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落花 (낙화)'는 '설화' 그 두번째 이야기입니다.
등장인물과 내용의 이해를 위해서 '설화'를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나무를 짜올려 벽 한면에 세워진 책장 앞을 서성이던 그가 한참을 이리저리 눈을 굴리다
그 중 제일 마음에 드는 서책 하나를 꺼내들었다.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책장을 넘기던 고운 손끝이 한참동안 글자 위를 노닐다 살며시 찡그려지는 미간 위로 자리를 옮겼다.
"하아- 타국어를 배운다는게 쉽지가 않구나. 흠..."
읽어내릴수 있는 글자 몇을 작게 중얼거리며 햇살이 스미는 창가에 기댄 그가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으...이건 정말 모르겠다. 장린에게 물어야하나?"
더이상 읽기를 포기한듯 빠르게 책장을 넘기다 요란한 소리로 책을 덮어버리고는 그대로 벽에 기대어
스르륵- 몸을 뉘인다.
".....언제쯤 오시려나... 해가 지기를... 얼마나 기다려야할까."
포근한 햇살과 함께 묻어온 기분 좋은 바람을 느끼던 그가 천천히 두 눈을 깜박였다.
"대감댁 아기씨 옷도 만들어야하는데..."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음에도 포근한 햇살에 자꾸만 몸이 나른해져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두 손을 포개어 얼굴을 기대고는 졸음이 쏟아지는 두 눈을 꼬옥 감아버린 그.
나른한 쉼을 선택한 그의 뺨 위에 햇살이 하얗게 물든다.
해가 지기 시작하여 푸른빛 가득한 길을 말없이 내딛는 그의 발걸음이 가볍다.
저잣거리에 들려 사온 달달~한 주전부리가 담긴 부시럭 거리는 종이 소리마저 정겹다.
이제나저제나 자신이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도 잠시,
입가에 절로 지어지는 미소에 혹여나 누가 볼까 괜스레 흠..하고 헛기침을 해보이곤 내딛던 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멀리 보이는 익숙한 대문.
뛸듯이 급한 걸음으로 대문 앞에 다다른 그가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가다듬고는 살며시 마당안으로 들어섰다.
"...음...?"
마당에 들어서는 인기척에 뒷마당에서 환한 얼굴로 마중을 나온 하인 칠복을 빼고는 기다리던 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나리~오셨습니까요~"
"별 일 없었소?"
"없었습니다요~"
자신을 보는둥 마는둥 이리저리 눈을 굴리는 나리의 모양새에 칠복은 슬며시 미소를 지어보이곤
손끝으로 사랑채를 가리켰다.
"도련님은 하루종일 사랑채에 계십니다요~"
"사랑채..?"
들릴듯 말듯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나리께 고개를 끄덕여보인 칠복은 물기가 잔뜩 묻은 손을
옷에 슥슥- 문지르며 다시 말을 이었다.
"무엇을 그리 열심히 보시는지...오늘은 바느질도 하지 않으시고 낮밥도 거르신채, 내내 책방에 계셨습니다요."
알았다 답하는 나리께 고개를 꾸벅 숙인 칠복은 저녁을 준비하겠다며 부엌으로 향했다.
칠복의 모습이 사라지고나서야 사랑채로 향한 쑨양은 천천히 누마루에 올라 그가 있다는 책방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책을 보는것은 아닌지 불빛 하나 없는 어두운 방안.
작은 손기척에도 아무런 대답이 없자, 그가 살며시 문을 열어 방안으로 들어섰다.
활짝 열린 창 아래, 푸른 달빛을 침장 삼아 조용히 누워 있는 모습에 쑨양의 입가에 설핏 미소가 떠오른다.
"태환."
작은 부름에 눈썹을 찡그리며 입술을 조물거리는 그.
혹여나 자신의 발소리에 놀랄까 조심히 곁에 다가선 쑨양은 천천히 몸을 낮춰 밤바람에 차갑게 식은 그의 하얀뺨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음..."
"태환. 일어나십시오. 여기서 주무시면 고뿔에 걸리십니다."
