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그와트; 일곱 개의 호크룩스
01
오전 아홉 시. 해가 뜨고 날이 개었다. 아직 빗물이 뚝뚝 흐르는 차는 비행기마냥 하늘을 날았던 것 치고는 멀쩡했다. 그러니까, 어디 나사 하나가 빠진 개조한 자동차처럼 보이진 않았단 것이다. 타는 내내 덜컹거리고 비틀거렸는데도 토하지 않은 게 신기했다.
“여긴 어디예요?”
“일단 들어가 보면 알아.”
거센 빗속을 뚫고 도착한 곳은 웬 골목이었다. 회장이 낡은 창고의 입구처럼 보이는 문을 열자 안에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었다. 펍 같은 곳이었는데, 차림새가 다들 괴상했다. 괴상하다기 보다는…… 올드한 느낌. 회장은 나를 데리고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품에서 다시 그 막대기를 꺼내 벽돌밖에 없는 벽을 툭툭 쳤다. 그러자 벽돌들이 큐브 돌려지듯 움직이더니 이내 커다란 입구가 생기는 게 아닌가.
“혹시 앞으로도 이것보다 놀랄 일이 많을까요?”
“엄청.”
안(이라고 불러야 할지 밖이라고 할지……)은 좁은 골목이었지만 갖가지 상점들이 즐비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사람들의 옷차림은 펍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했다.
“여긴 다이애건앨리야. 너도 아마 자주 오게 될 곳이지. 우선 책부터 사 볼까?”
그렇게 끌려간 곳은 서점이었다. 회장은 익숙하게 책을 숙숙 뽑아냈는데, 계산대에 두고 보니 하나같이 크고 두꺼운 책들이라 눈을 의심했다. 정말 이게 교과서라면, 그동안 과학책과 미술책을 보며 욕했던 과거가 차라리 나은 것 같다.
그 다음으로 간 곳은 ‘올리벤더 상점’이었다. 아까 회장이 휘두르던 것은 막대기가 아니라 지팡이였는데, 올리벤더 상점은 그런 지팡이들을 파는 전문점이었다. 가게 앞까지 도착하자 회장은 시계를 보더니 남은 준비물을 사오겠다며 나를 가게 안으로 들여보냈다.
“손님이 오셨군. 어서 오십시오. 지팡이 사러오셨나요?”
“어…… 네.”
“혹시, 성함이?”
“김희완입니다.”
“아, 그래요. 희완 양. 부엉이는 보고 오셨나요?”
“부엉이요?”
“저런, 시완 군이 빼먹었나 보군요. 그 부엉이는 온종일 희완 양이 오기를 기다렸을 거예요. 나중에 만나거든, 따뜻한 말을 마구마구 해주세요.”
회장과 아는 사인지 뭔진 모르겠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 할아버지는 빙긋 웃으셨다. 그 인상이 너무도 푸근해서 따라 웃었는데, 갑자기 무엇인가 생각났다는 듯이 펄쩍 튀어 오르셔서 나도 덩달아 놀라 뒷걸음질 쳤다.
“아, 조금만 기다려요. 방금 희완 양에게 어울리는 지팡이가 하나 생각났는데, 그게 너무너무 안쪽에 있군요.”
그러고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수많은 상자들 사이로 사라지셨다. 얼마나 안쪽으로 들어간 건지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았다. 그동안 나는 가게 안을 둘러봤다. 양초상자 같은 것들이 빽빽하게 쌓여있었다. 라벨들을 읽어보니 듣도 보도 못한 재료들이 대부분이었다. 용의 심근이니, 유니콘의 털이니 하는 것들. 이런 걸로 지팡이를 만든단 말이야? 불사조가 안 나온 게 섭할 정도로 터무니없는 것들이라 웃음이 피식 나왔다.
“오래 기다렸죠? 이거 한 번 받아보세요.”
상자무덤 안에서 나온 할아버지가 상자뚜껑을 열며 내게 내밀었다. 어두운 갈색에 곧은 지팡이였다.
