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마신괴이
.Mutsukee
괴상한 꿈이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매번 들어왔던 그 기묘한 말 때문인지 이상하게도 최근 들어 정신이 온전치 못했다.
저 별은 미루란다. 가장 빛나는 별 말이다. 저 다 늙어 시들어가는 별은 이 할미 별이고. 미루 엄마의 별은 아쉽게도 이곳엔 없단다. 저 너머 어딘가에서 아주 희미하게 빛나고 있을 테야. 별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별의 가호를 받은 아이가 태어나지. 우리 미루는 별의 아이란다. 저렇게 힘차게 빛나는 걸 보면, 별은 미루를 꽤나 사랑하는 듯싶구나.
어렸을 적 자신이었으면 곧바로 볼을 붉히고 눈을 반짝이며 할머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바빴을 테지만, 하나뿐이던 할머니도 돌아가시고 본인 먹고살기도 바쁜 상태라, 별의 아이고 뭐고 전부 신경을 끄고 살아간 지 오래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어렸을 적 할머니께서 미루와 할머니라며 소개해준 남쪽 하늘의 두 별 중 하나가 보이지 않기 시작한 것은 기이하게 믿을 만 했다. 그것도 강렬히 빛을 내뿜는 별이 아닌 희미해져 가는 별 하나가. 그것이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이후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쿵쾅거리는 공사 소리가 시끄러웠다. 그러고 보니 건너편 단지가 재개발에 들어갔다고 했지. 곧 있으면 금세 아파트도 지어질 거고, 사람들도 찰 것이 분명했다. 재개발이 시작되기 전에는 오래되고 허름한 빌라 단지였는데, 이상하게도 음산하고 소름이 끼쳐 사람이 얼마 없던 곳이었다. 나 또한 이상하게 소름 돋는 차가운 온기에 그 근처는 잘 드나들지 않았다.
뜨겁게 달아오른 압력밥솥에서 취사 연기가 빠져나와 천장에 닿아 흩어졌다. 여덟 시에 일어나 세 시간 동안이나 침대에서 뒹굴다 한시가 다 되어야 밍기적 일어나서는 이제서야 아침 겸 점심을 먹는 꼴이라니. 참으로 나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냉장고를 열어 대충 반찬 가게서 사 온 장조림과 오징어무침으로 끼니를 때우니 그렇게나 실컷 잠을 자놓고도 식곤증의 위력은 그치지 못했다.
소파에 가만히 누워있으니 베란다 창문으로 거센 햇볕이 내리쬐어 눈이 부셨다. 한쪽 팔로 해를 가리니 어두컴컴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게 잠에 들기 딱 좋았다. 편안하게 흐르는 고요함과 거슬리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백색소음. 천천히 정신이 빠져나가고 눈이 풀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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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열어서 데려간 거면 어쩌지?”
“그럴 일은 없어. 저 상자는 내가 준 거야. 내가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는데, 요력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은 일반적인 인간에게는 보이지 않아. 분명 조그마해진 채로 잠들었으니, 풀릴 일도 없을 거야. 그 긴 시간 동안 그 모습으로 살았으면, 다시 커지게 하는 것도 일이거든.”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그 자식 옷도 이상하고, 도로에는 기계들로 가득한데! 더군다나 자동차 같은 거에 부딪혀서 차가 부서지면 어떡해!”
“아 그쪽인 거야?”
재민은 멋쩍은 웃음으로 초조해하는 인준을 진정시켰다. 그게 과연 그의 진정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마는 인준은 어찌나 걱정되는 것인지 잘 풀리지 않는 변신술도 풀려 엉덩이 너머로 포근한 여우의 꼬리가 길게 뻗어져 있었다.
“걱정하지 말라니까? 애들한테 연락 돌릴게. 찾아보라고.”
“걱정이 안 돼, 너는? 아무것도 모를 거야. 정신도 제대로 못 차려서 사람이라도 잡아먹으면 어쩌려고!”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건 그 녀석이 제일 잘 알 거야. 개새끼잖아. 미각도 후각도 청각도 전부 예민한. 어련히 알아서 잘할 놈이야.”
