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에 커텐뒤에서 몹쓸짓을 하느라 백현이 퇴근 후에 영양제 하나 넣어준다는걸 깜빡한거야. 집에가서 또 혼자 심장 콩닥콩닥하느라 잠들기 전까지 그걸 기억 못하다가 아침에야 생각났어. 나는 오늘이 쉬는 날이라 출근을 안해도 되는데 백현이는 이브닝이라고 했었거든. 그래서 출근하기 전에 자면서 수액 좀 맞구 가게 하려고 나는 근무도 없는데 병원으로 갔어.
병원도착해서 수액세트 챙기고 오늘 또 아침 먹을시간 없을 것 같아서 간단하게 죽이라도 먹이려고 죽이랑 챙겨서 당직실로 갔지. 백현이 당직실이 3인실인데 한명은 준면오빠고 다른한명은 백현이 밑에 들어온 인턴이라 딱히 눈치 안보고 들어가는 편이야. 게다가 그 모르는 사람은 당직실 잘 안쓴다하더라고, 가족이랑 바로 앞에 살고있다고그랬었나. 사실상 병원에서 사는 백현이랑 가끔 쪽잠자러오는 준면오빠가 제일 많이 쓰고있는거지.
"..백현아, 자?"
살짝 흔들면서 물어봤더니 미동도 없고 깨지도 않는거야. 불도 꺼져있고 창문도 암막 커튼으로 가려져있어서 아무것도 안보이는데. 불켜면 백현이 깰 것같고, 곤히 자는애 깨우기싫어서 휴대폰 불빛으로 살짝 비춘다음에 백현이 손목잡고 여기저기 보는데 아무것도 안보여.
사실 아무것도 안보이는건 아니고 내가 못찾겠는거야. 고군분투하면서 겨우 찔렀는데 수액체크해보니까 이게 안들어가..ㅠㅠ결국 꽂은 바늘 다시 뽑아서 신중하게 찾는데, 백현이가 갑자기 뭉기적거리더니 스륵 눈을 떠.
"..뭐해.."
"어..깼어? 다시 자, 백현아."
"..뭐하는데..도와줘?"
잠이 쏟아지는지 눈도 제대로 못뜨고 목도 잠겨서는 웅얼거리는데 내새끼 이렇게 피곤해서 어째, 안쓰러워서 계속 손으로 눈 감겼는데 자기 손등에대고 내가 꼼지락거리고 있으니까 손 뻗어서 방 불을 탁 키는거야.
"..이제 보이지?"
그러곤 자기는 눈부신지 반대쪽 팔로 눈 가리고 가만히 누워있어. 불키니까 백현이 손등에 바늘자국이 보이는데 엉엉. ㅠㅠ. 나레기 곱디고운 백현이 손에 바늘구멍 두개나 내게 생겼어. 백현이 한손으로 눈 가리고 있는게 너무 또 코피 터질것 같아서 멍하니 쳐다보다가, 미동없는 날 눈치챘는지 백현이가 슬쩍 손치우고 쳐다보는거야.
"왜 그러고 있어, 영양제 놔주러 온거 아니야?"
눈 살짝 뜨고 웃으면서 저렇게 얘기하길래 내가 바보처럼 아, 응..하고 다시 손등 더듬더듬하고 있었어. 자다깬목소리에, 눈도 못뜨고 씩 웃는게. 벌써 변백현한테 심장어택을 몇번 당한터라 내가 정말 의미없이 손등 짚고 있으니까 백현이가 다른 쪽 손으로 자기 손등 가만히 짚더니 내 손가락 끌어다가 손등 중간쯤에 갖다 놓는거야.
"여기."
나 또 어,응..하고 바보같이 대답한 뒤에 백현이가 일러준 곳 그대로 찌르고 수액체크한다고 가만히 서서 또 멍때리고 있었어. 그랬더니 백현이가 또 허리 일으켜서 자기 수액들어가는거 자기가 체크하고 내 팔 끌어다가 침대에 걸터앉히는거야.
