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규 & 윤정한 ] 온에어 로맨스 (ON AIR ROMANCE) 제 1화 “ 나참.. 어이가 없어서. ” “ 죄송합니다.. ” “ 당신네 자매는 주로 이렇게 생각 없이 행동합니까? ” “ 제가 어떡하면 될까요.. ” “ 어떡할게 뭐있겠습니까. ” “ ...” “ 김진희돌아오시면 이제 그만 나오셔도 된다고 전해주시죠.” 뒤에서 고래고래 자신을 부르며 반쯤 울먹이는 내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는지 한번을 돌아보지 않고 가버리는 저 나쁜 놈 때문에 그만 털썩 주저 앉아버렸다. “아.. 이제 난 죽었다. ”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날 모두들 불쌍히 쳐다보는 것 같아 아무렇지 않은 척 손을 탁탁 털며 일어나 방송국을 뜨긴 했으나 역시나 전혀 괜찮지 않다. 이거 분명 X된 거다. 그것도 아주. 이게 다 어찌된 일이냐 묻는다면 꽤나 복잡한 일이다. 언니가 갑작스레 휴가를 떠나며 나에게 자신의 간단한 업무를 맡기고 갔음에서 시작됐는데, 무려 4년 동안 심야라디오 〈몰래 듣지 마요>를 진행하며 밤낮으로 일에 쫒기는 덕에 제대로 된 휴가라곤 못 가본 언니는 아픈 날에도 열이 펄펄 나는 몸을 이끌고 출근을 했다. 그 정도로 본인의 라디오에 대한 애착이 강한 언니가 얼마 전 집에 돌아와 새벽까지 채택할 사연을 읽다가 무슨 심금을 울리는 사연을 읽었는지 자기 자신에게로 떠나는 여행을 가야겠다며 눈물을 글썽이다 쪽지하나만 남기곤 이틀 뒤 말도 없이 홀연히 떠나버렸다. [ 라디오 2회분 신청곡 리스트 언니 책상 위에 있어~! 사연 읽고 나면 스튜디오에 언니 컴퓨터 어딨는지 알지? 거기에 USB만 꼽으면 되고. 보답은 역시 남자야 이번엔 제대로니까 연락받아~ 또 째끼면 죽어 ^^ ** “ 그래서 진희 많이 아파? 으이구, 그렇게 안 쉬고 일 할 때부터 알아봤지 내가” “ 네? 아, 그러게 말이에요 하하.. 하 ” “ 1부만 끝나면 어서 가봐요. 혹시 피디님이라도 오시면 우리까지 다 혼나. 나머진 내가 할게 ” “ 아! 네! 감사합니다. 여기에 꼽는 거 맞죠? ” 언니는 왜 안 왔냐는 작가 언니 물음에 차마 일은 내팽개치고 급작스런 여행을 떠났다하기엔 입이 안 떨어져 심히 아프다 거짓말을 쳐버렸다. 그 후부터 괜히 혼자 찔려서 땀이 삐질삐질 나는게 참 곤욕이었다. 거짓말만 치면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도 죄다 죄야. 애도 아니고.. 예전에 밤늦게까지 일하는 언니를 위해 간단한 야식을 사들고 스튜디오에 들렀다가 이것저것 언니에게 캐물었던 기억을 되살려 USB를 이리저리 꼽아보다, 후끈거리는 얼굴이 좀처럼 가라앉으려 하지 않아 화장실에가 찬물로 세수를 하고 오니 시간은 꽤나 촉박해져있었다. - 네, 아이구.. 1713님 사연 참 많은 것을 되돌아보게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DJ까지 울리고 말이에요. 하하 저 오늘 왜 이리 주책인지, 아무리 칠흑 같은 어두움 속이라도 한줄기 빛은 있기 마련이죠? 위로의 의미로 휴지세트!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럼 민망하니 신청곡부터 바로 듣고 오겠습니다. Eric Benet이 부릅니다. Cracks Of My Broken Heart. 속닥거리며 사연이 끝나가니 서두르라는 작가언니의 손짓에 헐레벌떡 뛰어가 주머니를 더듬거려 USB를 꼽고 서둘러 재생버튼을 눌렀다. 과연 어떤 노래가 나올까 기대하던 찰나에 그만 온 몸이 얼음처럼 얼어버렸다. “ 여주씨 무슨 일이에요! 어떻게 된 거야! 