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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당일, 설거지를 마지막으로 모든 일을 끝내고 두준과 함께 방으로 들어온 성규는 침대 위로 몸을 내던졌다. 불편하게 쓸리는 한복을 갈아입을 기운조차 없었다. 긴장이 풀린 온몸에 편안함과 동시에 몰려오는 통증에 성규는 인상을 쓰며 어깨를 꾹꾹 눌렀다. 이곳저곳을 혼자 쭈물거리던 성규는 작게 콧노래를 부르며 방문을 닫고 들어오는 두준을 흘겨보다 눈알마저도 쑤셔옴에 그냥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정신없이 흐른 오늘, 여태껏 편했던 시집살이의 슬픔과 고충을 한 번에 받은 듯 힘든 하?루를 보낸 성규였다. 하루종일 기름으로 샤워를 한 듯 코끝에서는 기름 냄새가 떠나질 않았다. 웃고 떠드는 시끌벅적한 밖과 달리 부엌에서의 하루는 분주하게 움직이느라 찝찝하게 땀도 났으며, 무엇보다 십분 이상을 맘 편히 앉아있질 못한 게 지금 느껴지는 온몸에 고통의 원인인듯했다.
이렇게 고생하는 그래도 여태껏 생활하는 동안 친해진 윤두준이란 작자는 빈말이라도 자신을 도와주겠다며 찾아오는 일 따위 없었다. 온종일 고생한 자신이 오늘 두준을 본 건 딱 세 번. 튀김이 모자란다며 직접 그릇을 들고 부엌에 들어왔을 때, 성규가 빈 접시를 가지러 가느라 잠깐 부엌 밖으로 나갔을 때, 그리고 지금 함께 방에 들어와서.
침대에 대자로 뻗은 성규는 아직 서서 정장 재킷을 걸어 놓고는 넥타이를 풀고 있는 두준을 향해 느닷없이 베개를 집어 던졌다.
"아, 왜!" "아, 몰라!"
으아, 힘들어! 두준은 넥타이를 책상 위로 대충 던져 놓으며 등을 돌리고 누워버린 성규에게 다가갔다. 얘가 왜 또 이래. 성규가 이렇게 가끔 저 혼자 삐쳐선 투덜대거나 성질을 부리는 것에는 이제 도가 튼 두준이었다.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자기 혼자 생각하다 열이 받았는지 등을 획 돌리고,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세모 눈을 뜨고 손을 탁 쳐낸다. 나중에 꼬드기고 물고 뜯다 이유를 알아내면 그게 정말 별것 아니라 터지는 웃음을 참으며 아이를 달래듯 장난스레 성규를 대하면 저도 민망한지 귀가 빨개져선 다시 쿨한 척 원래대로 돌아오곤 했다.
두준이 느끼기에는 또 그렇게 귀엽게 토라져 버린 성규의 옆구리를 장난스레 콕콕 찌르며 침대 위로 올라왔다. 두준 저만의 성규 기분 풀어주기 방법이었다. 이러고 난 뒤에 성규가 어떤 말이든 먼저 해 준다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풀리는 것이었다. 그것이 어느샌가 굳어진 둘의 익숙하고도, 당연한 일상이었다. 예를 들어 이렇게.
"야, 어깨나 주물러. 어깨랑 허리 무너질 거 같단 말이야."
여전히 퉁퉁거리는 말투였지만, 두준은 환하게 반색하며 알겠습니다, 마님이라 장난스레 대꾸하고는 엎드린 성규의 등 위로 올라탔다. 성규가 토라진 이유는 아마 오늘 고단했던 하루 때문인 것 같았다. 또 덧붙여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이니, 분명 자신에게 뭔가 섭섭하게 느껴지는 게 있었겠다 싶어 성규에게 너무 무겁지 않게 살짝 걸터앉은 두준은 얼른 양손을 성규의 말랑해 보이는 어깨 위로 올렸다. 역시나 옷 위로 닿는 말랑한 살이 느껴졌다. 두준은 양손에 잡히는 따듯한 살들에 왠지 기분이 좋아서 싱글싱글 웃으며 안마를 하기 시작했다.