“그럼, 휘둘러보세요.”
“네?”
“휘둘러보세요.”
“이렇게요?”
지팡이를 휘두르자 사방에 꽂혀있던 상자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이건 아닌가보군요.”
“헉, 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두세요, 괜찮습니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모두 겪는 일이지요.”
할아버지가 품에서 꺼낸 지팡이를 살짝 휘둘렀고, 모든 상자들이 제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그 뒤로도 나는 꽃병을 깨먹고, 할아버지 수염에 불을 붙이고, 책상다리를 부러뜨리는 등 온갖 지팡이를 잡아봤다. 할아버지께서 상자무덤을 오간 것도 다섯 번째. 이번엔 진짜일 거라는 말을 네 번 반복한 할아버지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죄송해서라도 이번엔 진짜였으면 좋겠다. 여섯 번째 지팡이를 잡자 갑자기 지팡이에서 빛이 나더니 주위가 환해지며 따뜻한 기운이 퍼져나갔다.
“이 지팡이가 선택하다니…… 희완 양은 아주 훌륭한 마법사가 될 거예요.”
“지팡이가 선택을 해요?”
“모든 지팡이는 자신의 주인이 될 마법사를 선택하지요. 이건 모든 지팡이학 박사들이 인정하는 부분이랍니다. 이 지팡이, 대단하죠. 아주아주 대단해요. 이 지팡이는 세상에 단 세 개밖에 나오지 않은 건데, 한 명은 아주 옛날에 마법부에서 활동하면서 엄청난 일을 해내신 분이었죠. 지금은 지팡이와 함께 고이 잠들었지만, 그 분의 명석함은 아직도 따라올 자가 없을 겁니다. 마지막 남은 하나를 희완 양이 가져가는군요.”
“다른 하나는, 누구에게 있나요?”
할아버지는 갑자기 표정을 굳히곤 상자라벨을 확인하셨다.
“딱총나무와 불사조의 꼬리깃…….”
“…….”
“희완 양!”
“네?”
“시간이 늦은 것 같군요. 바깥에서 시완 군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 네. 제가 지금 돈이 없어서. 불러 올게요.”
“아뇨, 희완 양의 지팡이 값은 이미 지불되었으니 서두르세요. 11시까지 얼마 남지 않았어요.”
결국 대답을 듣지 못 한 채 지팡이만 들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 나오자마자 어디서 온 건지 나를 끌고 가는 회장에 인파를 헤쳐 나가느라 고생했다. 다시 그 펍을 통해서 나온 바깥(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에는 자동차가 그대로 주차돼 있었다. 회장은 짐들을 트렁크에 싣고 운전석에 앉았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준비물들을 사면서 한 번도 돈을 내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조수석에 타면서 회장에게 물었다.
“근데 이 준비물들 값은 어떻게 내요?”
“어떻게 내냐니? 이미 다 냈는데?”
“누가요? 그쪽이요?”
“아! 부엉이를 먼저 봤어야 했는데. 민윤기가 알면 난리 나겠군.”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부엉이가 왜 필요해요?”
“호그와트 학생들은 개인 부엉이를 한 마리씩 갖고 있어. 개인 우편은 개인 부엉이가 배달하거든. 네 부엉이는 미리 골라뒀어.”
“누가요?”
“있어. 너를 잘 아는 사람.”
그러고는 급시동을 걸어버리는 통에 나는 대화를 이어갈 생각도 못하고 안전벨트를 꽉 쥐었다. 그도 그럴 것이, 회장은 꽤나 난폭한 운전자 타입이었기에……. 30분쯤 하늘을 달렸을까, 다시 지상에 주차한 회장은 트렁크에서 짐을 빼더니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부턴 너 혼자 가야 해.”
“네?”
“자, 이건 티켓이야. 11시 출발이니까 지금 가면 딱 맞을 거야. 티켓 안 잃어버리게 조심하고.”
