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비밀
세훈x준면
w.BM
‘본 법정은 피고인에게 징역 15년 형을 선고합니다.’
탕 탕 탕
아직도 그 당시 판사가 두드렸던 판사 봉의 마찰음이 귓가에 아득하게 남아 있었다. 눈을 감으면 빗물에 섞인 핏자국과 고통에 일그러져 있으면서도 제 품에 있는 돈 봉투를 건네던 형의 모습이 선연했다. 겨우 잠이 들었다가도, 판사 봉의 마찰음을 들으며 잠에서 깨어나는 하루의 반복이었다. 3년 전 그날 이후 내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고통과도 같았다.
나는, 법 앞에서가 아닌 형의 앞에서 죄인이었다.
“석방이다.”
종인은 제 앞에 서있는 교도관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제가 이곳에 얼마나 있었는지 가늠해보았다. 판결을 받고 3년이 흘렀으니, 이곳에 겨우 3년 있었다는 뜻이었다. 선고받은 형을 다 살기 까지는 12년이 남아있었고. 그런데 석방이라니? 종인의 얼굴에 띄워진 의문을 알아차린 교도관이 종인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는 낯으로 말했다.
“네가 워낙에 모범수라, 가석방이다. 원래 15년 유기형의 경우에 모범수들은 3년 지나면 가석방이야. 그래서 내가 너 처음에 여기 왔을 때 조용히 3년만 버티라고 한 거, 기억 안 나냐?”
“아…….”
“이미 빨간 줄이 그어진 건 어쩔 수 없다고 쳐도, 나가서 새 삶 시작해야지. 너 인마 아직 젊지 않냐, 하나도 안 늦었다.”
“…….”
“나가서는, 실수라도 범죄 저지르지 말고 열심히 살아라. 보고 싶으면 찾아 와도 되는데, 대신 죄수복 말고 사복 입은 모습으로 보자, 알았냐?”
교도관은 웃는 낯으로 종인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고는 방을 나왔다. 가석방. 이 세 단어가 아직은 어색했다. 조금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짐을 챙기고, 교도관이 건넨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40대 중반의 교도관은 종인이 처음 입소했을 때부터 유난히 종인에게 친절했던 사람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태생부터가 몸이 허약해서 먼저 자식을 떠나보냈다고 했었다. 마침 그 죽은 아들이 자랐다면 종인과 비슷한 또래라 유난히 종인에게 잘 대해 주었었다고, 교도관은 출소 준비를 마친 종인에게 덧붙였었다. 종인은 육중한 소년 교도소의 철문 앞에서 교도관에게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를 다 갖추어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교도관은 조금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종인을 안아주고는 등을 토닥였다. 교도관이 열어주는 철문을 막연히 바라보던 종인은 조심스럽게 교도소 밖으로 첫 발을 내딛었다.
“아…….”
예상대로 교도소 밖에서 저를 반기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며, 종인은 발걸음을 옮겼다.
3년 만에 다시 찾는 집이었다. 조금은 떨리는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었을 때, 울컥하는 마음이 들어 쉽사리 발을 들일 수가 없었다. 집 밖의 시간은 전부 현재의 시간인데, 집 안의 시간은 3년 전 그날로 멈춰있었다. 아직까지도 벽 한 쪽에 걸려있는 2010년도 달력을 본 순간, 혹시 자신이 여태 날짜를 잘 못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위화감이 없었다.
아.
오늘 날짜를 확인한 종인은, 현관에서 그대로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가석방된 날인 오늘이 형이 죽은 지 꼬박 3년째 되는 날이었다.
종인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보려 먼지 쌓인 집안부터 쓸고 닦았다. 부러 굳게 닫힌 형의 방문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교도소 생활에 하도 익숙해져 있다 보니 청소에는 도가 텄다. 집안 곳곳을 쓸고 닦고 하다 보니 어느덧 저녁놀이 지는 시간이었다.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저녁놀로 붉게 물든 창을 바라보았다.
