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야, 김태형 조온나 귀엽지 않냐."
"그르냐."
오늘도 그놈의 김태형 타령. 무슨 우리 과 대표 미남이라는데, 솔직히 잘생기긴 했다. 근데 오히려 너무 잘생겨서 마음이 가질 않는거다. 왜냐구? 너무 나랑은 클래스가 다른 느낌이잖아.
재잘거리는 동기의 말을 뒤로하고 거울을 보면서 옆머리를 정성스레 정돈했다. 요즘 살이 빠졌는데도, 정성스럽게 화장을 해봤자 얼굴이 영 아닌것이 은근히 스트레스였다.
"뭐라고 했는데?"
비륵 앞부분을 듣지 못했지만 적절하게 질문을 던져주는 센스를 발휘하며 무거운 에코백을 고쳐맸다. 전공도 아닌 게 첫날부터 뽑아오라는 프린트는 왜 이렇게 많은지.
"자기는 귀여운 여자가 좋대."
"이상형이 귀여운 여잔가보네."
화장실을 나서며 조잘조잘 어쩌구저쩌구 말하며 울상을 짓기에 등을 토닥여주며, 걔 말고 더 멋진 친구 찾으라고. 니가 얼마나 귀여운데 모르냐고 거짓부렁 좀 내주고 강의실에 들어오자 어느새 교수님이 앞으로 한 학기 계획을 설명해주겠다며 앞에 서 계셨다.
자리에 후다닥 앉자 그제서야 친구도 입을 꾸욱 다물고 공책을 꺼내들었다.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참 흥 하나 나지 않는 건조한 대학생활이다.
"자, 여기서 이 과제에는 개인발표랑 조별발표 이렇게 두 개가 있고."
저렇게 내가 제일 싫어하는 발표도 있어주시니. 건조한 사막에 필요없는 신기루처럼. 입가에 한숨이 미적지근하게 눌러붙었다. 발표가 싫은데, 하소연해봤자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을 것을 알기에 속으로만 꾸욱 눌러 삭힌다. 익숙한 일이다.
"조별발표 팀은 여러분이 편한대로 정하고, 팀 별 대표가 팀원 목록 이메일로 전달하도록 해요. 한 팀에 세네명이면 충분하겠네요."
네에에... 힘 없는 대답에 교수님이 난처하게 웃는다. 하지만 굳이 바꿀 생각은 없으신지 안경을 치켜올리고는 이내 중간고사 얘기를 시작하신다. 꺼내놓은 공책과 볼펜이 무색할만큼 아무 생각 없이 넓은 강의실을 둘러본다. 모르는 얼굴도, 가끔 학식을 먹을 때 마주쳤던 얼굴도 보인다. 누군가는 교수님의 말을 경청하고 있고 다른 누군가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게임을 하고 있는걸까.
천천히 돌아가던 시선 끝으로 오똑한 코가 걸린다. 눈동자를 조금 더 돌리자, 졸린지 반쯤 감긴 눈과 길게 자리잡은 속눈썹이 보인다.
김태형. 쟤도 이거 듣는구나.
흡사 초코색 찐빵처럼 매끈한 피부를 눈으로 약간은 예의없게 훑고는 입은 옷을 쳐다본다. 덥지도 않은지 검정색 긴팔티를 입었다. 시선을 조금 더 돌리자 그를 몰래 쳐다보고 있던 여학생과 눈이 마주친다. 괜히 밀려오는 창피함에 급히 교수님을 쳐다본다. 어느새 수업계획 설명은 막바지에 다다라 있었다.
"자, 첫 날이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쉬다 와서 학교 다시 다니기 힘들겠지만 열정있게 사는 한 학기가 되어봅시다!"
짝짝짝. 건조하게 박수를 치고, 교수님이 강의실을 나가고 나서야 에코백에서 무게를 자랑하는 프린트물 생각이 문득 났다. 이거 쓰지도 않을 걸 뽑아오라고 공지한거야? 무거워 죽겠는데 짜증나네.
"여주야, 난 애들이랑 밥 먹고 갈건데. 너도 같이 갈래?"
옆에서 동기가 물어오기에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 이미 밥을 해놓고 나와서. 맛있게 먹어. 그 말에 희미하게 지어지는 웃음을 보고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믿냐? 구란데.
집 가는길에 저녁으로 먹을 김치만두를 오천원어치 샀다. 개강 첫 날부터 기분이 참 별로다. 사실 이럴 줄 알았지만, 그럼에도 마음맞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는 사실은 늘 기분을 더럽게 만들었다.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아서. 괜히 오르막길에 있는 돌멩이를 발로 툭툭 차며 가는데, 뒤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또 고백 받았냐?"
