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식스] 경영학과 구남친들
2018.11.02 금요일
" 오겠지? "
" 그 성격에 안 오겠니? "
" 가지 말까? "
" 그래~ 그렇게 대학 동기들 온갖 경조사 다 가지 말고 인간관계 말아먹던지~ "
" 아 좀 비꼬지 말고! 나 심각하다구... "
" 야 벌써 5년이나 지났어. 세상이 얼마나 좁은데 평생 피해다닐거야? "
" 하지만... "
며칠 전 대학 시절 우리 과 대표 CC의 청첩장이 날라왔다.
신부는 나와 친했던 동기 중 한 명이었고 최근까지도 연락을 주고받던 사이라 어느 정도 소식을 미리 듣긴 했었지만, 막상 청첩장을 두 눈으로 보니 얘네 결국 결혼하는구나 싶어 새삼 신기하기도 했다.
신기할만하지, 나에게 CC란 정말정말 최악의 기억이니까.
그리고 이 결혼식 날 나는 잊고 있던 그 최악의 기억을 다시 마주하게 생겼다.
가지 말까 하기도 했지만 친구와의 사이도 걸리고, 또 한아 말대로 앞으로 더 잦아질 경조사들을 매번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복잡한 머릿속에 눈앞에 있는 술잔만 기울이다 보니 문득 내가 왜? 내가 왜 피해야 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4년이란 시간이 지났는데. 찌질하게 고작 어린 시절 멋모르고 했던 지나간 연애에 겁을 먹다니. 성이름 진짜 찌질하다.
" 그래! 가야지! 경영과 의리로 우리 동기 결혼 축하해주러 가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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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9. 07 금요일
" 아 분명 오늘도 부어라 마셔라하다가 죽겠지? "
" 우리 과는 술을 너무 좋아해서 탈이라니까. "
" 김원필 너도 술 좋아하잖아. "
" 술 좋지. 시끄러운 것도 좋구. 근데 개강파티는 진짜 개같이 마시잖아. "
" 하긴. 너 술 좋아하는데 간은 쓰레기니까... "
" 에? 아니거든? 나 한 병은 먹거든? "
" 거짓말 치지 마. 너 저번 학기 개강파티 때 반 병 먹고 신나서 춤추다가 병 다 깨먹었잖아. "
" 야 그건... "
" 야 너넨 늦은 와중에 또 붙어서 오냐? "
" 아 김원필이 굳이 오늘 교재를 사야겠다고 난리를 치잖아. "
" 교내 서점 이번 주까지인데 너가 안 알려주고 혼자 먼저 사서 그런 거잖아. 치사하게. "
" 야야 그러지말고 그냥 사귀던가 "
" 징그러운 소리 하지 말고 잔이나 줘. "
" 야 징그럽다니. 성이름. 키워봐야 소용없다 증말. 이 오빠가 많이 속상해!! "
여기저기 하품 소리만으로 가득 찼던 강의실의 모습과는 달리
잔 부딪히는 소리와 쉴 틈 없는 웃음소리들로 가득 찬 술집은 사람 많은 곳이라면 질색하는 나까지도 술이 절로 들어가게 만들었다.
개강하고 처음 있는 술자리인 만큼 수다는 주로 누가 복학했네.. 누구와 누구는 깨졌고 누구와 누구는 사귀네.. 등의 가십거리들이 줄을 이었고, 어느 정도 술 병이 쌓이자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여러 테이블을 서로 오가며 분위기는 더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 성이름! "
" 어? 선배! "
" 오랜만이네. 방학 잘 지냈어? "
" 그럼요. 여전히 잘생기셨네요? "
" 그런 말 함부로 하지마. 나 설레잖아. "
" 거짓말은. 선배 인사보다 많이 듣는 말이 잘생겼다잖아요. "
" 듣기 좋은 말 잘하는 건 여전해서 좋은데 예전에는 오면 나부터 찾더니 오늘은 아니네? 나 서운하려 그래. "
" 에이 선배야말로 서운하게 왜 그래요. 인사하러 가고 싶어도 선배 테이블은 쉴 새 없이 사람이 넘치던데요? 역시 경영과 대표 미남! "
" 에이~ 미남은 무슨. 마시다가 나 보고 싶으면 놀러 와! 너 오면 없는 자리도 내가 만들어줄 테니까. "
" 저야 영광이죠. 취할 것 같으면 거기로 도망갈테니까 챙겨주셔야 돼요! "
영현선배와의 반갑고 형식적인 인사를 시작으로 내가 앉아 있던 테이블도 인사의 장터가 되기 시작했다.
