妖艶なる絆の響き (요염한 애정의 울림)
" 타겟, 목표 잡았습니다. "
" ...알겠습니다. "
경수는 조용히 귀에 꽂힌 검은 빛을 발하는 통신기를 가볍게 누르고 나지막히 말했다.
" 타겟 OOO, 14층 5구역 복도에서 추격 중. 안전하게 잡아라.
괜히 상처 내서 골머리 썩지 말고."
그리고 그녀가 바삐 돌리는 발걸음들 사이 사이 여유롭게 그녀를 기다리는
검은 정장의 남자들.
" 능력도 좋다, 그 조그만 기집애를 어떻게 찾았냐? 하여튼 13층 5번 연결통로 이상 무. "
그리고 찾아온 정적. 쉴 새 없이 통신기를 통해 들려오는 멀직한 발걸음 소리.
경수는 나지막히 그를 부른다.
" 변백현 왜 대답 없냐. "
그리고 이내 그런 그가 눈살을 찌푸린 채 무엇을 질책하기도 전에
백현은 말을 가로채듯 가볍게 대꾸한다.
" 찾았다, OOO "
그리고 그는 맞은편 유리문으로 보이는 흐릿한 갈색 실루엣을 보며 웃고
그녀의 앞에 몸을 틀어 등장한다.
" ...비켜.. "
" 왜 이렇게 쉽게 잡힐거면서 매일 같이 도망치는지 몰라, 아가씬. "
그녀는 뒷걸음질을 치고, 그는 천천히 다가선다.
" 비키라고. "
호신용으로 그가 준 것인지 그녀의 주머니에서 익숙하게 나온 잭나이프.
백현은 가소롭다는듯 웃으며 말을 잇는다.
"아가씨가 매번 이렇게 쓸데없는 몸부림을 치니까, 우리 같은 능력있는 인간들이
이런 일로 시간을 소비하잖아. "
" 잡아달라고 한 적 없어. 시간이 아까우면 날 잡지마. "
그 말에 그는 웃는다. 그리고는 귀찮다는 듯, 태연히 뒷머리를 털며 다가서서 팔을 뻗으며 말한다.
" 그건 안돼. 왜냐면... "
" 이거 놔, 놓으라고! 내가 못 찌를 것 같아? 어? "
그리고 들려오는 둔탁한 소리에 경수는 인상을 찌푸린채 묻는다.
" 변백현, 변백현! "
그리고 그런 부름이 무색해질 정도로 태연히 통신기를 넘기고 흘러들러오는 유연한 목소리.
" 우리한테 목숨 같은 보스한테 목숨 같은 사람이 바로 아가씨거든, 안타깝게도. "
그렇게 말하는 그의 손에는 얇고 흉터가 가득한 손목이 쥐어져있었다.
잭나이프는 벽에 꽂혀있었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 어쩌나, 오늘도 잡혀서. "
텅빈 동정이 가득한 말투로.
한때, 나만 사랑해주고 한 눈 팔지 않으며 내 아버지처럼 피붙이들에게 손찌검 하지 않는
헌신적인 사람을 그리워했다.
그리고 어느날, 아무 것도 없이 입에 풀칠하기 급급했던 내 앞에 꿈에 그리던 남자가 나타났다.
하지만 나는 몰랐었다. 헌신적임도, 적당한 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 사랑도 적당해야 달콤하다는것을.
" 이거 놔, 내가 병신이야? 아파죽겠으니까 놔! "
" 그러게 왜 매번 도망쳐서 귀찮은 일을 만들어? "
" 냅둬라, 쟤 저러는게 한 두번이냐? "
" 보스도 독하지만, 너도 참 독하다. 얌전히만 있으면 상석에서 놀고먹는건데 참... 무식해서 그런가?"
내 신경을 거칠게 박박 긁어대는 소리들에 뒤에 여유롭게 서있는 놈들을 노려봤다. 거머리 같은 것들.
"입 다물어. 나 귀 아파, 시끄러워 죽겠어. "
그럼 다들 투덜거리면서도 입을 다문다. 내가 아프다면 그들은 꼼짝 없이 복종해야 한다.
보스의 목숨이니까.
