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건 선배랑 있던데? 넌 잘 지내는 것 같았다. 날 이렇게 만들어놨으면서, 넌 아무렇지 않게 살고있는 것 같았다. 그것도 내게 제일 싫어했던 사람과. 이성보다 감정이 앞섰다. 이제 찾아오지 말라며 울던 네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더욱 미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난 네가 없으면 안되는 사람인 걸. 박우진이 말해준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유심히 보며 찾지 않아도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강의건 선배는 팔짱을 끼고 앉아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언제 봐도 좆같은 새끼. 망설임 없이 레스토랑 내부로 들어가 강의건 선배의 앞에 섰다. 여주는 어디에 갔는지 선배 혼자 나를 올려다 보았다. 놀라지도 않아, 이 재수없는 새끼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고 저절로 주먹이 쥐어졌다. “박지훈?” “여기서 뭐하세요?” “응? 그건 내가 묻고 싶은데.” “김여주 어디갔어요?” “아, 내가 여주랑 같이 저녁 먹어서 이러는 건가?” “말 돌리지 말고 대답하세요, 김여주 어디갔냐고요.” “전화 받으러 갔네요, 후배님.” 여유로운 얼굴로 한 쪽 입꼬리를 올리는 선배의 모습에 더 화가 치밀었다. 내가 이래서 싫어해, 이 사람을. 여주, 네가 왜 이 사람을 ‘좋은 선배’ 라고 칭하는지 도저히 모르겠을 정도로. “이런 친군 줄은 몰랐는데, 좀 무례한 것 같네.” 여주야, 너 단 거 좋아해?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널 좋아해. 어쩌면 너에게 나보다 더 믿음직한 사람이.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화가 나서 돌아버릴 것 같았기에 주먹을 테이블 위로 내리꽂을 작정이었다. 그리고 손바닥이 새하얘질 정도로 꽉 쥔 주먹에 힘이 들어갔을 때였다. “야, 너 뭐하는 거야?” 나에 대한 경멸이 담겨있는 너의 눈을 마주하고선 사고회로가 정지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 “뭐하는 거냐고, 지금.” 여주야, 나는 너에게 미움받을 자신이 없어. “여주야...” 너 없이 사는 거, 일주일도, 한 달도 아니고 겨우 이틀 했는데, 나 죽을 것 같아. 숨 막혀. “가, 내가 찾아오지 말랬잖아.” 근데 넌 아닌 것 같아. 그래서 난 지금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거든. “김여주, 너 왜 이래..” “......” “주야...” 그러니까, 여주야. 그동안 그랬던 것처럼 한 번만 더 나한테 손 내밀어 줄래? >>> 통화를 마치고 레스토랑 내부로 들어오니 선배 앞으로 아딘가 익숙한 뒷모습이 서있었다. “..아.” 나랑 같이 골랐던 청자켓, 저거 박지훈이잖아. 박지훈이 여길 왜. 난 아직도 널 보면 금방이라도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릴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넌 끝까지 이렇게 내 앞에 불쑥 나타나 나를 무너뜨린다. 끝까지 내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 하는 박지훈의 행동에 숨이 턱하고 막혀왔다. “아, 내가 여주랑 같이 저녁 먹어서 이러는 건가?” “말 돌리지 말고 대답하세요, 김여주 어디갔냐고요.” “전화 받으러 갔네요, 후배님.” 너의 날카롭고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박지훈을 발견한 그 순간부터 머릿 속에 떠오르는 것은 왜? 라는 의문 하나였다. “이런 친군 줄은 몰랐는데, 좀 무례한 것 같네.” 뒤 돌아있는 박지훈의 표정은 보지 않아도 뻔했다. 네가 싫어하는 사람이잖아, 강의건 선배. 이유는 절대 말해주지 않고선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이라며 나에게도 피하라고 했던. 그러고보니 넌 참 이기적이었다. 원래도 알던 사실이었는데 왜 자꾸 이렇게 확인시켜주는 건지, 나는 박지훈에게 다가가 하얗게 질린 그의 손을 낚아챘다. 박지훈을 마주하니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던 감정들이 점점 가라앉았다. 이것 또한 참 신기한 일이었다. “야, 너 뭐하는 거야?” 5년을 거의 매일 보다시피한 박지훈이었는데, 이틀 만에 본 그의 얼굴은 꽤나 지쳐있었고 또 힘들어보였다. “......” “뭐하는 거냐고, 지금.” 너는 친구라는 명분 하에 내 마음을 외면했다. 그리고 나는 꽤 아무렇지 않았다. 이미 그렇게 될 것을 예상했고, 짝사랑을 그만두기 위해 행했던 고백이었으니까. 그렇게 틀어진 우리 사이에 내 일상에는 아주 큰 변화가 있었다. 박지훈은 내 일상에 아주 깊숙히 스며들어있어서, 박지훈이 없는 내 세상은 단절과도 같았다. 박지훈이 없는 내가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버리는 게 싫어서 그만 둔 짝사랑은 날 더 의미없는 것들로 채워만 갔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곧 나아질 거라고. 언제까지 박지훈에게 기대어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이 어떻대도, 박지훈만 보며 살았던 때보단 나을 거라고. “여주야...” “가, 내가 찾아오지 말랬잖아.” 그래. 하늘이 갈라지고 땅이 무너질 거라고 생각했던 것에 비하면 꽤나 괜찮은 날들이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예상하고 있었던 결말이라 나는 생각보다 의연하게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다. 그런데, “김여주, 너 왜 이래..” 아니, 잠깐만, “주야...” 왜 네가 실연당한 것처럼 굴어? 대체 왜? ..나도 이렇게 꾹 참고 있는데 말이야. 박지훈 너머로는 이 상황이 흥미롭다는 듯 기분 나쁜 웃음을 짓고 있는 강의건 선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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