야무지게 눌러오는 두준의 손에 곧 성규는 어후,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곰이라 힘이 좋을 줄 알았지만 뜻밖에 안마도 꼼꼼하게 잘하는 두준에 성규의 입에선 시원함에 앓는 소리가 자동으로 툭툭 튀어나왔다. 그냥 온종일 힘들게 일만 한 게 억울해서 빼꼼 고개를 내민 심술에 안마를 시켰지만, 두준이 자신을 직접 부려 먹은 것도 아니고, 또 생각하면 힘들게 일한 자신을 보러와 주지도, 위로해주지도 않은 두준에게 섭섭함을 느끼고 토라진 것 같다는 생각에 갸우뚱, 그건 좀 이상한 것 같다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자신이 더 고생한 건 맞고, 또 진짜 억울하니까 이 정도는 시킬 수 있는 것이라며 성규는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가만 누워 기분 좋은 안마를 받고 있으니 솔솔 몰려오는 졸음에 어느새 나른하게 풀린 두 눈을 감아버린 성규의 머릿속에는 이러고 있으니 정말 저와 두준이 진짜 부부 같다는 생각이 제멋대로 뭉게뭉게 피어올라 왔다. 명절 일로 힘들었던 아내를 마사지해주는 남편 같은 것 말이다. 잠에 취한 머릿속은 멈추지 않고 생각의 꼬리의 꼬리를 물어서 하하 호호, 닭살 돋게 서로 주물러주는 광경이 재생되고 있었다. 하지만 곧 두준과 자신을 대입시켜진 그 장면은 왠지 다른 의미로 닭살이 돋는 것 같다 느낌과 동시에 눈을 번쩍 뜬 성규는 달아난 잠을 아쉬워하며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고, 혹여나 다시 잠이 올까 싶어 한 번 더 눈을 감았다. 하지만 접어버린 생각의 연장선인지 갑자기 간질간질, 부끄러워진 마음에 성규는 괜히 피곤해서 제 정신이 아닌 것 같다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세수하듯 마구 비벼대었다.
안마, 안마에 집중해라, 김성규.
나는 니가 참 마음에 든다. 05 W..서님
"조금만 옆으로 해 봐."
성규는 왠지 저 혼자 어색해져서는 열심히 하던 두준에게 괜히 핀잔을 주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서 자신은 아무렇지 않아 한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해야 자신만 꾹꾹 눌러대는 어색한 공기가 날아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성규의 말 의도를 알 리 없던 두준은 그저 여기? 여긴가? 어깨 여기저기를 눌러가며 연신 주물주물거렸다. 어어, 거기. 성규는 대충 대답하고는 계속해서 꾹꾹 요령 있게 어깨를 눌러오는 두준의 손길을 받았다. 으으, 시원하다.
성규의 만족스러워하는 반응에 힘입어 두준의 손은 열의로 가득 차 점점 범위를 넓혀갔다. 등을 꾹꾹 누르던 손길이 척추를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성규가 아프다고 하던 허리 부근에 다다라 요리조리 꾹꾹 눌러대는 두준의 손길에 맞게 상규는 입을 열었다.
"오오, 어어! 거기, 거기."
어구어구, 잘한다. 나른하게 풀린 성규의 목소리가 낮게 흘러나왔다. 두준은 꾹, 꾹 눌러대는 자신의 손길에 맞게 들리는 목소리가 어째서 자신의 귀에는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이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꼇다. 저 혼자서 답지 않게 예민하게 군다고, 신경 쓰이는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두준은 성규의 등을 누르고 있는 자신의 손만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안마, 안마에 집중해라, 윤두준. 그리고 허리께를 누르던 손가락이 위치를 옮기다 척추 부근을 꾹, 눌렀다.
"흑, 응."
잠시간의 정적. 요사스레 튀어나온 목소리에 놀란 것은 성규만이 아니었다. 두준도 똥그랗게 커진 눈을 끔뻑거리며 방금까지 자신이 열심히 주무르던 성규의 등판을 바라보았다. 내, 내가 뭘 잘못 눌렀나?
