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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메가버스 세계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거부감이 있으시면 피해주세요 

 *긴글주의  

 

 

[EXO/카디] 행복이 오기까지의 시간 06 (오메가 버스) | 인스티즈

 

 

  

  

  

  


어두운 집안을 밝히는 불이 늦은 시각이 다 돼서야 켜졌다. 아무도 없는 방. 빛이 내린 풍경은 매우 단조로웠고 놓여있는 가구는 매우 실용성만을 중요시 여긴듯 깔끔했다. 이제는 자신의 집이 되어버린 열 평 남짓한 작은 원룸. 그곳에 도착한 종인은 갑갑하게 목을 조였던 넥타이를 풀어 책상에 올려두곤 나머지 교복을 벗기 전 의자에 앉았다. 의자에 앉은 종인은 메시지함을 열어 매일 해왔던 것처럼 수신자 명에 '엄마"를 입력했다. 조용한 방안에는 핸드폰 화면을 두드리는 소리만 울렸고 메시지를 다 작성한 화면에는 '오늘 병원에 다녀왔어요. 학교에서 맡은 상담도 잘 끝났고요. '라는 문장이 쓰여있었다. 전송 버튼을 누른 종인은 그제야 입고 있던 자리에 일어나 교복을 마저 벗기 시작했다. 항상 자신의 문자에 답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종인은 항상 답장을 기대했다. 오늘도 역시나 문자의 답을 기다리고 있는 듯 옷을 벗는 종인은 답이 오기에 빠른 시간이지만 몇 번씩 멈추곤 화면을 켰다 끄기를 반복했다. 셔츠의 마지막 단추를 풀어낼쯤 지 잉하고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고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핸드폰을 확인한 종인의 눈에는' 이번 달 생활비 보냈으니 확인해봐라 '라는 '어머니'의 답장이 와있었다. 오늘도 역시 답이 오지 않을게 분명했다. 상처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종인은 어머니에게라도 연락이 왔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오늘도 섣부른 기대를 접었다. 잠시 답장을 보내려던 종인은 머뭇거리더니 이내 핸드폰을 내려놓고 남은 단추를 마저 풀어냈다.  


역시 무리겠지.   

  

  

샤워를 마친 후 간단하게 끼니를 때운 종인은 새벽시간이 되어서야 침대에 몸을 뉘었다. 푹신한 이불에 조용한 주변. 잠을 이루기 두말할 것 없이 좋고 편안한 풍경이었지만 종인은 이 자리가 불편했다. 혼자 살기 시작한 지도 반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자신의 집에선 편안함을 찾을 수 없었다. 집에 혼자라는 걸 인지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끼니를 잘 챙기지 않았고 집에 머무는 시간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누워서 잠들기까지의 시간을 오래 걸렸다. 잠을 잤다 하면 악몽을 꾸는 일이 빈번하거나 아침이 개운한 적이 기억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리학적으로 좋지 않은 위치에 있던 것은 아니었고 주변이 소란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종인은 그 고요함 속에서도 잠을 찾지 못했고 항상 멀뚱히 누워 새벽에 오는 감성적인 생각에 휩쓸리다 간신히 잠에 들기 일쑤였다.오늘이라고 해서 다른 점이 있던 것은 아니었기에 종인은 가만히 누워 하루 일과에 대한 생각을 시작했는데 그래도 다른 점이 하나가 있다면 새로운 인물의 등장 정도. 조용히 눈을 감고 종인은 하루를 되뇌었다. 시작하기로 한 상담에서 만난 한 학년 선배. 처음 상담실에 들어갔을 때 그 작은 어깨에 동그랗고 커다란 눈, 하얀 피부에 도톰한 입술. 전체적인 조화로는 호감형으로 시작했던 거 같은데. 의기소침 조용히 앉아서 말도 없고 사람 얼굴도 안 봐주고 과자는 주섬주섬 챙겨가더니 손에서 피가 나고. 오늘은 기분이 나빴는지 따지려 들더니 결국 마무리는 눈물. 물론 그 사이에 자신에 대한 신뢰가 생겼지만 말이다. 상담 시간에 티는 내지 않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경수의 행동에 종인은 당황한 게 꽤 여러 번이었다. 상처가 많아 보이는 모습을 보며 종인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더 나은 상대를 찾아줄까 해서 내건 내기에선 경수를 예측했다. 이런 걸 우연이라고 해야 하나 운명이라고 해야 하나. 탁상 위에 펼친 두 종이의 숫자를 비교했을 때를 생각하며 종인은 입꼬리를 피식거렸다. 

