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의 미학
w. gotme
"1화 대본이야, 첫 찰영은 일주일 후에 있을 예정이래, 너 대본리딩때 안왔다고 PD가 막 뭐라그러더라. 그러니까 가만히 대본이나 외우고 있어."
"겨우 일주일? 장난해?"
"겨우 일주일은 무슨, 다른 배우들은 이틀안에 다 외우던데."
"그야 걔네들은 시간이 남아돌겠지, 나같은 탑배우들은 팬들에 시달리고 스케줄에 시달리고 잠에 시달리고… 아무튼 내가 시간이 그렇게 많은 줄 알아?"
"아 네네, 그 쪽 스케줄은 누구보다 제가 더 잘아는데요. 도경수씨 이번주 스케줄보면 화보 촬영밖에 없어서 시간 많이 남아도는 걸로 아는데."
"뭐야,. 그거밖에 없어? 장난해? 요근래 들어서 나한테 들어온 광고 제의 많은 걸로 아는데?"
"장난은 니가 하는거겠지. 피곤해서 하기 싫다던게 누구더라?"
제랄,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지? 까마귀고기라도 처먹었나. 요새들어 기억력이 점점 퇴화되어가는 기분이야. 괜히 할 말이 없어져서 김종대에게 받은 대본을 한장한장 넘기며 봤다. 분명 시놉시스를 봤을땐 꽤 괜찮은 작품이었던거 같은데, 대본을 보니 왜 이렇게 유치하기 짝이 없어보일까.
"아 맞다, 너 그거 알아?"
"뭐."
"얼마전에 기사 떴는데 너 그때 방송 녹화중이었어서 못 봤었지?"
"아 그니까 뭐."
"신경질 좀 내지마, 아무튼 너랑 라이벌 구도로 나오는 애. 걔 교통사고 나서 부상때문에 드라마 촬영 못한대."
"…그럼 그 역할은 누가하는데?"
"변백현."
읽고 있던 대본을 덮었다. 갓뎀, 뭐라고? 내가 잘못 들었나? 다시 한번 말해줄래? 천천히 플리즈.
"표정봐라, 똥 씹었냐?"
"변백현이라고 했어?"
"그럼 김백현이라고 했겠냐."
"…나 이 드라마 안 해."
"뭐? 너 미쳤냐? 장난해?"
"장난 아니야."
"대본까지 다 받아놓고 촬영 일주일 남겨놓은 판에 안하긴 뭘 안해!"
"나 변백현이랑 절대 같은 드라마에 출연 안 해."
"왜, 대체 왜 그렇게 변백현을 싫어하는거야?"
왜 그렇게 변백현을 싫어하냐고? 이유는 없다. 난 그냥 그 녀석이 싫다. 나보다 한 살 많은 형이지만 그 녀석 앞에서 한번도 존댓말을 써본 적이없다. 왜냐, 내가 변백현보다 1년 더 일찍 데뷔했으니까. 방송국에서 마주칠 때 마다 살갑게 굴며 인사를 하는 그 녀석의 얼굴은 잘생겼지만 보기가 싫다. 일종의 열등감인가. 아니지 솔직히 얼굴은 변백현보다 내가 낫지.
"그냥 싫어."
"그냥 싫든, 이유가 있어서 싫든 변백현이 뭐가 어때서?"
"형 변백현 좋아해?"
"내가 미쳤냐? 남자 좋아하게."
"근데 왜 그렇게 변백현을 감싸고 돌아. 형은 내 매니저잖아."
"야 솔직히 말해 사람들이 너랑 변백현 라이벌구도 만들고 그래서 괜히 그러는거지?"
"……."
"걱정하지마, 솔직히 너는 대한민국 탑배우고 변백현은 아직 너 따라오려면 멀었어. 괜히 불안해하고 그럴 필요없어."
"누가 불안해 해? 난 그냥 그 자식이 싫다고."
"그래그래 잘 알았고, 드라마 출연 안 한다는 말 취소지?"