"정신이 반쯤 나갔어요, 왜."
내 볼 손가락으로 꾸욱 누르면서 거는 말에 정신이 확들어서 백현이 딱 쳐다봤는데, 얘가 정말 아빠미소지으면서 쳐다보고있어. 아..오늘 백현이 안깨우고 수액연결하려 했는데. 이미 망했어.
"너 안깨우고..잘 때 하려고 한건데.."
"그랬어? "
"응.."
"그래서 이렇게 풀이 죽었어?"
"피곤하지, 자는데 깨워서.."
백현이 다시 재우려다가 일어난김에 뭐라도 좀 먹고 자는게 낫겠다싶어서 아까 사온 죽을 가져다 꺼냈어. 데워먹으라고 하려했는데, 지금 일어난 덕에 뜨끈뜨끈한 그대로 먹을 수 있겠다 싶었지.
"죽이야?"
고개 살짝 끄덕이고 바로 입에 한술 떠서 넣어주니까 잠도 덜깬애가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어. 맛은 또 느껴지는지 어, 호박죽이다..이러는데 정말 애키우는
엄마가 된 기분? 백현이 얼른 재우려고 죽 잽싸게 먹이고 다시 자라고 불 끄니까 내 손 잡으면서 가게?이러고 묻는거야.
"가지마?"
"나 잘 때까지만, 오늘 근무 없지?"
"알았어. 안갈게. 얼른 눈감고 코해."
피곤하긴 피곤했는지 내 손 꼭 붙들고 눈 감길래 몇번 토닥여줬더니 그 새 잠들어버린거야. 정말 5분? 아니 1분만에 잠든듯했어. 잡은 손에 힘이 풀리는 것 같길래
눈앞에 휙휙 손을 휘저었더니 고요해. 아무리 백현이만 들락거리는 당직실이라도 여기 오래있기는 좀 그래서 대충 죽 먹었던 그릇 정리하고 백현이 수액 잘 들어가나
확인한 뒤에 나왔지.
나는 집에가서 정말 잉여로운 시간을 보냈어. 낮잠도 자고 일어났다가, 아. 낮잠이 정말..원래 예전에는 낮잠이든 밤잠이든 잠들기 시작하면 3시간 이내에 깨는 법이 없었는데
병원생활하면서 1시간 단위로 깨는 게 습관이 되다보니 낮잠을 자려해도 꼭 1시간만에 깨버려. 오늘도 수면보충이나 하려했는데 한시간만에 깨버리는 바람에 여기저기 할 거 찾아서 잉여롭게 보내고 있었지.
매일같이 서있느라 고생해서 부어있는 다리도 풀어주고, 반신욕도 하고. 오랜만에 여자들이 할 법한 일들을 했어. 오만가지 잉여짓을 해도 시간이 남길래
정말, 정말 끝까지 하지 않으려 했던 책도 펴서 좀 보고 하니까 시간이 금방가더라고. 근무시간이 아닐 때 이렇게 알차게 보낸건 또 오랜만인 것 같아서
괜히 뿌듯해하고 있었는데 휴대폰이 울리는거야. 병원이면 정말 받고싶지 않다생각하면서 번호를 확인했더니 백현이 번호가 떠있어.
"어, 백현아."
"자기야아.."
"응, 왜. 퇴근했어?"
"자기야.."
"..술마셨어?"
"쪼오끔?"
"으이구..어디야? 누구랑 있어?"
"나아.."
계속 자기야, 나, 이것만 반복하면서 어딘질 얘기해주지 않는거야. 주변 시끄러운거 보니까 병원에서 회식간 것 같은데.
"백현아, 지금 어디에 앉아있어요?"
"백현이.."
"응, 백현이 어디야?"
"자기야.."
어디야? 물어도 자기야, 어디예요?해도 자기야, 그놈의 자기야자기야만 해대고 어딘질 얘길 안해주는거야. 아, 이거 완전 인사불성된 것 같은데.
