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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히비 전체글ll조회 831l 2
W.히비  

  

  

쌀쌀한 날씨에 코 끝이 찡해져 훌쩍이는 소리가 오늘따라 큰 것 같다.갑작스레 쌀쌀한 날씨에 이불을 뒤집어써서 몸을 웅크리고 티비를 보던 나에게 갑자기 일어나서 배고프다며 칭얼거리는 명수의 얼굴을 보다 결국 그 칭얼거림에 이기지 못하고 패한 내가 명수와 함께 맞추었던 빨간 목도리를 두르고 마트로 떠밀려나왔다.  

  

카트를 두 손으로 잡은 채 밀며 식재료 코너를 돌아다녔다.문득 명수가 먹고싶어하던 음식이 여러개였다는 걸 기억한 내가 마트안에서 어딜 간 것인지,돌아오질 않는 명수의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냈다.  

  

  

킁,코를 비비며 봉지에 포장된 애호박을 카트 안으로 집어넣으려고하자 뒤에서 누가 와락,안는 느낌에 살짝 새어나오는 웃음을 띄우곤 고개를 돌렸다.어깨에 고개를 파묻는 영락없는 어린아이같은 행동에 손을 들어 그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푸하,계속 얼굴을 파묻던 명수가 숨을뱉는 소리를 내며 내 허리에 손을 둘러 꽉 껴안았다.배고파.배고파? 아기 다루 듯 살살 그의 말에 대답하며,긍정으로 말해준다.  

  

  

" 맛난 거... "  

" 맛난 거 먹고싶어? "  

" 응.해줘. "  

  

  

알았어,우리 아가. 살짝 웃으며 카트를 끄는 내 손등위에 큰 손을 얹어둔 손의 온기가 따뜻했다.대부분의 연인들이 하는 포즈처럼 백허그 자세로 마트를 돌아다녔다.여기저기서 부끄러워하고 분위기가 처음 서로를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설레보이는 연인들이 눈에 띄었다.  

그에 비해 우리는.  

  

" 졸려. "  

" 아깐 배고프다며? 먹을 거 해줄게. "  

" 응...아무거나 해줘. "  

  

  

숨소리가 간지럽게 귓가에 닿자 몸이 푸스스 떨리며 간지럽다고 소리쳤다.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에 뽀뽀를하고 고개를 돌리게한 명수의 행동이 약간 서글펐다.  

우리,분명 예전에는 이러지않았잖아.서로 떨리며 많이 웃었고 울었잖아.  

  

명수와 고등학생때부터 사귀었다.당시 우리의 나이가 아마 열여덟이였을 것이다.이동수업을 하던 중 서로가 마주친 눈을 놓치지않고 그대로 서로가 서로를 붙잡아세웠다.첫 눈에 반했다는 기분.그것이 이런 거였을까 내심 두근거렸었다.지금 우리 나이가 25이니까,횟수로는 약 7년정도 열애를 해왔다.  

  

오래사귄것이 원인이였는지,설레임보단 익숙함과 편안함이 서로의 공기에서 느껴졌다.카트를 끌고 계산대에서 봉투에 하나하나 물건을 담는 손이 오늘따라 더 커보였다.봉투를 들어올린 손에서 봉투를 뺏어오려하자 손을 휙 피하는 명수의 행동에 갈 곳 잃은 손이 나의 티셔츠 끝자락에 머물렀다.  

  

  

같이 동반입대를하고.몰래 군대에서 속닥거리며 근 2년동안도 외롭지않게 보내왔다.들락날락거린지 오래된 꽤 크다고 말할 수 있는 명수의 자취방에 도어락을 풀고 들어갔다.  

  

  

" 비밀번호 안바꿨네.좀 바꿔라. "  

" 너 들어와야하니까. "  

  

  

그렇겠지. 피식 웃으며 앞치마를 펄럭이며 들러맸다.졸린 지 눈을 비비며 그대로 침대에 털썩 누워버리는 너를보다 가스불을 켰다.  

너희집에 있는 도마,칼. 몇번이나 이 칼의 손잡이를 잡은것일까.도마를 두드리고 프라이팬에 밥을 볶는 소리에 들어간지 15분밖에되지않았는데 나온 너가 나를 흘끔보다가 식탁에서 의자를 빼고 앉았다.  