교도소에 수감될 당시만 해도 집안에 고요할 틈 없이 울리던 전화 벨소리가, 막상 석방되고 난 뒤에는 조용한 것이 어색했다. 어쩌면 아직 친척들은 제가 석방된 것을 모르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먼저 나서서 알리고 싶지도 않았다. 이미 형이 죽은 것과 제가 수감된 것만으로도 남 말하기 좋아하는 고모들의 입방아에 질리도록 올랐으니, 더 오르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다만 종인이 허전한 것은, 충동적으로 형을 죽여야 했던 원인 제공자에게선 아무런 연락이 없다는 것이었다.
잔인한 놈.
종인이 기억하는 세훈의 마지막 모습은, 재판이 끝나고 재판 참관자들 사이에 섞여서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던 그 모습이 다였다. 그 이후로 세훈은 단 한 번도 종인을 면회하러 온 적도 없었고, 편지나 영치금 같은 것도 보내준 적도 없었다. 생각보다 세훈은 종인에게 한없이 냉담했다.
아, 어쩌면 세훈이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대가가 아니었나 싶기도 해서, 종인은 또 다시 자조적인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교도소 밖을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운 것은 여전했다. 아니, 오히려 교도소가 아닌 밖에서의 생활이 더 고통스러워 지옥 같게만 느껴졌다. 새 삶을 시작하라는 교도관의 말이 무색하게, 세상의 편견은 너무나도 가혹했다. 고등학교 중퇴에, 발급 받은 주민등록증 뒷면에 그어진 빨간 색의 사선으로 인해 종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종인이 직면한 현실은 차갑기만 했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속죄 역시 종인을 괴롭히는 것들 중 하나였다.
꿈속에서 몇 번이고 반복되는 그 날의 사고. 제 오토바이에 부딪히는 마찰음과 바닥에 쓰러진 형의 모습, 하얀 피부를 뚫고 나온 붉은 자국들 그리고 제게 건네지던 붉은 핏자국이 남은 흰 색의 돈 봉투. 종인은 잠을 자는 것조차 두려워 뜬 눈으로 지새곤 했었다.
오랜만에 날이 화창했다. 빨래를 널고 나른한 기분에 평상에 드러누워 잠시 눈을 감았다. 웬일인지 눈을 감으면 떠오르던 모습이 떠오르질 않아 마음이 편안했다.
따스한 볕 아래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막 잠이 들려고 할 때쯤, 계단을 오르는 누군가의 발소리가 종인의 귓전에 울렸다. 눈을 덮은 팔을 내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떠오르는 인물이 있어 부러 그 자세 그대로를 유지했다. 호흡이 불규칙적으로 바뀐 것 같았다. 3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익숙한 체향이 코끝에 닿았다. 종인은 지금 당장이라도 눈을 떠서 집을 찾아온 사람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눈을 떴을 때 제 앞에 선 그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처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을까봐 두려웠다.
“김종인.”
“…….”
“안자고 있는 거 아니까 일어나.”
파르르, 속눈썹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거칠어지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눈을 떴을 때, 종인은 다시 눈을 감고 싶어졌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세훈의 시선이 차갑고 날카로웠다. 칼로 온 몸을 베는 것 같은 날카로움에 절로 고통스러운 신음이 잇새로 흘러나왔다. 몇 번이고 눈을 깜빡였음에도 세훈의 시선은 변함이 없었다.
아, 차라리 이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종인은 처음으로 가석방 된 것이 후회스러웠다.
오래 전 형과 함께 보았던 영화중에 그런 내용이 있었다.
오랜 시간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노인이 있었다. 그 노인 역시 모범수로 인정받아 그토록 원하던 석방의 꿈을 이루게 되었다. 하지만 석방 이후에 맞이한 세상은 너무나도 많이 변해있었다. 그리고 세상의 벽은 차갑기만 했다. 자신을 향한 끝없는 편견과 교도소에서 사회로 돌아갔을 때 도움이 될 거라며 배웠던 기술들이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 결국 노인은 자신이 사회에서 불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삶을 비관하며 자살하고 마는 내용이었다.
종인은 왜 갑자기 그 영화의 내용이 떠올랐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한 가지 알 수 있었던 것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영화를 볼 당시엔 이해가 되지 않았던 노인의 선택이 이제는 이해가 된다는 것.
종인은 현재 한 손에는 수면제를, 또 다른 한 손에는 날이 선 면도칼을 들고 있었다.