꺼 빨리!” “ 헉, 어 이게 왜 이러지 어, 어떡해” “ 나와요! 그러고 서있지만 말고! ” 전혀 예상치도 못한, 사연에 맞지도 않는 최악의 노래가 흘러 아니 터져나와버린 것이었다. 당황해 이리저리 아무 버튼이나 눌러댄 탓에 그만 하이라이트 부분까지 가버렸고 흥의 최고치를 달리는 노래는 내 상황은 전혀 나이스 하지 못한데 아주 나이스와 두근두근두근 워를 연신 외쳐대며 나의 달팽이관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목적지 없이 움직이는 내 망할 손 덕분에 어느새 내 USB 속 나의 숨겨왔던 내적댄스를 감추기 힘든 노래들이 주체할 수 없이 터져 나왔다. 하.. 나 진짜 어떡해...! “아, 아이구.. 놀라셨죠? 우리 몰래 듣지 마요 애청자 분들... 오늘은 광고 먼저 듣고 오겠습니다! 신청곡은 2부에 이어서~ “ 결국 이 대참사는 급하게 광고를 재생함으로 마무리 되었고, 턱도 없이 짧은 1부를 거쳐 바로 2부가 시작되었다. 해프닝으로 생각해달라며 청취자들에게 사과하는 DJ분을 보고나서야 상황 파악이 차차 되기 시작하는 것이, 온 몸이 확 달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집을 나설 때 순간 방에 불을 켜고 나온 것이 생각나 그만 손에 쥐고 있던 USB를 현관 앞 탁자에 잠시 두고, 나올 때는 그 옆에 있던 것을 들고 온 것이었다. 하필이면 언니와 베스트셀러 작가 전시회에 함께 다녀와서 받은 USB라 디자인마저 똑같아 버린 것이 화두였다. 모양만 달랐어도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까진 안 왔을 거야. 잔뜩 상기되어 버린 얼굴로 발만 동동 굴리고 있었을까. “ 여주씨 나 좀 봐 ” “ 네 ” “ 대충 큰일인거 알 정도의 눈치는 있을 거라 믿어 ” “..." " 내일 피디님께 가봐. 나도 어떻게 해 줄 수가 없다. 진희한테도 잘 말하고 ” ** - 똑똑똑 " 김피디님, 안에 계실까요?.. “ 문 앞에서 사과 할 멘트를 한 참을 연습하다. 큰 맘 먹고 용기를 내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자 눈앞에 보이는 남자는 꽤나 어려보이는 외모임에도 짙은 쌍꺼풀이 진 눈과 구릿빛 피부에서 묻어나오는 카리스마가 상당해 분위기로 나를 압도하는 것만 같았다. “ 뭘 그리 변태같이 쳐다봅니까? ” 정적을 깨고 처음 던진 그의 한 마디는 초면에 하는 말이라기엔 강도가 커 머릿속에 정리해 두었던 준비한 멘트까지 까먹게 만들어버렸다. 흠칫 놀라 어버버거리자 답답하다는 듯이 신경질적으로 쳐다보는 시선에 또 한번 쫄아 정신을 차리곤 두서없이 죄송하다는 말만 연발하였다. “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 “ 사과 하는 방법 모릅니까? ” “ 네? ” “ 당신은 누구고 무슨 잘못을 했으며 이렇게 책임지겠다.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고 두서없이 죄송하다고만 합니까? ” 침입자가 자수하러 온 것도 웃기다며 코웃음을 치고 다가오는 그는 피지컬이 상당했다. 성큼 성큼 걸어오는 꽤나 큰 키에 또 한 번 압도당해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며 고개를 숙여버렸다. 잠시만 근데 단어 선택이 왜 저래? 내가 왜 변태고 침입자야?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로 내 앞 소파에 보란 듯이 털썩 앉아 시계를 차며 툭툭 던지는 그의 말투는 흔히 말해 4가지가 없었다. .... “ 제가 어떡하면 될까요?.. ” “ 어떡할게 뭐있겠습니까 ” “ ...” “ 언니 분 돌아오시면 이제 그만 나오셔도 된다고 전해주시죠.” “ 저, 저기 김피디님.. 