  

  

" 뭐 만들어? "  

" 김치볶음밥.너 전에 맛있게먹어서. "  

  

  

아아.고개를 끄덕인 너가 제 앞으로 밀어지는 그릇에 얼굴을파묻고 밥을 우적우적 먹기시작했다.너의 앞에 앉아 나도 따라 밥을 먹었다.혼자사는집임에도,나를 위해 하나 더 장만해두었던 젓가락과 숟가락.어느덧 이 집에 나라는 존재자체가 박제된 기분이였다.  

  

  

한참을 서로가 잘먹고있을 때,너가 입을열었다.  

  

  

  

" 성규야. "  

" 응? "  

" 고마워. "  

" ..뭐가? "  

" 그냥,다. "  

  

  

그래.따라 고개를 끄덕이며 명수의 얼굴을 흘긋 쳐다보았다.  

그렇게 몇분간 눈을 마주치지않으며 밥을 먹는것에만 집중했던 것 같다.씹어넘기는 밥알이 넘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 아... "  

" 왜그래? "  

" 설거지...해야하는데 졸려. "  

  

괜찮아,나중에 나랑 같이하자.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곤 컵에 물을 한가득 담아 꿀꺽 삼켰다.차가운 물이 이에 닿자 이가 시려져 괜히 죄없는 이를 아래위가 맞부딪히게 딱딱거렸다.  

  

손을 이끌고 침대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 풀썩 누웠다.명수 옆에 눕는것도 이젠 아예 적응이 되버렸다.예전에 두근거렸던 기분은 어디로 실종된걸까.푹신한 침대가 등에 닿으니 점점 몸의 피로가 풀렸다.  

  

  

밥을 다 먹고 밀려오는 포만감에 살살 눈꺼풀이 감겨 명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가 침대 뒤로 벌렁 넘어갔다.잘자.달콤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자 저절로 눈이 감겼다.괜시리 나오지않으려던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 우리성규,잘자. "  

" 명수도. "  

  

  

눈을 감았다.  

온통 앞이 깜깜하여 아무것도 보이질않는다.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든 것일까.  

  

과연 우리는,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  

  

  

  

  

  

창문사이로 들어오는 밝은 빛에 인상이 찌푸려졌다.푹신한 침대에서 깨어나 내 옆에서 곤히자고있을 명수를 생각하고 고개를 돌려 옆을보자,예상과는 다르게 명수는 없었다.나 외엔 텅 빈 침대만이 공허함을 나타내었다.보글보글,물 끓는 소리가 방문의 틈 사이로 몰래 기어들어왔다.  

  

방에 걸려있는 시계는 벌써 오전 11시를 가리키고있었다. 회사가야하는데! 벌떡 몸을 일으켜 하반신을 덮고있는 이불을 옆으로 치우고나서야 오늘이 일요일이였다는 것이 생각났다.부스스한 머리를 정리하고,방 안에 딸린 화장실에서 양치와 세수를하고 명수의 트레이닝복은 그대로 입고있는 채로 방문 밖으로 나갔다.기지개를 쭉 피고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었다.  

  

  

" 일어났어? "  

" ..응,언제 일어났어? "  

" 너 일어나기 1시간 전 쯤? "  

  

  

쩝,입맛을 다시곤 부엌을 둘러보자 보글보글 물을 끓이는 커피포트가 보였다.뿌연 수증기가 몽글몽글 피어올라 하얀 벽에 붙었다.  

커피마시려고? 응. 밖에나가서 안사먹으려고? 조금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명수가 고개를 양옆으로 저었다.  

  

  

" 마시고싶긴한데,나가기도 귀찮고 너 집에 두고나가기가 뭐해서. "  

  

  

새삼 웃음이 새어나왔다.커피포트 옆에 자리잡은 커피잔에 믹스커피 봉지 입구를 뜯어 가루를 쏟아넣었다.후두둑,쏟아지는 가루들이 곧 뜨거운 물과함께 녹았다.너가 좋아하던 커피는 캬라멜 마끼야또였는데.연애 초반에 명수의 취향과 좋아하는것,싫어하는것을 알아내기위해 몰래 조사하고 눈치보고 달달달 외웠던 것이 기억났다.고등학생때 공부를 하고 스무살때 외울 걸 그랬나.  

  

뜨거운 물이 커피잔에 담기고 소파에 앉아 빨간색 표지로 이루어진 소설책을 읽고있는 명수의 옆으로 다가가 커피잔을 손에쥐어주었다.김이 모락모락 새어나와 명수의 시야를 조금 방해한것인지 인상을 찌푸리곤 후후 불어 김을 저 멀리로 보내버리는 행동이 애같았다.  

