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로디테 11
어린아이처럼 마냥 해맑게 웃는 성종에 잠시 헷갈려온다.
어린듯 어리지 않은 듯.
너도 김성규만큼 미스테리네.
나도 모르게 나오는 쓴웃음에 성종이 눈썹을 찡그린다.
"그놈의 김성규 김성규"
그래 뭐 아픈 사람들이 다 그렇지 뭐-
맑게 울리는 목소리에 또다시 의문점이 생겨온다.
도대체 그 아프다는게 뭐야?
내 질문에 뭐 당연한 것을 물어보냐는 듯 새촘한 눈초리가 나를 올려다 본다.
"사랑. 사랑에 아픈 사람들."
사랑?
"응. 사랑."
내가..? 사랑에 아픈 사람이라고?
그래, 맞는 말인거 같기도 하네. 사랑, 그 사랑이라는 놈때문에 나도, 김성규도 아파하고 있다.
사랑이 뭐길래. 한낱 트로트가사 같은 물음만이 머릿속에 긴 꼬리를 남기고 지나가버린다.
"이..성종이라고 했나?"
꼬맹이 쪽으로 시선을 맞춰 말을 건네보면 이윽고 그 동그란 눈매가 긍정의 눈웃음을 찡긋인다.
"남 얘기 듣는거 좋아해?"
좀..길거야 라고 중얼거리는 내가 낯설게 느껴저 잠시 기분이 묘해진다.
주변인은 커녕 아무에게도 내 얘기를 해본 적은 없는걸.
보스는 좋은 분이지만 어린 나에겐 너무도 높아보이는 분이었고 여전히 그랬다.
그 외에 친구라곤 단 한명도 곁에 두지 않았고. 나한테 친구는 있어봤자 좋을거 없는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깐.
언제나 내 주변은 나에게 알랑거리는 멍청이들, 그리고 조직원들 그게 전부였다.
어렸을 때도, 사춘기때도 혼자서, 언제나 혼자서. 그렇게.
나는 모든 걸 혼자 삼켜내는 법을 배우고 그것에 익숙해져버렸다.
그래서 김성규가 더 끌렸던 걸까.
모든 걸 감싸주겠다는 듯, 날 이해하고 있다는 듯 살풋 웃어보이는 성규의 눈매는 마치 어머니 같기도 했었지.
그는 나의 사랑이자 그리움이자 어머니같은 존재.
그리고, 가까이 가선 안될 존재.
그렇게 '나 혼자'라는 내가 만든 틀을 깨선 안됬던 거였다.
"좋아한다니깐?"
어..? 뜬금없이 들려오는 높은 목소리에 멍청한 목소리로 되묻자 성종은 눈살을 찡그리며 투덜거린다.
몇번이고 듣는 거 좋아한다고 말했잖아. 이 바보형아야.
아아-미안. 대충 사과를 흘리면서 내 앞에 소년을 바라본다.
벗겨져있던 옷을 대충 걸치듯 두르고 쇼파에 삐딱하게 누운, 연약해 보이는 소년, 아니 소년이자 성인.
한없이 마른 몸매에 유일하게 생기넘치는 두 눈은 너무나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소년같은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너무나도 성숙한 어른의 눈동자였다.
내가 여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다 왜 이제와서야 이 아이에게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 걸까.
너무..오랜 시간 혼자서 살아왔다. 아니 싸워왔다는 표현이 더 맞는 말인것도 같다.
성규는 나에게 위로되는 존재이자 나를 더 힘들게 하는 존재였다.
정말 혼자일때는 이렇게까지 힘들지 않았었던 것 같다.
성규가 내 곁에 머물렀을 때부터, 나는 더욱 외로워졌다.
아니 그가 정말 내 곁에 머물렀던 적이 있었을까.
그는 언제나 나를 겉돌고 있었다. 팔랑이는 나비처럼. 내 손에 앉을듯 말듯 팔랑이다 저 멀리 멀어져가는 흰 나비처럼.
그를 바라볼때면 가슴이 편안해지면서도 숨이 턱 막혀왔었다.
그는 나에게 위로와 외로움을 동시에 주고 날아갔었지. 팔랑팔랑.
마른 입술을 혓바닥으로 쓸어보면 까끌한 느낌에 현실감이 살아난다.
마른 입술이 제멋대로 달싹였다.
