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 걔네랑 같은 반이라며. 미쳤다."
그래, 내가 생각해도 이건 정말 미친 일이었다. 이동혁. 이제노. 한 명도 아니고 둘 모두랑 같은 반이 되다니…. 아마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울며 반을 뛰쳐나오는 애들이 족히 스무 명은 넘을 거라고 예상했다. 물론 나도 포함해서. 이동혁과 이제노 아버지의 회사는 하필이면 동종업계인데다 매번 1, 2위를 다투는 경쟁 기업이었는데, 그 영향으로 둘은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다. 둘의 사이가 좋건 나쁘건 뭐가 어떻냐고 묻는다면, 그게… 전혀 뭐가 어떻지 않아서 문제였다. 왜냐하면 그 둘은 빽 좋고 돈만 많은 게 아니라 성격도 개 망나니였으니까…. 이제노는 작년에 시비를 걸어온 옆 학교 남학생 두 명을, 무려 한 달 동안 병원 신세를 지게 해놓고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잘도 학교에 나왔고 이동혁은 수업 시간이 쉬는 시간인 마냥 제멋대로 행동했으며, 선생님이 보는 앞에서 당당하게 담배를 꺼내들기도 했다. 물론 이제노와 이동혁의 망나니 짓은 이뿐만이 아니었는데, 그것들은 방금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절대 못하지는 않았다. 그 두 명의 기싸움에 반이 폭발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나에게 걱정스런 시선을 보내는 민희를 향해 잔뜩 울상을 지어 보였다. 난 오늘부터 반에 없는 것처럼 쥐 죽은 듯이 살아야 할 것이었고, 절대 고개를 드는 일 없이 딱딱한 교실 바닥만을 마주해야 할 것이었다. 그니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번년도는 그냥 망한 게 아니라 개 망했다는 소리다.
아주 조심스레 교실 문을 열고 아주 조심스레 교실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재빠르게 교실을 스캔한 결과, 아직 이동혁과 이제노는 오지 않은 것 같았다. 교실은 정말 정말 조용했는데, 그건 다 같이 전교 일등이라도 할 생각인 마냥 문제집에 얼굴을 박고 있는 애들 때문이었다. 샤프를 쥔 손을 벌벌 떨고 있는 것으로 보아 다들 그 둘이 언제 나타날지 몰라 노심초사하는 모양이었다. 또한 애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앞줄부터 빠짐없이 자리를 채워 앉아 있었다. 이 말은 즉슨… 민희와 수다 아닌 수다를 떨다 늦게 온 나에게 남은 자리라곤, 일진들의 지정석인 맨 뒷자리뿐이란 소리였다. 허탈한 표정으로 창가 쪽 자리로 가 가방을 내려놓았다. 물론 소리도 안 날 만큼 아주 조용히. 문제집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선 반의 눈물겨운 단합에 합세하기 위해 필통을 꺼내던 중이었다. 때마침 반 앞을 지나가며 흐뭇한 웃음을 지어 보이시는 교감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그 웃음은 '이 반은 분위기가 참 괜찮네.' 라는 종류의 것이었는데, 실상 교실 안의 분위기는 거의 초상집이나 다름 없었다.
그 뒤로 두어 명의 애들이 더 들어오고 이제 남은 건 같은 마지막 줄이지만 나와는 가장 먼 두 자리. 즉, 이동혁과 이제노의 자리였다. 미친……. 그럼 둘이 같이 앉는 거야? 세상에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이 또 있을까 싶으면서도 반 전체를 위해 나 하나쯤 희생을 해 자리를 바꿔주겠어! 라는 생각은 저어언혀, 저어어어얼대 들지 않았다. 비어있는 두 자리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근심에 빠진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다. 쥐 죽은 듯이 조용하던 교실에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누군가가 들어왔다. 세게 열어젖힌 건 아니지만 숨까지 참으며 조용히 들어오던 애들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 우린 소리만 듣고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둘이 왔구나.
이동혁은 반을 휙 둘러보더니 남아있는 두 자리 중 하나에 털썩 앉았다. 무의식적으로 이동혁의 행동을 따라가다 하마터면 눈이 마주칠 뻔한 십년감수를 경험했을까, 문이 열리는 소리가 한 번 더 들림과 동시에 이동혁이 와~ 하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낮게 웃었다. 교실 안으로 들어온 이제노가 시선을 뒤로 옮겨 이동혁을 쳐다봤다.
"설마 우리가 같은 반이 될 줄은 몰랐는데."
비꼬는 듯한 말투였다. 안 그래도 조용하던 반에서는 이젠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이제노는 이동혁의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가운데 분단 마지막 자리에 앉은 남자애를 불렀다. 야. 이제노에게 이름을 불리는 불행을 느닷없이 맞이하게 된 종민이는 깜짝 놀라 손가락으로 제 몸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어… 나……?"
"나 지금 저 새끼랑 앉는 거 죽기보다 싫은데."
"……."
"어떻게 해야겠냐?"
"응……?"
"왜 사람을 두 번 말하게 시켜."
"……."
"어떻게 해야겠냐고."
