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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의실은 여기에 있으니까 여기서 갈아입으시면 되고..."


매니저가 노태현을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면서 가게를 안내했다. 주류를 넣는 진열장부터 테이블 순서, 화장실까지. 나는 진열장을 살피면서도 종종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 한 번씩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핫샷/노태현] Same Old Love + | 인스티즈


그렇게 눈이 마주쳐도 둘 다 피하거나 말을 걸지는 않았다. 그저 가만히 눈을 맞추다가 서로 할 일에 다시 고개를 돌렸을 뿐이다. 매니저가 노태현에게 설명을 끝내갈 즈음부터 손님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미 한 잔 걸친 것처럼 왁자지껄한 손님들도 있었고 혼자 들어와서 직원들과 몇 마디를 나누는 얌전한 손님도 있었다. 난 어차피 서빙담당이라 마주할 일이 거의 없었지만 한 발자국 떨어져서 가게의 사람들을 구경하는걸 좋아했다. 오늘은 전반적으로 무난한 손님들만 있는 것 같아서 꽤 마음에 들었다.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네?"


"계속 웃고있길래 좋은 일이 있나해서요."



잠깐 틈이 생겨서 벽에 기대어 손님들을 보고있었는데 옆에서 인기척과 함께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은 익지 않아서 어색한 노태현의 것이었다. 그는 저의 입꼬리를 검지로 툭툭 두드리며 나에게 물었다. 기분이 좋은게 티가 났는지 물어오길래 조금 민망해 목덜미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아뇨, 그냥 사람들 보고있었는데...' 보고있으니까 기분이 좋아서요 라고 덧붙이면 조금 이상하려나. 말끝을 흐리며 뒤를 어떻게 이을지 고민중이었는데 그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 보고있으면 재밌죠. 같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마치 내 생각을 들여다보고 하는 말 같았다. 그에게 대답을 하려는데 매니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벌렸던 입을 꾹 닫고 입꼬리를 올려 웃고 목례를 한 뒤 매니저에게 갔다. 그도 나의 목례에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Same Old Love




"고생하셨습니다-"




매출 정산을 하고있는 매니저에게 인사를 건넸다. 매니저는 눈알만 살짝 굴려 나를 쳐다보고 '그래-' 라고 대답한 뒤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겉옷을 대충 여미고 가게를 나서려는데 짜증이 가득한 매니저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 멈춰서 그의 상태를 살피는데 옆에 있던 노태현과 눈이 마주쳤다. 그에게도 꾸벅 인사를 하고 다시 뒤를 돌려는데 매니저가 다시 입을 열었다.



"태현씨, 오늘 매상이 좀 안맞아서 그러는데 설명은 내일 해드릴게요. 오늘은 먼저 들어가시겠어요?"


"네, 그럴게요. 내일 뵙겠습니다."



노태현은 매니저에게 작게 인사를 하고 탈의실로 향했다. 옆집인데 같이 갈까. 앞에서 담배라도 피울 생각으로 문을 열었다. 밤이 되어 기온도 떨어지고 계절도 계절이니 시원하다기보다는 춥게 느껴졌다. 일단 담배 한 개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담배 끝자락에 빨간 불이 조금씩 보이고 나서야 가디건의 단추를 잠그기 시작했다. 연기를 한 모금 뱉을 때 가게 문이 열리고 출근할 때 보았던 옷으로 갈아입은 그가 나왔다. 그는 의아하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입에 물고있던 담배를 손에 쥐고 말했다. 너무 놀란 티가 나서 약간 민망했다.



"어, 저희 옆집이잖아요. 같이 가려고..."


"안 추웠어요? 가게 안에서 기다리지 그랬어요."


"아뇨, 매니저님 지금 열 받아서 안에 있으면 조금."



노태현은 내가 먼저 말을 걸자 부드럽게 웃으며 바라보았다. 그리고 미처 확인하지 못한 가디건의 깃을 모아주며 말했다. 갑자기 좁혀진 거리에 조금 당황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다가오니 훅 풍겨오는 향수 냄새가 퍽 좋았다. 밖에서 기다린 이유를 말하고 담배를 한 번 더 입으로 가져가려는데 노태현의 시선이 손을 따라 그대로 이동한다. 아, 담배 싫어하는 것 같은데 꺼야겠다. 내가 근처에 있는 하수구를 찾자 괜찮다는 듯이 말했다.



"나도 담배 펴서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요."


"그래요? 그럼 사양 안할게요."



