못하지.
웃기지도 않은 상황에 화만 더 오른 나는 남학생을 올려다봤다.
" 도대체 어떤 분이시기에 학교에서도 다 막아주는 거니? "
" 저기요, 전정국 보호자분. 거 말이 지나친 거 아닙니까? "
" 들으면 다 안다고? 내가 들어봐도 알 분이시려나? "
" 전정국 보호자님!! "
남학생을 향해 아랑곳하지 않고 말하자 결국 언성을 높여 날 부르는 학생주임이다.
덕분에 제 일을 하던 선생들은 모두 내가 있는 쪽으로 시선집중했다.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정국이도 교무실에서 큰 소리가 들리자 놀라며 서둘러 문을 열고 들어와 상황을 살폈다.
그런 상황에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내 앞에서 날 내려다보는 남학생만을 마주하고 있었다.
시선을 들어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정국이를 힐끔 보다가 비아냥거리는 웃음을 흘리다 다시 날 보는 남학생이었다.
" UM 기업이라고 아시나, 거기 사장이 우리 아빠세요. "
남학생의 말에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UM 기업이라면 반도체 기업의 중소기업으로 알고 있었다.
언론에는 터지지 않았지만 기업 사이에서는 좋지 못한 소문이 나돌고 있는 곳이었다.
그곳의 사장과 아들이 연예인을 상대로 성매매를 이루고 있다고 들었다.
아… 문제 되는 사람들 중 한 명이 지금 내 앞에 있었네? 그것도 아들이 미성년자?
웃음이 나왔지만 애써 티 내지 않은 채 알겠다고만 대답했다.
그런 날 보며 ' 왜요? 쫄았어요? '라며 묻는 남학생의 모습에 이딴 곳이 무슨 학생을 가르친다고, 정국이를 이런 곳에 보낼 수는 없다.라는 생각을 가지며 고개를 돌려 학생주임을 마주했다.
" 이 학교의 수준을 잘 알게 되었네요. "
" 뭐라고요? "
" 앞으로 정국이는 이 학교에 보내지 않겠습니다. "
" 허? "
" 다른 학교로 보낼 거니 조만간 제가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
" 듣자 듣자 하니 별 거지 같은 소리를 다… "
" 이건 제 명함이에요. 문제 되면 연락 주세요. "
이젠 아예 격식을 차리지 않으며 말하는 학생주임에게 지갑을 열어 명함 두 장을 겹쳐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 명함을 내려다보는 학생주임과 남학생이었고, 허리 숙여 인사할 필요성을 못 느낀 나는 몸을 돌려 날 보고 있는 정국이의 앞으로 걸어갔다.
정국이의 몸을 돌려 복도 쪽으로 살짝 밀었고 문을 닫고 나오기 전 나를 쳐다보고 있는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 오늘은 정국이 조퇴해도 될까요? "
" 아니 저…! "
" 그럼 반으로 가서 가방 갖고 가도록 할게요. 수고하세요. "
" 야!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너 뭐 하는 사람인데 이딴 식으로 나와! "
화를 내며 말하는 학생주임의 모습에 문을 닫기 전 그들을 향해 대답하였다.
" 저는 심리상담사이자 정국이 보호자입니다. "
그 말을 끝으로 그대로 교무실 문을 닫았고 내가 나가자 그제야 명함을 확인한 두 사람의 표정은 서서히 굳어져갔다.
반으로 가서 가방을 챙기고 나온 정국이와 함께 주차장으로 왔다.
오는 내내 아무 말이 없던 정국이는 차 앞에 서자 그제야 물어왔다.