  

  

  

*
경수는 오늘 등교 후 시간이 날 때마다 손바닥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다 번져가는 백현의 번호만 덩그러니 적혀있던 자신의 손바닥에 어제 자로 찬열의 번호까지 적혀있었기 때문이었다. 같이 하교를 하며 찬열이 무슨 일인지 갑자기 경수의 손바닥에 자신의 번호를 적기 시작했고 무슨 일이냐는 경수의 질문에 백현한테 연락하는 게 싫어서라고 답하는 찬열이었지만 잠시 후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매일 틱틱거리던 찬열이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어울리지 않는 말을 뱉자 경수는 혹시나 자신의 주변에 안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징조가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워낙 요즘 다소 낯설지만 좋고 행복한 일이 가득해서 신경 쓸 겨를이 없던 경수는 한참을 생각해도 찝찝한 구석을 찾을 수 없었다. 오늘 등굣길을 나란히 걸으면서도 찬열은 다시 경수에게 주의를 줬는데 그 자세한 이유는 역시나 말해주지 않았다. 가볍게 넘기려는 경수는 옆에 있던 백현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사뭇 심각성을 깨닫고 찬열의 말을 머리에 새겼다. 어제 점심시간 이후로 얼굴을 비추지 않던 오세훈은 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쉬는 시간마다 6반 복도 의자에 앉아 도경수의 이름을 크게 불러댔고 창피했는지 세훈을 중재하려 나가려 하면 백현이 말리곤 했다. 약을 챙겨야 하는 사정을 백현에게 말하자 그제야 경수는 교실 밖으로 나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고 아니나 다를까 그 틈을 타 세훈이 따라붙었다. 경수가 약을 넘기고 반에 들어갈 때까지 기다린 세훈은 수업 종이 치기 전에 재빨리 경수를 잡아 복도 의자에 앉혔고 반으로 들어가려는 경수를 손으로 막았다. 


" 왜 자꾸 나 무시하냐? 박찬열이 나 피하라고 시키든?" 


" 그런 적 없어. 만났을 때부터 너한테 살갑게 대한 적도 없고. "  

  

이번에도 세훈의 말을 넘기려는 경수는 찬열의 이름을 말하며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는 세훈의 얼굴을 보고서야 입을 열었다. 등교 후 지금까지 찬열에게서 아무 말도 듣지 못한 경수는 세훈의 말에 찬열의 이름이 들어간 것에 대해 의아했지만 썩 유쾌한 대화거리가 되지 못할 거란 생각에 말을 아꼈다. 


아 맞다 그랬지. 세훈이 새삼 그 사실을 이제야 느꼈는지 방금 전 괜스레 박찬열의 이름을 들먹인 것에 대해 창피하다고 생각했다. 이어할 말이 없는 세훈이 경수의 눈치를 한번 보더니 핸드폰 화면을 켜 게임을 실행시켰다. 요란하게 울리는 효과음에 경수의 눈이 힐끔힐끔 세훈의 핸드폰으로 돌아갔다. 세훈이 경수를 찾아오는 이유는 딱히 존재하지 않았다. 이유라 하면 보고 싶기 때문이었고 순순하게 응해주지 않는다는 점도 마냥 재밌었기 때문일 정도로 사소했다. 심심한 쉬는 시간을 때우는 작은 흥이라고 설명해야 했을까. 단지 수업시간 내내 뻐끔거리는 경수의 입술이 생각이 났고 그 장면이 보고 싶은 마음을 참지 못했기 때문에 달려온 것. 그 외의 중요한 이유는 없었기에 경수를 잡아 앉혀도 별다른 할 말이 없었던 세훈이었다.  


" 그래서 무슨 일인데" 

" 경수 얼굴 보고 싶어서" 

" 장난하지 마." 

" 장난 아니야. 안 보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데 어떡해. 봐야지." 

또박또박 잘 대답하는 세훈의 눈은 뱉는 말과는 다르게 핸드폰 화면을 집중하고 있는 듯 보였지만 실상은 경수를 힐끔거리기 바빴다. 대놓고 쳐다보면 부끄러워할 경수를 위한 작은 배려였다. 당연하게도 이 소심한 배려를 알아챌 경수가 아니었다. 무슨 바보 같은 짓인지. 더 이상 시간 낭비를 하기 싫었던 경수는 그 자리에 일어나 반으로 들어갔고 세훈은 경수가 자리를 뜬 후 한참 게임을 하다 수업 종이 울리자 자신의 반으로 돌아갔다. 세훈은 이후에도 특별한 목적 없이 경수를 찾아와 얼굴도장 찍고 가곤 했지만 거슬리는 행동이나 불편한 대화 시도는 일체하지않았기에 경수는 세훈의 부름에 응해주곤 했다. 백현의 만류에도 쉬는 시간마다 복도에 나간 이유는 어쩌면 세훈이 주는 관심이 내심 마음에 들어서 일지도 모른다. 먼저 다가가는 게 낯선 경수에게 뜬금없지만 일단은 엉뚱하지만 굴러들어온 기회였고 자신에게 특별한 해를 가하지 않는 이상은 백현 같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일단 자신이 뱉는 날카로운 말들까지 받아주는 걸 보면 아예 나쁜 인상도 아니었고 그저 경수의 눈에는 입이 거친 동갑내기 정도의 이미지였다. 아무것도 모르던 첫 만남 후에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던 경수였다. 남자아이를 상대로 뱉는 음담패설을 하는 건 거의 장난기를 품고 던지는 경우가 허다했기에 진지한 생각보다는 아마 또래 아이들은 이렇게 노는구나 정도로 넘겨짚곤 했다. 가끔 주변에서 수군거리며 세훈에 대한 험담을 하는 아이들의 말을 듣기도 했지만 일단 자신에게 피해를 준 적은 없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한가지 걸리는 점이 있다면 백현과 찬열의 행동 정도였다. 주의하라는 말 외에는 딱히 이야기해주지 않았기에 일단 경수에겐 필사적으로 세훈을 피할 이유는 없었다. 


