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재생해주세요:)
"근데, 너 정진영이랑 사귀어?"
몇십번이나 들어본 질문이였다.
그런 질문을 들을 때 마다 정진영과 10년, 아니 거의 20년동안 친구였기때문이라고 그렇게 여겼다.
나와 정진영은 함께 보낸 시간만큼이나 서로에게 익숙해져있었고, 과감한 스킨십도 아무렇지 않게 했으니까.
그리고 나는 늘 '걔는 그냥 친구지, 내 부랄친구' 라고 답하곤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친구들의 질문에 조금 묘한 감정이 들었다.
"야, 대박. 정진영이 방금 000한테 하는거 봤냐? 쟤 다른 여자애들한테는 말도 잘 안걸잖아."
"그러게. 00아 걔 너 좋아하는거 아니야?"
걔가? 나를? 야 멍멍이소리 그만해.
예전처럼 화난척 받아낸 나였지만,
내 머리를 살짝 쓰다듬고 가는 정진영을 나도 모르게 의식하고 말았다.
바싹 말라버린 입술을 축였다.
교실 밖을 나가는 정진영의 모습이 보였다.
키가, 저렇게 컸던가.
다른 남자아이들과 장난을 주고 받으면서도 정진영은 자연스레 나에게 눈인사를 건넸다.
홀린듯 멍하니 쳐다보고있는 나를 보았는지. 친구는 팔짱을 끼며 나에게 직격타를 날렸다.
"10년친구 한방이다? 내가 보기엔 이거 그린라이트야."
그래. 좋아하는건 아니겠지만, 내가 싫은건 아닐거야.
그렇게 나는 너에대한 감정을 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모르게 행복한 꿈을 꾸었었지.
*
"오늘 야자 째자."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던 나를 깨운 사람은 다름 아닌 정진영이였다.
피곤해 눈이 풀릴 정도로 잠이 왔었는데, 정신적인 쾌락덕분이였는지 한순간에 눈이 번쩍 뜨였다.
정진영의 입술이 오물거렸다.
정진영 스스로도 몰랐겠지만 말할때마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는 그 버릇이 좋았다.
나도 모르게 정진영의 얼굴을 하나 하나 살피고 있을 때, 녀석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정진영은 입으로 똑똑, 소리를 냈고 그제서야 닿을락 말락한 거리에 녀석이 있다는걸 자각한 나는 의자를 뒤로 빼고 고개를 숙였다.
달아오른 내 얼굴을 들키기 싫어서였는지. 괜시리 손을 만지작 거렸다.
그 짧은 시간에 너는 어리둥절해있을까, 아니면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하고 나를 이상한 애로 치부해버릴까. 고개를 들면 대체 어떤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까.
정진영에 대한 생각이 뭉친 실타래마냥 내 머리를 꽉 채웠다.
10몇년동안 치대고, 싸우고, 화해하고, 놀며 나는 단 한번도 정진영에게 진적이 없었다.
아니, 사실은 나한테 져준걸 수도 있겠지.
그래서 이런 마음을 가질리 없다, 그렇게 부정했다.
그냥 오래 안 사람이 누군가에의해 빼앗겨 버릴까, 그게 두려워서 일거라고 내 자신을 세뇌했다.
연애도 더 좋아하는 쪽이 지는 거라 하지 않았던가.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연애라는 단어에 얼굴이 다시 화끈거렸다.
연애, 그 낯간지러운 말이 조금은 달콤하게 느껴졌다.
"이제 정신차렸네. 저번에 너가 찡찡대면서 먹고싶다고 떼썼던 치즈빙수있잖아, 거기 갈겸해서. 어때. 쨀거지?"
장난스럽게 웃으며 나를 보는 녀석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니가 쏘는거지?"
"말이 뭐 그렇게 흘러가냐."
정진영은 웃으며 내 볼을 잡아당겼고, 나는 째려보며 말을 이어나가려 했지만,
"으그 느, 느그 쓰는그드? 을읐느?"
그저 정진영의 박장대소감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그 날은 평소와 비슷하게 흘러갔다.
중학생때는 허구한 날 만나는게 정진영이였고, 고등학교1학년 때에도 같은 반이라 질리도록 봤지만, 2학년이 되며 반이 갈렸다.
2학년이 된 그 녀석과 나의 사이는 예전과 다르지 않았지만, 왠지모르게 멀어진 느낌이 들기도 했었다.
그러니까 정말 오랜만에 이렇게 방과후에 시간내서 만나는 거네.
그 생각 때문이였을까 남은 수업시간은 유난히 더 느리게 지나갔다.
내 눈은 계속 시계를 향했고, 시간이 흐를 때 마다 입가에 웃음이 번졌지만 가까스로 부정했다.
예전의 너와 다를게 하나도 없다고, 내 감정도 그렇게 너와 만났을 때와 같을것이라고.
하지만 그건 나의 자만에 불과했다.
*
나는 교복이 불편하다며, 사복 차림으로 갈아입은 너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더위를 잘 타지 않는 너인데, 유난히 더운 날씨탓에 입은 반팔 티셔츠 밖으로 드러난 팔의 근육도, 핏줄도
덥다며 옷을 잡고 부채질을 하면서도 내 옆에 붙어있는 모습도
장난으로 어깨동무를 했을 때 느껴지던 키 차이, 나보다 훨씬 큰 너의 손도
다른 아이들에게 하는 것과는 좀 다른, 장난끼섞인 너의 말투도, 길을 가다 살짝 흥얼거리는 네 허밍소리까지.
네 모든 것은 나를 설레이게 했고, 그것은 모두 너를 좋아하는 한가지 이유가 되었다.
초여름을 탓하며 상기된 얼굴로 너와 거닐던 마지막 거리는 설레임, 그 자체였음을.
그날 불어오던 서늘한 바람 한줄기를, 나는 지금도 느끼고 있다.
사담 |
안녕하세요(소금소금) 예전에 쓰다가 방치해놓은 빙의글인데 독방에서 어떤 소 덕분에 글잡에서 연재해봅니다. 이 똥손을 주체할 수 없으므로 포인트없이..ㅋㅋㅋㅋㅋㅋㅋㅋ! 읽고가실땐 댓글 하나만 달아주시면 정말 감사합니다(굽신) 하편은 조금 후에 업데이트 될 예정이에요. 독방 글이랑 조금 달라요. 약간의 수정을 했습니다. 사실 임시보관함에서 보고 충격먹었어요ㅋㅋㅋㅋㅋㅋ 아, 브금으로 쓸만한거 추천해주시면 저도 잘듣고 글에도 잘 활용할게요! 읽고가시는분들 모두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