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지원한빈] Escape
첨벙─ 하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소름이 우수수 돋을 만큼 차가운 물이 온 몸을 찔렀다. 구타로 욱신거리는 몸은 딱 죽기 직전까지 간 듯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데, 발목에 묶인 무언가가 소년을 자꾸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히고 있었다. 무서워…… 무서워!! 도움을 요청하는 비명 대신 공기 방울 몇 개만 보글거리며 수면으로 황급히 도망쳤다. 공포가 입을 타고 폐로 흘러드는 물길처럼 온 몸을 잠식했다. 껄떡껄떡 숨이 막힌다. 눈가가 뜨겁고 머리가 핑핑 돌았다. 산소를 받지 못한 뇌가 살기 위해 마지막 발악을 지르고 있었다. 수면을 향해 처절하게 뻗어나간 손에서 점점 힘이 빠져나갔다.
살려줘.
누가 나 좀 살려줘…….
바로 그 때, 누군가가 발목을 콱 틀어잡았다. 소년은 너무 놀랐지만 그것을 느낄 기운조차 없었다. 그저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긴 채 점점 희미하게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소년은 자신을 옥죄던 발목이 자유를 되찾은 것도 알지 못했다. 커다랗고 단단한 손은 발목부터 그를 끌어당겨 마침내 제 품에 소년을 꽉 끌어안았다. 차가운 입술이 집어삼킬 듯 제 입술을 베어 물더니 입술 사이로 제 숨을 불어넣었다. 소년은 물 사이로 급하게 숨을 들이마시며 누군지도 모르는 상대에게 매달렸다. 차가운 물살이 자신과 상대방을 가르며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흐릿한 시야에 점점 희미한 빛이 찾아드는 것을 느끼면서, 소년은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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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살을 가르고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힘차게 숨을 들이쉰 남자는 소년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의식을 잃은 소년의 팔다리가 물결을 따라 힘없이 흔들렸다. 단단한 팔에 소년을 끌어안은 채 그는 물살을 갈라 빠르게 헤엄쳐갔다. 호수 근처로 오자 그를 기다리고 있던 붉은 머리의 남자가 다가왔다. 헤엄치던 남자는 물 위로 풀쩍 올라왔고, 붉은 머리의 남자는 소년을 잡고 끌어냈다. 입술이 파랗게 질린 소년은 눈을 꼭 감은 채 힘없이 바닥에 늘어졌다. 말 한 마디 교환하지 않았지만 둘은 각자가 할 일을 잘 알고 있는 듯 신속하게 움직였다. 헤엄치던 남자가 소년을 안아들고 빠르게 걸음을 옮기자 붉은 머리의 남자는 그 뒤를 따라가며 바닥에 남은 흔적을 꼼꼼하게 밟아 없앴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숲속에 조용히 대기하고 있던 차 안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외관은 흔히 볼 수 있는 봉고차였지만 안에는 침대와 응급물품 등 제법 많은 물건들이 갖추어져 있었다. 마지막 발자국까지 남김없이 지워낸 붉은 머리의 남자가 차 안에 따라 들어와 문을 닫았다. 그가 침대에 바로 눕혀진 소년의 코에 손을 대어보더니 깜짝 놀라며 말했다.
“……숨을 안 쉬어.”
옆에 앉은 채 숨을 고르던 남자는 그를 밀어내고 소년의 가슴께에 귀를 대어보았다. 희미하게 심장이 팔딱거렸다. 남자는 지체 없이 소년을 바로 눕히고 턱을 젖혔다. 차가운 입술에 지그시 제 입을 맞댄 채 남자는 소년에게 숨을 깊숙이 불어넣었다. 몇 분간의 인공호흡 끝에 소년은 기침을 하며 물을 토해내고는 급하게 숨을 들이켰다. 곧이어 흐릿하게 눈을 떴지만, 제대로 남자들을 알아보지도 못한 듯 소년은 의식을 잃고 다시 눈을 감았다. 남자가 소년의 차단한 이마를 짚어보고는 반쯤은 안도를, 반쯤은 욕지거리를 담은 한숨을 쉬었다.
“……하, 지독한 새끼들…….”
붉은 머리의 남자는 걱정스런 눈으로 소년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젖살이 덜 빠졌는데도 형편없이 야윈 얼굴과 가느다란 팔다리, 그리고 그 위에 아로새겨진 수많은 상흔들은 소년이 이제껏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뺨에 살이 오르면 분명히 반듯하고 귀여운 인상이었을 것이다. 소년이 추위로 몸을 웅크리자 남자는 소년의 젖은 옷가지를 벗겨내고 옆에 말려있던 이불을 끌어다 소년을 덮어주었다. 턱까지 이불 속에 푹 파묻힌 소년은 이내 조금씩 온기를 되찾는 듯, 작게 흔들리던 숨소리가 점차 편안해졌다.
“……지원이 형, 진짜로 떠나는 거야?”
“…….”
남자는 고개를 돌렸다. 문득 아이 같이 부드러웠지만 무표정한 얼굴은 차가웠다. 남자답게 꺾인 하악각이 못내 불편한 심경을 담고 꿈틀거렸다. 붉은 머리의 남자는 잠자코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잠깐의 침묵 끝에 지원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이미 결정한 건데 왜 지금 와서 물어, 김동혁.”
“……보스가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알아.”
“지원이 형.”
동혁은 다시금 지원을 불렀다. 안타깝고 걱정스러운 시선이었지만 지원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허공에서 시선이 맞부딪혔다.
“무슨 대답을 듣길 바래?”
“……대답을 바란 건 아냐. 그냥… 걱정돼서 그래.”
“그 말 하는 녀석이 지금 날 돕고 있냐?”
지원이 마침내 피식 웃었다.
“그렇게 걱정되면 네가 잘 좀 막아주던가.”
“내가 무슨 수로?”
“보스는 널 믿잖아, 난 안 믿어도.”
“그 문제가 아니잖아…….”
“그리고.”
지원은 다소 누그러진 눈빛으로 소년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이제 와서 놓칠 수는 없어. ……알잖아.”
동혁은 결국 가만히 한숨을 쉬었다. 그가 소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름이 뭐랬지?”
“김한빈.”
“이름, 이쁘네.”
“…그치.”
지원은 가만히 소년의 젖은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소년은 어지간히 지쳤는지 지원이 머리칼을 하나하나 정리해주는 것도 모르고 정신없이 색색거리며 자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없어.”
“나도 알아.”
“형.”
“왜.”
“우리, 언젠가 다시 볼 수 있겠지……?”
동혁의 불안한 물음에 지원은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동혁이 한숨을 쉬며 웃었다. 형은 강하니까, 다시 볼 수 있을 거야. 지원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자, 어서 가, 그 말을 하며 동혁은 차에서 내렸다.
“지원이 형.”
“응.”
“이왕 도망치는 거.”
“…….”
“행복하게 살아.”
“…….”
“형이 찾은 동생까지, 꼭…….”
“…….”
“행복하게 만들어줘.”
“…….”
“알았지?”
“…….”
“…….”
“그래.”
“…….”
“약속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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