"어... 이제, 그 방학에, 술자리 있어서 나갔는데... 그 때."
"아 김태형 웃는 거 봐라. 좋냐아~"
어후. 대화 수준 봐라. 중딩이야 뭐야. 괜히 드러운 기분은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았을 것들에도 자기 존재를 과시하며 나를 툭툭 건드려 왔다. 생리할 때가 됐나. 있는 힘껏 얼굴을 구기고는 발걸음을 빨리 하는데, 뒤에서 오는 친구들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소리가 전혀 멀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가까워지는 것 같기도 했다. 여전히 구겨진 얼굴로 열기가 올라오는 만두봉지를 슬쩍 흔들면서 걷다가 문득 고개를 살짝 돌려 뒤를 쳐다봤다.
"그래서 내가..... ...어?"
...맹세컨대 눈이 마주칠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본 거였는데. 우물거리며 떠들던 사람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본다. 시끄럽게 귀에 들어오는 이야기에 예상은 했지만, 김태형이었다. 잠시 빤히 쳐다보던 김태형은 내가 눈을 피하지 않자 이내 사람 좋게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순간 우리가 아는 사이였는지 고민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손을 흔든다.
"안녕!"
그래서,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손을 흔들어버리고 말았다. 누가 봐도 어색하다고 생각할 법한 미소까지 지으면서.
"안녕...?"
"집 가?"
"아, 어..."
김태형 옆에 서있던 친구가 내 표정을 보고 당황해서는 아는 분이야?하고 물었다. 김태형은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고는 말은 지금 처음 해봐! 하고 해맑게 말했다. 그걸 들은 김태형의 친구가 질린다는 얼굴로 내게 고개를 꾸벅 숙인다. 어휴, 얘가 워낙에 이런 애여서요... 죄송해요.
아니에요, 하하.
그렇게 마주 꾸벅이며 대답하고 급히 돌아 집으로 향했다. 뒤에서 잘 가!하고 작은 외침이 들린다. 당황해서 얼굴이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쟤 뭐야.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닥에 앉아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만두를 입에 구겨넣으면서 폰을 켰다. 엄마한테서 메세지가 와 있었다.
[딸 밥은 먹었어?]
시선이 자연스레 만두로 향했다. 쓰레기통에 처박힌 만둣집 봉투를 괜히 노려보다가 그만뒀다.
[넹 먹었어요ㅎㅎ 엄마는?]
폰 화면을 끄고 침대로 던져버리고는 단무지를 입에 넣어 우적우적 씹는다. 3학년이 되며 자취를 시작했는데, 사실 밥은 거의 잘 챙겨먹지 않는다. 좋은게 있다면 덕분에 살이 빠지고 있다는 것일까. 안 좋은게 있다면, 빠져도 외모가 그닥이라는 것?
어쨌든. 참 사람 혼자 산다는게 외롭긴 하다는 걸 몸소 깨닫고 있는 중이다. 특히 잘 때. 귀신을 믿지 않는다고는 말하지만 가끔 어두운 밤에 잠드는 게 왜 그렇게 무서운지. 처녀귀신이 튀어나오기라도 할까봐 잠들기 어려운 바람에 일부러 피곤해질만큼 휴대폰을 만지다가 자곤 했다.
그리고 동기들을 좋아하진 않지만, 솔직히 말해서 동기들이 없었다면 난 아마 하루종일 딱 두 마디 빼고는 입 꾹 다물고 다녔을 것이다.
만두 오천원어치 주세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딱 두 마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난다.
슬쩍 창문을 올려다보니 해가 지고 있었다. 8시가 되도록 해가 지지 않아서 지겨워한게 엊그제같은데, 이제 가을이 가까워진다고 해도 빨리 진다.
종강은 언제 오려나. 이제 내년이면 4학년인데. 휴학이나 할까. 다 먹지 않은 만두를 대강 뚜껑만 덮어 한쪽으로 밀어두었다. 방 안에는 만두 냄새가 가득해 조금만 누워있다가 환기를 시켜야 할 것 같다.
문득, 만두를 보고있자니 찐빵이 생각나고 자연스레 김태형 석 자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걔는 날 알고 있었던걸까?
같은 과니까. 아무렴, 알 수도 있지.
근데 왜 인사를 한 거야.
빨간색 캡모자를 쓰고 빙구같이 웃는 모습은 왜인지, 잠들기 전 마지막 기억나는 그때까지도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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