종민이는 당황한 듯 말을 더듬으며 연신 어… 어… 하는 소리만을 냈다. 이제노가 험악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려는 순간, 그제서야 눈치를 챘는지 종민이가 아…! 내가 저기로 가, 갈게…! 하고 소리쳤다. 자신의 가방을 들고 잽싸게 일어선 종민이의 눈에는 금방 후회의 기색이 비쳤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자신의 짝은 이동혁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졸지에 봉변을 당한 종민이 옆자리 남자애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내가 만약 저 둘 중 누군가와 짝이 돼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는다면… 아마 내일 당장 전학 수속을 밟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자신에게로,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옆자리로 오는 종민이를 보며 인상을 찌푸린 이동혁이 이제노를 향해 뭐라 말을 하려는 동시에, 담임 선생님이 앞 문을 열며 들어오셨다. 이동혁이 반쯤 열린 입을 다물고 이제노를 쳐다보던 시선을 거뒀다. 입을 다물었다고? 분명 선생님 알기를 뭐 같이 하고 수업 시간과 쉬는 시간의 구별 따윈 할 줄 모른다고 들었는데? 그냥 과장된 소문이었나? 라는 생각과 함께 교탁 앞에 서서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시는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런 내 생각은,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다시 입을 여는 이동혁에 의해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
"말은 똑바로 해야지."
"……."
"네가 나랑 앉기 싫은 게 아니라,"
"……."
"내가 니 새끼 면상을 꼴보기 싫은 거지."
이동혁의 옆에 앉은 종민이는 진동 모드로 전환된 휴대폰이라도 된 마냥 벌벌 떨며 손톱을 물어뜯었고, 작년에 처음 교사로 임명되셨다던 젊고 예쁘신 담임 선생님은 땀을 뻘뻘 흘리시며 이동혁을 말리기 시작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동혁의 말에 아무런 대꾸 없이 그대로 교실을 나간 이제노 덕분에, 아침 조회 시간은 무사히 마무리될 수 있었다. 이게 새 학년 첫날. 아직 1교시도 채 시작하기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렇게 교실을 나간 이제노는 3교시 수업 도중에야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아주 뻔뻔히 문을 쾅 열어 제끼고선.
그 소리에 내내 잠을 자던 이동혁이 …아. 시발. 하면서 고개를 들어 태연하게 자리에 앉는 이제노를 바라봤다. 이제노는 뭘 쳐다보냐는 듯한 표정으로 이동혁의 시선을 맞받아쳤다. 이동혁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곧 2차전이 시작될 기세였다. '친구들아 나 잘 건데.' '응????' '시끄럽게 떠들다가 깨면 알지.’ 하던 이동혁의 경고 때문에 안 그래도 조용했던 교실 안 공기가 더 싸늘하게 식어갔다. 아이들은 선생님을 보며 애처로운 눈빛을 보냈지만, 선생님은 그 따가운 시선을 애써 외면하셨다. 그도 그럴 게 둘은 워낙에 큰 집안 자식이었는데다 새로 리모델링 된 교실이며 체육관이며 스탠드며 뭐며 기여를 하지 않은 부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몇몇 선생님들은 조금이라도 잘 보이고 싶어 쩔쩔매기도 했는데, 이제노와 이동혁은 그걸 무기 삼아 선생님 말씀은 귓등으로도 쳐 듣지 않는 것이었다. 어차피 자기들이 뭘 하든 부모님이 다 해결해 주시니까! 또 집에 돈이 존나게 많으니까! 하는 생각으로. 하여튼 난 이런 점이 마음에 안 들었다. 옛날부터 엄마가 위아래도 모르는 것들이랑은 말도 섞지 말라 했는데, 그게 내가 얘네를 피해 다니는 이유 중 하나였다. 지들 빽 믿고 허세나 부리며 선생님 알기를 뭣 같이 하니까. 무서워서 그러는 건 절대 절대 아니었다. 진짜 진심.
이동혁이 의자를 거의 내팽개치듯이 일어났다. 의자가 쿵 하고 교실 벽에 부딪혔다.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란 난, 심장을 졸이며 초조한 마음으로 이동혁의 다음 행동을 지켜봤다. 난 진짜 무섭지 않다…. 무서워서 그러는 게 아니다……. 똥도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는 건 아니잖아?… 난 그런 거다…. 그런 거다….
"얘들아, 내가 아까 뭐라고 했지?"
이동혁이 반 애들을 향해 입꼬리만 올려 웃으며 물었다.
"왜 대답 안 해? 내 말이 말 같지가 않아?"
"…… 자… 잔다고…"
"그거 말고."
"시, 시끄럽게 하면……."
"어, 오늘 제노가 그 모범이 될 거야. 잘 봐둬, 얘들아."
