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이가 그렇게 완전 비수를 꽂고 가버리고ㅠㅠ나는 앰플 따던거 마저 땄어..백현이가 알려준대로 위에 톡 톡 신경쓰면서 땄어. 마지막말이 너무 깊게남아서 이제 진짜 실수 안하려고. 백현이가 붙여준 반창고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일하다가, 계속 그 연속이었지 뭐.
정신없이 일만하고 백현이랑도 몇번 마주쳤는데 별 신경쓰는 것 같지도 않았고..나도 별 내색 안했어. 퉁퉁 부은 팔 때문에 더워도 가디건 벗지도 못했지. 팔전체가 완전 시퍼렇게 멍으로 뒤덮혀있었거든.
그렇게 퇴근할 시간이 됐는데 변백현은 대체 오늘 듀티가 뭔지, 나보다 일찍와있었는데 아직도 퇴근할 기미가 안보여. 신경안써야지 하면서도 계속 신경이 쓰였나봐. 그래도 뭐 어째. 내가 너 왜 퇴근안하냐고 물을 수도 없구 그냥 나 혼자 퇴근해서 나왔지.
터벅터벅 걷다가 기분도 너무 꿀꿀하고 오랜만에 김종대나 만날까 싶어서 전화를 걸었어.
"어, 웬일이야? 니가 전화를 다 하고."
"나 지금 끝났는데, 잠깐 나올래?"
"목소리 또 왜그래? 싸웠어?"
"아니야. 어디야?"
"나 이제 출근하려고 왔지.. 나오늘 나이트야. 미안하다."
내가 끝날 때 얜 출근하다니. 타이밍 더럽게 안맞아.
"심하게 싸운거야?"
"아니 그냥.."
"걔가 요즘 레지던트때문에 스트레스받아서 그래, 니가 이해해."
그놈의 레지던트ㅠㅠ이해는 하지만 나도 내 밑에 신입달리는 바람에 진짜 힘들었단 말이야. 이해해야지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오만가지 섭섭함과 서러움이 몰려왔지.
"알겠어, 나 술친구 너밖에 없는데."
"많이 마시지말고 일찍 일찍 들어가서 자라~"
응응 알겠어. 대충 대답하고 종대랑 자주가던 포장마차로 갔지. 혼자 따르고 혼자 마시는데 얼마나 외롭던지ㅠㅠ. 눈물이 차오르는걸 꼭꼭 참으면서 마시고 마시고.. 알딸딸 해질 쯤 나는 멈춰야된다는 걸 알았지만 혹시나 변백현이 알고선 데리러오지않을까하는 막연함에 계속 마셨어. 정작 걘 지금 일하느라 나 생각할 겨를도 없을텐데.
술마시니까 어제 백현이가 무작위로 찔러댄 팔이 아픈거야. 팔 때문에 헐렁한 추리닝 밖에 못입었거든. 추리닝 내려서 팔 보니까 멍이 어제보다 더 심한 느낌적인 느낌.. 그냥 괜히 안아프다가도 상처보면 아프듯이 나도 눈으로 확인하니까 괜히 아픈거야. 그래서 막 팔보고 엉엉 울었거든. 그 순간만큼은 변백현이 씨발새끼였지..
"변백현, 개새끼. 어어엉. 엉..내가 뭘 어쨌다고.."
내가 병원이랑 집이랑 가깝다고 했잖아. 그래서 정신은 반쯤 나가있는데 술값 계산하고 병원 보이는 쪽으로 벤치에 앉아서 멀거니 병원만 쳐다보고있었어. 일교차가 커서 그런지 밤되니까 바람이 쌀쌀해서 추워지는거야. 그래서 움츠리고 술 깨려고 하는데 저 쪽에서 되게 되게 익숙한 얼굴이 보여.
"어, 오빠?"
"집에 안갔어? 왜 이러고 나와있어, 추운데."
"속상한 일이 있어서.."
"술 마셨어? 냄새 봐, 변백현이 보면 기겁하겠다."
"걔 이제 안그래요."
"집에 가야지, 집 어디야?"
"나 술냄새 나면 쫓겨나. 집에서.."
그 사람도 나보고 아는척 하길래 자세히 봤더니 준면오빠야. 저 오빠는 퇴근했는데 백현이는 안했나. 무튼 자꾸 나 일으켜세우면서 집가자 집가자 하는데 내가 집 안간다고 칭얼칭얼대니까 오빠도 나중엔 그냥 내 옆에 앉았어.
"안 추워? 난 좀 춥다."