" 누나… "
" 응? "
" 미안해요, 괜히 나 때문에… "
"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보니까 이런 학교에서는 배울게 없어 보이더라. "
" … "
" 내가 더 좋은 학교에 보내줄게. 사립이든 예고든 어디든다. "
" 누나 가요…? "
" 왜? 못할 것 같아? "
" 아니… 누나가 돈이 어딨다고요, 게다가 내가 뭐라고 그렇게까지… "
" 그런 거 걱정하지 마. 한 사람의 인생이 중요하지 돈이 더 중요하겠어? "
" … "
" 부담 갖지 말고 그냥 누나 믿어. "
말없이 고개를 숙이는 정국이를 보며 연신 괜찮다고만 얘기했었다.
" 저, 누나… "
" 응? "
"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
" 뭔데? "
" 아까… 저한테 사실이냐고 물었을 때 저한테 많이 실망했었죠? "
" 응? "
정국이의 물음에 잠시 생각해봤다.
아, 그때?
" 아니, 실망한 건 아니었는데? "
" 그럼 왜 그런 표정으로 물은 거예요? 사실 누나도 저 믿지 않았죠? "
" 난 당연히 너 믿고 있었는데. "
" … "
" 그때는 화가 났었어. 선생이라는 사람이 제자한테 새끼,라고 말하지를 않나. 자세한 상황도 모르면서 일방적으로 네 탓만 하고 있고. 그 상황 자체가 화가 났었어. "
" 정말이요…? "
" 응. 설마 내가 너 믿지 못하고 화냈던 거라 생각하고 있었던 거였어? "
" … "
" 그래서 나한테 실망했냐고 묻고, 안 믿는다고 말했던 거였어? "
" … "
내 물음에 아무 말 없는 정국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 너한테 화난 거 하나도 없어. 오히려 나한테 사실대로 말해줘서 고마워 정국아. "
고맙다는 내 말에 나와 눈을 맞추는 정국. 그런 정국을 보며 차에 타라고 말했고 나의 말에 아무 말 없이 조수석에 올라타는 정국이었다.
차에 탄 정국이를 보며 웃다가 조금 떨어진 곳으로 걸어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누군가 전화를 받았고 상대방과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난 후 말하고자 했던 본론을 얘기했다.
" 엄마, 예전에 뵙던 기자님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기사로 내줬으면 하는 말이 있어서요.
아빠한테는 UM 기업에 더 이상 후원해주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해주세요. 아마 되게 좋아하실 거예요.
자세한 건 나중에 기사로 보면 알게 되실 거예요. 네, 쉬세요 엄마. 다음에는 집에 들를게요. "
통화를 끝나고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미소를 지으며 정국이가 기다리고 있을 차로 걸어갔다.
운전석에 올라타고 숙소로 향해 차를 출발시켰다.
그녀가 교무실에서 그런 행동을 보이고 지금 이렇게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일에는 놀라운 사실이 숨겨져있었다.
방탄소년단들이 그동안 모르고 봐왔던 그녀의 실체는 사실 국내를 비롯해 국외에서도 대부로 유명한 BH의 기업 회장의 딸이었던 것이다.
BH 기업 회장의 딸은 재벌 3세였던 것이다.
***
" 끄응. "
집으로 데려온 정국이의 얼굴을 치료해주려고 구급상자를 찾아다녔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태형이가 자주 보여주던 자리에서 구급상자가 나오지 않았다.
어디 있는 건지 한참을 찾아본 결과 높은 선반 위에 올려져 있는 하얀색 구급통이 보였다.
누가 저기다가 구급상자를 올려놓은 건지 알아내면 한마디 해주겠어…
의자를 들고 와 선반 앞에 놓고 그 위를 밟고 올라가 한참을 내리려고 손을 뻗었다.
발뒤꿈치도 들어보고 제자리에서 콩콩 뛰기도 해보며 팔도 최대한 뻗었지만 아무리 해도 내 키로는 닿지 않았다.
" 왜 저기다 놓은 거야… "
정국이한테 내려달라고 할까,라는 생각에 의자 위에 앉았다.
그것도 잠시, 나갔다 올 시간도 아깝다는 생각으로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손을 뻗었다.
