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하고싶다면, 주위를 한 번쯤은 둘러볼 필요가 있다.
written by F.L.
"야, 우지호! 치킨 안 먹냐."
지호가 제 집 거실바닥에 상을 펴고 앉은 지훈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소중한 우리들의 불토를 집에서 롤따위로 때울 수는 없다는 식의 말을 짓껄이던 지훈은 곧 치킨 한 마리와 함께 지호의 집을 방문했다. 매번 들고다니는 가방엔 책 한 권씩이 들어 있었지만, 한 번도 읽는 것을 본 적은 없었다. 읽지도 않을 책을 무엇하러 무겁게 들고다니느냐고 잔소리하려던 찰나, 얼씨구, 이젠 맥주캔까지 꺼낸다.
"얼씨구?"
"역시 치킨엔 맥주지."
"발랑 까진게."
"싫음 말고."
에헤이, 지호가 제 앞에 놓여진 맥주캔을 치우려던 지훈의 손길을 저지하며 자리에 앉았다. 베란다 문을 열어놨는데도 더운 바람이 훅 끼치는게, 오늘 같은 날은 한 잔쯤 마셔봐도 괜찮을 것 같고.
"올 우지호, 웬일로 술을 다 마시냐 니가."
"모르겠다. 봄 타나 보다."
"미친, 존나 여고생 납셨네."
제 친구가 같잖은 욕으로 입을 더럽히는 게 싫어 매번 지훈을 저지하던 지호도, 오늘만큼은 참기로 했다. 그래, 봄 타나 보다.
한참을 시시껄렁한 예능프로나 보며 치킨에 맥주를 즐기다 보니 벌써 시각은 새벽 한 시였다. 딱 적당히 알딸딸한 게 기분도 좋고 해서 평소보다 감정이 격해진 것 같긴 했다. 술을 이런 맛에 먹나, 하는 생각을 하다 속절없이 웃어제끼기도 하고.
"야 근데."
어? 한참 허리를 젖힌 채 웃던 지훈이 고개를 돌려 지호를 바라봤다. 저 새끼 저거, 가끔 좀 날라리같긴 해도 잘생기긴 했단 말야.
"난 왜 모쏠일까?"
"못생겨서."
고민도 않고 쓰잘데기 없는 말이나 던지며 낄낄대는 표지훈의 머리를 한 대 쳐줬다. 꽤 아픈지 머리를 부여잡고 신음하는 모습이 꼴사나워 대충 눈으로 흘겨줬다.
"아니 생각해봐, 내가 어? 키도 커, 몸매도 슬림하고 얼굴도 꽤 생겼어. 여기서 뭐가 더 필요하냐?"
"낸들 아냐?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게."
이번에도 표지훈 머리를 한 대 쳤다. 똑같은 데 쳤으니까 꽤 아플 거다.
한참을 고통에 신음하던 표지훈은 곧 잠잠해지고, 다시 티비 속 방송인들의 쇼를 관람하기 시작했다.
"근데, 야. 넌 왜 여친이 없냐? 반질반질하게 생긴 게."
"몰라."
"아니, 너 저번에도 화이트데이땐가? 선물도 되게 많이 받았잖아. 편지도 많던데 다 읽긴 했냐?"
"모른다니까."
"재미없게."
"야 근데,"
"아, 왜!"
자꾸 재잘대는 지호가 티비시청에 방해가 됐는지, 지훈이 이번엔 짜증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찡그린 얼굴도 잘생겼다.
"넌 왜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냐?"
"존나 여고생 마인드더니 공주병도 걸렸냐?"
"아니 생각해봐, 내가 착하게 생긴 것도 아니고. 싸가지없게 생겼단 소리 많이 듣는데 새학기 시작하자마자 말 걸어준 것도 너였고. 토나오라고 하는 애교 맨날 끝까지 들어주는 것도 너고. 아침마다 늦게 나오는 거 기다려 주는것도 너고. 맨날 욕하면서 밥 챙겨주고 체육복도 빌려주고. 너는 왜,"
"좋아하니까!"
듣기 싫은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소리친 지훈이 다시 고개를 틀어 티비를 시청했다. 귀가 빨갛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