김종대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덮어놓았던 대본을 다시 주워 들었다. 변백현은 싫지만 촬영 일주일 남겨둔 이 판국에 계약을 취소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드라마를 펑크낸다면 내 이미지만 안 좋아질게 뻔하니 일단 어쩔 수 없이 변백현과 함께 촬영을 해야한다. 괜찮아,괜찮아 경수야. 변백현은 그냥 서브일뿐이야. 메인은 나잖아? 언제까지나 주인공은 나야. 그래 김종대가 말한대로 변백현은 아직 나를 따라오려면 멀었다. 팬 수도 내가 더 많고 받은 상의 갯수도 내가 더 많다. 내가 바로 그 대단한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받은 도경수라고.
*
"근데 그 여자한테 궁금한게 생겼대."
"……."
"…나 너 좋아하냐?"
풉. 김종대가 참지못하고 웃어버렸다.
"왜 웃어."
"그냥 웃기니까 웃는거지…"
말을 하면서도 김종대는 웃음을 멈추지 못하였다. 솔직히 말해서 이 대사가 좀
"오글거리긴 해, 근데."
"……?"
"왜 그렇게 연기를 못해?"
내 말을 들은 김종대의 표정이 썩어 들어가더니 이내 손을 올려 내 머리를 한 대 때렸다.
"아 왜 때려!"
"야 당연히 난 매니저니까. 연기를 못하지. 잘 할 필요도 없고."
"그래도 명색에 도경수 매니전데, 연기는 좀 해야되는거 아니야?"
"내가 배우냐? 내가 배우야?"
말을하면서 김종대가 계속 내 머리를 주먹으로 콩 때렸다.
"아 그만 때려."
김종대와 호흡을 맞추는 걸 포기하고 다시 대본을 읽었다. 변백현이 맡은 캐릭터의 대사를 보니까 변백현의 캐릭터는 꽤나 매력적이었다. 물론 그에 맞먹을 정도로 내 캐릭터도 매력적이다. 가장 큰 장점은 주인공이라는 점이겠지만.
"경수씨, 오셨네요!"
날 반기는 PD를 한 번 쳐다봐주고는 곧장 대기실 안으로 들어갔다. 내 앞에선 저렇게 반가운 척 하면서 뒤에선 또 날 씹겠지. 안봐도 뻔했다. 김종대가 허겁지겁 문을 열며 코디와 함께 들어왔다.
"이코디 이 옷은 그냥 여기다 둬도 돼?"
"아, 안돼요. 이거 지금 경수오빠가 입을 의상이란 말이에요."
"그럼 이건?"
"메이크업 박스잖아요. 이리 줘요."
"맡길 건 나한테 다 맡겨놓고 왜 이렇게 짜증을 내?"
김종대가 약간 짜증난 투로 말했다. 그러자 코디는 입을 삐죽 내밀면서 제가 언제요? 하면서 메이크업 박스를 들고 내가 앉아있는 곳으로 왔다. 저 둘은 항상 만나기만 하면 싸운다니까 저러다 미운정 들겠어. 아, 이미 들었을지도.
코디가 내민 의상을 갈아입고 자리에 앉자 코디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 머리를 손질했다. 더워죽겠는데 왠 드라이람. 한창 내 머리를 만지던 코디가 심심했는지 대본을 읽고 있는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 맞다. 오빠."
"왜."
대본을 읽고있는터라 조금 무심한 말투로 대답했다. 내 말투에도 아랑곳않고 코디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오빠 옷 갈아입을 때 잠깐 밖에 봤는데, 변백현씨 와 있던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진짜구나, 결국 변백현이랑 함께 드라마를 촬영하게 되었다.
"스탭들한테 인사하고 있던데, 오빤 안해요?"
"내가 왜."
"왜긴, 그래도 드라마 촬영하는 동안엔 거의 가족들인데."
"난 저런 가족 둔 적없어. 그리고 쟤는 필요하니까 저러는 거겠지. 나 같은 톱스타는 저런거 안해도 알아서 다들 기어주는데 내가 저럴 필욘없잖아."
"헐… 그렇게 자만하다가 훅 가요."
훅 간다는 말을 하는 코디를 슬쩍 째려봐주니 내 눈을 피하며 모른 척한다. 코디를 짜르던가 해야겠어. 쟤는 너무 직설적이야. 맘에 안들어.메이크업까지 다 끝내고 촬영을 하려 밖으로 나가니 문 앞엔 변백현이 서 있었다.
사실 홈에서 연재하는건데 홈에 아무도안와서ㅎ.. 여기 링크걸면 안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