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주저리가 너무 많은 관계로 말을 많이 아끼도록 하겠습니다
연재가 좀 늦어지더라도 이해 많이 해주시고 1회부터 정주행 해주신 모든 독자분들 끝까지 따라와 주세요
신작 알림 해주시면.. 스릉흡느드 (내일 시험인데 저는 망글만 싸고 있네요)
언젠가 두화가 터질 그날을 기원하며 저는 오늘도 망상 100%의 글을 뱉어내는 중..ㅎ♡ 89라인 두화 흥해라
무정 03 |
03 “… 어, 그래서 오늘은 시간이 안될 것 같아, 미안해. 집에 잘 들어가고.” [뭐, 어쩔 수 없죠.. 그럼 내일은 약속 잡지 마. 알았죠?] “알았어.” 무턱대고 두준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바람에 서운한 기색이 역력한 주현의 기분을 풀어주느라 애썼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가끔 나는 무책임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끊고, 다시 교무실로 들어섰다. 이제 곧 6교시 수업이 시작되기 때문에 음악책을 가지고 음악실로 향했다. 첫 수업의 긴장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벌써부터 머리가 복잡해왔다. 그냥, 전 연인과 함께 술 한잔 하는 것 뿐인데도 내겐 그것이 단순하고,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 아니였다. 그저 '술 한 잔 걸치는 일'에도 연연해 하는 걸 보면, 나는 아마도.. “… 오늘은 첫 시간이니까 여기까지 하도록 할게요. 인사는 생략하고,” “수고하셨습니다ㅡ” 평균 수업 시간보다 10분 일찍 끝냈다. 뭐 예체능이라고 해봤자 심층적으로 파고들 필요까진 없었기 때문에. 우루루 하나 둘 교실을 빠져나가고 음악실은 순식간에 텅 비었다. 교탁 옆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피아노를 보아 하니, 10년 전이 떠올랐다. 대회 연습도, 대학교 실기 연습도 사실 집보다 음악실에서 더 많이 했었다. 가끔은 석식 시간을 넘겨 야자 시간까지 연주에 매진하다가 야자 감독 선생님께 혼이 나기도 했었다. '대회 준비'라는 핑계로 대충 얼버무리긴 했지만, 열 여덟의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을 자아냈다. 오랜만에 연주나 해볼까, 음악 선생이 뭐 새삼스럽게 연주겠냐만은. 눈을 지그시 감고 조심스럽게 건반을 눌러 연주를 시작했다. 거창한 곡도 아니였고 고등학교 첫 콩쿠르 때 줄장 연습했었던 와이먼의 은파. 피아노를 막 시작했던 초등학교 때 배웠던 소곡집에서 제일 어려운 곡목이였기도 했다. 원곡에 비하면 소곡집은 진짜 아기자기하고 심플했었는데.. 여하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곡이기도 했다. 은파.. 어감도 예뻤고. 곡의 절정 부분에 치닫았을 때 항상 틀리던 부분도 이젠 여유롭게 넘겼다. 그 당시엔 왜 이 부분에서 항상 실수를 일삼았는지 모르겠다. 이 곡을 아무렇지도 않게, 박자 하나하나도 놓치지 않고 여유롭게 연주할 수 있는 걸 보면 내가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할 수 있는 걸까. “여전하네.” “…” “뭐 놀라고 그래, 예전에도 항상 그랬잖아. 그럴 때마다 넌 깜짝 놀라고.” “몰래 훔쳐보는 것도 여전하네, 윤두준.” “항상 신기했거든. 수업 이제 없지.” “응.” “퇴근하자. 여의도에, 벚꽃 피었더라.” “..어?” 나지막히 말하는 그의 말에 또 다시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그를 응시했다. 벚꽃이 피었다는 말과, 퇴근하자는 말은 곧... “벚꽃 보러 가자고, 너 벚꽃 좋아하잖아.” * * * “정용화ㅡ 벚꽃 축제 한다는데, 갈래?” “벚꽃? 벌써 피었어?” “여자애들 말로는 뭐 그렇다는데... 벚꽃 좋아하냐? 무슨 여자애도 아니고.” “남자는 뭐 벚꽃 좋아하면 안 되냐? 당장 가자 당장!” 넌지시 제안을 건 것은 두준이였는데 의외로 용화의 반응은 호의적이고 호의적이였다. 저렇게 과하게 좋아할 정도면 벚꽃을 생각 이상으로 좋아하고 있는 모양이다. 