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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커서 뭐가 되고 싶냐?'


'글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


'재미없긴.'


'그럼 넌 뭐가 되고 싶은데?'






'난 지금으로도 충분해.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지금 이대로 살 수 있다면 난 이걸로 만족해.'











#1 첫만남





정국의 눈이 번쩍 뜨였다. 머리 맡으로 비춰지는 햇살에 눈을 찌푸리고 손으로 얼굴을 매만지자 달라붙는 땀들이 피부를 적셔왔다. 또다시 악몽인지 모를 이상한 꿈을 꾼 지 어연 며칠 째 지속해 제대로 잠을 자 본 지 오래되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챙겨입고 문을 밀고 나가보니 폭우처럼 내렸던 비는 어느샌가 그치고 따듯한 햇살이 마당을 비추고 무지개가 산 넘어 떠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라, 오늘은 일찍 일어났네?"

"아, 잠이 잘 안와서."

"또 잠 뒤척인 거야?"




마당을 쓸다 정국을 발견해 걱정스레 물어오는 이 여자는 박소이, 정국이 집에서 신세지고 있는 집의 주인이자 정국의 친구 박지민의 누나이다. 예쁘장한 얼굴에 항상 단정한 태도에 그녀에게 혼례를 청하는 남자들도 많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두 거절하고 지민과 함께 이 집을 이끌어나가는 가장이었다.




"어, 뭐. 한 두 번도 아니고."

"걱정이네. 어떡하지?"

"걱정하지마. 이러다 말겠지. 박지민은?"

"아까 할 일이 있다고 나가던데.."

"걔가 할 일이 있어?"

"있지 않을까? 밥 쳐먹기, 똥싸기, 오줌싸기, 또 법 쳐먹고 똥싸고 오줌싸고."

"아니, 도대체 동생을 뭘로 생각하는 거야."

"백.수."

"...그래 틀린 말은 아니네."





해맑은 얼굴로 동생을 디스하는 소이는 그야말로 살벌하기 그지 없었다. 이 나이 먹도록 직장도 못잡고 백수생활을 전전하고 있는 지민은 이 집안을 이끌어가는 누나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그래도 어릴 때부터 지민과 함께 자라온 정국이 있기에 이 정도지 정국마저 없었다면 어땠을지 상상도 하기 싫은 소이였다.




"밥 해놨으니까 이만 먹자."

"..박지민 찾아올게."

"밥 안먹어?"

"그 자식 어디서 뭘 할지 모르는 놈인 거 누나도 알잖아."





소이는 들었던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래, 정국이 없으면 나말고 누가 이렇게 내 동생을 걱정해줄까라는 생각도 듬과 동시에 숟가락을 들어 정국의 머리를 강타했다.





"밥 먹으라고 할 때 먹어^^"




그렇다. 지민의 누나, 소이는 이 집안의 실세인 동시에 힘이 엄청나게 쎘다.







빨갛게 부어오른 머리를 붙잡고 밥을 겨우 먹고 집 밖으로 나온 정국은 길거리를 빠르게 살폈다. 지민이 있을 곳을 다 찾아보았지만 아무리 뒤져봐도 지민은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왜일까 이쯔이면 발견되어서 정국에게 쳐맞고 끌려갔을 지민이 아무래도 보이지 않자 경찰서에 찾아가야 생각되던 참에 정국은 저 앞에서 이상한 분장을 한 닌자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전단지를 돌리를 것을 발견했다. 분명 여기는 한국인데 닌자가 있을 리가 없을 터. 아니, 그 요즘 만화 캐릭터를 따라 분장한다는 그 취미를 가지고 계신 분이신가. 근데 왜 저 차림으로?




"크와아아아악! 나선환!"




아니, 저거 나루토 아니야? 나루토 끝난 지가 언젠데?




"크윽..! 내 사륜안이..!"




아니, 그거 나루토 기술 아니야. 그거 우치하 기술이라고.