"한 남자를 사랑했어. 아니..사랑해."
성종을 힐끔쳐다보면 성종은 그저 편안한 미소만을 머금고 나를 바라보았다.
계속 이야기해도 좋아. 다, 전부다 들어줄테니.
그의 시선에 왠지 가슴이 차분해져 다시금 말을 이어본다.
"김성규. 내 양아버지의 애인이야. 어느순간엔가 나와 그는 서로 사랑하고 있었어.
아니 최근에야 알았어. 그도 날 사랑한다는 걸. 그전까지 나는 완벽한 짝사랑을 해왔던거야.
사랑한다고만 말했지. 그에게서 다른 걸 바라진 않았어. 그냥 그의 따듯한 목소리, 위로, 그리고 그 품 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어. 욕심은,버리자고 생각했지."
그래. 그냥 현실을 직시하면 됬을걸 나는 애써 현실을 바라보지않고 3년을 지냈다.
욕심은 버리자. 그냥 성규가 내 곁에만 있으면, 나는 되니깐.
그가 날 사랑하지 않아도, 내가 그를 사랑하면, 나는 되니깐.
"근데, 최근에 아버지가 나에게 그랬어. '더이상 오르지 말거라.'..알고 계셨던거야. 하긴 모를리가 없지. 그렇게 대놓고 성규를 탐했는데
근데 이미 너무 늦은거야. 돌이키기엔, 돌아가기엔, 너무 늦어버렸어. 그가 없으면 난 살수가 없는데 버리자고 생각했던 욕심이 고개를 들쳐내밀고 있는데."
나는 어찌해야될까.
"아버지는 고아원에서 날 데려와서 날 키워주신 은인이셔. 성규는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나와 계속 인연을 이어가고 싶지도 않아했어.
오히려 내 등을 떠밀었어. 자기랑 같이 있으면 나는 망가지고 만다고. 그렇게 수많은 이들이 망가졌다고. 아니라고 했어. 나는 다르다고. 다른 이들이랑 다르다고."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뭐가 다른걸까. 결국 똑같아. 그의 곁에 계속 머무르면 그도 나도 망가져. 아버지는 좋으신 분이지만 배신을 넘길 멍청한 분도 아니야."
그래. 그냥 다. 전부다.
"내 탓이니깐."
"내가 악역이니깐. 평온했던 성규와 아버지사이에 끼어든게 나니깐. 성규를 흔들어버린 게 나니깐."
"내가 제자리에 돌아가면 모든게 맞춰진 쳇바퀴마냥 다시 돌아갈테니깐."
근데, 그걸 알면서도 그러지 않는 나는.
"나는, 그런 나는, 정말 이기적인거야. 이기적."
아니야. 그렇지 않아.
성종이 나를 바라보며 살풋 웃음짓는다.
"형. 그거 알아?"
무얼?
"세상은 결국 피해자 투성이야. 모든 사람들은 피해자야. 악역 또한 피해자고.
굳이 가해자를 찾아내자면, 그건 또 세상 모두가 가해자야.
그렇게 돌아가는거야.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그렇게 모두가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고.
악역이 무조건 나쁜거라고 생각해? 과연 악역은 태초부터 나쁜 사람이었을까?"
난 그렇게 생각안해
형이 악역이라구? 맞아. 형 악역맞아. 근데. 악역이란게 무조건 나쁜것만은 아니잖아.
형은 두 사람을 망가뜨릴려고 끼어든게 아니잖아. 오히려 형이 망가졌으면 망가졌지.
세상은 말이야. 악역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그들이 과연 악역인지, 아니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피해자 인지.
형은 피해자인거야.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랑의 피해자.
낭랑한 목소리가 또랑또랑 방 안을 울리면서 흩어져간다.
나는,피해자..?
글쎄. 역설적인 말인데 꽤나 논리적이기도 하다.
그치만 너가 모르는게 있어 꼬맹아.
"세상은 그런걸 봐주면서 굴러가지않아."
한숨처럼 내뱉어지는 내 말에 돌연 날카로운 목소리가 가슴을 푹 꽂혀 들어간다.
"그래서 어떡할건데."
성종이는 발간 눈매로 나에게 외치고 있었다.
"그래서 어떡할건데. 그래서 포기할거야? 너가, 그렇게 사랑해마지않는 그를 포기할거냐고?
