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계획
1.
어두운 방안. 베토벤 5번 교향곡이 흘러나온다. 돌아가는 레코드판. 연기가 나는 머그잔을 검지와 엄지손가락을 이용하여 집어든 여자는 천천히 향을 음미한다. 깊게 연기를 들이마신 여자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머그잔에 입술을 가져다댄다. “좋은 맛이야” 혀로 입술을 훔치며 여자는 천천히 머그잔을 내려놓는다. 머그잔 안쪽에 빨간자국이 남았다. 여자는 의자를 끌며 일어서서 창가 앞에 선다. 여자가 선 바닥 밑에서는 끝임없이 비명소리가 터져나오지만,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오지는 않는다. 창가를 툭툭치며 떨어지는 빗줄기. 금세 굵어진 빗방울에 하늘은 요란한 준비를 한다. 번쩍하고 밝아진 하늘에 창가에 여자의 얼굴이 비친다. 창백한 얼굴, 쾡한 눈 밑과 도드라진 광대. 피보다 붉은 입술. 말세다, 말세. 신문을 읽으며 지성은 혀를 내둘렀다. 이번으로 벌써 몇번째야. 11번째 실종자가 뒷골목에서 피가 하나도 남지않은 채 발견되었다는 기사대목에 지성은 신문을 접어 탁자 위에 놓는다. “형, 요즘같은 시대에 누가 신문을 읽는다고, 하여튼 늙은이라니까” 고개를 저으며 지성의 맞은 편에 앉은 우진은 보란듯이 패드를 이용하여 지성과 같은 내용의 기사를 읽는다. “젊어서 좋겠다 아주!” “둘은 맨날 싸워요? 이번으로 벌써 11번째에요, 며칠전에 옆동네에 고시생 한명이 사라졌어요. 평소 주변에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이 없어서 어제밤에 실종신고가 접수됐는데, 적어도 일주일은 된걸로 추정하고 있어요. 고시원에서 나가는 모습이 앞에 있던 편의점에 찍혔는데, 들어오는 모습은 없었거든요. 다들 알죠?실종 후10일이 지나면 시체로 발견되는거? 딱 삼일 남았어요.” 오늘도 나이로 유치한 싸움을 하는 우진과 지성을 한심하게 바라본 대휘는 노트북을 돌려 조사한 내용을 보여주었다. 대휘가 여기서 가장 막내였지만, 정신연령은 가장 높은 듯했다. “그럼 3일 안에 찾으면 되는 거네, 쉽네” 위자 등받이에 턱을 괴고 앉은 다니넬이 젤리를 먹으며 별거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쉽기는 뭐가 쉽다고, 그렇게 쉬웠으면 직작 좀 잡지 그랬어요?! 대휘는 다니넬을 향해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괜히 나서서 의욕을 떨어뜨릴 필요는 없다고 판단하며 참을 인을 새겼다. “이게 사라진 고시생의 모습이에요. 지금은 이 모습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요, 범인은 항상 피해자를 살해하기 전에 다른 피해자들을 미래 모색했어요. 고시생이 사라진 건 일주일전인데, 오늘 피해자가 발생한 걸로 미루어보아 더 많은 사람을 납치해줬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아요.” “와, 진짜 개새끼들이다, 개새끼인가?” “피가 하나도 없는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데서 짐작하셨겠지만..” “헐, 설마” “네 범인이 흡혈귀로 추청됩..아니 확실해요.” 대휘의 말에 지성은 머리를 감싸쥐며 탄식했다. 아, 어쩐지 뒷골이 땡기더라니 흡혈귀를 만나려고 그랬나. 2년전 흡혈귀를 퇴마하다가 피를 빨려 죽을 뻔한 과거를 가지고 있던 지성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아직도 상처가 남아있는 목덜미를 만지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형 이번에 또 물리면 형이 보낸 애들이랑 만나겠다.” “...” “조심해, 형보고 콱 물면 어떡해” “요, 시키가 진짜!” 놀리며 요리조리 피하는 우진에, 지성은 약이 바짝 올라서 우진을 쫓았다. 야! 이번에는 내가 흡혈귀놈 잡아다가 네 목을 밥으로 준다 내가! 기어이 식탁에 있는 컵을 깨먹고 방으로 도망가는 우진에 지성은 소리를 질렀다. “누가 동생인지.. 