  

4교시 수업 끝 종이 울리고 점심시간이 시작되자 어김없이 찬열이 반으로 찾아왔다. 찬열의 손목엔 봉투가 걸려있었는데 자리에 앉기도 전에 그 안에서 꺼낸 건 편의점에서 파는 도시락 3개였다. 찬열이 앉자마자 화색이 도는 백현과는 다르게 어제 급식실에 처음 가본 경수는 도시락을 보자 급식실에 못 간다는 사실에 풀이 죽었다. 비록 풀 뿐인 반찬을 깨작거렸던 경수였지만 밥을 먹는다는 사실보단 그 장소에서 주는 소속감이 마음에 들었던 터이다. 다소 실망이 비치는 경수는 안중에도 없는 듯 찬열과 백현은 어느새 도시락 뚜껑을 열어 반찬을 집어먹기 바빴고 경수도 이내 불고기 도시락이라고 적힌 도시락을 열어 밥을 한 숟가락 입에 넣었다. 차갑고 푸슬푸슬한 밥알이 입에서 흩어졌다. 차가운 고무를 씹는듯한 밥이 뭐가 그리 맛있는지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둘은 꾸준하게 대화를 했으며 편안하고 조용한 교실 안을 즐기며 기분 좋은 점심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방과 후의 이야기나 집안 이야기 따위의 말을 하고 있었지만 경수가 낄 수 있는 주제는 하나도 없었다. 대화에 선 듯 낄 수 없는 경수는 젓가락을 잡은 손바닥에 적힌 둘의 이름과 연락처만 멀뚱히 바라봤다. 제아무리 가까워지겠다고 노력한들 어차피 그 한계의 벽이 있는 거다. 가까운 물리적 거리 대신 아직은 가깝다고 하기는 어색한 심리적 거리가 덜컥 다시 느껴지자 경수는 이 자리가 마치 어제의 등굣길처럼 불편하다고 생각했다. 아직은 이른 생각이었지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껄렁거리는 세훈이라도 있었으면 덜 불편했을 거란 생각을 하는 경수였다. 하지만 이곳은 급식실이 아니었고 맞은편엔 세훈이 없었다.그리고 둘은 세훈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듯했으며 자신을 세훈에게서 격리시키려 하는 행동을 자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확한 이유를 경수에게 알려주지도 않았고 경수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데리고 다니는 어린아이 정도로 대하는 듯했다. 이런 상황에서 만족에 그쳐야 하는 경수의 속으론 밥 대신 씁쓸함이 삼켜졌다. 내 처지가 이렇게 불쌍했던가. 아니면 끝없는 욕심이 부른 피해 의식인 걸까. 괜스레 부정적인 생각이 다시 머릿속을 지배하려 들자 생각을 좇으려 제 볼을 툭툭 치는 경수였다. 짝짝 소리 내며 제 볼을 치는 경수를 본 백현이 왜 그러냐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어왔다. 그제야 손을 멈춘 경수는 백현의 표정을 보고서 자신의 걱정은 기우였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했다. 

  


안 좋은 생각하지 말자. 나쁜 생각하지 말자. 

  

  

  

종례를 마친 경수의 발걸음이 신관 복도를 울렸다. 어제와 달리 백현과 찬열이 걸음을 함께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라 하면 점심시간 약을 먹고 난 후 듣게 되었다. 오늘은 방과 후 산부인과에 초음파 검사가 예약되어있다는 말을 하는 백현이었기에 경수는 그저 고개를 끄덕거리며 알겠다고 답을 하곤 괜스레 백현의 배를 바라봤다. 그 시선을 놓치지 않고 찬열이 노발대발하며 질투한 행동도 있었지만 말이다. 

솔직해지자면 오늘은 둘과 꼭 같이 상담실 앞까지 가고 싶었던 경수였다. 일단 사소한 이유로는 조용한 복도를 혼자 걷는다는 점이 새삼 조금 머쓱하기도 했고, 더 큰 이유라 하면 후배 앞에서 질질거린 어제의 제 모습이 창피했기 때문이었다. 차분하게 저를 달라는 종인의 손길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인 자신이었지만 일단 한 학년 선배로서의 프라이드 한쪽이 조금 구겨졌다. 물론 경수가 자존심을 상해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애초에 종인이 반창고를 챙겨주지 않았을 테지만 경수는 그 사실보다 눈물을 보인 데에 창피함을 느끼고 있었다. 

어느새 도착한 상담실의 문을 열자 소파에 앉은 종인의 모습이 보였다. 문소리에 뒤돌아본 종인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고 경수는 그에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하하. 안녕?" 

부자연스럽게 팔다리를 움직이는 경수는 멋쩍은지 후다닥 거리며 맞은편 소파에 앉았고 떳떳하지 못한 눈동자는 상담실 이곳저곳을 누비며 굴러다녔다. 고작 2일 동안 부끄러운 모습 실컷 보였던 경수였지만 후련해지기커녕 더욱더 어색하기만 한 느껴지는 자리였다. 더군다나 굴러다니는 제 눈동자와는 다르게 자신의 얼굴을 직시하는 종인의 시선을 느낄 때면 더더욱. 연달아 민폐를 끼친 경수는 종인의 시선을 피하려 애를 쓰고 있었다. 어울리지 않게 긴장한듯한 입술에 힘이 들어간 경수의 얼굴을 웃으며 바라보던 종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 형. 혹시 창피해요?" 