잠이 깨려는지 뺨에 닿은 자신의 손을 마주잡는 그의 손길에 쑨양은 천천히 눈을 떠올리는 태환의 이마 위에
조심스럽게 손바닥을 올렸다.
"...이제 오신겝니까?"
열이 나는건 아닌지 유난스럽게도 이마를 짚어보는 나리의 행동에 태환이 푸흐흐...웃어보이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다정하고 깊은 눈매.
잠시동안 눈을 맞추던 태환은 그 마음을 안다는듯 몸을 기울여 나리의 목을 끌어안았다.
"이리도 걱정이 많으셔서 하루종일 정세를 어찌 보고 오신겝니까~?"
장난스러운 태환의 농에 쑨양도 작게 소리내어 웃어버리고는 그의 등을 토닥여 가까이 당겨안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대때문에 일이 손에 잡히질 않으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푸흐흐...나리도 참~"
한술 더떠 농을 건네며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는 그의 간지러운 숨결에 태환이 웃음을 터뜨리며 쑨양의 품에서 살며시 벗어났다.
"음..?"
환한 얼굴로 나리를 바라보던 태환은 어디선가 풍겨오는 고소하고 달작지근한 냄새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떠올렸다.
주전부리 사온 것을 단번에 알아채고 빙그레 웃어보이는 그의 표정.
그 모습이 한없이 사랑스럽다는듯 피식...미소를 지어보인 쑨양이 뒤에 감춰두었던 종이 봉투를 눈앞에 꺼내들었다.
당장이라도 하나를 집어 먹을 기세로 손을 뻗는 모습에 쑨양이 봉투를 쥔 채 벌떡 몸을 일으켜 세웠다.
"지금은 안됩니다."
"에-?"
"낮밥도 드시질 않고 여기에 계셨다지요? 주전부리는 저녁 드신후에 드리겠습니다."
".....에?.....그러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여기 있습니다."
입술을 삐죽이며 토라진 모양에도 꿈쩍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태환은 별 수 없다는듯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매작과, 약과...그대가 좋아하는건 모두 사왔습니다. 저녁......!"
축-처진 표정으로 슬금슬금 곁을 지나는듯 싶더니 잽싸게 봉투를 낚아채 문밖으로 도망가는 태환의 행동에
쑨양이 제 자리에 얼어붙었다.
샐쭉 웃으며 보란듯 매작과 하나를 꺼내물고 푸흐흐~웃는 태환.
그 모습에 졌다는듯이 한껏 어깨를 늘어뜨린 그가 태환을 따라 문밖으로 나섰다.
"하나만! ...하나만 드셔야 합니다."
"네에---"
오독오독 매작과를 씹으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자 어느새 다가와 입술에 묻은 끈적한 조청을 자신의 입술로 닦아낸다.
"..나..리!"
누가보기라도 할까 흠칫 놀라 얼굴이 붉어지는 태환의 귓가에 쑨양이 무언가를 속삭이고는 지나쳐갔다.
그 말에 귀까지 새빨개져 나리의 뒷모습을 흘기는 태환.
싫지만은 않은듯 웃음을 간신히 삼키고 그 뒤를 따라 태환도 걸음을 옮긴다.
[저도.. 살짝.. 맛만 본겁니다.]
***
안녕하세요^^ 흰둥이입니다.
오랜만에 글을 쓰려니..어색돋네요ㅎ
여전히 두 남자는 꽁냥거리고 있군요...
행복해보이는것이..엄청 부럽네요ㅎ
낙화에서 처음으로 밝혀지는 우리의 하인 이름!
'칠복'
엄청 고민했는데...그나마 제일 맘에 들었어요ㅎ
너무 촌스러운가요? ㅠㅠ 헛
설화에서는 '나으리'라 칭했는데...원래 '나리'가 맞는 표현이더군요.
'나으리'가 좋지만.....그렇지만....ㅠ
바른 말로 사용하겠습니다!
첫화부터 가볍게... 천~천~히 시작하겠습니다.
반가워해주시는 많은 분들께 감사드려요~^^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