멀뚱멀뚱 동상처럼 굳은 두 사람 중 먼저 사고회로가 돌아가기 시작한 것은 성규였다. 미친, 나 지금 무슨 소리를 낸 거야. 순간 성규는 지금 위에 올라타고 있는 두준만 아니라면 허공에 발을 뻥뻥 차고 우주까지 날아갈 것 같은 아니, 정말 가고만 싶은 기분이었다. 자신의 입에서 나온 그 이상야릇한 소리가 귓가에서 맴맴 거리는 듯했다.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싶지만 민망함에 숨도 제대로 못 쉬겠는 상황에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던 성규는 마사지하던 두준의 손이 멈춰 있단 걸 깨달았다. 분명 두준도 자신의 소리를 듣고 이러는 것이리라. 성규는 맴도는 어색한 공기에 질식사하기 전에 먼저, 얼른 입을 열어야겠다 생각했다. 어떤 말이라도 꺼낸다면 두준의 성격상 어색한 기운은 풀릴 것이다. 곧 장난스러운 상태로 돌아와 괜히 투닥대다 보면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돼야만 하는 거겠지만 . 근데, 무슨 말을 해야하지? 자꾸만 마르는 입술을 혀로 한 번 축였다. 두준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숨을 내쉰 성규는 조심스레 뒤를 돌아봤다. 침착해, 이럴수록 뻔뻔하게, 무슨 일 있었냐는 듯이 내가 먼저 말을 트는 거야.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지만 노력이 애석하게끔 꼴깍, 삼켜진 침에 좌절하며 성규는 억울한 듯 휘어지려는 눈썹과 삐쭉 나오려는 입술을 애써 바로 하였다.
성규는 마음먹은 듯 두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것이 성규의 등위에 타서 마찬가지로 어색함과 민망함에 쩔쩔매던 두준의 두 눈에 느린 동작처럼 천천히, 아주 느리게 박혀 들어왔다. 돌려진 얼굴에서 살며시 드러나는 입술이 두준의 시선을 강하게 붙잡았다. 이윽고 새빨간 혀가 입술을 한 번 축이고 촉촉해진 체 조금씩 벌어졌다. 슬쩍 보이는 앞니가 하얀 것이 토끼 같았다. 왜 갑자기 성규의 입술이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건지, 왜 저렇게 예뻐 보이는지. 바로 전의 이상한 소리 때문인건지 알 수 없지만, 쿵, 떨어졌다 붙어 뛰어대는 심장에 두준은 그저 침을 꼴깍 삼켰다.
"야, 야 뭐하냐. 어깨 안 주무를……으악!"
우악스러운 손길에 의해 두준을 향해 돌아 눕혀진 성규는 바로 코앞에 보이는 두준의 얼굴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불과 몇 초였지만 그 몇 초 동안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어색하지 않을까. 골라 골라 내뱉은 말을 체 끝마치기도 전에 갑작스럽게 일어난 상황에 아까의 어색함과 민망함은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고 새로 자리 잡은 당황함에 왜, 왜 이래. 더듬으며 튀어나온 물음에도 두준은 답이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금 진지해진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 시선에 성규는 미칠 듯이 뛰는 심장 위로 꽉 쥔 두 주먹을 모아 올렸다. 조용한 방안에는 째깍거리는 시침 소리와 두준, 성규의 숨소리만 들려왔다.
무방비하게 누워있는 상태에, 건장한 남자가 위에서 곧 자신을 덮칠 태세를 보이고 있다는 게 자존심 상하게 무서웠다. 하지만 그것이 두준인지라 마냥 무섭진 않고…, 아니, 무섭다. 근데 막 무섭진 않다니까? 지금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저 정신없이 핑글핑글 도는 눈을 애써 바로 잡으며 두준의 얼굴이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긴장감에 성규는 계속 움찔대기만 했다.
그렇게 한참을 미동도 없이 성규를 바라보던 두준의 손이 예고도 없이 움직였다. 침대를 짚고 있던 오른쪽 손이 조용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성규에게로 다가왔다. 성규는 도대체 두준이 자신에게 어떤 짓을 하려는지 예상조차 가지 않아 손이 다가올수록 점점 고조되는 긴장감에 침을 꼴깍 삼키며 두준의 손을 눈으로 좇을 뿐이었다.