종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경수의 눈이 종인의 시선과 맞닥뜨렸다. 어제부터 자신의 생각을 콕콕 찔러 읽어대는 것이 참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경수였다. 혹시 눈을 마주치면 생각을 읽는 능력이라고 있는 걸까. 경수는 종인을 바라보는 눈에 힘을 줘 노려봤다. 어디 한번 내 생각 읽어봐라 읽어봐라. 막상 종인은 바보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경수가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저를 바라보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 안 창피해. " 


종인의 질문에 단호하게 대답하는 경수는 답과는 다르게 이미 귀 끝이 붉어지고 있었다. 자신의 귀가 진실을 말하는지 모르는 경수는 창피할게 뭐 있느냐며 말끝을 흐리며 이어갔지만 종인은 그 말을 완벽하게 믿지 않았다. 그런다고 해서 자존심을 세우고 싶어 하는 경수를 상대로 놀려먹을 생각도 없었기에 굳이 콕 집어 이야기할 생각도 없었다. 


" 근데 자꾸 눈 돌릴 거예요? 어색하면 같이 오는 친구 데려와도 괜찮은데." 

" 오늘은 기다리는 친구 없어." 


" 어제 그 형 두 명은요?" 


" 학교 끝나고 갈 곳이 있다고 하길래." 


종인은 그렇냐면서 고개를 끄덕거렸고 경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는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 탁상 위에 과자 하나를 집어 들었다.
오늘은 과자 챙겨가지 않아도 되려나. 지금쯤 병원에 있겠지? 경수는 자연스럽게 과자를 쥐어내자마자 백현이 떠올랐다. 찬열이 있으니 걱정할 문제는 아니었지만 둘의 방과 후 개인적인 시간을 어떤 식으로 사용하는지 한 번쯤 궁금한 경수였다. 만약 자신도 그 시간을 함께 한다면 둘의 대화에 자연스럽게 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연락을 해보고 싶은데. 부스럭 부스럭거리는 포장지를 만지는 경수는 제 손바닥에 적힌 둘의 번호를 슬쩍 보더니 종인을 힐끔 쳐다봤다.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듯 입매를 삐죽거리며 가만히 있질 못 했다. 


".. 핸드폰을.. 만들고.. 싶은데..." 


" 네? 핸드폰요? " 


" 응. 혹시 도와줄 수 있어? " 


" 그 정도야 얼마든지." 

요즘이야 대리점에 들어가면 알아서 다 해주는 시대였기에 종인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미성년자라는 제약에 구비서류 정도를 핸드폰으로 검색한 종인은 잠시 머뭇거려야 했다. 화면에 나온 서류 내용엔 부모님 동의에 관한 말이 있었기 때문에 어제의 일을 감안한다면 쉽사리 꺼낼 단어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우물쭈물 답을 못하는 종인을 보고 경수가 뭐냐며 묻자 그제야 종인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음.. 형.. 그.. 핸드폰 만들 때 부모님 신분증 사본이랑 가족관계증명서 필요하데요." 


" 아. 그래? 아르바이트 시작할 때 혹시 몰라서 준비해둔 거 있어." 


" 오늘로 이번 주 상담은 끝이니까 내일같이 가줄까요? 아, 혹시 바빠요? " 


" 아니, 괜찮아. 같이 가자." 

혹시나 생각해둔 기종이 있느냐며 종인이 경수에게 묻자 경수가 고개를 저었다. 일단 몇 개 정도는 보고 가자며 자리에서 일어난 종인이 경수의 옆으로 움직이더니 핸드폰을 꺼내 인터넷을 눌러 실행시켰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종인의 손을 보며 경수의 눈은 신기한 걸 보는듯 휘둥그레졌다. 이내 남은 상담 시간 동안 켜진 핸드폰 카탈로그 이미지를 보며 한참 동안이나 눈을 떼지 못하는 경수가 정신을 차린 건 상담 종료 알람 덕분이었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잔뜩 기대에 부푼 모습으로 내일의 일정을 묻는 경수에게 종인은 방과 후 경수의 반으로 찾아가겠다고 반을 알려달라 했고 경수는 자신은 6반이라며 거듭 강조를 하며 가방을 들어 올렸다. 


" 6반이야 6반. 숫자 오 다음에 육!" 


" 알겠어요 알겠어. 2학년 6반. 잘 가고 내일 봐요" 

  



집에 도착한 경수는 그대로 누워 책가방 안쪽의 종이를 꺼냈다. 하얀 종이에 적힌 것은 글자로만 남아있는 부모님의 이름. 이제는 한낱 종이에서 밖에 완전하지 못한 제 가족의 형태를 천천히 훑어본다. 지금쯤 어디서 어떻게 지낼지. 또 하나뿐인 아들을 생각이 나 하고 있을지. 아니면 내 생각이 안 나게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지. 만약 자신이 생각이 안 날 정도로 행복하다면 자신도 둘을 그리워하지 않고 행복하게 웃을 날이 언젠간 허락이 될지 궁금해지는 경수였다. 