오늘은 자율학습이 없는 날이기도 해서 같이 나란히 버스를 타고 여의도로 향했다. 가는 와중에도 용화는 잔뜩 들떠서 상기된 표정이 역력했다. 두준은 그 모습을 보고 살짝 웃었다. 정용화, 생각보다 소녀스러운 면이 있긴 있구나. 어울리는 것 같으면서도 안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다 버스는 도착했고 벚꽃이 만발한 그 거리엔 사람들로 잔뜩 북적였다. 사람들이 많은 걸 별로 내켜하지 않았지만 용화는 무척이나 좋아하는 듯 했다. 가게에서 일회용 카메라와 필름을 사 만개한 벚꽃 거리와 사람들 한 컷 한 컷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뭐, 사진을 그렇게 잘 찍는 것도 아니였기에 잘 나올지는 미지수지만. “그렇게 좋아?” “어ㅡ 완전 좋아.” 찰칵! 그다지 크지 않은 셔터소리가 두준의 귓속을 감겨 들려왔다. 평소에 보기 힘든 웃는 모습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치켜 올려 뷰파인더로 눈이 갔다. 그렇게 강아지처럼 좋아하는 용화의 모습을 사진으로 몇 컷을 담고 나서일까, 늦게서야 저를 찍고 있었냐면서 뾰로통한 얼굴로 쏘아 붙였다. 정용화는 눈치가 참 빨랐다. 언젠가 녀석을 빤히 쳐다보고 있을 때도 뭘 그렇게 쳐다보냐고 물어왔고 거짓말은 금방 들통나기 일쑤였다. 그만큼 용화와의 사이가 가까워진 건가 싶기도 하고, 그렇게 벚꽃 터널에 가까운 벚꽃 길을 걷다가 용화는 두준에게 머뭇거리다 이내 입을 달싹였다. 두준이 무슨 일이냐 물어오자 두 눈을 이리 저리 굴리다 대답했다. 사진, 한 장만 찍어줘. 사진 몰래 찍었다고 했을 땐 그렇게 난리더니, 이렇게 예쁜 풍경에 사진을 안 찍기에도 뭐했던 모양이다. 두준은 그런 용화의 모습이 적잖게 귀엽게 느껴졌다. 참 요즘은 정용화의 각양각색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피아노를 칠 땐 누가 들어오는지도 모를 정도로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더니, 벚꽃을 보면 강아지처럼 팔팔 뛰어다니는 모습 하고, 조심스럽게 사진 한 장만 찍어줄 수 있냐는 귀여운 부탁까지. 두준 자신도 모르게 점점 용화에게 빠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아마도 빠졌는지도 모른다. 벚꽃 풍경과 용화의 모습이 적당하게 나올 수 있는 구도를 잡은 후, 신호를 준 다음 사진을 찍었다. 찰칵! 필름 카메라라서 볼 수 없다는 게 큰 아쉬움이 일었지만 현상을 했을 때 어떤 모습일지 궁금증이 일었다. 용화는 두준의 손에 든 카메라를 뺏어들어 진지한 표정으로 두준에게 똑바로 서라고 지시했다. 갑작스런 말에 황당했으나 어수룩하게 약간 상기된 표정과 함께 섰다. 그리고, 또 찰칵. “명색이 벚꽃 보러 나왔는데, 나만 잔뜩 찍히면 억울하니까.” “참, 초딩도 아니고..” “초딩이 뭐냐, 초딩이. 아니거든?” 넌지시 뱉은 장난스런 말에 또 뾰로통해지는 용화를 보며 두준은 나른하게나마 웃었다. 이것도 뭐 나름 친해지면 나오는 모습인가? 뭐, 기분이 나쁘다거나 그렇진 않다. 그냥 남다른 모습에 귀엽기도 하고, 자꾸 괴롭히고 싶고, 놀리면 어떤 반응일까 궁금해지기도 하고... 이러다 나마저 동화되는 거 아닌가.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들을 겨우 접으며 실실 웃으며 걷던 길을 다시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카메라 가방을 맨 여학생이 두준과 용화에게 다가왔다. 둘은 적잖게 당황한 듯 머뭇거리며 그 여학생을 지나치지도 못하고 우뚝 서 있었다. “저, 죄송한데 제가 지금 과제를 하고 있어서 그런데. 협조해 주실 수 있으세요?” “… 뭔데요?” “다름이 아니라, 그냥 웃는 모습 한번 찍혀주시면 돼요. 폴라로이드 사진이라서 한장은 과제로 제출할 거고, 한장은 드릴게요.” “… 아, 죄ㅅ..” “할게요.” 거절의 의사를 표하려던 두준의 말을 용화가 딱 잘라 끊고 승낙했다. 왜 이래? 사진 찍혀서 뭐 좋을 거 있다고, 반박하기도 전에 승낙을 해버려 사진을 찍어야 할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못 이기겠다는 듯 한숨을 푹 쉬다 이내 찍는다는 말에 애써 웃음을 보였다. 