두준은 불안한 눈으로 자신이 하는 것을 쳐다보는 성규를 애써 무시했다. 저렇게 겁먹은 눈과 혹여 마주친다면 아마, 아무것도 못 하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 손의 도착지는 성규의 가슴께에 곱게 내져있는 옷고름이었다. 옷고름을 쥐어 잡은 두준은 성규의 입술을 본 순간 부터 갑작스럽게 몰아치기 시작한 충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성을 붙잡고 고뇌했다.
풀어, 말아.
잔뜩 굳은 표정에 안 그런척하지만, 두준 역시 미칠듯한 긴장감과 두근거림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쿵쾅거리며 뛰는 자신들의 심장이 상대에게 혹여나 들릴까 두준은 자신이 잡고 있는 성규의 옷고름을, 성규는 두준에게 잡힌 자신의 옷고름을 쳐다볼 뿐이었다. 째깍째깍, 아무런 일 없이 몇 초가 지났다. 별안간 멈췄던 두준의 손이 예고도 없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르륵, 풀리는 옷고름에 성규의 머릿속에서 조선 시대 첫날밤·avi가 재생되려 하고 있었다. 오늘따라 왜 지금까지도 미친 듯이 뛰는 심장과 더불어 머릿속도 제멋대로인 건지, 또 머릿속의 저 혼자의 상상 나래에 점점 빨개지는 얼굴을 어찌할 줄 모르며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한 성규는 두 눈을 그냥 질끈 감아버렸다.
한편, 옷고름을 길게 잡아당긴 두준은 성규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튀어나온 까만 귀를 쫑긋거리며 빨개진 얼굴이 터질 듯 두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귀엽고 우스꽝스러웠다. 긴장감과 은근한 설렘, 나름의 분위기 있었던 공기는 파, 하고 사라졌다. 맥이 풀린 두준이었지만 눈을 감고 있는 성규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 여전히 빨간 얼굴 그대로였다. 푸흐, 성류몰래 새어나오는 웃음소리를 죽이며 성규의 얼굴을 바라만 보고 있으니 성규를 좀 더 놀리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싱긋, 웃으며 두준은 성규에게 조금씩 다가갔다. 점점 가까워지는 성규의 얼굴을 보며 두준의 심장은 여전히 설렘에 쿵쾅대고있었다. 서로의 얼굴은 코가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 성규는 직감적으로 다가오는 얼굴을 피해 고개를 뒤로 빼보지만 뺄 수 있는 공간이 있을 리 만무했다. 더 피할 공간도 없어 잔뜩 찌그러져선 자신을 피하는 성규의 얼굴에 두준이 여전히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결국 입을 열었다.
"뭐하냐?"
짖굿에 들려오는 두준의 목소리에 성규는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그리고 당장에라도 닿을 듯 말듯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자신과 눈을 맞춰오는 두준의 얼굴에 한 번 더 놀란 성규는 어버버거리며 정신없이 말을 뱉어냈다.
"너, 네가 갑자기 그, 그러니까……."
성규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자꾸만 부끄러워지는 마음에 더듬거리는 말과 분명 귀 끝까지 빨개졌을 자신의 얼굴이 눈에 선했다. 정말 터져버리는 것은 아닌지 쿵쾅대는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꾹, 눌렀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자신에게 계속 말을 걸어오는 두준의 시선을 피하면서도 저도 모르게 나오는 대답들은 죄다 잔뜩 떨려서 엉망이었다.
"내가 뭘?" "아, 아니. 그게……." "오늘 힘들었어?"
응? 뜬금없는 질문에 성규는 부끄러워 잔뜩 감았던 눈을 동그랗게 뜨며 두준을 쳐다보았다. 힘들었어? 대답하지 않으니 재촉하듯 다시 물어오는 질문에 성규는 머뭇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힘들었어? 그리고 어째선지 평소답지 않게 간질거릴 정도로 다정하게 물어오는 두준에 성규는 저도 모르게 말을 덧붙였다. 정말, 머리도 심장도 몸도 뭣 하나 제대로 된 이성을 지나서 나오는 게 없었다.
"어, 아, 아니. 아, 그냥 너는 나 보러오지도 않구…."