노태현은 내 대답에 웃음을 보였다. 음, 간질간질거리네. 나도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와 따라 웃는데 메시지 알림음이 들렸다. 노태현에게 '잠시만요.' 하고 양해를 구한 뒤 내용을 확인했다.


[오늘은 조금 일찍 출근했어. 너 저녁에 집에 없는 건 아는데 밥이나 반찬 같은거 신경 좀 써줘.]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인상이 써졌다. 출근 보고 잘하는 건 좋은데 이게 새벽에 일 끝나서 집 들어가는 사람한테 할 말인가? 당장이라도 전화해서 따지고싶었지만 시간도 그렇고 옆에 다른사람도 있으니 참기로 했다. 이번에도 답장 없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는데 노태현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조금 염려된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표정이 안좋은데."


"아. 남자친구인데 요즘 사이가 안좋아서요."



이정도는 말해도 괜찮겠지. 노태현은 내 얘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끄덕거리고 입을 열지 않았다. 다른 이유가 있는게 아니라 정말로 내 대답이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하는 행동같았다. 오히려 내가 먼저 '사실은 옆집에서 남자친구도 같이 동거중인데...' 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노태현은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그럴 수 있다는 얼굴로 들어주었다. 맞장구도 잘 쳐주고 내가 조금 짜증이라도 내면 내 편을 들어주며 '그건 남자친구가 심했어요. 나라도 기분 나빴겠어요.' 라고 말해주었다.


간만에 남자친구 뒷담화에 신이 난 나는 거의 울분을 토했다. 남자친구와의 연애기간은 길었지만 싸우는 시간이 반이었기 때문에 친구들도 이야기를 듣는 것을 꺼리는 눈치였따. 그래서 나도 일부러 얘기하지 않았다. 익명으로 얘기해도 와닿지가 않으니 답답하기만 했다. 그런데 이렇게 반응도 잘해주고 편도 들어주는 사람이 앞에 있으니 그만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한참을 떠들다가도 내가 조금 눈치를 보나하면 '괜찮으니까 계속 얘기해요.' 라며 웃어보인다. 진짜 좋은사람이야, 노태현씨.


가게에서부터 걸어와 아파트에 도착한지는 이미 오래였다. 우리는 놀이터에 있는 정자에 앉아서 대화를 이어갔다. 대화라기보다는 나의 일방적인 퍼붓기였지만. 이야기를 마친 나는 숨을 한 번 몰아쉬고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기분이 좋아져 노태현에게 웃으며 말했다.



"아, 간만에 기분 좀 풀었어요. 주변에 얘기도 못해서 엄청 답답했거든요."


"그럼 다행이에요. 나중에도 할 얘기 생기면 말해줘요. 들어줄게요."


"노태현씨 진짜 좋은 사람이에요... 반할 뻔."



노태현은 반할 뻔했다는 내 말에 소리 내어 웃었다. 그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데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나 그렇게 좋은 사람 아니에요."



어. 노태현의 얼굴이 한 뼘이나 될까한 거리로 가까워졌다. 몸을 내 쪽으로 당기고 고개를 숙여 나와 눈을 맞추었다. 순간 나는 고민했다. 이사람이 지금 무슨 의미로 이러는지는 알겠지만 이걸 받아들일지 말지. 남자친구가 없었다면 당연히 땡큐였겠지만 아직은 조금. 결국 노태현의 어깨에 손을 살짝 올려서 뒤로 밀어내고 말했다.



"끼 부리지 마세요."

[핫샷/노태현] Same Old Love + | 인스티즈

"티 났나 봐요."



내가 '엄청요.' 라는 말하며 고개를 끄덕거리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리고는 일어나서 바지를 몇 번 털더니 가자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한 표정에 다행인가 싶으면서도 약간은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아직은 안돼. 나 역시 최대한 자연스러운 얼굴로 일어나 그의 옆에서 서서 걸었다. 해가 뜨고 시간이 꽤 지나 점점 따뜻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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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불규칙적으로 글을 쓰는 편이라 정기적으로 연재는 불가능하지만 종종 + 붙여서 이어가려고 합니다.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비회원124.159
헉 여기서도 귀여워ㅠㅠㅠㅠㅠ태현이 글 써주셔서 감사해요'♡'
6년 전
독자1
끼 그거 ㄴㅏ한테 부려줘여..
6년 전
비회원8.202
작가님 저 내일 정지 풀리는 날인데 제발 글 마니 써주셔서 제가 작까님과 더 볼수있었음 합니다ㅠㅠ하읏 노태현 심장폭행ㅠ
6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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