집도 못찾아올 것 같은거야. 안그래도 요즘 컨디션 안좋아서 아침에 수액까지 맞고 일한 애가 회식이라고 또 끌려가서 주는 술 넙죽넙죽 받아먹고 훅 간게 뻔했어.
얘가 서글서글하니 잘 웃고하니까 유독 예뻐하는 교수님들이 많았거든. 왜 술자리에선 그렇잖아, 예쁨받는 후배들이 술 더 많이 먹고 옆사람이 따라주면 자기 술도 받으라그러고.
변백현이 정말 이런거에는 능글맞지 못해서 주면 주는대로 꼴깍꼴깍 받아마시거든.
"백현아, 옆에 내가 아는 사람있어?"
제발 옆사람 좀 바꿔줘봐..사정을 해도 주구장창 나만 불러대는거야. 반쯤 포기한 상태에서 그냥 백현이 찾아나서려고 주섬주섬 옷 입고있는데 전화기가 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
얼마나 취했길래 휴대폰까지 떨구고 그래, 이 진상아..ㅠㅠ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가서 휴대폰 계속 귀에 댄 채로 백현아, 백현아? 부르고 있는데
누가 휴대폰 집는 소리가 들리더니 여보세요?하는거야.
"어, 김쌤? 여기 응급식구들 회식왔는데, 변쌤 많이 취한 것 같아요."
"아..거기가 어디예요?"
"병원 앞 고기집이요."
"제가 가서 전화드릴테니까 백현이 좀 데리고 나와주시겠어요? 제가 들어가기 조금 그래서.."
"아, 응급식구들은 모르죠? 알겠어요, 전화 줘요."
아무래도 응급실 사람들은 나랑 백현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인거 잘 모르니까, 다행히도 전화 받아준 분이 예전에 나랑 같이 외과병동있을 때 일하셨던 분이라 우리 사정을 알고 계셨거든.
백현이 좀 몰래 빼달라고 부탁한 뒤에 대충 슬리퍼 끼워신고 나갔는데 밖이 또 쌀쌀한거야. 변백현 안그래도 몸 안좋은데 추워서 감기걸릴새라 다시 들어가서 동생 가디건 하나 챙겨들고 나왔지.
걸음 재촉해서 병원 앞 고기집에 도착한다음에 백현이 번호로 전화걸었더니 간호사선생님이 백현이 질질 끌고 나오시는거야.
"얼마나 마셨으면..죄송해요, 괜히 백현이때문에.."
"뭘요, 오늘은 변쌤 혼내지말아요."
"무슨 일 있었어요?"
"오늘 속상한 일 많았죠, 그래서 교수님들이 술 더 주시기도 했구요."
속상한 일이 뭐였는지 묻고싶었는데, 아무래도 쌤이 말해주시기는 조금 그럴 것 같아서 감사하다 인사드리고 백현이 팔을 내 어깨에 둘렀어.
백현이 키가 그렇게 큰 편도 아닌데 내 키가 너무 작은 탓에 버거워 보였는지 선생님이 괜찮겠냐고 물었는데 택시타고 가면 된다고 애써 밝게 웃어드렸지.
택시는 무슨, 걸어서 10분밖에 안되는 거리를 돈아깝게 택시를 어떻게 타.
"백현아아, 정신 차려봐."
"..자기야.."
"왜 자꾸 불러, 응?"
잠을 자고 있는 건지, 내가 지금 죽을 것 같은 건 아는지 온 몸을 나한테 의지하고선 걷느라 한 발자국 떼는게 너무 힘든거야.
백현이가 이렇게 인사불성이 된 걸 보는 건 또 오랜만이라, 안쓰럽기도 하고 술주정 부리는게 귀엽기도 했어.
"백현이 오늘 속상한 일 있었어요?"
"네에.."
"누가 우리 백현이 속상하게 했어요?"
"으음.."
"꿀밤 콩 때려줘버리게."
"..우리 자기밖에 없어요."