오빠가 팔 슥슥 문지르면서 춥다는데 진짜 추울 법 한게 오빠 반팔티 한장 껴입고 있는거야. 나는 티셔츠에 가디건 입고도 추웠거든.
"오빠 집 어딘데요?"
그러면 안되는거 아는데도, 괜히 변백현이 하지 말라는 짓 하고 싶은거있지..외간 남자 집에는 대낮에도 들어가지 말아라 귀에 못박히도록 얘기했었거든. 사실 나나 백현이나 집이 병원에서 가까우니까 외박하거나 그럴 일은 없었어. 그래서 그것 때문에 싸운 일도 없었구.
"안돼, 너 변백현한테 또 혼나려고?"
"아니아니, 나 술만 깨고 갈래."
"..으이구, 그럼 한시간만 있다가 가."
응응. 고개 열심히 끄덕거리니까 오빠도 쓱 웃더니 못이기겠다는 표정을 짓는거야. 그렇게 졸졸 오빠 쫓아가서 오빠 집에 들어섰는데 와, 이게 무슨 남자가 사는 집이야. 혼자사는 집이라 작긴한데 진짜 깔끔하게 정리되어있는거야.
신기해서 이리저리 보는데 집안이 따듯해서 그런지 술기운이 확 올라와. 얼굴 발개져서는 침대에 걸터 앉았더니 오빠가 내 얼굴보고 혀 끌끌 차는거야.
"술을 얼마나 마신거야?"
"얼마 안마셨는데.."
"너 어제 주사 맞고 술마셔서 더 취할걸?"
"아, 그거. 팔봐.. 변백현이 찔러놔서 이렇게 됐어요."
"어디 봐봐."
내가 가디건 올려서 팔 보여줬는데 바늘 들어간 곳은 퉁퉁 부었고 멍은 퍼져서 팔목까지 내려와있는거야.
"붓기 안빼줘서 다 퍼졌네."
"반팔도 못입고.."
"여기 기대고 앉아봐, 부은 건 좀 가라 앉혀야지."
침대위에서 벽에 기대고 앉았더니 오빠가 얼음이랑 수건이랑 이것저것 챙겨오더니 팔에 시원하게 얼음으로 찜질해주고 나는 술기운에 기대서 꾸벅꾸벅 졸았어.
"집에 얼음도 있어요?"
"있어야지, 나는 이제 아닌데 변백현은 아직도 얼음 달고살걸?"
"얼음? 왜?"
"원래 인턴 때 혼나랴 눈치보랴 하느라고 베드 모서리에 많이 찍혀. 치프들이 일처리 잘못했다고 혼내다가 밀치면 그대로 밀쳐져서 멍들고 그러는거지, 뭐."
"와..독하네."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나는 계속 눈이 꾸벅 감기고 그대로 잠들었지. 그때 잠들면 안됐던거였는데, 뒤에 어떤 후폭풍이 몰아칠줄도 모르고..
ㅡ
"ㅇㅇㅇ, 일어나. 나와."
정말 익숙한데 또 정말 어색한 목소리가 귀에 턱 와서 박히는 바람에 번쩍 눈을 떴어. 그 순간 모든 상황파악이 된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지.
"뭐해 지금? 어디야, 여기."
"아, 어제.."
"일단 나와. 옷 챙겨입고 신발 신어."
내가 두리번 거리면서 준면오빠 찾으니 곤란하다는 표정 지은채로 침대 옆에 서있고 변백현은 꾹꾹 화 눌러참는 표정으로 내 옷이랑 가방 챙겨들고 먼저 홱 나가버렸어. 나도 얼른 신발신고 뒤쫓아 나갔지.
"..백현아."
"입, 다물고 있어."
살은 얼마나 빠진건지 옷은 언제 갈아입은건지 애가 쓰러질지경으로 말라서 내 앞에 등보이고 서있는데 거리감이 확 느껴지는거야. 그게, 되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데 내가 잘못한걸 알지만 뭔가 훅 올라오는 느낌? 거기다가 변백현이 나한테 저렇게 거칠게 말한 적은 없었거든. 욕을 안하는 건 아니었지만 나를 향해서 욕을 내뱉은 적은 없었는데 말 뒤에 낮게 욕을 읊조리는거야.
"백현아, 나 너한테 뭐야?"
"..뭐?"
"나 여자친구야, 백현아.. 나 니가 화풀이한다고 멍청하게 받아주는 그런 착한애 아니야."
"야, 너 내가 지금."
"있잖아. 니가 나랑 너무 오랜시간을 친구로 보내서 조금 착각한 것 같은데."