그 때, 용화가 두준의 팔에 팔짱을 끼고 어깨에 고개를 기대왔다. 움찔했으나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애써 평온하게 지은 표정과는 달리 마음 속은 폭풍이 몰아친 듯 마음이 울렁거렸다. 아마 본격적인 윤두준의 짝사랑에 도입하게 된 것은 그 때부터였을 것이다. 그 폴라로이드 사진을 간직했을 때부터. 그리고 두준이 후에 사진을 현상했을 때, 거의 대부분이 용화의 사진이라는 건 후의 일. * * “예쁘다, 여긴 하나도 안 변했네.” “그러게, 여기서 사진 진짜 많이 찍었는데. 기억나?” “기억 나지, 여기서 폴라로이드 사진도 찍혔었잖아.” 그로부터 벌써 10년이 지났다. 10년 전의 소년 정용화와는 달리 지금의 정용화는 너무나도 차분해졌다. 제가 그토록 좋아하던 벚꽃을 보고 있음에도 그저 평온한 표정으로 벚꽃 풍경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 얼굴이 상기되거나 그렇지 않았다. 나른한 웃음이 전부. 그 모습을 보고 10년이라는 시간이 용화를 변하게 하긴 한 모양이다. 사실 벚꽃 앞에서도 이토록 차분한 모습을 하고 있는 정용화가 신기했다. 순간 용화에게 낯설음을 느꼈다. 요즘따라 낯선 모습을 많이 보는 듯 하긴 하지만. 준형에게 우연히 용화의 결혼 소식을 알게 되었을 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정용화는 절대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ㅡ아니, 결혼하지 않았으면 하는 못된 심보를 가졌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ㅡ게다가 같은 학교로 부임하게 되었을 때, 조금 당황하면서도 기뻤다. 솔직히 용화와 사랑한 시간보다, 떨어져 지낸 지금까지의 시간이 더 길었기 때문에 보고싶었다. 그래, 직설적으로 말하면.. 보고싶었다. 여전히 정용화 하나 잊지 못하는 미련퉁이 윤두준을, 정용화는 어떻게 생각할까? 오늘 교무실 복도에서 우연히 통화를 하는 모습을 보고 참한 여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애써 이 심정을 용화에게 내색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두준의 마지막 자존심이긴 했던 모양인지. 그렇게 한참 말없이 걸었다. 10년 전 상황과 대비되게도 별다른 감흥 없이 걷기만 했다. 해사하게 웃던 그 정용화는 웃음기가 하나도 없었다. 혹시 나와 함께 와서 이렇게 불편한 걸까? 하는 비관적인 생각도 해봤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있었는데 DSLR 카메라를 메고 있는 한 남학생이 다가왔다. 저기, 협조 좀 해주시겠어요? 사진과 과젠데.. 진짜 어려운 거 아니에요! 무척이나 익숙한 상황이 우리 둘에게 연출되고 있었다. 머뭇거리다 이내 두준과 용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 사이 맞죠? 둘 다 너무 잘생기셨다.” “…” “…” “그럼, 찍습니다.” 남학생은 렌즈로 초점을 맞추는 듯 한쪽 손으로 이리저리 만져댔다. 확실히 껄끄러운 사이라 그런지 둘 다 서로 가까이 서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이내 두준이 용화의 어깨에 손을 둘렀다. 10년 전에는 용화가 두준에게 팔짱을 낀 것처럼, 이번엔 두준이 갑작스런 제스쳐를 취하였다. 용화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으나 이내 태연한 표정으로 렌즈에 초점을 맞췄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 나중에 사진을 인화하게 되면 부쳐준다며 주소를 적어달라 해서 용화가 남학생의 휴대폰에 대충 집주소를 휘갈겼다. 그리고 근처 고깃집으로 향했다. “너랑 밥 먹는 것도.” “…” “되게 오랜만이다.” 두준은 마음 속에서 생각했던 말을 서슴없이 뱉었다. 뒷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그 말은 해서는 안 될 말이였기 때문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