  

명수의 허벅지에 머리를 베고 눕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나를 한번 바라보더니 입가에 미소를 그리곤 책을 옆으로 치우곤 커피를 소파앞에있던 탁자에 올려놓았다.천천히 머리를 쓰다듬는 느낌이 좋고 간지러워 샐쭉   

웃자 내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빗었다.  

  

  

" 명수야,나 옛날생각난다. "  

" 무슨 옛날생각? "  

" 나 예전에 너 취향알려고 엄청 애쓰고 그거 다 외웠잖아.고등학생일때였으니까,그때 공부하고 스무살에 외울걸. "  

" 그땐 이렇게 오래갈지 누가 알았어. "  

" 그러게. "  

  

  

살짝 웃어보였다.눈을 마주치고 웃는 그 미소가, 예전과는 다르게 서로의 눈동자에 비치는 그 모습이 서글퍼보였다.읏차,몸을 일으키곤 외투를 걸쳐입는 날 보며 명수가 물었다. 어디가?  

  

  

" 아이스크림 먹고싶어서.사다줄까? "  

" 음...그럼 나는 토네이도. "  

" 알았어. "  

  

  

밖으로 나오니 추운 겨울바람이 내 온몸으로 맞이했다.외투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 주머니에 손을 푹 꽂아넣고 슈퍼로 향했다.명수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까만 봉지에 아이스크림을 넣고 슈퍼를 나섰다.  

  

도어락을 풀고 집에 들어오자 다시 책에 집중하고있던 명수가 보였다.  

  

  

" 왔어? "  

" 응,아이스크림 너것만 사왔어.냉동실에 넣어둘게. "  

  

  

오늘은,때가왔구나. 직감적으로 든 생각이였다.서로가 더욱 지칠때까지 늘어지는것보단 서로가 충분히 지쳐있을 때 끝내버리자.그 생각은 곧 실천으로 옮겨졌다.  

  

  

" 명수야. 헤어지자. "  

  

  

너무나도 담담한 내 말에 명수는 나를 바라보았다.거실바닥에 앉아 이별을,고해버렸다.이미 서로에게 지쳐있었던 것이다,우리는.  

  

  

우리가 과연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너에게 외쳐보고싶었다.서로에게 너무 익숙해진것이 갈라놓은 것일까.우리는 서로에게 너무나 무신경해져있었던 것이다.이별멘트를 외쳐보라한다면,당당하게 외치겠다.사랑했노라고.  

  

헤어지는것은,우리의 잘못이 없다.단지 우리가 알고지낸 그 긴 시간이 우리를 갈라놓은것이다.너 또한 나와 같은생각이였으면 좋겠다.사랑했었다고,온 세상이 벅차고 터지도록 너를 좋아했었다고.나를 좋아했니,명수야?  

  

  

" 사진,한장만 찍자. "  

  

그래.빙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폴라로이드를 들고나온 너를보며 나는 그 어느때보다 활짝 웃곤 사진에 찍히길 원하였다.  

  

서로가 더할나위없이 낡고 찢어지거 점점 익숙해져버린것이 지독하게 견디지못할만큼 커져버린것이 우리둘의 문제였을까.  

  

  

" 찍을게.하나,둘,셋. "  

  

  

마지막으로,너와의 사진을 찍어본다.너와나의 오래될 추억을 위하여.  

  

뽑힌 폴라로이드를 보며 웃었다.  

  

  

우리는 다른 연인들처럼 화를내거나,울거나 매달리지않았다.덤덤하게 받아들인 이별이 오히려 속 시원했다.과연 서로가 사랑하긴했던 것일까.그의 자취방에서의 이별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조금은 시선을 깔고있는 너를 보고있노라니,답답해지는 느낌에 조심스레 일어났다.  

  

  

" 나 갈게,명수야.잘 지내. "  

" ... "  

  

  

도어락을 풀고 나가려던 참,뒷통수로 말이 날아왔다.  

  

  

" 사랑했었어. "  

  

  

아주 조금은 슬픈 말이였다.  

  

  

  

  

아주조금은 슬픈말  

  

fin.  

  

  

  

  

  

-  

  

  

  

단편입니다.다음번에 올릴 아주조금은기쁜말의 전작입니다.  

이런글에 구독료 5p나 지불하게해서 미안해요:(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어요


 
비회원221.7
왜요....ㅠㅠ 어째서...ㅠㅠ 안돼!!! 다시 생각해ㅠㅠ 너희같은 케미커플이 또 어딨다고!!!ㅠㅠ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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