말을 하다 입술을 꾹 깨물었다. 저도 모르게 나온 투정에 성규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는 그렇게 힘들었는데 넌 나 보러와 주지도 않았다고, 정말 시답지도 않은 이유로 삐쳤었다는 것을 들켜버린 순간이었다. 결국 양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린 성규는 그래도 사라지지 않는 민망함에 눈까지 감아버렸다. 그런 성규의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보던 두준은 씩,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성규의 손목을 잡았다. 힘없이 이끌려 내려간 손 때문에 드러난 성규의 얼굴이 붉었고 흡, 입술을 안으로 숨긴 성규의 두 눈은 아직도 질끈 감겨있었다. 그런 성규를 바라보다 두준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제 더 물음은 없었다. 그저 조용해진 주위로 살짝살짝 내쉬는 두준의 숨결이 입술 위로 고스란히 떨어졌다. 살짝 스치고 지나간 코끝의 감촉이 보드랍다고 생각했다. 성규는 입술을 더욱 숨기며 양손 꽉 쥐었던 주먹을 더욱 꽉 쥐었다. 성규는 1초가 1시간 같은 긴장감에 습관처럼 마르는 입술을 축이기 위해 혀를 살짝 움직였다. 꾹, 애써 숨겨 두었던 입술이 달싹이며 밖으로 빼꼼 나왔다. 동시에 말랑하고 뜨거운 무언가에 스치는 느낌이 들었다.
쵹,
입술 끝에 스치던 따뜻함이 입술 전체에 퍼졌다, 사라졌다. 설마 설마, 설마. 왠지 모를 분위기에 직감적으로 입술까지 숨겨가며 예상한 순간임에도 깜짝 놀라 번쩍 뜨인 눈에는 이까지 살짝 드러내놓고 웃고 있는 두준이 보였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머릿속에 멍하니 그 얼굴을 쳐다보고 있으니 별안간 방금 제 입술에 닿았던 그것이 움직였다.
"오늘, 수고했다고." "………." "뽀뽀." "이, 뭐……."
"두준아, 며늘아가?"
뜬금없이 끼어든 불청객의 목소리에 가슴 떨리고 간질거리던 방안은 와장창 깨져버렸다.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위에 올라탔던 두준을 있는 힘껏 밀어낸 성규는 헐레벌떡 몸을 일으켰다. 갑작스러운 힘에 뒤로 밀려난 두준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침대 밑으로 굴러떨어졌고 방안에서 들려오는 큰 소리에 놀란 듯 열린 문으로는 예쁘게 깎인 과일들이 놓여있는 접시를 들고 있는 어머님이 있었다. 온종일 피곤했을 테니 과일이라도 먹고 자라며 찾아온 어머님에게서 성규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 접시를 받아들였다. 한편,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에게 침대 밑으로 굴러떨어진 두준은 씩씩대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아려오는 꼬리뼈를 문지르며 불퉁 튀어나오는 입술을 집어넣지도 않고 별안간 떼를 쓰기 시작했다.
"아, 엄마 뭐야! 나가, 나가!"
그런 두준에게 엄마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다며 꿀밤을 먹인 어머님은 성규를 향해 걱정스러운 얼굴로 오늘 고생 많았다며, 내일은 친정에 다녀오라고 말을 전한 후 방을 나가버렸다.
탁, 하고 문이 닫히자 성규는 과일 접시를 조심스레 탁자에 올려놓았다. 간질간질거리고 있는 입술을 꾹 깨물며 그대로 머리통을 감싸고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방금, 뭐한 거야? 닿았나, 닿은 거였지? 닿은 거지 그게 뭐야. 아직도 생생한 그 감촉이 입술에 남아있었다. 옆에 서 있는 두준이 느껴졌다. 하지만 차마 쳐다볼 수가 없었다. 어색함이 둘 사이를 빙빙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 누가 먼저 말을 꺼내도 사라지지 않을 듯한 어색함이었다.
감정에 휩쓸려 엄마에게 나가라고 소리쳤던 두준도 갑자기 머쓱해지는 기분에 헛기침하며 그저 멀뚱멀뚱 서 있었다. 머리통을 감싸고 있는 성규를 보고있으니 장난 반 진심 반 섞였던 자신의 행동에 자신도 혼란스러워졌다. 또 저렇게 쩔쩔매며 당황스러워하는 성규를 보니 죄지은 느낌도 나고.
