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역시나 일방적인 이별통보다.
재미없다, 여자로서 매력이 없는 거 같다, 지겹다라는 말로 내 곁을 떠나간 남자들...
뭐 이젠 익숙해질 때도 된 듯 싶다.
기분도 풀겸 염색과 웨이브까지 하고, 오랫동안 못만난 친구들과 약속을 잡았다.
친구들의 넓은 오지랖 탓에, 남자친구와 헤어진 사실은 숨긴 채로 불타는 밤을 보내기 위해 칵테일바로 향했다.
칵테일 바는 처음이라 어색해하는 나를 위해 친구가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었고,
나쁜 기분 탓에 일부러 독한 것만 골라 주문을 해 홀짝홀짝 마시며 친구들과 수다를 나누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이야깃거리가 떨어졌는지 친구들은 다트놀이를 하러 게임존으로 갔고
기분이 기분인지라 나는 친구들의 짐을 지키며 남은 칵테일을 마시고 있었다.
꽤 한산한 바의 분위기에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여자들이 바텐더들에게 알짱대며 멋있다, 잘생겼다를 연발하고 있었다.
남자들은 다 똑같지...
서서히 취기가 도는 듯 혼잣말을 내뱉고 굳은 표정으로 있던 그 때,
"왜 혼자 있어요. 나가서 좀 놀고 즐기지."
남자 목소리라고 하기에는 가느다란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그냥... 이렇게 있는 게 좋아서요..."
"독한 거 마시네... 차였어요?"
나름 그 사람은 장난으로 뱉은 말 같은데 정곡이 찔려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노려보았다.
180은 넘어보이는 큰 키, 떡벌어진 어깨, 고양이 같이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그 남자는 뭐가 그리 궁금한지...
"기분 풀려면 이거 한번 마셔봐요. 이건 돈 안받을게"
하며 한잔의 칵테일을 건네는데 왠지 모를 짜증과 함께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더 이상 마시면 취할 거 같아 그 남자가 준 칵테일을 둔 채 놀고있는 친구들에게 다른 약속이 있다고 대충 둘러대고 바를 나왔다.
혼자 거리로 나와 집으로 가는 길.
입 안은 아까 마신 술로 씁쓸해오고 정신은 몽롱해져왔다.
그리고 순간 불현듯 아까 그 바텐더의 행동이 마음에 걸렸다.
다른 사람이 봐도 내가 불쌍해보일 정도로 나의 모습이 그렇게 처량해보였다고 생각하니
억울함과 분노가 밀려왔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길래. 난 사랑한 죄밖에 없는데...
"아!"
설상가상. 넘어지는 바람에 발목도 삐고 구두굽까지 부러져버렸다.
"씨발 존나 되는 일이 없어..."
술에 취한 탓인지 청승맞게 주저앉아 울어버렸다.
그 때 뒤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괜찮아?"
아까 그 남자였다. 아직 한창 일할 시간인데 어쩐 일로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고개를 숙였다.
"괜찮아요..."
작게 대답하고 걸어가려던 찰나, 눈 앞이 핑돌고 아까 삔 발목이 아파왔다.
"걷지도 못하면서 무슨 괜찮대... 핸드폰 줘봐봐."
"핸드폰 배터리...없어요..."
그 말과 함께 다리에 힘이 풀리고 눈이 캄캄해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