아니 그보다 너 거기서 뭐하냐?




"크와아아아아아 엌!"

"여기서 뭔 짓을 쳐하는 거야 이 새끼야!"




정국의 주먹이 지민의 얼굴에 꽂히자 나루토는 저멀리 튕겨져 날아갔다. 나루토의 기술을 구경하던 길거리 꼬마들은 그런 나루토의 약함에 기가 팍 식엇는지 싱거워하며 다들 길을 떠났고 나루토는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정말이지, 네가 요즘 뭔 짓을 꾸미고 다니나 했더니 이런 거나 하고 있었냐."

"우리 오타쿠들을 무시하지 마라. 나루토는 신성하고도 교훈과 재미와 스릴과 감동을 넘나드는 그런 멋진 만화란 말이다!"

"그보다 너 나루토랑 하나도 안어울려."

"...!"

"할려면 그 누구냐... 그 송충이 눈썹.."

"록리."

"그래, 걔. 그보다 너 진짜 오타쿠였어?"

"오타쿠라 부르지 마!"

"아니.. 네가 아까 스스로 오타쿠라고 하지 않았냐."





길거리 벤치에 앉아 정국에게 맞은 부위를 문지르는 지민을 한심하게 보던 정국은 한숨을 쉬었다.





"누나한테 미안하지도 않냐."

"..."

"이제 너도 일 좀 찾고 좀 해. 맨날 방에서 뒹굴거리면서 이런 거나 쳐하지 말고."

"누나한텐 네가 있잖아."

"뭔 소리야."

"아니다. 이만 집에 가자."


"엄마, 저기에 웬 이상한 아저씨가 있어!"

"아저씨 아니야! 나루토다!"

"아무리봐도 아저씬데..."

"아저씨 아니라고!"




지나가는 꼬마에게 버럭 소리지르는 지민을 보다못해 한 대 때리고 끌고 가는 정국이었다.

한 대 때리니 입 닥치고 자신을 따라오는 지민을 확인하다 요즘 악질적인 도둑질을 서슴는 도둑놈을 쫓는다는 내용의 벽보를 보고 멈춰섰다.

그 내용인 즉슨




[요즘 만화캐릭터들의 분장을 따라하며 사람들의 집을 털어 식량이나 물품들을 계속해서 훔쳐가는 악질 도둑놈을 찾습니다. 길을 지나가다 만화 캐릭터의 분장을 한 의심스러운 사람이 보인다면 걱정하지 말고 바로 이곳으로! 112 -호영단]




글을 다 읽고 뒤를 돌아보니 이 글을 읽은 모든 사람이 지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곤 하나같이 핸드폰을 들어 귀로 갖다대었다.


그리고 정국과 지민은 생각했다.


'좆됐다'







"야, 튀어!"

"야, 전정국 이 새끼야! 난 두고 가냐!"

"나까지 잡히게 생겼는데, 씨발!"

"야이, 나쁜 놈아 나도 데려가!"

"박지민! 뒤도 돌아보지 말고 뛰어 빨리!"

"..."

"박지민!"

"..."

"박지민..?"

"..."

"야, 박지민..."




"미안하지만 우리가 한 발 더 빠른 것 같네."




들려오는 여자 목소리에 정국은 설마 싶은 생각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뒤에는 회색 연단 제복을 입고 있는 여자가 칼을 지민의 목에 들이밀며 붙잡고 있었고 길은 이미 똑같은 제복을 입은 군단에 의해 막혀버렸다. 상황파악을 한 정국이 다시 앞을 보자 그 곳도 어느샌가 그들에 의해 길이 막혀버렸고 다들 그에게 칼을 겨누며 압박해오고 있었다.





"정국아....ㅠㅠㅠ"

"질질 짜지마! 다 너 때문에 이렇게 된 거 아니야! 이런 젠장."

"흐어어엉, 살려줘..."

"같은 동료인가? 그렇다면 이 놈과 같이 따라줘야 되겠는데."

