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생각나서 쓰는 조각글입니다. 우울한 작가의 심정을 듬뿍 담아... 년도는 끌리는대로 적은 것입니다. 역사적 사건과 아무런 관계 없으니 편안하게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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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꽃은,˝
˝…….˝
˝지기 마련이라 하더라.˝
˝…….˝
홀로 두고 떠난 것이 화근이었다. 사방 에서는 대포 소리와 총 소리가 연이어 들려 오고,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주위를 맴돌았으며 건물들이 무너지는 소리가 메아리 처럼 퍼져 나갔다.
˝학도병, 학도병 122번 박찬열, 박찬열 응답하라.˝
˝1, 122번 박찬열! 여, 여긴 지금 온통 폐허가 됐습니다! 포도 모자란다는 소식을 전해…˝
˝일분 일초가 급해! 그쪽 사람들을 포기하고 이쪽으로 넘어와!˝
˝그, 그건 안됩니다!˝
뚜, 뚜, 뚜…….
˝장교님! 장교님! 들리십니까! 122번 박찬, 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사랑해 왔던 것들. 이곳에서 태어나 자라고 숨을 쉬었던 나 인데, 내 손으로 이 곳을 파괴 시키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다. 지켜주지 못할 망정, 피를 흘리고 절뚝 거리며 돌아 다니는 사람들에게 총을 겨눈다. 이 전쟁은 내가 원해서 한 게 아냐, 원해서 한 게 아니라고…. 새벽마다 자책감에 빠져 깊은 잠에서 깨어나 한참을 중얼거리면 쪽잠을 자던 학도병들은 좀 자자, 찬열아. 오늘도 시작이냐. 하는 말을 건넨다. 다 헤진 옷 안주머니에는 작은 유리병이 있다. 어머니께 전쟁에 참전 한다는 말씀을 드리자 건네 주셨던 것이었다. 열다섯개의 알약들. 진정제였다. 잠이 잘오고, 회복력도 빨라지는. 이 알약이 없으면 버틸 수 없을 정도로 하루하루를 고통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내가 약을 먹고 누우려고 하면 지금처럼 끙끙 거리며 미열을 내는 아이가 있다.
˝으으……. 으으, 응…˝
나와 6년간 친구 였던 백현이. 선천적으로 말을 못하고 행동도 느릿한게 딱 어딜가나 놀림 받기 쉬운 상이다. 몸이 허약해 전쟁에 참전 하지는 못하고, 무작정 나를 따라왔다. 할줄 아는 것도 없으면서 왜 데리고 왔냐? 쐐기를 박는 학도병들의 말에 참을 수 없이 화가 나 얼굴에 주먹을 꽂은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나와 백현이를 제외한 모두는 절친한 친구 사이 였으며, 새벽까지 담소를 나누고, 같이 생활 한다. 세상에 남겨진 것은 오직 우리 둘 뿐이라고, 난 생각했다. 백현이가 잠에서 뒤척이면 나도 잠을 이룰 수 없다. 미열이 더 심해지지는 않는지, 손을 떠는 것이 심해지지는 않는지 살펴야 하기 때문에 아주 작은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빛을 통해서만 확인 할 수 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백현이의 얼굴을 살폈다. 그리고 이마에 손을 얹으니 어깨를 잔뜩 움츠린다. 어제보다 조금 심한 열이었다. 가슴팍에 손을 올려 몇번 쓸어내리니 신기하게도 열은 싹 내려갔다. 백현이는 흐응, 하며 씨익 웃었다. 열이 내리고 잠을 편히 잘 수 있다는 신호였다. 그런 백현이의 얼굴을 보니 웃음이 퍼져 나왔다. 이렇게 이쁜 애가, 내 곁에서 숨쉬고 있다니. 작고 하얀 손을 꽉 쥔 다음 자리에 편히 누웠다. 귓속에 속삭인다.