  

  

  


오늘은 무슨 일인지 점심시간이 시작되자마자 급식실에 가자는 둘을 따라 걸음을 옮기는 경수였다. 이상하게 쉬는 시간마다 저를 괴롭히러 오는 세훈은 오늘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급식실에 가는 이유 또한 세훈의 부재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깨작거리는 급식 판들 앞에 두고 조금의 기대와는 다르게 경수의 앞자리는 밥을 다 먹을 때까지도 텅텅 비어있었다. 반으로 올라가기 전 약을 다시 한번 챙길까 했던 경수는 어차피 히트 사이클 마지막이기도 했던 오늘만큼은 아침에 먹은 약으로 하루를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렌즈 통을 챙기지 않았기에 쌓여있는 물컵을 지나 계단을 오르는 둘을 쪼르르 따라갔다. 


" 경수야 이거 봐봐." 

  

급식실을 다녀오자마자 자리에 앉기 무섭게 몸을 돌리는 백현은 다짜고짜 경수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액정에는 색이라곤 없는 사진 하나가 찍혀있었다. 아마 어제 찍은 사진인 듯 들뜬 목소리로 소곤소곤 자랑을 했지만 경수의 눈엔 아무리 봐도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검은 배경으로 보였다. 영 감을 못 잡는 경수를 보며 사진 중 동그랗게 비어있는 곳을 가르친 백현은 여기가 아기집이라고 설명해주곤 했는데 그 모습을 보는 찬열이 기세등등 어깨를 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뭐 잘했냐며 타박하는 백현이었지만 말과는 다르게 여전히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행복해 보이는 백현에게서 태어나는 아이도 분명 행복한 아이겠지. 경수는 아직 형태도 보이지 않는 검은 원마저도 그저 부러웠다. 한참을 옆에서 백현을 거들던 찬열은 닳는다며 경수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아갔다. 

  

  

  

  

  

  

" 다음 주부터는 하복 기간이니까 하복 입고 오고. 다들 월요일에 보자. 이상." 


준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반을 빠져나가는 아이들이 우르르 반을 빠져나갔다. 그 사이를 가르며 들어오는 찬열의 모습이 보이자 백현은 나갈 채비를 마치고 경수의 손목을 잡았다. 순간적으로 손목에서 올라오는 찌르르 한 고통에 경수가 팔을 비틀었다. 놀란 백현이 그제야 경수의 손목을 놓았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 한순간 경수가 갑자기 걸음을 옮겼다. 경수의 갑작스러운 행동은 교실 앞문에 서있는 종인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 오늘 볼일이 있어서 나 먼저 갈게" 

인사를 마치자마자 종인을 따라 나온 경수는 반에서 나오자마자 아직은 조금 아픈 손목을 문질러댔다. 경수의 움직임에 눈을 돌린 종인이 왜 자신이 준 반창고를 안 붙였냐며 칭얼거렸고 다음 주에는 꼭 하고 오겠다며 종인을 달라는 경수였다. 


" 그래서 어디로 가려고? " 

" 우리 집 근처요. 그나마 가까운 대리점 중엔 가장 크거든요." 

" 여기서 멀어?" 

" 걸어가긴 조금 멀어요. 많이 멀진 않으니까 택시타고 갈래요? " 

자신의 질문을 끝으로 구비서류를 한 번 더 체크하는 경수는 종인의 제안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부스럭거리며 준비물을 챙기는 경수를 뒤로 택시를 잡은 종인은 차 문을 열자마자 경수를 구겨 넣었고 얼떨결에 차에 탄 경수는 무슨 상황인지 손을 멈추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직 사태 파악을 하지 못하는 경수를 보며 종인은 작게 웃었다. 경수는 종인이 웃은 이유가 궁금한 것도 잠시 행선지를 말하자 움직이는 택시 너머의 풍경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경수를 본 종인은 창을 바라보는 경수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 그렇게 신 나요? " 

경수는 종인의 손을 쳐내며 아니라고 작게 대답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귀 끝이 붉게 변하고 있었다. 종인 이 붉은 경수의 귀를 보며 다소 크게 웃자 그 모습이 얄미웠는지 웃지 말라며 팔을 툭툭 치는 경수였다. 투닥투닥 몇 차례의 가벼운 대화와 웃음이 오간 사이 도착한 택시에서 내린 둘을 반겨주는 건 흐물거리는 행사용 풍선이었다. 

  

  

  


시끄러운 노래가 웅웅 울리는 큰 스티커를 지나 자동으로 열리는 문으로 들어간 둘은 살갑게 맞이하는 직원들의 안내를 따라 자리에 앉았다. 정작 핸드폰을 만들러 온 경수는 예쁘장한 누나가 타주는 율무차를 들고 진열장의 핸드폰을 구경하며 매장 안을 돌아다녔고 요금제에 대한 안내나 청구요금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은 종인의 몫이었다. 결국 그런 경수를 방치하던 종인은 끝내 경수를 옆자리에 앉혔고 경수는 율무차를 홀짝거리며 같이 설명을 들어야 했다. 만들고 싶다에서 그친 경수의 관심은 최신 핸드폰을 추천하려는 직원의 말문을 막히게 했고 빈 종이컵을 구기며 선택한 핸드폰은 종인의 것과 같은 기종이었다. 후에 경수가 한일이라곤 신청서에 이름을 적는 일이나 준비한 서류를 건네는 일로 그쳤고 연신 타자를 두드리던 직원은 개통한 핸드폰을 경수에게 전달했다. 핸드폰을 손에 쥐자마자 요지부동인 경수는 종인의 도움을 받아 손바닥에 적힌 백현과 찬열의 번호를 등록했고 등록을 마친 후 종인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 번호 저장해줘." 