이동혁의 말에 반 아이들의 동공에 지진이 일었다. 이동혁 옆에서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는 종민이는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고 있었다. 아까 빽 믿고 허세 부린다던 얘기 그거 다 취소다. 얘넨 허세가 아니라 진짜 센 애들이었다. 게다가 그냥 센 것도 아니고 존나 세. 이럴 바엔 차라리 작년 반이 더 나았을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도 전학 가고 싶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지만 올해엔 그것도 모자라 아예 자퇴하고 싶단 소리가 나올 것 같았기 때문에……. 원래도 길게 느껴지던 수업 시간이 딱 백 배쯤 더 그렇게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교실 벽 위에 달린 스피커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점심시간 바로 전인 4교시 종보다 더 간절했다는 건 애들 전부가 동의할 것이다. 겁에 질린 아이들이 서둘러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반을 나섰다. 그리고 곧 그 행동은 이동혁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의해 저지됐다.
"친구들아. 어디 가."
"……."
"다시 앉아."
"……."
"한 번 쳐 맞는 모습을 봐야 나중에 개길 생각을 안 하지. 안 그래?"
"……."
"그리고 그게 이제노면 더 좋고."
진짜 거짓말 안 하고 정말 지릴 것 같았다. 이동혁의 무시무시한 말에도 이제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어디 니 좆대로 해봐. 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동혁이 너넨 앉고 제노 너 새낀 일어나. 하고 말을 하는 순간, 교실 앞 문이 아주 큰 소리로 열렸다. 귀가 얼얼할 정도로 세게 열린 문에 나는 물론이고 반 애들 모두가 소스라치게 놀라 앞을 바라봤다. 문을 연 장본인은 바로 나재민이었다.
"안녕, 1반 애들아."
"……."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게 싸움 구경이라잖아."
"……."
"그렇게 재밌는 걸 너네만 보는 건 조금 불공평하지."
"……."
"그래서 나도 지금 하려고."
나재민이 태연히 웃으며 말을 했다. 반 애들의 표정이 하나둘씩 굳어가기 시작했다. 왜냐면 나재민은, 학교 이사장 손자임에도 불구하고 바른 행실을 보여주긴 커녕… 정말 어지간한 또라이로 소문이 파다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작년에 전학을 가고 싶었던 이유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하나를 고르라면 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재민을 꼽을 것이었다. 말을 해 본 횟수도 열 손가락 안에 들 만큼 적고, 나한테 직접 영향을 끼친 적도 없었지만 나재민은 지난 일 년 동안 교실이 놀이터라도 되는 마냥 골목 대장 놀이를 하며 애들은 물론 선생님까지도 제 마음 내키는 대로 휘둘렀다. 제 팔 휘두르듯 아주 아주 쉽게. 그런 나재민을 저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건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나재민은 이사장이 끔찍이 아끼는 손자였으니까. 것도 삼대독자로.
"뭐해. 왜 안 싸워?"
"그냥 가라."
"그럼 내가 온 의미가 없지."
"시발, 저 병신이 진짜."
이제노의 말에 의미를 운운하던 나재민이 기가 차다는 듯 이동혁을 바라봤다. 진짜 병신한테 병신 소리 들으니까 기분 뭐 같고 좋네. 그럼 이제 여기서 기웃대지 말고 좀 꺼지든지, 새끼야. 우리 학교에서 꺼져야 되는 건 너 아닐까? 머리를 좀 굴려봐. 안 그래도 좋지 않던 분위기의 영향을 받은 건지 순식간에 살벌한 대화가 오고 갔다. 이제노와 이동혁의 싸움이 곧 삼파전으로 번질 것만 같았다. 내가 만약 아주, 조금만 더, 겁이 많았더라면 벌써 오줌을 지렸을 게 분명하고도 남을 상황이었다. 그러지 않기를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험악한 표정으로 앞머리를 쓸어넘기던 나재민과 눈이 정통으로 마주쳤다. 헉.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나재민은 잠시 미묘한 얼굴을 하더니 몇 초 안 지나 곧바로 고개를 홱 돌렸다.
"좆 같은 소리 말고 너네 반으로 꺼지라고."
"어."
"뭐?"
"그냥 간다."
1반 애들아 다음에 또 싸우면 불러줘. 그대로 교실을 나간 나재민을 본 반 애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누군가가 작게 소곤대는 소리가 들렸다. 방금 나재민 맞아…? 그냥 저렇게 나간다고…? 그 말처럼 나재민은 같이 물어뜯고 싸웠으면 싸웠지 절대 먼저 굽히고 나갈 성격이 아니란 소리였다. 아무튼 나재민이 그렇게 나간 뒤로 상황은 순식간에 정리됐다. 싸울 마음이 식었는지 뭔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거칠게 자리에 앉은 이동혁이 다시 책상에 몸을 엎드리며 '이제노 대신 모범 되고 싶으면 떠들어 보든가.' 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이제노는 처음 자리에 앉았던 그대로의 상태로 묵묵히 핸드폰만 만지고 있었다. 그래도 먼저 시비를 걸어서 싸움을 조장하는 타입은 아닌 것 같았다. 물론 걸린 후로는 장난 없겠지만 말이다…. 이쯤 되니 일주일은 정말 바라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제발 오늘 하루라도 무사히 마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님 점심시간만이라도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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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인준이 좋아해주셔서 감사해용. 신알신두 감쟈합니다 (❁ᴗ͈ˬ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