믿을 건 형밖에 없는 거 알죠?” “아 초록색 하나밖에 없었어, 그게 존맛인데” “...” 사건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젤리만 먹는 다니엘에 대휘는 이마를 짚었다. 그냥 이 팀 나가면 안되나? 진심으로 탈퇴하고 싶다. “안녕하십니까, 서한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경찰증을 보여준 여주는 납치신고가 들어온 김상돈의 방으로 들어왔다. 여주 하나만으로 꽉 차는 작은 방은 둘러볼 것도 없었다. 침대, 책상, 그 외에는 문제집이랑 책으로 가득했다. 책상 위에 펼쳐진 형법을 읽던 여주는 몸서리를 치며 침대 위로 엎어졌다. 저렇게 끔찍한 걸 어떻게 보는 거래, “아, 진짜 거 참 폭력은 좀 자제합시다! 네!?” “잘한다, 누가 현장와서 남의 침대에 엎어져있으래” “엎어진 누가 엎어져있었다고 되게 야박하게 구시네, 그냥 잠깐 빌린거거든요, 아주 잠깐” 침대에 누워있던 여주를 다리로 친 성우에 여주가 발끈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만보면 오빠는 너무 폭력적이라서 문제라니까, 사람이 왜 사람인데 대화를 해서 사람이잖아! 여주는 성우를 향해서 삐죽거리며 불만을 토로했다. 성우는 눈 하나 깜빡하지않고 천천히 책상을 살펴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래서 그럼 아주 지성적인 김여주씨는 단서쯤은 찾으셨겠죠? 그렇게 편하게 누워계신걸보니” “그건....이제 찾으려고 그랬거든.” 팔짱을 끼며 여주를 가만히 응시하는 성우에 여주는 눈을 감으면서도 튀어나온 입은 집어넣지않았다. “오빠는 진짜 좀 다정해질 필요가 있어, 처음봤을때 생각하면 내가 눈물이 다 나온다..” “단서는?” “..이씨..., 창문쪽에서 강한 기운이 느껴지네, 딱 보니까 창문으로 들어와서 김상돈을 꾀어내어 데려간 모양인데, 기운이 하나인 걸 보면, 한 놈이 한짓인데, 능력이 좋네. 오빠 조심해야겠다.” 오빠도 홀릴 수 있겠는걸. 키득거리는 여주에 성우는 칭문을 힐끗보고는 방에서 나갔다. 성우에게 한 방 먹였다고 생각한 여주는 배를 잡고 웃으며 승리를 만끽하였다. 그런데 그 순간 여주의 낲에 남자 두 명이 나타났다. “경찰입니다, 김상돈과는 무슨 사이시죠?” 와, 옹성우 지 혼자 튀었다 이거지? 여주는 배신감에 속으로 성우에 대한 욕을 내뱉으면서도 경찰을 향해 방긋 웃어보였다. “제가 방을 잘 못 찾아왔나봅니다. 남자친구가 기다린다고 해서 문 열린 방에 들어왔는데, 오늘 아주 뜨거운 밤을 보낼 생각이라...” 여주는 수줍다는듯 귀 뒤로 머리를 넘기며 웃음을 흘렸다. 옹성우 집에 가서 보자. 고급스러운 소파위에 재환은 배를 까고 누워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요즘 한창 방영중인 사랑은 배신을 싣고를 보는 재환의 눈은 바빴다. 와 대박, 오늘로 벌써 몇명이 죽는 거야?! 벌떡 일어나 팝콘을 씹으며 재환은 tv에 온 신경을 집중하였다. “아, 진짜 짜증나! 야, 옹성우 어디있냐?” “몰라, 좀 조용히 해봐, tv보는 거 안보이냐” “오늘 여러번 무시당하네, 뭘 보길..헐 나 이 편 못봤는데” 여주는 재환의 옆자리에 잽싸게 앉으며, 팝콘통을 가져갔다. 재환의 어이없다는 시선도 무시한채 여주는 팝콘을 열성적으로 씹었다. 왜? 너도 줘? 주객이 전도된 여주의 말에 재환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저었다. 너나 많이 드세요. “...아씨 누구야!?!” “어쭈 눈 똑바로 안 해?” “씨 이젠 tv도 못보게 하네, 완전 독재자야, 오빠 너 그냥 북으로 가지 그러냐?!” “...아지트 찾은 것 같다, 빨리 준비하고 나와” “모야, 진작 얘기하지 조금만 기다려” 휘파람을 불며 빠르게 방으로 들어간 여주를 보며 성우는 나지막한 웃음을 지었다. 볼수록 또라이야... 고개를 젓던 성우는 팝콘을 입에 가득 문채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재환에 실소를 내뱉었다. “너 뭐하냐..?” “아씨 저 여배우 이뻤는데, 죽었어” 얘나 쟤나 또라이들 천지네, 왜 우리집에는 귀신이 얼씬도 안하는지 알겠다. 