" 와. 저 지금 번호 따이는 거예요? " 

" 시끄럽고 저장이나 해." 

번호 저장을 마친 종인은 매장 안에 같은 남자끼리 붙어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이 창피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경수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경수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겠다며 거리에 서서 핸드폰을 조작하기 바빴고 그 모습은 매장에서만큼 꼴사나웠다. 어딘가라도 앉고 싶어 주변을 둘러봐도 딱히 마땅한 장소가 없었기에 작은 카페나 음식점을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 또한 어딘가 어색하다고 느끼는 종인이었다. 남자 둘이 볼썽사납게 뭐야 데이트 같잖아. 

" 형. 경수형!" 

"... 어... 어어..." 

여전히 핸드폰에 빠져있는 경수는 종인의 말이 방해라도 되는 듯 건성건성 대답했다. 


" 우리 집 근처인데 차라리 집에서 하나하나 설명해줄게요. 길에서 서 이러지 말고." 


종인의 말을 이제야 제대로 듣게 된 경수의 고개가 드디어 핸드폰에서 떨어졌다. 처음 들어본 말인지 휘둥그레진 경수의 눈이 종인을 직시했다. 

" 진짜? 진짜 가도 괜찮아?" 


" 아 근데,아르바이트 한다고 하지 않아요? " 


" 괜찮아. 이번 주는 쉬기로 했어." 


" 그럼 그냥 자고 내일 가요. 어차피 학교도 쉬는데." 

  

어느새 뒷전이 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은 경수는 정말 괜찮은 거냐며 재차 확인해왔다. 핸드폰이 생긴 것도 신기한 일인데 또래 아이의 집을 간다니. 평소의 경수에겐 정말 있을 수 없는 일들이었기에 기대감에 부풀었다. 이런 사소한 일하나 하나에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부끄러웠던 건지 올라가는 입꼬리에 힘을 주는 모습이 제법 귀여웠다. 

  

온전한 가족이 사는 집은 어떤 풍경일지 그리고 또래 아이의 방은 어떻게 생겼는지 상상하며 종인을 따라간 경수는 생각과는 다른 곳에 도착해 있었다. 경수는 제법 관리가 잘 되는 깔끔한 신식 원룸 건물에 들어와서야 혼자 지낸다는 종인의 말을 듣게 되었고 그 말을 뒷받침하듯 문고리를 잡아당긴 집안은 혼자 살기 좋게 간단한 가구로만 배치되어 있었다. 내심 지저분할 거라고 생각한 집안은 제법 깔끔하게 정돈되어있었고 어디선가 좋은 향이 나는듯한 기분도 들었다. 손을 타지 않은 듯한 서랍장 위로 종인이 책가방을 내려놓자 경수도 그 옆에 나란히 가방을 내려놓았다. 가방을 내려놓으며 무언가 닿자 눈을 돌린 경수는 서랍 위 엎어져있는 액자 하나가 보았다. 혹시 제 가방에 넘어진 건지 재빨리 액자를 세웠다. 액자 속 사진은 어릴 적 종인의 모습으로 추정되는 아이와 한 뼘 정도 키가 작은 남자아이가 나란히 서있는 귀여운 사진이었다. 


" 동생인가 봐? " 


경수의 말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편한 옷을 찾는 서랍을 열어 적당한 홈 웨어를 뒤적거리는 종인이 놀란 듯 고개를 들어 경수를 바라봤다. 


" 네?... 아.. 네" 


사진을 보는 경수의 모습을 본 후 짧은 대답을 끝으로 서랍에서 회색 후드티를 꺼낸 종인이 경수에게 갈아입으라며 옷을 건넸다. 책상 의자에 걸려있는 옷가지를 집어낸 종인은 경수가 있든 말든 훌렁훌렁 교복을 벗어젖혔고 슬쩍 보이는 종인의 제법 다부진 몸매를 본 경수는 그저 구경하기 바빴다. 자신보다 거진 한 뼘은 차이나는 키와 구릿빛 피부를 가진 종인 앞에 비교되는 제 몸을 보이기 싫었던 경수는 후드의 소매를 잡고 멀뚱히 서있었다. 검은 래글런 티에 편한 감색 바지로 갈아입은 종인이 아직도 교복 차림인 경수를 보고 머쓱한지 목덜미를 매만졌다. 

  

  

 

" 왜 자꾸 쳐다봐요. 부끄럽게. " 

  


종인의 말에 자신이 얼마나 넋빠진 시선으로 바라봤을지 상상한 경수는 후다닥 방을 나가 화장실에 들어가 버렸다. 옷을 갈아입기 시작하는 경수는 거울에 비친 왜소한 제 어깨를 매만졌다. 내가 운동 열심히 해서 언젠간 네 앞에서 당당히 탈의하는 날을 만들어주겠어. 쓸데없는 결의에 찬 경수를 비웃듯 종인이 건넨 후드티는 좁은 어깨에 헐렁하게 흘러내려 팔이 남았다. 소매를 걷어올린 경수는 한참 후에 교복을 들고 화장실에서 나왔고 그 사이에 저녁을 준비하는 종인은 냉장고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옷을 갈이 입고 나온 경수를 본 종인은 가까이 다가와 경수의 소매를 두 번 접어올려주곤 방에 앉아서 기다리라는 말을 전했다. 