정말 한번만 기회를 주시면 제가 어떻게든.. ” “ 됐습니다. 그나마 남은 애청자 분들도 이번일로 다 떠나가게 생겼는데요. 뭘, 4년이면 할 만큼 했잖아요? 벌써 다른 라디오에 뒤쳐진지는 오랜데. 이참에 잘~ 됐습니다. 그동안 오랫동안 애착 하나로 이어온 작가 분들이라 차마 말을 못 꺼내 저만 된통 눈치 봤지 나 참..., 근데 뭐 보아하니 동생한테 대충 맡길 만큼 이젠 직업의식도 없어진 것 같네요. 그러니 여기서 그만 끝내죠. 오케이? ” 또 다시 달팽이관을 의심하며 순식간에 지나간 말을 곱씹어보았다. 폐지라뇨? 순간 내가 아는 폐지라는 단어가 쓰고 버리는 종이 외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단어이기를 바라며 멍하니 서있었다. 내 실수로 하나로 라디오 하나가 날아 간 거야? 벙 찐 채로 눈만 뻐끔거리니, 원래부터 폐지할 생각이었다는 듯 비아냥거리며 말을 이어가는 그를 쥐어박고만 싶었다. 지금 저한테 다 된 폐지에 숟가락 얹었다. 뭐 이 말입니까?, 딱 봐도 나보다 어린 것 같은 사람이 당신네 당신네를 거들먹거리며 무례하게 치고 들어오는 말투에 분노 게이지가 차츰 쌓여갔지만, ..후 여기선 그저 나는 을 그쪽 너 피디님은 갑이니, 아니 무엇보다 이 소식을 들으면 뒷목 잡고 쓰러질 언니의 얼굴이 떠올라 미칠 지경이었다. 무릎이라도 꿇을 마음으로 한 번 더 죄송하다, 봐달라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긴 다리로 문을 열고 훅훅 걸어가는 뒷모습에 대고 아무리 피디님을 외쳐보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는 모습에 궁시렁 거리며 방금 애인에게 차이고 온 비련의 여주인공 마냥 터덜터덜 걸어 걸어가고 있었을까. - ♬~ ♪ 벌써 언니의 귀에 들어간 건지 요란하게도 울려대는 전화기를 조심스레 들어보니. 웬 모르는 전화번호였다. 피디 너, 너 이 새끼 혹시 나 침입자로 신고해서 지금 형사한테 전화오고 그런 거 아니지?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으니 뜬금 세상 다정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 깜짝 놀라 전화를 잘못 거신 것 아니냐는 말을 하려던 참이었다. “... 여보세요? ” “ 아, 안녕하세요. 김여주씨 연락처 맞죠? ” “ 네? 아 네 맞는데.. 무슨 일로 ” “ 오늘 어디서 몇 시에 만날까요? ” 네? 뭐래는거야 이 사람 누구야... 다시 한번 액정 속의 번호를 확인하고 누구냐 물으니, 오늘 소개받기로 한 남자란다. 나 그런 거 한 적 없는데..?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뻔뻔스레 말을 이어나가는 전화 넘어의 누군가(?) 덕에 한 참을 멍을 때리다. 순간 언니가 남긴 쪽지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 아.. 하고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건 분명 언니의 만행이다. 초등학생 때 이후로 남자친구라곤 사겨본 적 없는 나에게 연애 좀 하라며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언니 덕에 몇 번이고 소개팅 제의를 받았지만, 빈번히 거절한 대가로 아직도 초등학생 때 사귄 순영이를 못 잊어서 그러는 것이냐 귀에 딱지가 지도록 놀림을 받았다. 아니 왜! 그럴 수도 있지, 뭐, 나 그때 순영이 진짜 좋아했다고. 찐럽이었어. 순영아 잘 지내니? 아, 절대 어디 가서 모태솔로라 말할 수 없어서 그러는 건 아니다. 