과연 그 남자가 그렇게 패배자같이 구는 형을 좋아할까?
떠나라고, 가라고 소리치면서 속으로는 뭐라고 외쳤겠어? 가지마. 가지마 남우현?
낸들 알아? 뭐라고 외쳤을지? 근데 난 알겠어. 그 김성규라는 형 마음 알거같다고.
형을 보내면서, 형의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수십번 수백번 외쳤겠지. 돌아와. 다시 돌아와. 제발.
어차피 잊지도 못할거잖아. 결국 평생 혼자 괴로워할거잖아.
근데 혼자 괴로울거라고 생각해? 김성규라는 그 사람은 더 괴롭겠지. 형을 그렇게 자기 손으로 보내고 나선 죽을만큼 괴롭겠지."
멍하니 성종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냥 그랬다. 사고회로가 멈춰버린것처럼 나는 멍해져버리고 말았다.
성규가 과연 행복했을까? 나를 그렇게 보내고 행복했을까?
어찌됬든 우리의 해피엔딩은 이미 저멀리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 와중에, 그는 나를 떠나보내고 속 시원해 하고 있을까.
"..고마워."
"...뭐?"
성종의 찌푸려지는 미간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벌떡 일어나버렸다.
이제. 이 엔딩을 바꿀 시간이 됬다.
까짓거 이미 없어진 해피엔딩. 끝까지 처절한 새드엔딩으로 만들어버리자 김성규.
끝까지 한번 싸워보자.
이 빌어먹을 세상이랑. 우리 둘이 손 잡고. 한번, 싸워보자고.
한쪽 벽에 걸린 정장 마의를 낚아채 핸드폰을 잡아채듯이 꺼내 성규에게 메세지를 보내려 손을 움직였다.
아니 그전에.
나는 고개를 돌려 멍한 표정의 성종을 바라보았다.
"다음엔, 니 얘기도 들어줄게."
"..."
"꼭 다시 올게. 죽기 전에, 한번은 꼭 올테니깐, 그 땐 니 얘기 들려줘. 꼬맹아."
멍한 표정의 소년은 싱긋웃으며 말한다.
"응."
잘가. 꼭 다시와.
기분좋은 그의 목소리에 다시 고개를 돌려 앞으로 나아갈려는 그때 뒤통수에 떨어지는 뒷말에 나는고개를 다시 훽 돌려버렸다.
"근데 나 꼬맹이 아니야. 25살이야. 바보형아."
저 꼬맹이. 알고보니 초동안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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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오랜만이죠??!!!
시험 끝!!!
시원섭섭하네요..정말 열심히 했는데..뭐 성적은 별로 맘에 들지않아요..ㅋㅋㅋ.....ㅋㅋ..
대학 갈수있나..하..
뭐 여튼 아프로디테도 이제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네요!!
과연 우현이 성규에게 보내려던 메세지는 무엇이었을까요??!!
프하하핰ㅋㅋㅋㅋ
내일,그리고 일요일 연속으로 올라갈 예정이구요,
아마 다음주안에 아프로디테는 완결될거 같아요!!
아프로디테 완결뒤엔 차기작
수컷들의 청춘
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많이많이 기대해주세요..제발....ㅋㅋㅋㅋ
참고로 수컷들의 청춘은 아프로디테보단 덜 아련한 위험한 수컷들의 발랄한 청춘이야기에요ㅋㅋㅋ
발랄한 이야기는 아니지만....ㅋㅋㅋ 울림예고에서 만나는 일곱명의 이야기입니다~!
제 글은 전부다 상처받은 사람들을 주제로 하고 있어요.
딱히 뚜렷한 악역은 없구요.
저는 세상에 악역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보면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주인공이 오히려 더 나빠보일때도 있잖아요.
악역은 주인공의 시점에서 악역이지 과연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볼때 과연 악역일까 싶어요. 다 그 뒷배경이 있죠. 그 사람이 삐뚤어진 이유.
상처받은 사람들. 그게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닐까. 그런 생각에서 쓴게 아프로디테입니다 ㅋㅋ
아이고 뒷말이 많았네요잉..오랜만에 와서..ㅋㅋㅋ
좀이따 수컷들의 청춘 예고편올라올거에요!!
댓글,신알신,추천 모두모두 사랑합니다!!!
언제나 읽어주시는 그대들,그냥 들어와주신 그대들, 비회원분들 모두모두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