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억하기론 아마 재작년 여름. 아마 그쯤부터 정진영과 내가 어색해졌던 걸로 기억한다. 정진영이나 나나 둘 다 터놓고 말한 적은 없지만 감이라는 게 있었다. 확실한 물증 같은 것은 없어도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보아 그냥 대충 이럴 것 같다는 감. 내 감이 맞다면 정진영은 게이고, 또 나를 좋아한다. 나는 이것을 거의 확신하고 있다. 나를 볼 때의 그 수줍은 시선, 유독 내 앞에서만 우물쭈물 하고 소심해지는 행동, 어쩌다 고개를 돌리다 눈이 마주치면 당황하며 고개를 휙 돌리는 그 순간들. 내 앞에서의 정진영은 사랑에 빠진 소년 같았다. 어리고, 여린 그런 소년.
정진영은 게이다. 그리고 정진영은 나를 좋아한다.
나는 이 사실을 관대하게 받아들일 만큼 개방적인 사람이 아니였다. 생각만 해도 불쾌하고 가끔씩은 그 불쾌함에 몸서리가 쳐진다. 가끔. 아주 가끔 남자를 좋아하게 된 정진영이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순간의 동정심을 가지기도 했지만 그게 다였다. 정진영과 나는 절대 연인의 관계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지금 우리는 같은 멤버, 동갑내기 친구로서의 관계 그 이하였으니. 나는 티 나지 않게 나를 더 챙기는 그 친절에도 웃어줄 수가 없다.
작게 쿵쿵 거리는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다 순간 멈췄다. 나는 긴장한 모습으로 문 앞을 서성이는 정진영의 모습을 상상했다. 이 단정한 발소리의 주인은 아마 정진영일 것이다. 십초. 이십초.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오십초가 넘어가고 일분이 되기 직전 느리게 문이 열린다. 고개를 돌려 긴장으로 굳어진 그 얼굴을 바라봤다. 할 말이 뭐냐고 묻는 듯 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정진영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동우야. 나와서 밥 먹어.”
“애들은?”
“애들은 다 스케줄 갔어.”
“아.”
“저…난 약속이 있어서 나가서 먹고 올게. 식탁에 밥 차려놨으니까 챙겨먹고.”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그 사이 정진영은 둘만 있는 어색한 방안에서 도망치듯 나가버렸다. 사실 나는 그 약속이라는 것이 네가 만들어낸 거짓말임을 알고 있었다. 없는 약속까지 만들어내며 서로를 피하게 된 지금. 나는 네가 원망스럽다. 같은 멤버로써, 동갑내기 친구로서 문제없이 평탄하던 우리사이를 망가뜨린 평범하지 못한 너의 사랑이, 평화롭기만 하던 우리팀에 균열이 일어나게된 원인인 네가 원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