응 .. “ 여보세요? 여주씨? ” “ 아, 네 듣고 있어요. ” “ 이따 6시쯤 시간 괜찮으실까요? ” “ ..하하, 아이고 이를 어쩔까요, 제가 오늘 그만 급한 사정이 생겨서.” “ 아.. 급한 일이신가보네요. 정 그러면 어쩔 수 없겠네요.., 채비 다 해뒀는데,, ” 연신 괜찮다고 하는 그의 목소리는 전혀 괜찮은 것 같지가 않았다. 뭐야 동정표 사는데 전문이야? 이렇게 나가면 마음 약한 내가 거절할 수가 없잖아 이 남자야! 아직 3신데 벌써 채비까지 해두었다는 그의 말을 믿어야하나 고민하다, 확인 전화까지 하는 그를 보아하니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 6시라 하셨죠? 네, 아. 그럼 거기서 봬요 ” 근데 내가 지금 소개팅 할 땐가.. ** 하.. 머리라도 하고 올 걸 그랬나? 막상 오고 보니 집에서 보았을 때 보다 꼴이 말이 아닌 것 같아 괜시리 마음이 찜찜한 것이 심기가 불편했다. 나름 집에가 급하게 머리를 감고 평소엔 하지도 않던 화장을 치덕치덕해보았다. 작년에 산 후 한 번도 꺼내보지 않은 새 원피스까지 입고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움직여보니 그 모습이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으휴, 내가 꾸미긴 뭘 꾸며.. 내 노력은 여기까지! 될 대로 되면 어떤가. 어차피 잘 해볼 것도 아닌데, 하며 다시금 서툴게 올라간 화장을 지우고 맨투맨과 청바지를 입고 대충 나선 것이었다. 너무 꾸민 티 나면 그것도 쪽팔려, 맞아. 하곤 합리화 한 후 먼저 시킨 음료나 쪽쪽 팔고 있었을까. “ 여주씨? ” “ 네, 네? ” 조심스럽게 손끝으로 어깨를 툭툭치는 손길에 뒤를 돌아보았다. 나의 시선 끝에 닿은 얼굴은 나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얗고 투명한 피부위에 가볍지만 깊게 걸친 쌍꺼풀, 그리고 그 밑으로는 깔끔하게 떨어진 콧망울과 어느 하나 흠 잡을 곳 없는 듯이 예쁜 이목구비의 종점을 찍는 눈 밑의 보일 듯 말 듯 한 작은 점까지.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제발 좀 꾸미고 올 걸, 진짜! “ 제 소개가 늦었죠, 윤정한입니다.” “ 네? 아, 아니에요. ” “ 사실 오늘 원래 오기로 한 친구가 못 나와서 대신 나왔습니다.” “ ... ” “ 아, 그렇다고 억지로 온건 절대 아니고요, 글 쓰는 거 좋아하신다 하셔서.. ” “ ... ” “ 음 그러니까, 지극히 저의 의지였습니다.” 물어보지도 않은 말을 술술하는 이 잘생긴 남자는 능숙하게도 말을 이어나갔다. 어, 작가 윤 좋아하시나 봐요? 그의 가방고리엔 이번 신간도서에 한정 1000명에게만 주는 말린 꽃잎 열쇠고리가 꼽혀있었다. 헐.. 나 놓쳐서 못 받았는데 부러워요. 저도 좋아하거든요! 한껏 신이나 물으니. 작가 윤을 아냐고 되묻는 남자였다. 이 남자 봐라 “ 에이, 윤을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요! 우리나라 최고 작간데. 혹시 윤 작가님 첫 작품도 아세요? 그 책이 제가 대학교 들어와서 제 돈으로 처음 산 책이거든요.. 하도 읽어서 제가 좋아하는 부분들 몇 페이지인지 아직도 다 기억해요. 이젠 닳아서 너덜너덜 해졌는데 ” “ 아, 네 알기야 알죠. ” “ 우와.. 완전 저랑 같이 골수 팬 이신가 봐요. 윤 작가님 글 보고 영감 받아서 쓴 글도 많거든요 특히 어, 제 작년에 발행 된 `그래도 울지 마’ 아세요? 거기 17페이지에 ..” “ 사람들은 다들 겉으로만 바람이 차지 않냐 물어봐 그 부분이요? ” “ 사람들은 ㄷ.. 헐, 대박 제가 윤 작가님 팬 중에 일등인 줄 알았는데 정한씨도 대단하시네요. 