지들도 피하고 싶은 거지, 귀신보다 무서운 또라이들이라니... 코끝을 작극하는 강한 하수구냄새에 다니엘은 지나쳤던 골목을 다시 들여다봤다. 잡귀에서 나는 것보다 강하고 더러운 냄새에 다니넬은 골목 안으로 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너랑 숨바꼭질하고 싶지는 않는데, 나오지 그래?” 더러운 골목길에 흐르는 다니엘의 목소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지독한 냄새가 강해지기 시작했다. 냄새가 집중되는 곳으로 다니엘이 리볼버의 방아쇠를 당기기 무섭게 깔깔 거리는 목소리가 허공에 흩어졌다. “하, 시발” 빠르게 골목밖으로 빠져나가는 검은 연기들에 다니엘은 빠르게 뛰었다. “얘는 왜 이렇게 안 나온데?” “걱정되면 나갔다 와봐요 형” “어린 네가 나갔다 오는 게 어떠니?” “전 제 건강이 우선이라서” “정없는 놈....야 우진아 저거 뭐냐?!” 지성은 팔짱을 끼고는 의자에 기대 눈을 감은 우진을 흔들었다. 앞유리로 시커먼 연기가 빠른 속도로 차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까만 연기는 순식간에 지성과 우진이 타고 있는 차를 감쌌다. 유리창으로 보이는 끔찍한 몰골을 한 귀신들에 지성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차 안에는 결계가 쳐져있어서 귀신들이 들어오지는 못했다. “아 안돼, 야 다니엘 어디있대? 전화해봐 전화!” 지성은 다급하게 외치며 손잡이를 꽉 붙들었다. 차에 들어가지 못하자 밖으로 나오게 하기 위해서 귀신들은 차를 흔들기 시작했다. 급하게 따라붙은 다니엘이 차 주위를 둘러싼 귀신들을 처리하려고 하였으나 그 수가 너무 많아서 아무리 총알을 쏴도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않았다. 하물며 본래 본인이 잡으러 온 루어귀가 주변의 물건을 날리며 장난을 쳐대는 통에 다니넬은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루어귀를 먼저 상대하자고 생각을 한 다니엘은 리볼버의 방향을 고쳐잡았다.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기준나쁜 웃음을 흘리는 루어귀에 다니엘은 입꼬리를 올리며 총끝에 시선을 집중하였다. -빠아아아아아아앙 방아쇠를 당기려던 다니넬은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경적 소리가 나는 차 위로는 커다란 간판이 나사가 풀어져서 흔들리고 있었다. 낄낄낄낄낄 귓가를 때리는 기분나쁜 웃음소리와 함께 간판이 떨어져내렸다. “괜찮아요?” “...” “표정을 보니 괜찮네요” 전혀 안관찮은데요... 너무놀라서 말도 안나오는 지성과 우진을 보며 여주가 상큼하게 웃었다. 운전석에 앉아서 핸들에 손을 올리고 있는 여주에 간판에 부딪혀서 찌그러졌어야할 차는 무사하였다. “사라..사라졌어” 우진은 창문 밖을 내다보며 떠듬떠듬 말을 하였다. 치 주위를 감싸고 있던 귀신들은 형체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운전석에서 내리던 여주는 또 봐요, 라고 찡긋하고 인사를 하며 문을 쾅 닫았다. “어땠냐, 이 누나 운전 솜씨 죽이지?” “어때? 이 오빠가 이케이케한거 봤어? 반했냐?” 서로 제 칭찬만을 하며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둘의 모습에 지성과 우진은 한참동안이나 더 벙져있어야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방금 그 사람들 뭐야?! 아는 사람이야?” 격하게 고개를 젓는 지성과 우진에 다니엘의 미간에는 주름이졌다. 엄청난 실력자였어, 그 둘. 골목을 빠져나가는 차를 건물 위에서 내려다보던 여자는 얼굴 가득 미소를 띠었다. 찾았다, 다음 내 식사. —— ㅋㅋㅋㅋ퇴마물 보고 싶어서 자급자족으로.... 읽을 사람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