"아니요. 친구 아닙니다. 오늘 쟤랑 처음 본 사이에요."


"전정국 이 미친 놈아!"




여자의 물음에 곧바로 대답을 한 정국에게 배신감이 치민 지민은 몸을 버둥거리며 정국에게 소리쳤다. 저런 놈을 친구로 둔 내가 병신이다, 씨발!




"그러니까 전 그냥 보내주시면."

"미안하지만 그렇겐 못하지."




정국의 뒤에서 또 하나의 칼날이 목에 다가왔다. 날카로우면서도 낮게 깔린 목소리에 흠칫 몸이 떨린 정국이 천천히 뒤를 돌아보자 또다른 남자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도시를 지키는 경찰이 범인을 놓치면 쓰나. 우리에게 순순히 따라라."


"너희같은 놈들은 이 호영단 단장 민윤기가 벌해주마."




윤기라는 남자는 눈빛 하나만으로도 굉장한 기를 뿜어내렸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호영단 단장이 직접 눈 앞에 마주하니 정말 대단했다. 단 몇 마디만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이 기는 괜히 호영단 단장이 된 것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정국은 이 정도로 상대방에게 기를 압살당할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인간이라 하기에는 모자르고 짐승이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다분한 그런 괴물같은 놈이었다.



"미안하지만 말이야, 난 그렇게 착한 놈이 아니어서."

"...!"

"네 놈 말엔 못 따르겠다."



순식간에 허리 춤에 차있던 칼을 꺼내 자신의 목에 들이밀던 칼을 내치고 윤기에게  바람같이 공격을 퍼붓는 그 모습은 마치 인간의 모습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윤기도 그런 정국에게 지지않고 전력으로 그의 검을 막아내었다. 순식간에 치고 나오는 정국에 윤기는 그의 검을 읽어내기도 전에 그의 행동조차 읽어내기가 힘들었다. 그 둘의 모습을 계속 뒤에서 지켜보던 여자는 자신의 상사가 처음보는 남자에게 밀린다는 것을 눈치채자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호영단 안에서 최고의 검술사로 불리우는 그녀는 아무도 이길 자도 없었으며 오직 사람을 베는 것에 흥미가 있을 뿐이었다. 그야말로 피 속에서 나타난 암살자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런 그녀에게 정국은 새로 만난 먹이감으로 보였으며 천천히 그녀의 본능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편 정국의 검을 막아내던 윤기는 겨우 보인 그의 틈에 칼을 내빼었다. 분명히 정국을 찔렀다고 생각했을 틈에 어느샌가 위로 올라가 그의 머리를 향해 칼을 내리치는 그를 보며 윤기는 생각했다. 이 남자는 괴물이라고. 한참동안 쳐냈던 검과 겨우 찾았던 틈을 찾아 공격했더니 그 틈을 역이용해 자신을 내리치는 이 남자는 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증이 생겼다.


그의 검에 베일 수 밖에 없던 그는 자신에게 내려치는 검을 바라보며 고통을 각오했지만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아무것도 날아오지 않았다. 정국의 검이 향한 건 자신의 목이 아니라 자신의 검이었기 때문이었다.




"저 자식은 범인이 아니야. 그저 코스프레를 좋아하는"


"만화 오타쿠일 뿐이다."




윤기가 부러진 자신의 검을 바라보다 정국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리곤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흥, 어디서 굴러먹다 온 뼈다귀인지는 몰라도 실력이 상당한 놈이군."

"별거 없어. 그저 서당에서 배운 걸 실전에 써먹었을 뿐이다."

"그렇군."




정국은 순간 뒤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칼등으로 내리쳤다. 그러자 그 반동을 이용해 또다시 그에게로 뛰어드는 그녀의 눈동자는 광기에 물들은 살인자와 같았다.





"그렇다면 어디 한 번 막아봐라. 우리 호영단의 부단장, 피 속에서 나타난 살인마, 한제희를 말이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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