  

  

도와줄 건 없냐며 촐랑거리는 경수를 방으로 보낸 종인이었지만 자신감 넘치는 행동과는 다르게 할 줄 아는 음식이라곤 김치찌개뿐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별것도 들어있지 않은 냉장고 속에서 그나마 쓸만한 재료를 꺼내 손질한 후 집에서 보내준 김치를 볶아낸 후 끓이니 제법 나쁘지 않은 찌개가 완성되다는 거다. 찌개만 덩그러니 있는 허전한 밥상에 집 근처 반찬가게에서 사온 반찬을 꺼내놓으니 나름 볼만한 밥상으로 변해있었다. 밥솥에서 공기에 밥을 담는 종인은 어쩐지 새댁 같은 제 모습이 조금은 우스웠다. 여보 밥 드세요 하고 불러야 할까 봐. 


그 시각 침대에 앉아 핸드폰 설명서를 대충 눈으로 훑어보던 경수는 달그락거리며 저녁 준비를 하는 종인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까부터 보글보글 끓는 찌개 소리에 집중하던 경수는 잠시 조용해진 틈을 타 방을 나왔고 마침 저녁 준비가 끝났다는 종인의 말에 재빨리 의자에 앉았다. 


  

  

  

밥을 다 먹은 후 정리를 마친 종인은 많이 사용하는 어플 위주로 경수에게 설명을 해줬고 간단한 메신저 어플 조작과는 다르게 익숙하지 않은 자판에 애를 먹는 경수였다. 천천히 해보라는 종인의 다독임에 차라리 천천히 배우겠다는 경수는 핸드폰을 가방에 넣어버렸고 종인은 웃으며 씻고 오겠다며 방을 나갔다. 종인 이 나가자마자 얼른 가방에서 핸드폰을 다시 꺼낸 경수는 잠금 화면을 풀고 메신저 어플로 아까부터 종인에게 하고 싶은 말을 천천히 적어 보냈다. 

  


잠시 후 머리를 털며 들어오는 종인이 들어오자 씻기 위해 경수가 자리에 일어났고 나가는 모습을 보던 종인은 머리를 털며 자연스럽게 핸드폰 메시지를 확인했다.  


- 고ㅁㅏ우 ㅓ 

  

종인은 경수의 메시지를 보자마자 흐뭇하게 웃어보였다. 

  

  

*

  

낯선 장소가 이유인 건지 또래 아이의 집에 있다는 사실이 이유였는지 경수는 두근거리며 소란스러운 가슴에 잠을 못 이루고 있었다. 조용한 종인의 숨소리가 들릴 때 멈출 줄 모르는 심장소리는 이상하리만큼 진정이 되질 않았고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거세질 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낯섦 때문이라고 하기엔 어색할 정도로 진정되지 않는 가슴에 경수는 한 번쯤 의심해봐야 했다. 설마. 히트 사이클 인가. 경수가 서둘러 제 목덜미에 손을 대자 후끈거리며 열이 오르는 피부가 닿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 등교 준비를 제외하고 억제제를 삼킨 기억이 없다. 히트 사이클 기간이 끝나갈 무렵 느슨하게 넘긴 실수가 화를 부른 것이다.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난 경수는 주변을 더듬어 간신히 수면 등을 키곤 제 짐을 뒤집어엎었다. 노란 등이 켜지자 인상을 구기는 종인이 보였다.서둘러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물건을 더듬어 렌즈 통을 찾아보지만 아무리 뒤적거려도 나오지 않는 렌즈 통에 속이 타들어갔다. 거칠어지는 숨소리를 이끌어 혹시 모를 희망을 찾아 종인의 책상 서랍을 열어보지만 다른 약도 아니고 호르몬 억제제가 있을 리가 없었다. 점점 힘이 빠지는 다리를 붙잡고 타오르는 몸을 이끌어 경수가 어디론가 걸음을 질질 끌어 향했다. 

  


종인은 편하게 잠들 수 있었던 아까의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게 번득 눈이 떠졌다. 눈을 뜨자마자 미세하고 낯선 향이 자신의 방에 선을 남기고 지나간 듯 이곳저곳에서 남아 있었고 본능적으로 향의 근원을 찾아 일어난 종인은 바닥에 발을 내려놓는 순간 엉망인 방 안 꼴을 둘러보며 경수의 부재를 깨달았다. 또르르 또르르륵.  화장실에서 들려오는 물 소리. 그 소리를 따라 한 발자국씩 다가가면 짙어지는 향이 본능적으로 오메가의 페로몬이란 것을 일깨웠다. 화장실 문 앞까지 이끌려온 종인은 문고리를 잡고 잠시 망설였다. 문 하나로 가로막힌 본능과 이성. 이성을 택하려는 종인과는 다르게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페로몬은 종인의 선택을 본능으로 종용했다.  