"정말 나밖에 없어?"
"..그럼 또 누가있어요, 없는데.."
"나밖에 없는데 다른여자한테 막 끌려나오고 그래도 되는거야, 변백현?"
얘가 내말을 제대로 듣는 것 같진 않은데 그래도 꼬박꼬박 대꾸하는게 너무 귀여워서, 또 대답이 너무 예뻐서 계속 말을 걸었거든.
다른 말에는 대답도 잘 하면서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는 질문에는 대답을 안해주는거야. 또 자기 곤란한 질문에는 대답을 안해.
내가 다른여자한테 끌려나와도 되냐고 물으니까 입 꼭 다물고..하여튼.
꾸역꾸역 백현이 달래가며 우리집까지 끌고왔어. 사실 변백현 집이 우리집보다 30발자국정도 먼데, 거기까지 가기가 너무 힘들었어..그리고 변백현집은 2층이라 계단으로 가야한단 말이야.
어차피 엄마도 동생봐주러 가느라 집에 잘 안들어오니까, 들어와도 상관없긴 하지만. 무튼 그렇게 우리집까지 끌고가서 내 침대에 백현이 눕혔는데
애가 잘 생각을 안해. 계속 웅얼웅얼 말을 하는거야 ㅠㅠ
"백현아, 코 자요. 눈 감았으면 자는거예요."
"..백현이 오느을.."
"백현이 오늘, 왜. 속상했어요?"
"으응.."
"누가 그랬어, 백현이한테."
"..자기야.."
같은 말 반복하느라 속에선 부글부글 들끓고있지만 오늘은 혼내지말라는 쌤 말씀이 생각나서 애써 백현이 토닥여주고있었어. 그러다가 차츰 조용해지길래 자나 싶어서 이불 덮어주다가,
"백현아, 똑바로 누워서 자면 안돼. 옆으로 누워, 응?"
"..으으.."
"똑바로 자면 백현이 저 세상가요..얼른 옆으로 누우세요."
술먹었을 때 똑바로 누워자는게 생각보다 굉장히 위험한 일이거든. 혹여나 자다가 구토하면 그게 그대로 기도로 들어가서 막혀버릴 수가 있단 말이야.
변백현은 의사라는게, 자기가 술먹고 곧게 뻗어자고 있는거야. 옆으로 돌아 누우라고 해도 말도 안듣고, 백현이 몸 어기적 어기적 돌리려고 해도
남자 몸인지라 무거워서 잘 돌아가지도 않아.
"백현아, 좀.."
나만 끙끙대면서 변백현 몸이랑 싸우고 있고 정작 변백현 표정은 미간 살짝 찌푸리고 잘 잠들어 있는 것 같았어.
힘들어서 그냥 옆에 걸터앉아서는 백현이 얼굴 하나하나 뜯어보고 있는데 입술이 말랑말랑하게 생긴게 아, 진짜 귀엽다 싶은거야. 변태처럼 ㅠㅠ
그래서 괜히 백현이 입술 만지작만지작 거리다가 백현이 자니까..싶어서 뽀뽀 쪽 했는데. 하고 나니까 정말 범죄자 된 기분알아? 어떻게 자는 애 입술에
뽀뽀를 할 수가 있지 싶은거야. 내가 엄청난 변태가 된 기분이고. 그래서 혼자 얼굴 붉히고 있는데 백현이가 입꼬리 올려서 슬쩍 웃더니 부시시하게 눈을 떠.
"..변태."
"아, 어. 아니, 안..잤어..?"
"백현이 입에.."
"아.."
"뽀뽀했어요?"
여러붕..독자님들 중에 의대준비생들이 많은건 왜때문에..? 존경해요..ㅎ..꼭 원하시는 의대 합격 기원 빵빵빵!!
수험생여러분들도 마지막까지 화이팅하세요!!!!이제 백..몇일 남았나...?^-^...ㅎ...곧 6모가 다가오고있지요?
저도 곧 기말이 다가오네요..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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