그때 2층에서 누군가 문을 열고 나왔다. 그 사람은 바로 한 손에 모자를 든 채 나오는 정호석이었다.
호석이 나온 것도 모른 채 구급상자 내리기에 열 내고 만 있는 그녀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 내가 저걸 제자리에 갖다 놔야지 다음에 누가 다치면 편하게 찾아서 사용하지.
지민이가 필요한 순간이 와봐, 쉽게 내릴 순 없…지는 않겠지… 그래 나보다는 잘하겠지… "
손을 뻗은 와중에도 한숨이 나왔고 조금만 더 뻗으면 되겠다 싶어 발뒤꿈치를 더 드는 순간 갑자기 몸이 크게 휘청였다.
구급상자는 손에 닿지도 못한 채 그대로 떨어져 다칠까 봐 겁이 났던 난 그저 눈을 꾹 감으며 팔로 머리를 감쌌다.
탁.
의자 위에서 떨어지기 직전 누군가 내 뒤에 있었던 건지 날 받아주었다.
덕분에 떨어져 크게 다치지 않게 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바닥에 발을 디뎠다.
자리에 서서 가슴 위에 손을 얹고 숨을 내쉬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뒤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봤다.
" 정호석…? "
정말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다리에 힘이 풀려 그만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 날 내려다보던 호석은 당황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피했다.
아마 자기가 날 받아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모양이다.
여자를 무서워하는 정호석.
그에게는 어떤 방법으로 다가가야 보다 나아질까.
" 고마워요, 덕분에 크게 다치지 않게 되었어요. "
" … "
" 저 구급상자를 꺼내려고 했는데 도저히 제 키로는 닿지 않아서… "
나의 말에 고개를 들어 선반 위에 올려져 있는 구급상자를 보는 호석.
" 저게… 왜 필요한데요? "
" 어, 그게… "
호석이에게 뭐라고 얘기할까, 그냥 정국이가 다쳐서 치료해주려 찾고 있었다.라고 실토해버릴까.
괜히 얘기했다가 정국이가 싫어하면 어쩔까…
호석을 보던 시선을 내려 허공을 보며 목덜미를 매만지는데 의자 위로 올라가는 호석이 보였고 그런 그를 올려다봤다.
말없이 구급상자를 잡고 내려오더니 그대로 의자 위에 올려놓는 호석이다.
호석의 배려에 감동한 내가 그를 올려다보자 나의 시선을 말없이 피해 보였다.
첫 만남 때에 비해 조금 달라진 호석의 태도가 확실히 느껴져왔다.
" 치료할 게 있으면 빨리하고 가세요. "
" 저기, 호석…아. "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날 내려다보는 호석. 그런 호석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내가 많이 불편한 거 알아. "
" … "
" 하지만 내가 이 집에 온 지도 벌써 한 달 정도 됐잖아. "
" … "
" 많은 걸 바라고 있지는 않아. 그냥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나와 대화를 해줬으면 좋겠어. "
" 대화요? 제게 있어 그게 쉬운 일인 줄 아세요…? "
" 쉽지 않다는 걸 알아. 너한테 여성 공포증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 "
" … "
" 하지만 교수님이 굳이 날 선택하신 이유는 그만큼 날 믿고 있기 때문이지 않으실까? "
" … "
" 나는 진짜 약속하고 맹세할 수 있어. 절대로 내가 너한테 두려운 존재가 되지 않을게. 너의 괴로운 과거를 떠오르게 만들지도 않을게. "
이 상황을 피하지 않은 채 묵묵히 내 말을 듣고만 있는 호석을 보며 조금씩 열을 내어 얘기했던 것 같다.
조금이나마 내 얘기를 들어주려 하는 그의 모습에 기쁜 마음이 들었던듯싶었다.