처음이 어려웠지 그 다음부터는 수월했다. 따끔한 고통이 온 몸을 관통했지만, 그 뿐이었다. 두 번째로 그었을 땐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그저 조금씩 몸에서 무엇인가 빠져나가고 있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피가 묻은 칼을 내려놓고 수면제를 다량 녹인 물 컵을 손에 쥐었다. 벌써부터 힘에 부치는지 물 컵을 쥔 손이 달달 떨렸다. 반쯤은 흘리고 반쯤은 꾸역꾸역 목을 넘겼다. 쨍그랑! 힘이 빠져 손에서 미끄러진 유리컵이 파열음을 내며 깨졌다.
죽는 것도 힘들구나.
종인은 새삼 형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온 몸으로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또 보고 싶은 얼굴이 있어, 문득 울고 싶어졌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졌다. 호흡은 점차 가빠지고 시야도 흐려지는데, 떨어질 생각도 없이 끈질기게 붙어있는 숨통이 원망스러웠다. 자꾸 머릿속에 떠오르는 세훈의 모습에 종인은 도리질 치며 애써 생각들을 떨쳐 내보았다.
“김종인! 너 이게…!”
이젠 하다하다 세훈의 목소리까지 들리는 구나 싶은 생각에 종인은 괴로워졌다. 힘이 없는 한 쪽 팔을 들어 눈앞에 보이는 환영을 없애려 휘휘 저어보았는데, 여전히 세훈은 그 자리에 있었다. 그제야 종인은 눈앞에 보이는 세훈이 환영이 아니란 것을 인식할 수가 있었다. 세훈은 떨리는 손으로 근처에 있는 이불을 끌어와 종인의 상처 부위에 대고 꾹 압박해 지혈을 했다.
“누구 마음대로 죽으라고 했어, 김종인. 너 못 죽어. 평생 살아서, 평생 고통 속에 살란 말이야!”
귓가에 날카롭게 꽂히는 목소리에 종인은 힘겹게 눈을 떴다. 눈물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다.
잔인해, 너… 정말, 잔인하다…… 세훈아.
“김종인! 이 잔인한 새끼야, 꼭 살아. 평생 속죄하면서 살라고, 씨발. 너 이대로 못 죽어!”
잔인한 건 너야, 세훈아.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말이 허공에 흩어졌다. 눈을 감기 전, 일그러진 세훈의 모습 뒤로 제 형의 모습이 보였던 것 같기도 했다. 한 없이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다정한 형 준면의 모습이 종인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BGM. t.A.T.u - All the things she said 끝을 앞두고 있어...요...! 대부분 준면이 기억을 잃은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죽은 사람은 준면이었죠. 조, 조금은... 허무한가요...? 준면이 죽은 사람이었다는 예로 깨알같이 준면의 방은 사람이 살고 있는 것같지 않은 방으로 묘사했고, 반면에 종인의 방이 훨씬 더 사람 사는 방 같다고 묘사했습니다. 또한 세훈의 말 중에서 아직까지 2010년 달력이기에 바꾸었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건 준면이 죽은 해가 2010년도 이기 때문에 달력이 2010년도에 멈춘거죠. 또 저번편에서 세훈이 준면에게 우리가 사랑한 3년 이라고 했죠, 그건 준면이 죽은 후에도 세훈이 아직 준면을 사랑한다, 뭐 이런 뜻이었어요. 그러니까 세훈이 말한, 준면이 만든 세계는 자신이 살고 동생이 죽은 세계라는 뜻이지요. 이야기 시작할 때 종인이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었다고 했죠, 그것도 일종의 복선이었습니다. 사실은 준면이 종인이 몰던 오토바이에 치어 죽었지요... 10편을 마지막으로 끝이 나는 내용입니다... 처음 쓸 때부터 이렇게 끝낼 생각이었기 때문에 후회는 없지만, 관심이 많아져서 조금 두렵기도 했어요. 끝이 허무하다고 생각할 것 같아서 말이죠. 음... 으아, 모르겠네요. 어쨌든 봐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마지막 글 마침표 찍으면 그때 제대로 감사 인사 드리겠습니다. 의문점 있으신 분들 질문해주세요, 한꺼번에 모아서 답 해드리겠습니다!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