"아니,그런거 아니야."
"우리 조금 생각을..해보자."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은 정말정말 몰랐는데. 이때까지 연락 뜸했던거, 어제 오늘 백현이 말에 상처받은게 쌓이고 쌓였나봐.
"너 레지던트 승급때문에 힘든건.."
"..."
"그냥 친구여도 다 받아줄테니까."
백현이가 뒤돌아서 나 쳐다보는데 아무말도 안하고 손만 파르르 떠는거야. 얘가 아까까지 나한테 화내고 소리질렀던 애가 맞나 싶을정도로. 그래서 나도 정말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고 애쓰면서 뒤돌아 걸었어. 눈물 뚝뚝 떨어지는데도 닦지도 않고 걸어서 집까지 왔어.
집에 갔더니 엄마는 일나가시고 없고. 또 나 혼자 방에 들어가서 엉엉 울었어. 집에 아무도 없으니까 마음놓고소리내서 울었지. 전부 다 서러웠어. 내가 백현이한테 상처받은 말이 슬픈 것 보다는 내가 백현이한테 모질게 대한게 더 미안하고 후회되고..그렇다고 돌이킬 수도 없고..
그렇게 정신없이 휴대폰이 울리는지도 모르고 울어재끼다가 몇시나 됐나 해서 휴대폰을 떡 확인했는데 백현이한테 부재중전화가 5통이 와있어. 나는 또 심장 덜컹해서, 내가 아까 그렇게 얘기했다고 정말 헤어지자고 끝내자구 말할까봐.. ㅠㅠ
다시 전화해도 안받길래 무작정 백현이네 찾아간다고 옷도 제대로 안챙겨입고 가방도 백현이한테 있고, 진짜 그냥 슬리퍼만 끼워신고 나갔어. 문을 턱 여는데 뭔가 묵직하게 툭 걸리면서 쿵 하는 소리가 나는거야.
"백현아?"
문 앞에 변백현이 기대서 앉아있다가 내가 문여는 바람에 그냥 힘없이 푹 꺼져버린거야. 아, 여기 바닥 되게 찬데. 내가 기겁하면서 백현이 어깨잡고 세웠더니 애가 아까 손 떨듯이 눈을 파르르 떠는거야.
"변백현..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
"...내가.내가 안그러려고 했는데, "
"뭐가 또..백현아, 일단 일어나봐. 들어가자. 응? 여기 춥단말이야."
백현이 팔 내 어깨에 두르고 끙끙거리면서 겨우 일어나는데 얘 몸에 힘이 하나도 안실리는거야. 아까 그렇게 위태롭게 서있을 때 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입시 공부할 때도 이렇게 몸 망가지면서까지 한 적은 없는 애였거든. 그래서 난 당연히 알아서 자기 몸 자기가 챙기겠지 하는 생각에 빠져있었던거고..내가 부축해서 침대에 눕힐 때까지 무슨 할말이 그렇게 많은지 계속 입을 달싹달싹거리는데 마음대로 목소리도 안나오니까 짜증이 났는지 인상만 찌푸리고 있어.
겨우 침대에 눕힌다음에 좀 자라고 이불 가져와서 덮어주고 옆에 앉아서 가슴팍 토닥토닥 두드려 주는데 변백현이 갑자기 손뻗더니 내 허리에 팔을 두르고 얼굴을 묻는거야. 순간 당황해서 내가 헉하고 숨 들이쉬고 숨 안쉬니까 백현이가 숨 쉬라는듯이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서 훅 하고 숨을 내뱉었어. 그랬더니 백현이가 천천히 말을 시작했어.
"내가 잘못했어."
"야, 갑자기 왜.."
"나 레지던트 승급 전이라고 예민했던거 맞아. 너한테 푼 것도 맞아.."
"..."
"너한테 말 내뱉고, 네 표정 본 순간부터 나는 후회해."
"야아.."
"정말 스트레스가 머리 끝까지 쌓여서 다 놓고 싶을 때 네 얼굴 한번보면서 다시 일어서는 주제에, 또 말은 툭툭 막 나가는 내가 나도 너무 싫었는데.."
"아니야, 아니야 괜찮아."
"자꾸 네가 다치는게 싫어서 병원일이 언제 널 위협할지 몰라서, 그래서 네가 언제 다칠지 몰라서. 내가 너무 끔찍한 광경을 너무 많아 봐서..너는 안봤으면 해서.그래서.."
"알아 알아. 백현아, 니가 나 걱정해서 그러는거 다 알아. 천천히 말해도 돼, 응?"