" 내가 지금 당장 너의 증후군을 치료해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조금씩 나와 얘기하면서 너의 그 두려움의 허물을 벗을 수 있게 도와줄게. "
" … "
" 그러니까 오랫동안 얼굴 마주 보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잠깐이라도 좋으니 나랑 얘기 좀 나눌 수 있어…? "
" … "
" 지금 당장이라는 건 아니야. 네가 지금보다 편한 마음이 들을 때, 조금 괜찮다 싶을 때. 그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어, 재촉하지 않을게. 그냥 네가 편할 때에… "
말하면 말할수록 아닌가, 싶은 생각에 더 이상 말을 이어나가지 않았다. 대신 걱정된 얼굴로 호석의 표정만을 살피고 있었다.
아무 말없이 내 얼굴을 바라보던 호석은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내 말이 부담스러웠던 걸까. 그런 생각을 가지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고선 내가 심리 상담사라고 할 수는 있을까… 아직도 이 길은 어렵다…
시선을 내려 바닥을 향해 생각을 하는데 자리에 서 있던 호석이 이동하는 게 보였다.
다시 고개를 들어 그의 뒷모습을 보는데 현관으로 향하더니 신발을 신는 호석이었다.
오늘도 이렇게 피하는 걸로 대답하는구나…
그런 생각으로 자리에 선 채 신발을 신는 호석을 보는데 숙였던 허리를 세우더니 문을 열고 나가지 않고 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잠시 후 몸을 돌려 나와 눈을 마주한 호석은 내게 말해왔다.
" …그럼 기다리고 계세요. "
" 어…? "
" 한 달이 될지, 1년이 될지 모르겠지만 저도 노력은 해볼게요… "
그 말과 함께 손에 들고 있던 모자를 머리에 눌러쓰더니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호석이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자리에 멍하니 선 채 좀 전에 내가 들은 말이 진짜인가… 싶으며 멍하니 서 있었다.
언제가 될지는 자신도 모르겠지만 분명 호석도 노력해본다고 했다.
그 말에 감격한 나는 손을 들어 입가를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감격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렇게 몇 초간 가만히 있는데 정국이의 방문이 열리더니 정국이가 모습을 보였다.
거실로 나온 정국은 내 모습을 보며 놀라며 다가왔다.
" 누나 왜 그래요, 울어요? 누가 뭐라 그랬어요? "
숙였던 고개를 들어 정국이를 올려다봤다.
" 뭐야, 안 우네… 왜 그러고 있어요? "
" 정국아… "
" 왜 그래요? "
" 누나 너무 감격스럽다… "
" 뭔데 그래요… "
" 호석이가 노력해보겠대… "
" …호석이형이요? "
" 한 달이 될지, 1년이 될지 모르겠지만 분명 호석이가 노력해보겠대… "
" 당최 무슨 말인지… "
" 나랑 얘기해보겠대. 기다리고 있으래… "
내 말에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서 있더니 이내 이해가 간 듯 피식 웃었다.
" 좀 전에 호석이형이랑 얘기했던 거였어요? "
" 응… "
정국이의 말에 애써 참으려던 눈물이 점점 차올랐다. 고개를 숙여 눈물을 닦아내는데 머리 위로 정국이의 손길이 느껴져왔다.
" 누나는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
" … "
" 제가 믿으니까요. "
그렇게 한동안 거실에서 정국이의 다독임을 받으며 눈물을 멈추려 했었다.
위험한 방탄소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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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연재했었던 글과는 조금 다르죠?
비슷하면서도 다른 내용ㅎㅎ
전 편 댓글 다신 몇 몇 독자님들께서 예전에 봤던 내용이 생각난다시는 분도 보였고 이번 편을 좋아하신다는 분도 계셨죵
아직도 몇 년 전에 연재했던 내용 부분을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보여서 넘나 뿌듯합니다..♡
사실 암호닉 신청해주신 분들 중 예전 글을 함께 달리셨던 독자님도 보여서 너무나도 반갑습니다 하하핳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