˝오늘도,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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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아! 나가지 말고 여기 가만히 있어야해, 알았지? 어?˝
˝으, 어…. 아, 아이, 아˝
˝곧 돌아올게! 무작정 따라 다니지 말고 여기에만 숨어 있어! 무슨일 있던! 배고프면, 이거라도 먹고 있어!˝
˝……어으, 아!˝
˝다녀올게, 백현아!˝
급히 학도병들을 찾는 무전통신에 두고 갈 수 밖에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남아있는 학교 끄트머리에 두터운 담요 두어개를 쥐어주고 너를 숨겨 놓았다. 도망가지 말라 당부하고 손을 흔들며 애써 웃었다. 우리가,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 백현아, 아프지 말고. 설상 만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넌 나를 잊고 잘 살아가야 해. 작은 봉지에 들어있는 빵조각을 가슴에 얹고 울먹 거리며 손인사를 하던 너를 잊을 수 없다. 2년 반 이라는 시간동안 혼란스러운 이 전쟁통 속에서 나는 싸우고, 싸웠다. 사람들을 죽이는 일에 익숙해져 학도병이 아닌 학도 장병 이 되었고, 이성을 잃으면 표호하는 한마리의 호랑이가 되곤 했다. 그렇게 잊은 줄 알았는데, 지독한 전쟁이 끝나고 이곳으로 돌아왔을 때 마을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장님 집으로 들리게 되었다. 나의 너른 등을 쓰다듬으시며 수고했다, 수고했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셨다. 모든 사람들이 보고 싶었다. 가족이 보고싶었다. 사랑하는 네가 보고 싶었다.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 보아도 남아있는 건 허름한 이장님의 집 뿐이었다. 한참 울먹이다 이장님에게 물었다.
˝백, 백현이는, 요…?˝
이장님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몰랐냐는 듯이. 고개를 저으셨다. 세상이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주먹을 꽉 쥐고 젠장…! 소리치자 이장님이 무릎을 꿇으셨다.
˝잘못했다, 열아…. 지키지 못한 내 잘못이다…˝
처음엔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장님 께서 가슴을 부여잡고 엉엉 우시는 바람에 나도 그 앞에서 주저 앉아 울 수 밖에 없었다. 서로의 손에 의지하며 살아가던 날들, 우리의 눈부시던 날들이 한순가에 잿더미로 변했다는 사실을 믿을수가 없었다. 겨우겨우 배운 글이 있었다. 투박한 연필로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는 네 손을 보고 있자면 눈길이 갔다.
사, 랑, 해.
서툰 글씨 였지만 나의 가슴에 깊이 와 닿았다. 화색을 띄며 나도! 하며 너를 안을때면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너와 결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세월이 지나면 세상이 더 좋아 질테니 남 눈치를 보지 말고 이쁜 사랑을 하자.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해맑게 웃던 너. 사랑하는 너를 지키지 못함에 죄책감이 들어 울고, 또 울었다. 그렇게 이틀 째 였다.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없었고 이장님께서 걱정 스런 눈빛으로 입가에 까지 머얼건 죽을 떠 먹여 주셨지만 끝끝내 입에 들어가질 못했다. 먹고 싶지 않다, 가 아니라 먹지 못하는 것이었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내가 그리워 했던 만큼 그 곱절은 더 그리워 했을테지.
˝백현이……˝
며칠만에 입을 떼는 거라 입술이 부르터 있었다. 여기저기서 갈라져 피가 나기도 하고, 입안은 꺼끌해 말을 하기가 조금 어려웠다.
˝산소는… 어디에 있어요?˝
아아, 햇볕이 잘도 드는구나. 맞아, 넌 나에게 해 같은 존재였지. 어딜가나 따스하고 빛이 나고. 나는 그런 널 좋아할 수 밖에 없었다. 말간 웃음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웃게 되었으니까. 어떠한 근심 걱정도 날아가 버렸으니까. 손과 발이 마음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보고 싶었다. 그리웠다. 이제 마음속으로 되뇌일 수 밖에 없어졌다. 둥그런 모양으로 지어진 산소옆에는 무성한 잡초들이 자라났다. 하나 하나 잡초들을 떼어 내고 손으로 네 머리를 쓰다듬어 내릴 때 처럼 살살 어루어 만졌다.
˝……백현아.˝
˝왜 여기 있어, 춥잖아.˝
˝가자, 가자… 집에 가자…˝
˝이건, 이건 아니잖아…!˝
˝이러면… 안되는거야, 변백현.˝
˝글도 배웠으니, 이젠 말을 배우자.˝
˝사랑해, 사랑해….˝
그 녀석은 이백리나 떨어진 이장님 집으로 찾아 갔다고 한다. 어버버 거리며 손과 발을 써 가며 말을 했고 울먹거리며 나의 사진을 들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고 한다. 나를 찾았던 것이다. 그렇게 말을 해 주었는데도, 못 알아 듣는다니. 바보 같은 녀석. 이장님은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더이상 볼 수 없다는 뜻이었다. 알아 듣기나 하였는지 울음소리가 더욱 커지며 안쓰러울 정도로 마른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주춤거리다 뒤를 돌아 떠났다고 한다. 그 이후로 보지 못했다고 한다. 아마 상처 투성이인 맨발로 나를 찾아 오고 있었지 않았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찾으러, 먼 길을 걷지는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