내 짐을 내려준 학생회장은 다시 차에 타더니 시동을 걸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저 혼자 가라구요?”
“내 임무는 여기까지야. 더 도와주고 싶지만 누가 부탁한 일을 해야 해서……. 그럼, 학교에서 만나자!”
“네? 아니, 저기요!”
방금까지 하늘을 날았던 차는 다시 지상을 부드럽게 달렸다. 도로가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는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그 자리에 계속 서서 차 뒤꽁무니를 보고 있거나, 기차를 타러 가거나. 나는 한숨을 쉬고 짐을 챙겼다.
역에는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았다. 나는 수화물 리어카에 짐을 실으면서 티켓을 확인했다. 서울→호그와트 9와 3/4 승강장. 어, 음. 그러니까. 이게 무슨 글자야?
일단 승강장으로 내려가 9번을 찾았다. 그리고 아무리 그 주위를 맴돌아도 3/4이라는 숫자는 찾을 수 없었다. 어쩌면 9는 기차호수고 3/4는 좌석이 아닐까? 그래, 그렇겠다. 기차 탄 지가 오래돼서 까먹었나 보네.
“아!”
“아, 죄송합니다.”
티켓을 들고 한참을 씨름하다 9호차를 찾으려는데, 웬 남자애와 부딪쳤다. 나랑 똑같이 리어카를 끌고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부엉이가 있다는 점. 남자애는 유유히 나를 지나쳐 벽 앞에 서더니 그대로 돌진했다. 놀랄 틈도 없이 놀랄 일이 생겨버렸다. 그대로 돌진해서, 그대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열차 승무원도 마찬가지였다. 이쪽으론 아예 등지고 눈길도 주지 않고 있었다. 사람이 벽 속으로 사라졌는데 이렇게 평화로울 수가.
나는 승강장을 안내판을 확인했다. 남자애가 사라진 벽은 9번과 10번 승강장 사이에 있었다. 정말 안 믿기지만, 이 상황에서는 보이는 걸 믿을 수밖에. 나는 방금 그 애처럼 벽 앞에 섰다. 심호흡을 크게 한 번, 눈을 질끈 감고 돌진했는데, 부딪치기는커녕 공기의 흐름이 바뀐 게 느껴졌다. 눈을 뜨자 사람들은 캐리어 대신 전부 리어카를 끌고 있었고 몇몇은 부엉이가 든 케이지를 하나씩 갖고 있었다.
“학생 분, 호그와트 행 기차는 5분 후 출발입니다. 탑승객이신가요?”
“아, 네.”
“티켓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티켓을 확인한 승무원이 짐을 옮겨주는 동안 주위를 둘러봤다. 9와 3/4이라고 적힌 안내판이 선명하게 보였다.
“자리는 아무데나 앉으면 되나요?”
“그럼요. 마음이 가는 곳에 앉으시면 됩니다.”
기차에 탄 나는 가벼운 짐들만 챙겨 들어갔다. 안에는 이미 많은 학생들이 있었다. 꽤 많은 칸을 지나치고 비어있는 아무 칸에나 들어갔다. 칸 안에는 이미 한 명이 타 있었다.
“…….”
“…….”
아까 부딪친 애다. 아는 척하기에는 스친 게 다라서 어정쩡하게 자리에 앉았다. 남자애는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자리가 자리다 보니까 마주앉게 되었는데, 그 애는 창밖에서 절대 시선을 떼지 않았다.
곧이어 기차가 출발신호를 울렸다. 천천히 움직이는 바깥을 보자 긴장이 풀려 온몸에 힘이 빠졌다. 어젯밤부터 한숨도 못 잤다. 조금 자두라는 회장의 말에 노력은 해 봤으나, 그 망할 자동차가 조금 덜컹거려야 말이지. 운전자가 운전을 잘못한 탓인지 자동차가 고물인 건지, 하여튼 온종일 소음으로 고생했던 걸 생각하면 다시 속이 메스꺼워지는 것 같다.
