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침부터 불길한 느낌을 잔뜩 받았던 날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확인한 오하아사 별점이 꼴지여서,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발을 삐끗해서, 그러다 이상함을 느끼고 시계를 확인하니 일어났어야 하는 예정 시간보다 삼십분정도 지난 상황이라서, 그래서 밥도 먹지 못하고 학교를 향해서 달린게, 그런데 막상 강의실 앞에 도착하니 열리지 않는 문과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휴강 문자에. 한숨을 푹 쉬고 다시 자취방으로 향하려는데 앞에서 어쩐지 익숙하지만 마주하고 싶지 않은 얼굴이 보였다. “어… 안녕?” 그러니까 내가 샤워도 하지 못하고 자취방에서 뛰어 나오게 만든 원흉이라고도 볼 수 있는 남자. * 나도 옆에 앉아있는 동기처럼 내일이 없는것 마냥 달리고 싶었지만 유감스럽게도 내일 일교시 수업이 있는건 시간표를 확인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금공강의 동기를 부러워하며 다음 학기에는 무조건, 무슨 일이 있더라도 금공강을 사수할것이라 다짐하며 앞에 앉아있는 선배들에게 넉살 좋게 웃어보이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동기들에게 인사를 하고 가방을 챙겨 가게 밖으로 빠져 나왔다. 후덥지근한 공기에 발걸음을 빨리해 지하철역으로 향하려는데, “잠깐만요.” 낮은 목소리가 나를 잡아 세웠다. 나를 부르는건가? “이름아.” 아, 나 맞네. 몸을 돌려 세우니 처음 보는 남자가 서 있었다. 아니, 처음 보는거 맞나? “오랜만이다.” 익숙한 부산 사투리. 이제는 고친지 한참이나 지난 나의 옛말투. 그럼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은 내가 부산에 살때 알았던 사람이란 말인걸까. “내 못알아보겠나. 윤도운이다.” 미친. 누구? 누구라고? 윤도운? 중학교 3학년 졸업식에서 고백하는 나를 대차게 깐 그 윤도운?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흑역사가 재생될것만 같은 기분에 어색하게 웃으며 오랜만이네, 라고 답하고 서둘러 다시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내 실음과 다닌다.” “..그래서?” “같은 학굔데.” 말도 안돼. 신을 믿는건 아니었지만 이럴때만큼은 신이 원망스러워진다. 소수과인 실음과와 한학년에 100명도 넘는 우리과 사이에 교류는 없지만, 그래서 입학한지 몇달이 지난 지금 처음본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같은 학교라니. “내 말 못들었나?” 싫다. 저 순수한 눈빛. 그때도 아마 저 눈빛으로 니는 내한테 좋은 친군데, 라는 말따위를 지껄이며 나를 찼었지. “그래? 지나가다 보면 인사하자. 나 내일 1교시라 먼저 가볼게.” 누가봐도 어색한 말에 서두르는 행동이었고, 윤도운이 그걸 모를리 없었지만 다행히도 나를 다시 붙잡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이미 내 흑역사 오브 흑역사를 만들어준 윤도운을 다시 만났다는 사실에, 그것도 같은 학교라는 사실에 절망하고 있었다. * 어제 그렇게 집에 들어가 떠오르는 흑역사에 잠이 오질 않아서 늦게 잠이 들었고, 심지어 꿈에도 나오는 바람에 잠을 설쳐 새벽 늦게나마 잠이 들었지. 그래서 늦게 일어났고, 뭐 그렇게 되었다. “..실음과인데 이 건물에서 듣는 수업이 있어?” “아.. 아니. 내 친구 만나러 온건데.” “그래? 그럼 친구 잘 만나.” 윤도운 옆에 서 있는 남자애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하는 것을 느꼈지만 그냥 지나쳐 계단을 내려갔다. 이쯤되면 마주쳐도 그저 인사만 하는 사이로 남겠지. 어제 반가워하지 않았고 오늘도 쌀쌀맞게 굴었으니까. 흑역사는 중학교때 기억만으로도 충분하다, 내게는. 어....진짜 광장히 오랜만이네요ㅠㅠㅠ 기다리셨을분들께 너무너무 죄송하고 또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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