이미 취해버려 한껏 들뜬 김원필은 다른 테이블에 가서 술 게임을 하느라 정신없어 보였고, 나는 자리를 지킨 채 오는 인사만 받아주다 보니 벌써 몇 잔을 먹었는지 셀 수도 없는 가량이 되어버렸다.
원래 술을 못 마시기도 했지만 오랜만에 술을 마셔서 그런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게 더 이상은 무리인 것 같아 잠깐 바람이나 쐴 겸 밖으로 나왔는데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버렸고,
" 헛. 괘, 괜찮으세요?? 저기.. 저기요...? 아, 우짜노... "
누군지 모를 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내 필름은 끊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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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8 토요일
♪♬♪♬♪♬
" 아... 아침부터 왜 전화야 김원필... "
" 아침은 무슨, 지금 대낮이거든? 너 어제 무슨 일 있었는지 알아? "
" ...왜? 왜?? 나 사고 쳤어?? "
" 흠. 사고라고 하긴 애매한뎅... "
" 왜왜 뭔데? 나 필름 완전 나갔다고... 무섭게 뭔데... "
" 너 어제 그... 아 얼굴은 낯익었는데 이름을 모르겠네. 여튼 어떤 12학번 후배가 업고 들어와가지고 "
" 미친. 미쳤네. 누군지도 모르는 애한테 업혀... "
" 아니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고, 여튼 그 후배가 너 업고 돌아다니면서 이 분 집 아시는 분 계시냐고 물어보고 다니는데 "
" 하... 업힌 채로 돌아다녔다고. 졸지에 경영과 유명인사 되겠네. 사고 친 거 맞네. 왜 혼자 청승맞게 바람을 쐬겠다구 나가가지구... "
" 아니! 좀 들어보라고 좀!! 제형선배가 너 데려다줬다고 어제!!! "
" ...뭐? "
" 제형선배가! 일어나서! 자기가 데려다주겠다고! 너 데리고 나갔다고! "
" ...거짓말 하지마 김원필. 박제형이 개강파티에 나왔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거든? "
" 그래서 나도 놀랬다니까? "
" ...미친, 김원필 너는 뭐 했는데!!! "
" 야 화내지 마라. 나도 분명 일어나서 가려고 했는데 제형선배가 한 발 더 빨랐던 것뿐이니까. "
" 그럼 넌 두 발 더 빨랐어야, 하 아니야. 일단 끊어봐. "
미친. 항상 그렇다. 필름이 끊긴 다음 날, 전해 들은 전 날의 행적은 하나같이 좋을 게 없다.
그래서 매번 술 먹은 다음 날 후회하고 이불 걷어차고 다시는 술을 안 먹겠다고 다짐을 하게 된다.
어제의 일 또한 마찬가지다. 술에 만취해 모르는 후배 등에 업히고, 전남친이 집을 데려다줬다.
그나저나 박제형 완전 미친놈 아니야? 원래도 미친놈인 건 알았다만...
♩
[ 고마우면 월요일에 점심 - 010.0915.XXXX ]
미친놈 맞네. 지가 헤어지자고 해놓고 이제 와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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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진이도 등장해요!!
물론 제가 계속 연재를 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