몸이 조금 편해지니 다시 생각들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다들 내가 사라진 걸 알고 놀라진 않았을까. 어쩌면 사라진 게 아니라 일찍 기숙사로 떠났다 생각할지도 몰라. 그래도 원장님께는 말씀드리고 왔었어야 했는데, 회장이 자꾸만 재촉하는 바람에 그럴 생각도 못한 게 걱정이다. 한국고에 내 인적사항은 어떻게 되는 거지. 전학처리 되는 걸까? 아, 민희한테 사과해야 되는데. 걔는 진짜 부엉이를 봤던 거야. 나는 그것도 모르고……. 하긴, 누가 그걸 믿겠어. 나도 겨우 믿었는데. 솔직히 이 기차에 탄 건 조금 미친 짓 같기도 해. 아직까지도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강례원은, 들어왔을까?
그 난리를 피우고 나갔는데 돌아오기 싫을 거야. 애들이 벌써 얘기를 들었을 테니 더더욱. 그래도 이번에는 타인이 아니라 본인의 선택이었다니,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조금 나을지도 몰라.
그런데 내가 다시 지옥으로 만들어버렸을지도.
꿈을 꿨다. 영원의 집 2층 중간방 침대에는 위층이 비어있었다. 옷장과 서랍장도 텅 비었고, 책상 위도 지우개로 지운 듯 말끔했다. 그러나 방 안에는 말끔하지 못한 말들이 돌아다녔다. 그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은 아래층 침대 주인이리라.
눈을 뜨자 밖은 어두웠다. 곧 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밤이 낮을 삼키는 계절이다. 맞은편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다시 창밖을 보다가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그제야 어젯밤부터 씻지도 못했음을 깨닫고 화장실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다들 입고 있는 교복을 보고 깨달았다. 나, 교복을 안 샀구나. 회장한테 목록을 확인할 때도 교복은 빼놓고 얘기했던 게 생각났다. 한국고 교복을 받아서 교복이 이미 있다고 착각 했던 것이다. 나는 화장실에서 간단히 씻고 나오면서 한국고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이거라도 입어야지 싶어서였다. 다들 망토를 두르고 있었지만 나는 망토도 없었다. 그래도 겉옷이 망토처럼 검은색이라 크게 눈에 띄진 않았다. 괜히 뻘쭘하게 나오는데, 내가 있던 칸이 어딘지 모르겠다. 그 애가 앉아 있으면 거기 들어가면 되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은 건지 내가 못 찾는 건지……. 여기가 저기 같고 저기가 여기 같아 찾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렇게 차 안을 방황하다가 어떤 무리를 맞닥뜨렸는데.
“맞지? 걔.”
“맞는 것 같은데, 내가 걔 얼굴을 잘 몰라서…….”
“걔 맞아. 난 얼굴 알아. 내가 똑똑히 봤어.”
“퇴학당한 거 아니었어? 어떻게 기차를 탔지?”
“퇴학? 나는 자퇴했다고 들었는데.”
심상치 않은 얘기를 하고 있다. 저렇게 길막하고 있으면 내가 다시 뒤돌아가야 될 것 같잖아.
“114번이야.”
“어?”
우리 칸, 114번이라고. 맞은편에 앉아있던 애가 내 뒤에서 나타났다. 동시에 무리의 입이 싹 닫혔고, 나와 그 애를 번갈아보더니 길을 비켜줬다. 그 애를 따라가면서 다시 뒤를 돌아보자 무리는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더니 칸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재학생이든 신입생이든 이번에 입학하는 나를 의식할리는 없을 테고. 분명 저 애를 보고 입을 닫은 거다.
일단은 길을 찾아준 거에 대해 감사인사를 하려고 입을 떼자 기차가 멈췄다. 말을 걸 새도 없이 남자애는 칸을 나가버렸고, 뒤따라 나갔지만 그 애는 찾을 수 없었다. 여기 사람들은 혼자 남겨두고 가기를 좋아하나? 아까부터 좀 서럽네.
