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CHEEZE - Everything to) 요즘들어 너무 자주 눈에 띈다.
“어? ㅇㅇ이다.” “아, 안녕하세요. 하하.” 황민현 선배. 절대 아니겠지만 선배는 날 따라다니나 싶을 정도로 자꾸만 내 눈 앞에 툭툭 튀어나온다. 내가 본인을 얼마나 필사적으로 피해다니는지 알고 있을까. “어디가?” “저 친구 만나러...” “그래? 어디로 가?” “분수대 앞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아 진짜? 난 분수대 앞에 있는 학생회관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갈래?” “네?... 아, 맞다! 저 서점 잠깐 들러야 해서 아무래도 기숙사쪽으로 가야될 것 같아요... 죄송해요, 선배님. 그럼 다음에...” “내가 데려다줄게! 같이 가!” 남의 속도 모른채 해맑게 웃으며 나를 보는 선배가 왠지 얄미웠다. 마음으로는 깊은 한숨을 뱉었지만 겉으로는 그저 어색한 미소가 나올 뿐이었다. 사실 서점같은 건 핑계였다. 그냥 선배와 둘이서 오래있는 건 내게 너무 힘들었다. “어? ㅇㅇ아!!” “죄송해요 선배님!!” 결국 선배님을 그냥 두고 뒤를 돌아 냅다 뛰었다. 선배님, 정말 죄송하지만 다음에 같이 가는걸로 합시다...! —————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민현 선배가 아주 멀리, 성냥정도의 크기로 보여도 난 무조건 길을 돌아갔다. 그래서 전보다 부지런히 움직여야했고 민현 선배가 있을법한 동아리실은발도 들이지 않았다. 난 원치않는 아웃사이더가 된 것도 모자라 혹여 캠퍼스를 돌아다니다 민현 선배를 마주칠까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난 결국 혼자서 끙끙앓다 참지 못하고 가장 친한 친구인 예은이에게 그 일을 털어놓았다. “아, 그래서 너 요즘 동아리에서 계속 안보였구나? 아니 그건 그렇고. 너 그럼 그 때부터 이제까지 민현오빠 한번도 안본거야?” “응...” “애초에 넌 민현오빠를 왜 그렇게 싫어해?” “싫어하는거 아니야! 그냥, 조금. 좀 불편해서...” “불편해? 민현오빠가? 아... 좀 너무 잘생겨서 내 심장이 불편하고 뭐 그런 건 있긴 해...” “그런거 아니고” “야 ㅇㅇㅇ. 넌 민현오빠가 너한테 얼마나 신경쓰는지 모르지? 안그래도 며칠전에 우리 동아리 회식있을 때 민현오빠가 너 엄청 찾았어. 내가 답답해서 꾀병으로 결석이래요,라고 하려다 꾹 참았다.” “그 날 때문인가.” “그거 아니어도 민현오빠가 너 자주 찾아. 세상!!!! 야, 알겠다. ㅇㅇㅇ, 너 민현오빠 좋아하지? 그치?” “아니야!! 좋은 사람인 건 아는데 뭔가 좀 불편해.” “맞네, 맞어. 너 아닌척 하더니 뭐냐? 번호표 뽑아 번호표!!” “아니야!! 진-짜 아니야!” “어? 민현오빠다!” “뭐?!” 예은이의 입에서 나온 ‘민현’이라는 두 글자에 난 반사적으로 예은이의 뒤에 숨었다. 그리고 예은이의 오른쪽 팔을 붙잡고 필사적으로 건물을 돌아 벽에 붙었다. 예은이는 아프다며 팔을 뿌리치려 했지만 나는 팔을 놓지않고 예은이를 끌었다. “야! 너 왜이래?” “민현 선배잖아!” “그게 뭐? 왜?!” “민현 선배를 무슨 낯짝으로 봐! 아직 사과도 못했는데.” “그럼 지금 가서 사과해. 너 계속 이렇게 피하면서 언제 사과하고 언제 민현오빠랑 화해하게?” “몰라. 나도 모르겠어. 근데 지금은 아니야. 지금은...” “이씨 이 답답이 진짜..!! 민현오빠!!!” 내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찰나에 예은이는 내 손목을 붙잡고 건물을 다시 돌아 민현선배가 보이는 곳에 섰고 민현선배를 크게 불렀다. 민현선배가 뒤돌아 볼 때 예은이는 내 손목을 꼭 붙잡고 있다가 민현선배가 다섯 발자국 앞에 있을 때쯤 날 두고 자리를 떠났다. 뒤늦게 정신이 든 나의 앞에는 민현 선배가 서있었고 여느때처럼 밝은 얼굴로 나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안녕. 진짜 오랜만이다. 휴학한 줄 알았어.” “아, 네. 네? 아니에요. 휴학 안했어요. 그냥 요즘 너무 바빠서...” “그렇구나...” 민현 선배는 말 끝을 흐리며 시선을 잠시 바닥에 두었다. 그래 좋았어. 지금이야! “선배님! 저 할 말이 있는데요!”
“...어? 할 말? 나한테 할 말이 있어?” 순간 민현 선배의 눈은 동그래졌고 정확히 2초 뒤에 다시 웃으며 내가 말을 꺼내길 기다렸다. “저기 그... 제가 전에 선배님을 혼자 두고... 막 도망가서 선배님께서 적잖이 당황하셨을거라고 생각해요... 그 날 제가요, 제가 집에서 많이 후회했고 또 반성했고, 그래서 선배님한테 드릴 말씀이 있어서... 이렇게 선배님을 보고... 어... 그러니까 결론은...!” 난 선배의 손 끝을 보면서 횡설수설 말을 이어가다 고개를 들어 선배의 얼굴을 보았고 선배는 알듯말듯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선배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결론은... 죄송합니다...”
“ㅇㅇ아.” “네?” 늘 살짝 하이톤의 목소리로 밝게 인사하던 민현 선배가 평소와는 다르게 목소리를 조금 낮추며 나의 이름을 불렀고 난 긴장감에 목이타서 마른침을 꿀꺽 삼킨 뒤 간신히 소리를 내어 대답했다.
“미안하면 나랑 밥 먹자. 밥친구부터 하자 우리.” 밥을 먹는 건 좋다. 다만 그게 민현 선배와 함께라면 조금 위험하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식사가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은이의 말대로 언제까지고 민현 선배랑 불편하게 지낼 순 없으므로 난 결국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리고 잠깐 생각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왜 선배를 불편해하고, 왜 혼자서 선을 긋고 선배가 이 선을 넘지 못하게 지키고 있는걸까. 도대체 왜?
“있지, ㅇㅇ야. 난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넌 아닌 것 같아서. 그래서 뭐, 좀 슬프긴한데 그렇다고 해서 너한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거든.” “...” “느려도 좋으니까 나한테 조금만 마음을 열어주면 안될까?” 아마 처음으로 선배와 눈을 제대로 마주친 것 같다. 선배의 눈은 깊고 진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선배는 코가 높았고 입술도 정말 예뻤다. 꼭 틴트를 바른 것 같네. 그리고 내가 늘 언뜻언뜻 보던 것 보다 이렇게 제대로 보니 훠얼씬 더 훈훈하다.
“크흠, 갈까?” “...아, 네!... 저기, 근데요...” “응?” “선배님 귀가 너무 빨개요.”
“아...” “어디 아프세요?” “아니야. 아닌게 아니라 그냥 가끔 좀 그래. 가자가자.” 있지, 민현 선배는 생각보다 좋은 사람같아.(^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