내가 어디로 갈새라 옷깃 꼭 잡고 허리에 얼굴 꼭 파묻고 얘기하는데 백현이가 이렇게 내 앞에서 무너졌던적이 있었나 싶었어. 항상 내가 무너지려던걸 잡아서 일으켜 주던 애였는데 백현이가 내 앞에서 무너지려 하니까 나는 한번도 얘를 잡아 준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고 머리만 꼬옥 안아줬어.
"나, 정말 너무 힘들었어. 병원에서 하루종일 혼나고 집에 오면 아무도 없어. 그래서 정말 너무 너무 피곤해서 눕자마자 잠들 수 있을 때까지 일하고, 책보고. 그리고 나서 당직실에서 쓰러지다시피 잤어. 매일 매일 그랬어..다른 생각이 나기 시작하면 나 병원을 뛰쳐 나갈 것 같아서.."
"..그랬어? 내가 있는데 왜 그랬어.."
"나 너랑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일 끝나고 집에 와도 네가 있었으면 했어."
"..."
"그런데 아까 네 말이랑, 표정을 보고 나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숨이 턱, 하고 막혀서.."
그리곤 백현이는 한참을 말이 없이 숨만 색색 내쉬고 있었어. 나는 눈물 삼키고 삼키느라 정신없고 ㅠㅠ
"백현아, 우리 조금 자고 일어날까?"
백현이 얼굴 살짝 떼어내서 어루만지는데 애가 극도의 피곤함에 짓눌려있는거야. 한숨이라도 더 재워야겠다 싶어서 아기 달래듯이 살살 눕히니까 순순히 눈감고 내 손 찾아서 꼬옥 잡는거야. 다른 쪽 손으로 토닥토닥 몇번 두드려주니까 금새 숨소리 일정해지면서 잠들더라고. 나도 조금 피곤한게 아니었던지라 백현이 옆에서 눈을 붙였어.
ㅡ
"아, "
"깼어?"
찌뿌둥함에 인상찡그리면서 눈을 떴는데, 백현이가 내 팔에 주사기 꽂고 톡톡 두드리고 있는거야. 순간적으로 백현이가 무자비하게 찌르던게 생각나서 팔을 탁 뺐는데.백현이가 정말 정말 죄지은 것 같은 표정을 지어 ㅠㅠ
"아, 아 미안. 백현아..뭐 하고 있었어?"
"..미안해, 그 때 많이 아팠겠다."
"아니 아니. 아니야. 나 진짜 괜찮아. "
"찜질 안하고 그냥 내버려 두니까 멍이 퍼지잖아. 이거 피 좀 빼내자. 얼른 낫게, 응?"
아..뭐라고? 나 주사 싫은데 백현아? 라고 말하기에는 변백현이 너무 죄인 표정을 짓고 있었어. 정말 여기서 뽑기싫다고 징징대고 몇주일동안 멍든거 그대로 달고 살다가는 변백현이 뛰어내려버릴 것 같아서 잠자코 있었어.
"안아프게 할게."
아..그러세요..안그래도 그 쪽 때문에 아파 죽겠는데 ㅠㅠ.. 그래도 나 자는 사이에 몇번 뽑았는지 팔목쪽은 좀 괜찮아 보였어. 백현이가 가방에서 새 주사 꺼내서 입으로 뜯는 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것만 보고선 눈 꼭 감고 팔만 내미니까 내 손 잡아서 자기 팔목 잡게 하는거야.
"내 팔 잡고 힘 꼭 줘봐."
"살살.."
"옳지, 착하다."
다정함 뚝뚝 묻어나오다 못해 흘러내리는 말투로 어르고 달래주는데 얼마나 설레던지..백현이가 주사 톡톡치면서 또 그새 나 아플까싶어 주사 들어간 곳 계속 문질러주면서 천천히 빼내는데 나 또 감동..
"다 됐다."
백현아ㅜㅜ..다됐다고 하고선 고개 드는데 이마에 땀방울 송글송글. ㅠㅠ 얼마나 애썼으면 주사 찌르면서 땀까지 흘려..결국엔 또 백현이가 져줘서 끝난 싸움이었지만, 죽일듯이 싸우고 몰아붙이고 쏘아대도 마지막에는 나한테 모든걸 맞추려 드는 백현이 때문에 이렇게 이어나가는게 아닐까 생각해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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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길게쓴다고 길게 썼는데, 조금 길긴 한가요? 그렇다고 해줘요 어서..
저번 편에 정말 정말 오랜만에 왔는데도 반겨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행복했다능..ㅠ..ㅠ..사랑해요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