“신입생은 짐을 두고 가세요! 기숙사로 따로 가져다드립니다!”
기차에서 내리자 엄청난 인파 사이로 웬 스피커가 허공에서 목청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제 저런 걸 봐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긴 그러기엔 지난 하루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어디서 냄새가 나나 했더니. 머글?”
“네?”
“비켜줄래? 약간, 냄새나는 것 같아서.”
갑자기 뒤에서 툭 치기에 돌아보니 조금 사납게 생긴 여자애가 말을 걸었다. 무슨 말인진 모르겠지만 같이 있던 애들이 깔깔대는 것을 보니 그닥 좋은 말은 아닌 것 같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고민하던 찰나, 주황색 머리가 불쑥 나타나 내 앞을 막아섰다.
“그만해. 여럿이 모여서 한 명한테 뭐하는 짓이야?”
“아, 이게 누구야? 김예림이잖아? 얼마 전에 마법부에 일이 있었다던데. 너네 아버지 출근은 잘 하시니?”
또다시 깔깔거리는 무리들에게 한심하단 눈빛을 보낸 여자애는 내 손목을 잡고 성큼성큼 뒤돌아 갔다. 자연스럽게 입학생 무리에 섞이자 여자애가 말을 걸었다.
“안녕. 김예림이야.”
“아, 난 김희완.”
“아까 쟤들은 가문출신 애들이야. 극순혈주의자들이라, 엮이면 피곤해져.”
이미 이골이 난 듯 고개를 젓는 모습이 꼭 영원의 집에서 강례원한테 당하던 나 같아서 웃음이 났다.
“자, 여러분. 호그와트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아. 아직 호그와트에 도착한 건 아니고, 저 강을 건너야 하니 다섯 명씩 줄을 서 봅시다!”
무리가 얼추 이동하자 키와 덩치가 엄청나게 큰 사람이 소리쳤다. 김예림과 나는 줄을 같이 서게 됐다. 줄이 다 세워지자 다섯 명씩 차례로 꼬마배에 탔는데, 강을 건너면서 보이는 학교의 모습에 입이 떡 벌어졌다. 유럽 중세시대에나 있을 법한 건물이었다. 창문이며 지붕이며, 성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웅장함에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이게 한국의 일반학교였다면 분명 사립인데다 학비도 엄청 비쌌을 거다.
안은 더 놀라웠다. 천장의 높이를 구경하며 걷다가 연회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보이는 밤하늘에 모두가 환호성을 내뱉었다. 웬만한 시골에서도 볼 수 없는 별자리가 선명히 박혀 있었고, 간간히 떨어지는 별똥별이 아주 장관이었다. 연회장에는 멋진 밤하늘 아래로 탁자가 네 줄로 길게 놓여 있었으며, 그곳에는 재학생들이 앉아서 입장하는 우리를 돌아봤다.
“호그와트에 입학한 신입생 여러분들, 저는 교감 배두나입니다. 먼 길 오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곳은 호그와트의 연회장이며, 곧 있을 신입생 여러분들의 기숙사배정 후, 각자 배정받은 기숙사 자리에서 만찬을 즐길 예정입니다. 그럼 호명하는 학생들은 앞으로 나와 의자에 앉아주세요. 먼저, 김도연.”
뒤에서 밀치고 나오는 애는 아까 나에게 머글 어쩌고 하던 애였다. 의자에 앉자 교감이 구겨진 모자를 씌웠는데, 신기하게도 머리에 닿자마자 모자가 우렁차게 소리쳤다.
“슬리데린!”
스피커에 이어 이젠 모자도 말을 하는구나. 맨 왼쪽 기숙사 학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여자애를 맞았고, 곧이어 이름들이 줄줄이 불렸다.
“김예림.”