" 엄살도 심하지. "
" 뭐? 도경수, 너 지금 뭐라고... "
" 아가씨, 그만하고 들어가지? 또 문 앞에서 입 아프게 굴지 말고. 우리도 뛰느라 다리 아파 죽겠거든. "
그 말에 눈을 치켜뜨면서도 신경질적으로 문고리를 잡아 당겼다. 그러시겠지, 밤낮 안 가리고 나 잡으니까.
뒤틀린 심보로 들어가면 쓸데없이 공허하게 넓고 화려한 사무실의
정중앙 책상에 앉아 있는 익숙한 정수리.
" 김종인. "
" 벌써 왔네? 좀 걸릴줄 알았는데. "
저 놈은 괴물이 틀림없다. 번번히 쓴 말을 뱉으며 도망치는 애인에게 태연하며, 여전히 손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
아, 벌써부터 숨이 막혀오려 한다. 나를 다정히 보는 저 두 눈은 충분히 숨통을 틀어막는다.
너무 따뜻해서.
" 이번엔 내가 준 잭나이프도 썻다며, 벌써 사람도 찌를 줄 아는거야? 역시 너답다. "
역시 너 답다라니, 듣기 좋은 말은 아니다. 미간을 가득 좁힌 채 가까이 다가가 내려다보면.
" 근데 앞으론 휘두르지마. 애들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 "
" 쟤네들이 다치던 말던, 나만 안 다치면 그만이야. "
" 매정하네, 아가씨. 나 아까 팔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는데. "
엄살도 심하다. 그보다 더한 피를 매일 같이 남의 속에서 꺼내 드는 너가 고작 생채기 났다고 아플 놈일까.
지겨운 치근거림에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그를 내려다보다 몸을 돌려 나가려 하면 그는 나지막히 말한다.
" 그리고. "
"......."
" 그만 도망쳐, OOO. 봐주는 것도 이젠 한계야. "
싸늘한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무거운 문을 닫고 지긋지긋한 다섯을 사방으로 둔 채 걸음을 옮기면
" 보스, 그만하면 많이 참은 거다. 너도 이제 그만해. "
" 그래 보스 신경 긁으면 너만 손해야. 또 독방에서 갑갑하게 살기 싫잖아. "
" 들어먹는 눈치는 아니지만, 참고는 해둬라. "
충고에 그저 허탈하게 웃을 뿐이었다. 보스라며 목숨 같은 존재로 올라선 김종인의 구속은 어디까지나 구속일뿐이었다.
이렇게 가볍게 넘기려 들어도, 가끔 보는 그의 눈빛은 살벌하고 금방이라도 끔찍했던 시절로 되돌려놓을 것 같다.
그래서 난 늘 도망친다. 그 순간이 꼭 오지 않더라도, 그 순간을 두려워하며 살지 않게 되도록.
멀거니 화려하게 장식된 복도를 걷는데 옆에 잠자코 있던 변백현이 붕대로 지혈된 팔을 내밀며 말했다.
" 이거 좀 아프다. 무슨 여자가 그렇게 무식하게 힘이 세? 아까 나 진짜 찔려서 죽는 줄 알았어. "
그러면서 호 해줘, 라고 덧붙인다. 그럼 나는 입술을 가까이 대고 이내 손으로 살짝 피가 묻어난 곳을 때린다.
" 아! 역시 매정해, 아가씨는 죄책감도 없어? 내가 다쳤는데. "
" 없어, 새끼야. "
전혀 없어. 왜냐면, 난 계속 도망칠거거든. 그리고 도망쳐 이 곳을 벗어날 때가 다가온다면.
너희들과 붙어버린 이 짐 같은 정도 함께 버려야하거든.
엘레베이터 문 앞에서 멈춰서서 천천히 도착한 엘레베이터를 직시했다. 여전히 칭얼대는 변백현을 옆에 두고.
그렇게 다섯에게 둘러싸인 채 천천히 열리는 엘레베이터 안에는,
" 어머, 또 잡혔나봐요? "
오늘 일진 안 좋다. 껄끄러운 인간들을 도대체 몇 명이나 만나는건지. 그녀는 익숙하게 나를 훑어보며 스쳐간다.
그리고 태연히 말하고는 저 편으로 사라져간다.
" 언젠가 성공하길 빌게요. 빠르면 빠를 수록 나한테 좋지만. "
그럼 나는 속으로 대꾸한다.
그건 내가 바라는바다, 이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