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민] 모지리 김태형이랑 담담한 지민이랑. 하나
또 15층에서 멈춘다. 지민을 보자마자 움찔거리며 엘리베이터에 타 일층에 도착할 때까지 빤히 쳐다보다 문이 열리자마자 도도도 뛰어가는 같은 학교에 같은 학년인 저 녀석은 며칠 전에 전학을 왔고 이 학년 반 중에서 특수반 아이였다. 우리 학교에서 꽤 유명했다. 전학 때문이 아니라 잘생긴 만큼 머리가 아프다며 말이다. 소문을 들으면 몸은 열여덟이지만 정신은 열 살 이나 어리다고 했다. 기껏해야 초등학교 일 학년 정도.
저 녀석을 만난 지 벌써 열흘이 되어간다. 같이 엘리베이터에 타면 어찌나 지민을 뚫어져라 쳐다보는지. 그렇게 바라보면서도 일층입니다- 기계음이 들리며 문이 열리면 총알처럼 뛰어가는 게 마치 나 너한테 관심 있으니까 달리기 전에 말 걸어줘 하는 것 같아 지민은 오늘도 귀에 이어폰을 꽂고 발을 내딛는다.
보름이 넘어가니 지민도 슬슬 열이 받기 시작했다. 요즘 꼬맹이들도 안 그러겠다. 말을 걸고 싶으면 하든가 매일 빤히 쳐다보면서 나한테 말 좀 걸어줘요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눈을 쏴대는 데 말이야. 그러면 먼저 말을 걸던가! 지민은 엘리베이터가 빨리 자신의 집 앞까지 오기를 기다렸다. 입구가 열리고 냉큼 들어가 일층을 눌렀다. 분명 이 시간대에 탄다고.
15층이 되자 문이 열렸다. 흠칫, 놀라다 가방 팔 부분을 찐따처럼 잡고 고개는 살짝 숙인 채 들어왔다. 문이 닫히자마자 바라보는 데 오늘도 어서 말을 걸어줘요, 바라본다. 지민은 목을 가다듬고 말을 걸었다.
“안녕, 같은 학교지?”
“어…. 으, 응! 우리 같은 학교, 헤.”
가슴 쪽에 있는 마크를 가리키며 헤 웃는 데 참 예뻤다. 아마 말을 정말로 걸어줄지는 몰랐는지 당황해서 말을 더듬는 게 나 놀랐습니다! 티가 엄청나게 났다. 명찰을 슬쩍 보니 김태형 곱게 걸려있었다. 이름도 잘생겼네. 김태형.
속으로 말하다 슬쩍 표정을 보니 뿌듯한 표정이 당당했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게 꾹 참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말 걸기를 잘했네. 지민도 아주 조금 뿌듯했다. 일층에 도착하니 태형은 수줍은 어린아이처럼 뛰지 않고 천천히 내렸다. 뒤따라 내리는 지민을 뒤를 돌아 힐끗 보고서 차근차근 걸었다.
또 저런다. 힐끗, 보다 걸어가고. 힐끗, 보다 걸어가고. 이번엔 멈춰 서 지민을 대놓고 훔쳐보더니 걸어가고. 아까처럼 말 걸어달라는 행동에 지민이 피식 웃고 태형의 옆에 섰다. 태형은 이럴 줄 몰랐다는 얼굴로 지민을 바라보았다. 지민은 담담하게 태형의 눈을 바라보았다. 어, 살짝 삼백안인가. 요즘 매력 있다는 연예인 눈들도 삼백안이던데.
“같이 가고 싶으면”
“말을 해야 같이 가지. 그렇지?"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는 것 마냥 알려주는 게 꼭 초등학교 선생님 같았다. 그렇죠, 태형 어린이? 눈을 바라보며 그렇지? 다시 한 번 말하자 태형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넵 대답했다.
평소보다 조금 느린 걸음으로 같이 교문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의 힐끔거리는 눈이 따가웠다. 태형은 그 시선이 익숙한 듯 앞만 보고 걸었다. 교문 들어오기 전까지 지민의 얼굴을 실컷 훔쳐봤으니 사실 뿌듯했다.
지민은 이런 시선이 부담스러웠지만 그러려니 했다. 자신의 옆에 있는 친구는 이 학년 교실이 가득한 삼 층에 머무르지 않고 아래층의 교무실 옆 특수반으로 들어가야 했으니 말이다. 헤어지려는 찰나 태형이 지민의 어깨를 잡았다.
“어… 점심 맛있게 먹어.”
분명 무슨 말은 해야겠는데 딱히 할 말이 없어하는 것이 티가 났다. 검지를 툭툭 두드리다 말을 뱉고 부끄러운지 가방끈을 꼭 잡고 이층 계단 앞 복도 안을 빠른 걸음으로 휙휙 걸어갔으니 말이다. 지민은 허 웃다가 삼 층으로 올라갔다. 점심 먹기엔 네 시간이나 남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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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마다 만나 어색했던 인사는 편안해졌다. 안녕 태형아. 아, 안녕 지민아.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면 자연스럽게 태형의 옆에 서 나란히 걷다 가끔 던지는 지민의 말에 태형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 저기 카페 새로 생기네. 응. 커피…가 아니구나. 너는 뭐 좋아해? 나는 키위주스. 그거 맛있지. 교문 앞에서 다가오는 묘한 시선들에 조금씩 무뎌지니 태형은 당당히 지민의 눈을 맞췄다. 학교 안에서.
“학교에서 쳐다보면”
“애들이 괴롭혔는데”
“지민이는 아니니까”
“너무 좋아.”