"저, 저기."
어색함 속에 먼저 입을 연 성규는 여전히 두준을 바라보지 않은 체였다.
"나, 나가 줄래."
조심스레 말하는 성규의 말에 두준은 왠지 심장이 철렁했다. 어느새 머리통을 감싸고 있던 성규의 두 손이 앉아있는 침대를 꽉 쥐고 있었다. 딱히, 어떤 말을 할지 멍해진 두준은 어, 어. 후다닥 걸어가 황급히 방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두준이 나가고 한참 뒤에서야 성규는 침대 위로 몸을 뻗었다. 깊은 한숨은 옵션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누운 상규는 잔뜩 울상이었다. 여태껏 지내며 애써 무시하려 하지 않아도 잊고 살았던 두준과의 관계가 상기되며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나 남자랑 결혼 한 몸이었지, 그리고.
그 남자랑 뽀뽀했어.
어느새 입술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 자신의 손에 화들짝 놀란 성규는 퍼뜩 거리며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이불로 덮어버렸다. 내일 두준의 얼굴을 볼 생각에 벌써 어색함이 느껴지는 성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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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켠 방안을 둘러보며 두준은 멍하니 생각했다. 내 방, 참 오랜만이다. 성규가 온 뒤 요 몇 달간 한 번도 발길을 하지 않은 자신의 방이었다. 방금 전 나가라는 성규의 말에 당황해서 아무 생각 없이 나오긴 했지만 지금 당장에라도 성규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야 할 것만 같이 성규의 방이 익숙했다.
저도 모르게 잊고 살았지만 어쨌든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게 된 성규에게 자신은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일까? 처음 마주쳤을 때, 묘하게 관심이 가서 주의 깊게 바라본 행동 하나하나가 꽤 귀엽더니 이제는 볼을 꼬집고 싶다고 느낄 만큼 예뻐서 성규와 마주하는 순간에는 언제나 미소가 떠나지 않았던 것 같다. 조금 전만 해도 생각하지 않았던가. 오물오물, 작은 상규의 입술과 맞닿고 싶다고, 그래서 결국 성공했지만 말이다.
좋아하는 걸까? 갸우뚱거리던 두준은 간단히 판단 내렸다. 나는 김성규를 좋아한다. 평소 단순하고, 천하 태평한 두준은 역시 그런 자신답게 아주 손쉽게 자신의 감정을 받아드렸다. 그리고 그 감정을 깨닫고 나니 당장 성규의 방으로 달려가 그 따뜻하고 말랑한 몸을 있는 힘껏 안고 잠에 들고 싶었다. 그리고 잠들었을 때 나오는 까만 귀에 마음껏 볼을 부비고픈 마음이 더욱 간절해 졌지만, 아마 자신과는 다르게 예민하고, 생각이 많은 성규는 지금쯤 혼란과 불안 속에 예의 그 조그마한 손을 꼭 말아쥐고선 머리통 옆에 딱 붙이고 앉아 끙끙거리고 있을 것이 눈에 선했다.
에고, 우리 예민한 여우 색시. 중얼거리는 두준의 말은 즐거운 가락을 띠고있었다. 내일 잠 못 이뤄 푸석해진 얼굴이 되어있을 성규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킥킥, 올라오는 웃음을 숨기지 않고 이불을 끌어당겨 수줍은 소녀처럼 살포시 덮어 누웠다. 두준은 벌써 그 얼굴의 볼때기를 말랑말랑 꼬집고 싶어서 손이 근질근질했다. 우리 성규, 서방님 생각에 잠 못 이뤘구나? 그리고 예의 그 장난스러운 말을 뱉으면 엉덩이가 걷어차일 일이 될 수도 있었다. 뭐라는 거야, 꺼져! 라는 성규의 화답을 받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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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분량이 적죠 ㅜㅜ? 죄송합니다 ㅜㅜ 댓글 달아주신 독자 8분들! 부족한 글인데도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ㅜㅜ핱튜핱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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