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 변백현 또 여자 갈았대. "
" 그 새끼가 그렇지. "
박찬열이 하는 말에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또 여자를 갈았나, 저번에 사귄 여자친구와 꽤 오래 가는 듯 싶었더니 결국 헤어졌나 보다. 뭐... 길어봤자 5일이지만. 변백현은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습관이 하나 있는데, 여자친구를 바꿀 때마다 새로 사귄 여자친구와 찍은 사진을 메신저 프로필 사진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메신저를 켰더니 역시나 새로 사귄 여자친구와 다정하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사진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매너 없네, 변백현.
" 내가 보기에 이번 여자도 일주일 못 간다. "
" 그래? 예쁜데. "
그래, 예뻤다. 변백현이 만나는 여자들은 다들 예쁘고 귀여웠다. 남자인 나와는 다르게 예쁜 얼굴에, 변백현이 마음에 들어하는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고등학교 입학식 때부터 시작되었던 내 짝사랑을 포기하게 만드는 이유였고, 나는 수긍했다. 나는 여자가 될 수 없었고, 변백현의 여자가 될 수 없었다.
" 비 올 것 같다. "
비? 찬열의 말에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거기 말고 니 얼굴에 비 올 것 같다고. 이내 하늘이 뿌옇게 변했다. 참으려고 했던 눈물이 결국 볼을 타고 한 줄기, 두 줄기 그렇게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찬열은 말없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찬열의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고, 이런 박찬열은 내가 그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또한, 내가 그를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까지 전부 알고 있었다.
" 변백현 지금 어디 있어. "
" 난 몰라. "
" 니가 제일 많이 붙어 다녔잖아, 모른다는 게 말이 돼? 꼴에 친구라고 그런 개자식을 감싸주고 싶니? "
눈물이 멈추길 기다렸다는 듯이 백현의 전 여자친구가 나타났다. 짙은 화장에 짧은 치마, 그리고 독한 향수 냄새. 눈 앞이 아찔해져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내 앞의 여자는 당장이라도 날 한 대 후려칠 기세로 서있었고, 나는 정말 백현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백현과 나는 잘 붙어 다니는 것 같으면서도 함께 다니지 않았다. 나는 조용한 곳을 좋아하지만 나와 정반대인 백현은 시끄러운 곳을 좋아하기에 우리는 좋아하는 장소도 늘 달랐다.
" 진짜 모르는 애한테 하루종일 물어봤자 소용없으니까 괜히 화풀이 하지 마. "
옆에 있던 찬열이 여자를 밀어내며 말했다. 허, 어이가 없어서. 여자는 그런 찬열이와 나를 노려보더니 바닥에 침을 탁 뱉고는 뒤돌아 사라졌다. 더럽게. 여자가 뱉은 침에서 시선을 떼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게? 그냥, 여기 있기 싫어져서. 찬열은 더 묻지 않고 내 옆에 섰다. 원래 박찬열과 걸으면 조용할 날이 없었는데 오늘은 날이 날인지라 우리 사이엔 정적만이 맴돌았다. 변백현, 보고 싶다.
" 백현아, 나 와플 먹을래! "
" 와플? 그럼 근처 카페라도 가자. "
진짜? 우리 자기 짱이다! 여자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면 저 멀리 건너편에서 여자친구와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걸어가는 백현이 보였다. 시선을 돌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변백현이 너무 보고 싶었다. 다른 여자를 만들어도 좋으니까 그냥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다. 이게 간절한 내 마음이고, 비참한 내 마음이었다.
" 보지 마. "
" 아니, 보고 싶어. "
" 제발, 경수야. "
찬열의 말에 울컥,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내 착각이겠지만, 찬열이 내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려주기 전에 잠깐 백현과 눈이 마주친 것 같기도 했다. 정말 착각이겠지만...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변백현이 울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면 한 번쯤은 내게로 와주길 바랬다. 내겐 그의 관심이, 손길이 필요했다.
" 포기하자. "
귓가에 닿은 찬열의 목소리에 더욱 눈물이 났다. 포기해? 다리에 힘이 풀릴 정도로 마음이 쓰라렸다. 변백현이 나를 더럽게 볼까봐, 더 이상 친구로 옆에 두지도 않을까봐 무서워서 한 번도 말 못 했는데 포기해야 해? 도리질을 쳤다. 포기할 수 없었다. 2년이라는 시간동안 나는 바보처럼 변백현만 좋아했는데 어떻게 포기를 해, 말도 안 돼. 말하고 싶어. 백현아, 난 니가 정말 좋아. 이 한마디가 꼭 하고 싶어. 날 잡고 있는 찬열의 손을 뿌리치고 건너편으로 뛰었다. 착각이 아니었나, 나를 보고 있던 백현과 눈이 마주쳤다.
" 야, 도경수!!! "
" 경수야!!! "
아... 허공에 날려진 마지막 말을 끝으로 나는 잠시 백현을 보지 않기로 했다. 백현아, 나는 니 대답을 들을 자신이 없어. 그러니까 나 잠깐만 쉴게. 멋대로 고백해서 미안해, 더러운 마음으로 널 보고 있어서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 사랑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