  


화장실 문을 열자마자 종인을 반기는 건 훅 하고 끼친 페로몬과 반쯤 물이 차있는 욕조에 무릎을 모아 앉아있는 경수였다. 물이 차가운지 들어가 벌벌 떨면서도 슬쩍 내비치는 속살은 붉게 피어나있었고 열을 식히려 잔뜩 젖어있는 꼴은 가히 유혹을 하는 듯 선정적으로까지 보였다. 흥분에 차오르는 자신을 숨기려는 듯 끙끙거리는 소리가 조금씩 흐르는 물 소리와 함께 화장실 안을 낮게 울렸다. 종인은 진득한 페로몬이 종인을 이끌기 전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경수의 모습을 바라봤다. 참아야 해 김종인. 정신 차려. 문을 닫아. 참아. 마지막 남은 이성이 자신을 달래보려 했지만 진정되기는커녕 점점 더 요동치는 가슴에 종인은 답을 내렸다. 


왜 참아야 하지? 지금 도경수와 섹스를 해도 이건 아무 잘못이 없어. 본능이잖아.
아.. 도경수..
근데 도경수가 누구였더라.. 

  


" 아흐, 흑.. 종, 종인 아.. 흐윽.. 제발.. " 

  

종인이 잠시 멀뚱히 생각하는 사이 인기척을 느끼고 욕조에서 일어난 경수가 엉엉거리며 종인의 바짓단을 잡아당겼다. 축축하게 젖은 손이 직물에 닿자마자 둥글게 젖어들어갔고 그제야 종인의 고개가 아래로 떨어졌다. 잔뜩 젖어 있는 머리칼 끝에서 흐른 물방울이 떨어져 볼을 흐르고 발갛게 물든 눈꼬리에서도 물이 흘러내렸다. 흥분에 젖어 흐르는 눈물인지 체온을 식히려 쐰 물인지 궁금해하지도 못하게 종인의 허벅지 부근에 볼을 부비는 경수는 수치심이라곤 보이지 않는 본능에 함락된 상태임이 분명했다. 

 

 

  

-------- 

오랜만이네요 ㅠㅠㅠㅠ 항상 기다려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3^ 

틈날때마다 와서 댓글 읽어보고 돌아간답니다 ㅠㅠㅠ  

  

암호닉 신청은 항상 받고있습니다. 신청해주신분들은 완결후 특별번외 보내드려요~ 

앞으론 좀 더 일찍 올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ㅠㅠ!! 

스토커 버전 2도 거의 다 써가니 다음화는 아마 조각글번외일듯 싶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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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헉!!다음편은 불맠인가요? ㅠㅠㅠ대바규ㅠㅠㅠㅠㅠ 그렇게 경수도..?
11년 전
이로아
헉!!댓글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ㅜㅜ 재밌게 보셨나요 매번 긴글읽으시느라 수고하시네요ㅜㅜ 혹시 암호닉 신청 하셨었나요?
11년 전
독자4
아녕...지금 신청해도될까요?
11년 전
이로아
물론이죠^^!! 그래주시면 감사하죵ㅜㅜ
11년 전
독자5
그럼 작가님워더로 할게요ㅋㅋㅋ
11년 전
이로아
5에게
귀여우셔ㅜㅜ 행오시 긴글인데 읽으실때 불편하시거나 궁금한점있으신가요!!

11년 전
독자6
이로아에게
아뇨!!없습니당ㅎㅁㅎ

11년 전
독자2
헐..ㅠㅠㅠ 다정한 분위기였는데 결국 터지는구나ㅠㅠㅠ 찬백이들만큼만 행복해져라 제발 ㅠㅠㅠㅠ
11년 전
이로아
긴글읽어주시고 댓글도 남겨주셔서감사해요ㅜㅜ 종인이와경수가 찬백이들만큼 행복해지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11년 전
독자3
워후 ㅠㅠㅠㅠ기다린만큼 꿀잼이네요♡♡
11년 전
이로아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ㅜㅜ 재미있으셨나요!! 읽는데 불편하다거나 궁금한건 없으시고용?
11년 전
독자7
헐안돼경수야ㅠㅠㅠㅠ그러다임신하며뉴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이로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ㅠㅠ!!!
11년 전
독자8
암호닉 [그냥그렇게]로 신청합니다!! 첨부터 다 보구왔네요ㅠㅠ분위기 진짜 대박이에요ㅠㅠ담편이 어떻게 될지, 종인이는 어떤 사정이 있는지 궁금해요ㅠㅠ
11년 전
이로아
ㅠㅠㅠ읽어주신것도 감사한데 게시글마다 댓글도 남겨주시다니 ㅠㅠㅠㅠㅠㅠㅠ 감사합니다 꼭 기억하고있을게요~ 읽으실때 불편하신건 없으셨나요
11년 전
독자9
열심히 써주셨는데 달아야죠ㅠㅜㅠㅠ짱재밌어요♡ 불편한건 전혀없구요! 카와디 행쇼를 기다리고 있어용!
11년 전
독자10
ㅠㅅㅠ 경수야 엉엉... 아 진짜 경수도 좀 행쇼했음 좋겠어요 ㅠㅠ 읽는 동안 진짜 먹먹하고 마음도 아프고 ㅠㅠㅠ 암호닉 신청되면 [울지요]로 신청해도 될까요?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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