“능력과 본능은 달라. 이곳에서 수백년을 산 우리와는 다르게 요괴의 본능이 살아있는 놈이야. 까딱하다가는 정말 풍비박산이 날지도 모른다고! 그러니까 여유로운 척 좀 하지 말고 빨리 연락이나 돌려, 이 능구렁이 새끼야!”
인준의 성난 발걸음은 천년 용도 애를 먹게 했다. 성질이 고약하고 예민하여 한 번 화가 나면 뒤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여우였으니. 재민이 뒷주머니에서 제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너 연락하기 싫지? 어?”
“아하핫. 인준아. 속상하게 그게 무슨 소리야.”
“요력도 멀쩡한 새끼가 왜 휴대전화를 써? 아주 연락 돌리는 데만 백만 년은 걸리겠네.”
여우 요괴의 끝없는 비꼼에 재민은 결국 두손 두발 다 들었다.
“지금은 안 돼. 그새 잊었어? 내 위치가 들통나면 안 돼. 그렇게 답답하면 네가 하지 그래? 그 목에 걸린 방울.”
인준은 그를 아니꼽게 바라보며 제 목에 걸린 방울을 매만졌다. 그리고 잠시 뒤 깊은 한숨을 쉬니 다시 한번 그의 주위에 매서운 바람이 불어 회오리가 그의 몸체를 덮었다.
조금 전보다 더욱 크고 길게 늘어난 순백의 꼬리, 주황 머리 위를 덮은 앙증맞은 여우의 귀, 순식간에 뒤바뀐 옷까지. 꽤 오래전부터 입어온 듯한 고급스러운 도포였다. 재민이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웃지 마. 네가 남 일 웃을 처지야?”
“그래, 뭐. 근데, 난 용이라 본체가 너무 커서 이런 조그만 공터에서는 꽉 껴. 우리 인준이는 그에 비해 참 앙증맞아.”
“뒤지고 싶냐?”
“용은 말이지~ 사기캐라 쉽게 안 죽거든~”
따박따박 맞대답을 하며 능구렁이처럼 구는 재민의 행동에 인준이 결국 고개를 피했다. 목에 걸려있던 작은 방울 하나는 어느새 두 세 개로 늘어나 인준의 손에 들려있었다.
작게 흔들자 경쾌하고 맑은 방울 소리가 빈 공터를 울렸다. 자신도 본체를 내보이는 것은 꽤 오래전이 마지막이라 그의 연락이 그들에게 잘 전해졌을지는 미지수였다.
“냄새라도 찾아야 해. 너무 오래 흙 속에 파묻혀서 냄새가 덜하기는 하겠지만.”
재민의 목소리였다. 소중히 여기던 펜던트도 던져놓고 어디로 사라진 건지, 제 친구는 꼬리는 커녕 냄새조차 사라진 상태였다.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인준의 말에 재민이 고개를 저었다. 그 새끼가 죽을 놈이겠냐. 그 자식, 이래보여도 명줄은 긴 요괴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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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사방이 어두컴컴했다. 팔 위를 기어 다니는 감각도 세세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이 멀쩡해지기 시작했다. 여긴 어디지. 오랜 시간 잠을 잔 것이 무색할 정도로 머리가 찡하게 아파져 왔다. 분명히 눈을 떴는데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는다. 풀썩 눕혀진 몸뚱어리를 힘겹게 들어 올리려 온 힘을 다했지만 마음대로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어둠에 익숙해지자 시야에 힘겹게 내려앉은 하얀 털이 보였다.
맞다. 나는 나 스스로 긴 잠을 선택했지.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친구라는 것들은 적절한 때가 되었을 때 깨워주겠다 약속했으면서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확실히 느낌상으로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려 낑낑거리는 작은 짐승의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분명 상자에 담겼었지. 다른 무언가에 방해받지 않고 깊은 잠에 들라고 말이야. 시야를 가로막고 좁은 이 공간은 분명 그들이 자신에게 준 상자일 게 분명했다. 그가 천천히 앞발을 밀었다. 긴 시간 동안 잠겨있어서 그런지 뻑뻑해져 잘 밀리지 않았다.
