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김종인이 물었다. 내가 너 따먹으면 어떡할거야. 담담한 말투였다. 그래서 담담하게 대답했다. 죽을 걸. 그러자 종인이 다시금 물었다. 왜. 그러면 다시 대답했다. 독버섯이라서.
독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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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도 아닌데 비가 내렸다. 끈적하고 추웠다. 우산 들기가 싫었다. 김종인은 비가 내릴 때마다 겉옷을 벗어주었고, 대신 우산을 들어주었다. 그래서 이젠 비 오는 날씨도 견딜만 했다. 김종인은 그랬다. 할 건 다 해주며 곁에 남았다. 김종인이 말했다. 너 독버섯 맞는 것 같다. 무슨 말인지 곰곰히 생각하다, 그제서야 어제의 기억이 나 고개를 주억였다. “왜.” “겉만 번지르르하고.” “…….” “정작 따먹으면 죽는 도경수.” 도버섯. 말장난을 해대는 김종인을 뿌리치고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머리맡이 거뭇하게 물들었다. 검은 우산은 김종인의 것이었다. 그러니까, 등 뒤에는 김종인이 서 있다. 그가 말했다. 독버섯 위에 갓 하나 더 놓인 것 같다고. 도버섯. 도버섯. 젖은 습기를 머금은 머리칼을 털며 한참을 곱씹었다. 집 거실 바닥에 턱끝을 타고 흐른 물이 스몄다. 생각에 잠겨있는 제 뒤로 휴대폰이 울린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천천히 가도 그 울림은 멎지 않을 것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는. “헤어진 지 20분 지났는데.” 김종인이니까. -버섯. 전화를 타고 흐르는 첫 음성이었다. 아무 말 않고 그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자 김종인은 다시금 나른한 목소리를 퍼부어 댄다. 머리 말려. 계속 비 와. 감기 걸린다. 툭툭 끊어 말하는 어투는 여전했다. 시선을 돌려 베란다를 바라보았다. 물자욱이 진 창이 흐릿하게 번져있다. 그냥 그저 그런 생각이. 아주 급작스럽게도. “집에 가.” 아마도 넌 아주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 있겠지. “불 끌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그건 여기서 몇 발자국만 더 나아가 고개를 내리면 검은 우산이 보일 거라는 그저 그런 생각. 이곳에서, 김종인에게까지, 한 발짝. 두 발짝. 습기 찬 유리 창문이 부옇게 칠해져 있었다. 검지 손가락 하나를 들어 멜로디를 타듯 움직였다. 잠시 선이 그어졌다. 그러나 다시금 자취를 감춘다. 김종인은 비 오는 날씨를 좋아했다. 먹구름 아래 양 어깨를 살짝이 적신 모습이 나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항상 들고 다니던 검은 우산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제 머리맡에 드리우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독버섯. 어루만져서도 안 되려나. 귓가에 울려 퍼진다. 그제서야 자각했다. 너와 나의 끊이지 않은 공간의 틈. “무슨 말이야.” -내가 왜 비 오는 날을 기대하는 지 알아? 그의 목소리와 함께 빗소리도 울렸다. 그것은 이내 가슴을 울렸다. -거리가 좁혀져. 머리맡에 우산을 씌우고. 비가 온다는 명분으로 어깨를 감싸 안고. 추위를 빌미로 옷을 벗어 주고. 같은 공간에 있다는 자각. 그 때 만큼은 아무리 독을 품고 있어도 어루만질 수 있다. 비는 그치지 않았다. 유리 창의 불투명함 또한 짙어졌다. 손에 들린 휴대전화를 떨어뜨리듯이 놓았다. 나는 알 수 없었다. 이 비가 언제쯤 그칠 지. 네가 검은 우산을 들고 여전히 서 있을 지. 그 눈동자가 어딜 향하고 있을 지. “독버섯…….” 뒤돌아 걸었다. 그리고 느꼈다. 아주 잠시나마. 미약했지만. 목소리를 한 번 더 듣고 싶다는, 아주 실없고 낯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