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한빈] True Blood
이렇게 태어난 걸 증오해? 지원이 웃으며 물었다. 그 순간에도 잔에는 혈흔이 찰랑거렸고, 지원의 입꼬리를 타고 붉고 걸쭉한 액체가 끈끈하게 흘렀다. 한빈은 의자 위에서 몸을 잔뜩 구부려 말았다. 지원이 다가오고 있었다. 저벅저벅, 발끝에서도 비릿한 내음새가 풍겼다. 그래, 증오해. 한빈은 작게 중얼거렸다. 지원의 웃음소리가 그림자만큼 가까워졌다. 왜, 숙명인데.
잔뜩 웅크린 팔뚝에 박아버린 고개가 번뜩, 들어올려졌다. 시선을 어디에 둘 지 생각할 틈도 없이, 입 안에 비릿한 향이 퍼졌다. 지원의 속눈썹 밑으로 슬그머니 빛나는 형형한 붉은 눈동자가 보였다. 힘들다. 한빈은 그렇게 생각하며, 제 뒷목을 우악스럽게 잡아오는 지원의 손아귀 때문에 의자 손잡이를 단단히 잡았다. 혀끝에 지원의 입술이 닿았다. 갓 삼킨 신선한 피의 흔적이 아직도 묻어있었다. 아, 한빈이 앓는 소리를 내며 뒤로 고개를 뺐지만, 지원은 한빈의 턱을 앞당겼다.
어쩌겠어, 운명인데. 지원은 중얼거리며, 이번엔 한빈의 눈에서 미지근히 흘러내리는 액체를 핥았다. 한빈의 눈에서 나는 투명한 액체는 맛이 없었다. 저건 그냥 짭짤한 맹물이었다. 지원은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빈만이 투명한 눈물로써 슬픔을 흘렸다. 한빈은 순수 혈통이 맞았다. 그러니 그가 눈물을 보이는 것은 이상한 것이었다. 한빈은 단 한 번도 피로 울어본 적이 없었다. 한빈은 스스로를 돌연변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현실에서 도망치려는 거겠지.
지원은 한빈이 미웠다. 저토록 흡혈의 숙명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이유를, 지원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배신감이 컸다. 한빈을 붙들어두고 싶었다. 뜨거울 때는 뜨겁게, 찰 때는 차게 식어버리는 보잘것 없는 인간 사내에게 마음을 주는 한빈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저렇게 멀리 돌아가며 사랑할까. 피처럼 끓는 사랑은 가까운 곳에 있는데.
"한빈아. 네가 사랑하는 그 새끼 말이야."
"……."
"죽여버릴까."
지원이 떠보듯 내뱉자, 창백한 안색이 더 하얗게 질렸다. 싫지? 지원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야윈 한빈의 몸 위로 피아노를 치듯 가볍게, 지원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잘 먹지 않으니 이렇게 말랐지. 지원은 중얼거리며, 한빈의 팔을 쓰다듬었다. 그게 다 그 새끼 때문이야. 한빈이 사랑하는 인간 사내는 한빈에게서 쪽쪽 사랑을 빨아먹고 있었다. 주객전도로, 한빈은 생기를 잃어갔다. 누가 누구를 흡혈하고 누구의 입장이 된 것인지. 바보같은 사랑을 하고 있어.
지원은 한빈의 바지춤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으응, 하고 작게 고개를 비트는 사이에, 그 목덜미에 이를 박아넣었다. 고통과 묘한 쾌감이 뒤섞인 얼굴로 머리를 젖힌다. 지원은 미간을 찌푸렸다. 빨아먹는 것보다 빨리는 것에 더 익숙해진 한빈의 모습이 싫었다. 싫지만 색스럽고, 아름답다. 지원은 한빈의 민감한 반응이 저 때문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 순간에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 새끼.
"어떻게 죽일까, 한빈아."
"으응…안 돼…."
"흡혈로는 안 되지. 피를 모조리 말려야지, 그 씨까지."
어떻게 하면 네가 정신을 차릴까. 본성을 가지고 생각해 봐. 네 본성이 이성적인 사랑을 하는 것이었어? 지원은 한빈의 것을 잡고 끈적하게 손을 놀렸다. 으응, 하고 비틀거리는 신음만 들린다. 지원은 제 입가에 아직 남은 핏덩이를 한빈의 입술 새로 밀어넣었다. 그것을 말없이 삼키는 눈이 붉게 일렁인다. 그래, 그게 너다워. 지원은 낄낄 웃었다.
대체 누굴 사랑해? 그냥 죽여버려. 맛있는 새끼잖아. 먹고 죽여버리라니까. 지원이 유혹하듯 속삭였다. 피를 맛 본 한빈의 눈이 장밋빛으로 번뜩였다. 그래, 이렇게. 한빈의 표정은 욕망과 허탈감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너도 본능이란 게 있구나. 결국 이렇게 솔직하게 반응할 거면서. 놀리는 듯한 지원의 말에 한빈은 눈을 감아버렸다.
그 무기력함에 쾌감을 느끼며, 지원은 새하얀 몸뚱아리를 차가운 제 품에 안았다. 그 새끼를 죽일 거야. 이건 너를 위하고, 나를 위한 거야. 그 거짓말로 가득한 사탕 발림에서 너를 구하고, 진실된 피로 서약하고 맹세하는 내 사랑을 네게 바치기 위함이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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