그냥 다시 잠에 들까. 친구들이 올 때까지 쭉 잠을 잘까. 하지만, 그들이 언제 올 줄 알고. 작은 몸을 크게 만들면 그 부피에 상자가 나가떨어질지도 몰랐지만, 오랜 시간 동안 작은 몸으로 잠에 들어 다시 크게 만드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그는 결국 온 힘을 앞발에 쏟아부었다.
천장을 세게 미니 천천히 열리는 소리와 함께 우수수 모래가 쏟아졌다. 분명 산속 어딘가에 파묻힌 것 같았는데, 흙이 아니라 모래였다. 앞발이 저릴 정도로 더욱 있는 힘껏 밀어내니 모래가 한꺼번에 얼굴로 쏟아져 내렸다. 작은 짐승이 고개를 돌려 재채기를 해댔다.
힘겹게 몸을 빼고 고개를 들어 올리니 온통 이상한 것들 천지였다. 넓은 모래 사이사이에 떨어져 있는 딱딱한 것들과 한 발자국 단위로 높게 세워진 기둥 같은 것들. 그리고 기와집이랑은 조금 다른 외형의 집들.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게 솟은 딱딱한 것은 무엇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구나. 그저 그리 생각했을 뿐이었다.
네 발로 걷는 것도 아주 오랜만인 것 같군. 배가 고프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피 냄새가 났을 때였다. 어디 뾰족한 것에 긁히기라도 했는지 피 철갑을 두른 낯선 새 하나가 날개도 펼치지 못하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는 천천히 발을 움직여 도망치지도 못하는 그 가엾은 새에게 다가갔다.
피 냄새가 진동을 했다. 새의 목줄이 뜯기고 핏물이 뿜어져 나와 잔뜩 모랫바닥을 적셨다. 허겁지겁 그 날것을 뜯어 먹으니 차츰차츰 배가 차기 시작했다. 너무 오래 지나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까마득한 지난날에 먹었던 고급지고 기름진 고기에 비해서는 한참이나 떨어지는 맛이었지만, 그는 나름 만족했다.
그 이름 모를 새는 마지막 발버둥을 치다 숨을 거두었다. 네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감사를 표하지. 과거의 그였다면 그리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조용히 콘크리트 블록 사이에서 새를 뜯어먹던 때였다. 같은 무늬와 생김새의 새떼가 날아와 날카로운 부리로 난데없이 그를 쪼아대기 시작했다. 발톱을 세워 당장이라도 버릇없는 목덜미를 찢어발기고 싶었지만, 지금의 그는 아직 작은 몸의 개일 뿐이었다. 그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에비! 저리 가!”
순식간에 제 복스러운 털을 쪼이던 새들이 놀라 기겁하며 날아갔다. 낯선 여자 인간이었다. 그래. 가엾은 동물에게 연민을 느꼈구나, 당신. 그는 꾀죄죄한 자신의 몰골을 보고도 망설임 없이 다가와 손을 내미는 여자를 경계했다.
“괜찮아. 해치지 않을게. 여기 사니? 주인이 버리고 갔으려나…. 책임지지 못 할 거면 데려가질 말던가. 하여튼, 무책임한 인간들….”
여자 인간이 제 입으로 인간을 험담한다. 그에게는 꽤나 독특하고 재미있는 광경이었다. 과연. 이런 것을 동족 혐오라고 하는 것인가.
“아무래도 동물 보호소 같은 곳에 데려가야 할텐데…. 나랑 가지 않을래?”
여자는 손을 내밀었다. 그는 어린 개의 몸으로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도 이내 다시 으르렁거리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순간, 시야가 뒤집혔다. 어째 내 앞에 하늘이 있는 것인지. 너무 오래 잠을 잔 탓에 다리도, 몸도, 모든 것이 약해져 있었다. 그의 다리가 휘청인 것이다.
“안 되겠다. 이리 와.”
눈이 슬슬 감기는 도중이었다. 인간의 손길과 높은 체온이 느껴졌다. 믿을 만한 것이 못 되는 인간에게 도움을 받다니. 재민이나 천러가 알았다면 자지러지며 비웃을 것이 뻔했다. 몸부림치며 달아나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 건, 조금 전 자신을 쪼아대던 그 검은 새 떼 중 하나의 정신없이 돌아가는 눈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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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