이걸 어떻게 알았지? ” “ 하하.. 저도 그 부분을 제일 좋아해서요, 글 쓰시는 분이신가 봐요. ” 윤 작가님의 이야기에 그만 흥을 감추지 못하고 혼자서 침 튀기게 이야기 하는 내 입을 막은건 글 쓰시는 분이냐는 질문이었다. 아, 국문학과 졸업하기는 했는데, 그냥 작가 준비생이에요. 말이 준비생이지.. 그냥 백수?죠 하하..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말끝을 흐리자 원래 글 쓰는 사람은 프리랜서 아니겠냐며 비활동기엔 누구나 백수라며 어색한 위로를 건네던 그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 왜, 왜 웃으세요? ” “ 아니에요. 되게 유쾌하신 분 같아서요. 계속 그 작가분 이야기만 하실 거 에요? 저 점점 섭하려 하는데.. ” “ 헉, 제가 너무 제 이야기만 했죠.. ” ” “ 아이 농담이에요.. ” “ ... ” “ 그리고 이거 열쇠고리 가지세요. ” “ 저요? 정한씨 안가지고요? ” “ 네, 저는 하나 더 있어요. 대신 다음에 기회만 되면 여주씨 글 꼭 보여주기로 약속해요. ” ** 집에 돌아오자마자 옷도 갈아입지 않고 이불 속에 들어가 도무지 가라앉지 않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한참을 팔딱 거리다 그만 잠이 들었나보다. 눈을 뜨니 해가 중천에 떠있는 것이 너무 오래 잔 것 같았다. 하긴.., 어제 한 번에 너무 많은 일 들이 일어났으니. 눈 앞에 보이는 어제 받은 열쇠 고리를 달랑달랑 흔들다 눈꺼풀이 무거워져 다시 눈을 감았다. 음, 윤정한이라.. 그러고 보니 직업도 못 물어봤네.. 생긴 건 딱 무슨 아이돌이나 배우 같이 생겼던데, 글 쓴다 그랬나?.. 그냥 연락 해볼까? 에이 아니야.. 일어난 지 5분이나 지났음에도 눈이 도무지 떠지지 않아 머리나 긁적거리며 어제 만난 그 남자에 대한 궁금증으로 머릿속을 채워나가고 있었을까 연달아 울려오는 초인종 소리를 들으며 뜨일 줄 몰랐던 눈을 천천히 떠냈다. 반쯤은 눈을 감고선 눈가를 비비며 누구세요?-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여니, 나야, 빨리 문 열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헉, 언니?.. 이렇게 빨리 오는 거였어? 문은 안 열고 헐만 반복하는 내게 빨리 열라 소리치는 언니의 목소리가 상당히 다급해보여 버선발로 나가 문을 열었다. 언니에게 뭐라고 용서를 구할지 머리에 연기가 날만큼 굴리고 있었을까 굉음을 내며 나를 안아들어 부둥부둥 폭풍뽀뽀 일명 궁디팡팡을 날리는 언니의 갑작스런 행동에 성급히 언니를 떼어내자 영문 모를 말만 이어가는 언니였다. “ 다음주 게스트로 작가 윤 섭외했다며!! ” “ 뭐? 누구? 나 그런 적 없ㄴ...” “ 덕분에 우리 라디오 당분간은 폐지 걱정도 없겠어, 장하다 장해 ” “ ... ” “ 2부는 너가 쓴 글로 진행하고 싶으시데, 그새 서로 글도 봐주는 사이야? ” 남자 안 만난다더니 뒤에서 그런 대단한 분과 만나고 있었냐며 세상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콕콕 찌르며 정체 모를 춤을 추는 언니는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되어 멍만 때리는 나에게 모르는 척 하지 말라며 어제 새벽에 이미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아니 대체 무슨 연락?!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고 방방 뛰고 나는 언니를 진정시키곤 급급히 물었다, 데뷔 때부터 무려 3년 동안 작품 활동을 제외하곤 그 어느 매체나 인터뷰도 나오지 않는 작가 ‘윤’이 직접 출연 의사를 보내왔다고? 