바보같이 웃는 눈이 진지해져버린 고등학생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정말 어린 아이의 웃음이었다. 너는 그런 말을 서슴없이 하네. 얼굴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져 숙인 지민의 귀는 얼굴보다 더 빨개져서 부끄러웠다. 먼저 갈게. 응, 지민아 잘 가. 소심하게 흔드는 손을 빤히 보다 냉큼 교실 안으로 들어 온 지민은 자리에 힘없이 앉았다. 왜 저런 말을 갑자기, 놀랐네. 가방에서 얇은 공책을 꺼내 열심히 부채질을 하며 시계를 보았다.
방과 후. 가방을 챙기고 나오자 태형이 방긋 웃으며 지민의 앞을 막았다. 같이 가자고 하는 것 같아 지민은 뒷머리를 긁적이다 태형의 가방을 덥석 잡았다. 태형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지민을 바라보았다.
“나 학원 가야 해서”
“같이 못 갈 것 같아.”
태형에게 토끼 귀가 달려있었다면 아마 축 처진 모양이 되었으리라 생각한 지민은 미안해졌다. 아마 많이 생각하고 온 것 일 텐데. 지민은 곰곰이 생각하다 일단 가자며 태형의 팔을 끌었다. 늦어도 상관없을 것 같은 데. 태형은 생글생글 웃으며 엘리베이터에 들어가 손을 흔들었다. 공부 열심히 해! 문이 닫히고 올라가는 숫자를 확인한 뒤 현관을 나왔다. 공부하는 학원 아닌데. 지민은 가방 안에 있는 타이즈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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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엎드렸다. 축구 하자는 아이들을 운동장에 두고 혼자 교실에 올라왔다. 누군가가 등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누구지? 고개를 들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자 태형이 서있었다. 손을 뒤로 감춘 것이 부자연스러웠다. 지민의 앞자리에 뒤를 돌고 앉았다.
“지민아, 쿠키 좋아해?”
“응.”
뒤에 있는 손을 앞으로 들이밀었다. 아마 수업시간에 만든 것 같았다. 틀로 찍어서 반듯한 하트 모양과 별 모양이 단조로웠다. 자세히 보니 직접 모양을 만든 건지 알 수 없는 모양의 쿠키도 보였다. 먹으라는 듯 들이밀자 울퉁불퉁한 모양의 쿠키를 집어 오물오물 먹었다. 생각보다 맛있다. 지민도 태형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맛있다며 맑게 웃었다. 정말? 우와아! 일회용 그릇 안에 가득 들어있는 쿠키들이 들썩였다.
“선생님이 주고 싶은 사람한테 주라고 하셨는데”
“지민이 생각나서 왔어.”
자기 입에도 한 조각 입에 넣고 아그작 아그작 씹으며 말을 하는 데 정말 토끼와 똑같아서 신기했다. 잘생겼는데 귀엽네. 눈도 동그랗고 사교성도 이 정도면 좋고 정말 여자애들 여럿 울릴 것 같은데. 지민이 태형의 눈을 곧이곧대로 바라보며 생각하고 있으니 태형은 자신이 가장 정성 들여 만든 쵸파 모자 모양의 쿠키를 들어 지민의 입안으로 쏙 넣었다.
“빤히 보면 부끄러워.”
“아, 너 귀여워서.”
“아닌데?”
“어?”
“지민이가 더 귀여운데?”
가장 큰 조각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말하는 데 발음이 뭉개졌다. 징쨩데, 지밍이가 더 귀여웡. 지민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부끄럽다기보다 태형이 꽤 심각하게 말하는 게 웃겼다. 입안에 있는 건 다 먹고 말하지. 발음 다 뭉게지잖아. 텅 빈 일회용 접시를 품에 안고 자기 먼저 간다며 손을 흔든다. 지민도 태형처럼 손을 흔들었다. 시계를 보자 친구들이 올라올 것 같아 급히 엎드려 자는 척을 했다. 시끄럽게 떠들며 올라오는 친구들은 지민을 격하게 깨웠고 지민은 방금 일어난 것 마냥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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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민을 처음 본 게 언제였더라. 전학 오고 나서 선생님과 같이 교실로 들어갔을 때였다. 태형은 처음 온 학교의 처음 본 선생님의 뒤를 도둑고양이처럼 따라갔었고, 지민은 복도 끝에서 공을 튀기며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선생님이 지민이 들고 있던 공을 가로 채 복도에서 이러면 위험하니 운동장에서 공놀이를 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지민은 죄송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몽글몽글하게 웃었다. 아마 그때 선생님의 어깨너머 본 지민의 얼굴이 태형의 머릿속에 깊게 박혀 선생님께 물어봤었다.
“쩌어기, 쟤는 몇 반이에요?”
“누구, 지민이? 2반일걸. 귀엽게 생겼지?”
네에. 말꼬리를 길게 늘어트리며 웃는 태형을 보며 선생님은 심히 안타까워했다. 저렇게 잘생겼는데. 사실 태형이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지민을 보았을 때 선생님께 말했다. 선생님, 저 지민이랑 같은 아파트에서 살아요! 아침마다 보는 데 엄청 귀여워요! 키도 작고 손도 작고 눈도 작아서 귀여워요! 말똥말똥 뜬 눈으로 어찌나 지민의 아침 모습을 이야기했던지. 쿠키를 가져간 날도 지민에게 달려갔을 것이라 예상한 선생님은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태형아, 그래도 선생님한테 하나라도 주지. 조금 섭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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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_ㅎ/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몇 편이 끝일지는 모르겟지만 써볼께요. 구독료 아까우니까 댓글쓰고 받아가요! 뷔짐이라 써야할지, 뷔민으로 써야할지 모르겠어서 일단 뷔민으로 써요! 이렇게 길게 쓰는 게 보기 편하세요? 아니면 문장마다 끊는 게 보기 편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