내 옆에 있던 김예림이 활짝 웃으며 앞으로 뛰어 나갔다.
“흠…… 조금 고민되는군. 그래도…… 그래, 그런 거라면 역시 이곳이 낫겠어. 그리핀도르!”
모자는 머리에 채 씌워지기도 전에 기숙사를 외치기도 했고(그런 경우는 대부분 ‘슬리데린’이라는 곳이었다), 궁시렁거리다 외치기도 했다. 기숙사가 정해지는 기준은 잘 몰랐으나, 극순혈주의자라던 그 무리가 전부 슬리데린인 것과 모자가 씌워지기도 전에 슬리데린을 외치는 것으로 보아 혈통에 민감한 학사임을 예측할 수 있었다.
“전정국.”
날 포함해서 대여섯 명 남았을까, 그 이름이 불리자 갑자기 장내가 조용해졌다.
114번 칸 그 애였다. 의자로 향하는 걸음걸음마다 모두의 시선이 쏠리는 게 나한테까지 느껴졌다. 물론, 저 자리에 앉게 되는 모든 사람들이 시선을 받았겠지만 이번엔 조금, 다른 의미의 시선이랄까.
“익숙하군, 익숙해. 오, 그래. 너로구나. 아니, 어떻게 다시 온 거냐? 뭐 그건 내 알 바 아니지. 흐음 어디 보자…… 시간이 지났어도 재능은 변함이 없구만 그래. 그렇다면, 래번클로!”
래번클로에선 함성 대신 박수소리만 들려왔다.
“다음은, 김희완.”
그 뒤로 갖가지 기숙사이름을 외친 모자 앞으로 드디어 서게 됐다. 멀리서 볼 땐 몰랐는데 모자는 그냥 구겨진 게 아니라 그 주름이 눈과 입을 이루고 있었다. 의자에 앉자 씌워진 모자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어렵군, 어려워. 이렇게 어려울 수가. 이건 거의…… 쉽지 않겠는데.”
머리 위에서 나는 목소리는 그다지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모자는 가끔 머리카락이 헝클어질 정도로 들썩였고, 그러면서 계속 궁시렁댔다. 궁시렁대기‘만’ 하고 한참동안 결정이 나지 않자 학생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대체 뭐가 어렵단 거야. 아무데나 그냥 넣으란 말이야.
“오, 아니지 아니지. 그래선 안 되지. 기숙사 배정에 있어서 ‘아무데나’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아, 하지만 넌 그러고 싶을 정도로 어렵군. 기준들이 치우쳐 있지 않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이거, 이거……어쩔 수 없군. 그래!”
모자의 “그래!” 한 마디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보류!”
조용한 장내가 더 조용해졌다. 환호나 박수를 보내는 기숙사도 없었다. 아까 전정국 이름이 불릴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보류라는 기숙사가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는데, 모자를 치워주신 교감선생님이 나를 안내했다. 교수진이 앉은 단상 맨 끝이었다.
“이렇게 해서 한 명을 제외한 모두의 기숙사 배정이 완료되었군요. 여러분은 앞으로 소속된 기숙사 안에서 자신의 행동에 따른 책임감과 서로를 돕고 배려하며 의지하는 협동심을 배우게 될 겁니다. 공부와 마법연습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이라는 걸 가슴 속 깊이 새겨 두길 바라며, 그럼 이만 만찬을 즐기도록 하죠.”
교장 선생님의 손짓 한 번에 식탁 위의 빈 그릇에 온갖 음식들이 가득 찼다. 모두가 바쁘게 손을 놀리는 와중에 내 앞으로 접시와 수저가 놓였다.
“만찬이 끝나면 희완 학생은 저를 따라오도록 하세요.”
보류라는 기숙사는 없었다. 나는 기숙사배정을 받지 못했다.
‘보류’된 것이었다.
인티 백업 문제로 다 지워진 거 다시 올리는 중,,
저는 김도연님 좋아합니다 김도연 짱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