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
하고 태형을 불렀다.
*
해사한 그 미소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름다웠지만 거기에는 원래의 정호석이 가지고 있던 맑은 싱그러움이 어딘가 결여되어 있는 것만 같다. 눈꼬리가 접혔고 그 위의 눈두덩이살이 둥그랬으며 입꼬리가 나른하게 올라간, 내가 미치도록 사랑했던 그 웃음이 왜 이렇게 아픈지조차 나는 알 수가 없다. 정호석의 발그란 입술 새로 새어나오는 음성은 지독히도 평범했다. 어제의 연인을 부르는 것 같은.
「그렇게 부르지 마.」
「자기야….」
「씨발, 하지 말라고!」
도저히 귓가에 꽂히는 그 음성을 견딜 수가 없었다. 끝이 울음기에 젖어 뭉그러진 그 목소리가 심장을 도려내고 육신을 좀먹는 것 같았다. 그렇게도 좋아하던 목소리였건만, 아니, 지금도 미치도록 사랑하는 목소리이건만 이토록 견딜 수가 없는 것은 왜일까. 눈조차 마주치기가 힘들었다. 귀를 틀어막고 소리를 지르자 정호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 얼굴을 마주하였고 그리고 나는 심장이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정호석은 울고 있었다. 선이 고운 얼굴이 온통 눈물범벅이었다. 속눈썹이 눈물에 젖어 비에 젖은 나비의 날개처럼 가라앉아 있다. 늘 웃는 모습만 보였던 정호석의 눈물은 내게는 낯설었으며 생경한 그 무엇이었다.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한 걸음, 뒷걸음질치자 입술이 움직였다.
「자기야 내가….」
「…….」
「내가 잘못했어….」
「…….」
「나 버리지 마…….」
내려앉은 심장을 후벼팠다.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저를 버리지 말라 애원하는 정호석이 가련했고 애처로웠으나 소름이 돋은 것은 왜일까. 굉장히 불쌍해야 할 광경이지만 김태형은 정호석이 사랑스러웠으며 또한 무서웠다. 뒷걸음친 태형의 가까이로 호석이 한 걸음 다가섰다. 숨결이 닿을 듯 가까웠다.
「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
「하지 말라는 거 전부 안 할게. 내가 다 고칠게. 그러니까 자기야…」
「…….」
「나 좀 사랑해 주면 안 돼…?」
*
학교에서의 정호석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웃지 않았으며 말수조차 부쩍 줄어 그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도대체 정호석에게 이틀 동안 무슨 변화가 생겼던 건지에 대해 분분한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최대한 호석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태형 또한 강의실을 바쁘게 오갔다. 점심시간이 되어 중국집이나 가자는 친구들의 의견에 태형은 난 짬뽕, 이라며 웃었다.
「자기야!」
태형의 친구들 모두가 뒤를 돌아보았으나 태형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친구들에게 호석과의 이별을 아직 얘기해놓지 않은 상태였다. 씨발, 왜 그걸 까먹고 있었지. 자연스레 저들끼리 자리를 피한 친구들에게 나중에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태형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하루종일 찾았잖아. 어디 있었…」
「정호석.」
「응?」
「우린 끝이야. 헤어졌다고. 너 이럴수록 더 질리는 거 몰라? 제발 그만 좀 해라.」
여기서 끊어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모질게 말을 내뱉었다. 정호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정호석이 웃었다.
「거짓말.」
「뭐?」
「아직 나 사랑하잖아, 자기야.」
틀린 말이 아니었다. 오히려 진실이라면 진실이었지. 나는 아직도 정호석을 사랑하고 있었다. 정호석이 추락하면 추락할수록 그 깊이는 더욱 깊어져만 갔다. 정호석은 예뻤고 그리고 사랑스러웠으며… 전에는 없던 퇴폐적인 아름다움이 묻어나왔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정호석은 섹시하다는 말로는 표현하기가 힘들 만큼 농도 짙은 아우라를 풍기고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사랑했지만 또한 그것이 무서웠다. 정호석의 모든 것을 사랑했지만 또한 모든 것이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정호석이 내 안으로 깊숙이 파고드는 것을 막아야만 했다. 하지만 막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불가항력이었다. 정호석은, 내게. 불가항력이었다.
「…정호석.」
「자기야,」
「호석아,」
「사랑해.」
대답할 수가 없었다.
*
정호석은 뻔질나게 내 집을 드나들었다. 나도 저도 지방에서 대학을 올라온 탓에 자취방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연애할 때보다 더 잦아진 횟수에 몇 번이고 오지 말라고 말을 해도 정호석은 그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리고 나 역시, 벨을 누르고 정호석의 얼굴이 비치면 자연스럽게 현관문을 열고 있었다.
내 집을 제 집같이 여겼다. 내 냉장고에, 그리고 찬장에 무엇이 있는지 나보다 제가 더 잘 알았고 하지 말라고 했으나 정호석은 늘 저녁을 차려놓았다. 재수없게도 정호석은 사귈 때 말했던 내 입맛을 그대로 꿰뚫고 있었고 나는 그 저녁상을 깨끗이 비웠다. 남이 보면 연애임에 틀림없는 생활이 계속되었지만 그것은 결코 연애라고는 할 수 없는 종류의 커뮤니케이션이었다. 나는 정호석이 집안에 있는 동안 정호석을 철저히 무시했지만 어쩌다 정호석이 집에 들르지 않는 날이면 그 공허함을 견딜 수가 없게 되어버리고 있었다.
정호석에게 사랑에 빠진 이유는 정호석의 싱그러운 온기 때문이었고
정호석에게 형언할 수 없는 애증을 느끼게 된 이유는 정호석의 뜨겁고 끈적한 열기 때문이었다.
「자기야-.」
나른한 오후엔 정호석은 거실 쇼파에 두 다리를 쭉 뻗고 누워 아무 말 없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나를 올려다보며 나를 불렀다. 늘 그랬듯 대답하지 않았다.
「나 여기서 살까?」
「무슨….」
생각하지도 못했던 말이 정호석의 입에서 툭하니 튀어나왔다. 마치 밥 먹었어, 와 같은 일상적인 말을 건네듯 잔잔한 그 목소리는 나를 흔든다.
「싫어하는 척 하긴.」
정호석이 배시시 웃었다. 내가 그렇게도 좋아하던 천진난만한 미소에, 어느 순간부터 어린아이의 순진함과 농염한 색기가 공존하게 된 까닭을 나는 아직까지도 알지 못한다.
안녕, 내 님들 :)
약속대로 오늘은 자기야.
황금연휴의 마지막이네요, 으앙 싫다.
또 일주일 있어야 볼 수 있을 텐데, 너무 아쉽네.
오래 못 왔으니까 글 하나는 더 올리고 가야 할 것 같아서 왔어요.
많이 사랑해.
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