뭐야 어제까지만 해도 팬 카페에 외계인설 올라왔는데? 갑자기 언니 라디오에? 그리고 그 연락 속에는 당당히 내 이름 석 자가 들어가 있었다는 말이지? 이게 무슨 아무 근거 없고 개연성 없는 이야기야.....그 분이 뜬금없이 일개 팬인 나를 왜? 나 모르는 새 누가 팬 미팅 같은 거 지원한거야? 아니 애초에 윤님은 팬 미팅 자체를 안하는.. 그리고 내가 쓴 글이라니? 내 USB는 여깄는ㄷ... “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시끄러 기집애야, 모르는 척 하기는.. 어제 만났다며 USB도 가지고 있다더라. 아무리 그래도 언니한테 말도 안 해주고 ” 어? USB? 그 때서야 주머니를 뒤적거리니 분명 갈아입지 않은 옷에 있어야 할 것이 있지 않았다. 그걸 작가 윤님이 가지고 계신다고? 헐, 설마.. 빛의 속도로 어제 집에 와 퍼질러 자느라 확인 못 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 집은 잘 들어가셨나요] [ 글은 읽어 볼 생각은 아니었는데... ] [ USB를 두고 가셔서요 ] [ 여주씨 또 뵙고싶습니다. ] ....작가 윤이 윤정한씨야?!.. ** “ 이미 반응 난리난거 안보여? 기사까지 났어 임마!” “ 아니, 폐지하기로 결정난건데 뭘 다시 살린다는 말이야 형.. ” “ 단독으로 우리 라디오에만 온다는데 그럼 이 기회를 안 잡아? 그 새 마음 바껴서 다른 데로 가버리면 너가 책임 질 거야?. 살려! 이 라디오 다시 살려! 무조건! “ “ 진짜 이럴거야? ” “ 그래 이럴거다. 짜식아! 그리고 이참에 그, 걔, 진희씨 동생 작가로 앉히던가 섭외팀으로 넣어 무릎 꿇고 빌어서라도 같이 일 나오게 해 ” “ ....아 형! 잠시만 그건 진짜 아니야, 뭘 믿고!” " 김여주 그 사람이라도 잡고 있어야 윤 그 자식 한 달에 한번 고정 DJ라도 해달라고 말이라도 꺼내보지! 걔 섭외가 어디 쉬운 줄 알아? 너도 매번 까여봐서 알거 아냐! 끊어 임마. ” “ 그 얘긴 또 ㅇ....” 형! 여보세요? 하.. 씨 끊긴지 한참이나 된 휴대폰을 대고 아무리 불러보지만 묵묵부답이다. 상황이 무슨 이렇게 전개되나 싶었다. 고작 베스트셀러 작가 섭외 한번 했다고 상황이 이렇게 뒤집힌다는 게 말이나 되? 아무리 어려도 나 김민규는 엄연히 PD란 말이다. 내 권한도 무시 못 한다고! 아무리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지만, 작가 한명을 그냥 데려와 앉혀? 그리고 외계인으로 살 거면 영원히 외계인으로 살던가, 결국 이렇게 자기가 먼저 코빼기 비칠거면 내가 예전에 사정사정 할 때는 대체 왜 안 나온 거야? 하여간 신비 컨셉 한 번 잘 잡았네, 윤 그 자식. 머릿속엔 한번만 봐달라며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던 그 여자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하, 진짜 돌겠네. 애꿎은 휴지만 이리 찢고 저리 찢었다. 형.. 근데 그 여자는 진짜 안된다구요.. ** “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 ” “ 라디오 폐지건은 취소하는 걸로 합시다. ” “ 네? ” " 거, 참 원래 그렇게 사람 말을 한 번에 못 알아듣습니까? ” “ 그리고 내일부터 그쪽 언니분이랑 김여주씨 같이 출근하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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