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식스] 경영학과 구남친들 02
2012.09.10 월요일
" 되게 어이없네. "
" 뭐가? "
" 내가 신세 진 건 맞는데, 같이 마주 앉아 밥 먹을 사이 아니지 않아? "
" 같은 과 선후배끼리 뭐 어때. "
" 오빠 우리 과 후배들이랑 밥 안 먹잖아. "
" 잘 아네. "
낯짝에 철판을 깔았나. '같은 과 선후배' 란 단어를 내뱉으면서도 태연하게 파스타를 돌돌 말고 있는 박제형을 쳐다보고 있으니 낮부터 술이 당기는 기분이었다.
같은 과 선후배라, 틀린 말은 아닌데 우리 사이를 그렇게 흔한 관계로 정리한다고?
아무리 헤어졌지만 차라리 남보다도 못 한 사이가 낫지.
박제형 더럽게 이기적인 걸 보니 여전하네, 난 아직...
" 오빠, 오늘 이후로 다시 아는 척하지 마. "
" 왜? "
" 오빠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잖아. 우리 1주년 때. "
" ... "
" 난 아직 오빠 보면 화도 나고, 울음도 나올 것 같고, 또... "
" ... "
" 그런데도 또 만나면 설레니까, 남들처럼 같은 과 선후배 사이로 못 지내 나는. 그러니까 그냥 모르는 척해. "
짜증나 진짜.
더 이상의 자존심을 위해 눈물을 참고자 주먹을 꽉 쥐고 입술을 깨물었다.
내 말에 조금 당황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뜬 박제형이 아무 말 없이 내 모습을 쳐다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 미안해. 이렇게 섣불리 너한테 다가갔으면 안 됐는데. "
" ... "
" 결국 또 예전 같은 실수를 반복했네. "
" ... "
" 나도 잘 모르겠어서... "
가자. 박제형은 무언가를 말하려는 것처럼 한참 뜸을 들이더니 결국 가자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도 아무 말 없이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학교 캠퍼스까지 가는 길에 누구 하나 아무 말도 꺼내지 않은 채 침묵만 지키고 있던 중 경영관 앞에 도착해서야 박제형이 먼저 말을 꺼냈다.
" 미안해. 근데 진짜 단지 친한 선후배 사이로 지내자고 그런 건 아니야. "
" 뭐? "
" 생각나더라고. 방학 내내 계속. "
" ... "
" 너 혼란 주려는 것도 아니고 지금 당장 다시 잘 해보자는 것도 아닌데, "
" ... "
" 연락은 해도 되지? "
-
" 그래서? 해도 된다 했냐? "
" ... "
" 했네 했어. 또 넙죽 알았다고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했겠지. "
" 야, 그 정도는 아니거든? 그냥 나도 모르게 고개 끄덕거린 거지... "
" 아니, 그 선배도 어이없네. 지가 헤어지자 했으면 헤어진 거지. 왜 이제 와서 잘 살고 있는 사람 흔들어 놓고 난리야 웃겨 증말. "
모르겠다 나도... 진지한 박제형의 눈빛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여버린 나는 친구 만나서 들어가기로 했다는 핑계를 대고 경영관이 아닌 학식당으로 도망치듯 뛰어왔다.
다행히도 학식당엔 혼자 앉아 점심을 먹고 있던 김원필이 있었고, 그 옆에 앉아 점심시간에 있었던 일들을 털어놨더니 자기가 더 흥분해서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다.
" 게다가 지가 나서서 도와줘놓고는 뭘 고마우면 밥... 어, 너 그러고 보니까 너 그 선배랑 밥 먹으려고 나 버리고 간 거였냐? "
" ...원필아 수업 시작하겠다. 얼른 들어가자. "
" ...성이름 짜증난당 진짱. "
-
강의 내내 박제형 생각하느라 집중 하나도 못 한채 수업이 끝나버렸다. 혼란스러운 머리를 붙잡고 얼른 집 가서 씻고 누워야겠다라고 생각하며 사물함으로 향했다.
김원필은 뭐가 그렇게 심통이 났는지 어울리지 않게 강의 시간 내내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수업에만 집중하더니 끝나자마자 약속 있다며 먼저 나가버렸다.
하여간 김원필 잘 삐지는 건 알아줘야 돼. 밥 두 번 따로 먹었다가는 친구 하나 잃겠네 아주.
...아까 혼자 밥 먹고 있던 모습 보니까 미안하긴 하던데, 내일은 김원필 좋아하는 라멘집 가자고 해야겠다.
" 저... 안녕하세요! "
" 어, 누구...? "
" 아! 저 그 때 개강파티... "
" ...아! "
" 그날 잘 들어가셨어요? 선배님 그때 처음 뵌 거라 연락드릴 수도 없어가지구... "
" 어, 아 어. 고마워. "
" 아이~ 전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요 뭘. "
" 그래도.. 여튼 그럼 나중에 보자! "
얼굴은 낯선데 목소리는 낯익은 훤칠한 남자가 인사하길래 누군가 했더니 개강파티 때 날 업어다 술집 안으로 데리고 간 장본인이었다.
목소리와는 다르게 생긴 건 꽤나 순둥순둥하게 생겼길래 못 알아볼 뻔 했는데 개강파티라는 단어가 입에서 나오자마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취해서 제 몸 하나 못 가누다가 살 오른 내 몸뚱아리로 업혔을 생각하니 맨 정신에 보는 게 쉽지 않아 기다렸다는 듯 주절주절 거리는 그 애 앞에서 빨리 자리를 떠야겠다고 생각했다.
" 잠시만요 선배! 저 부탁 하나 있는데... "
" 부탁? "
" 저 연락처 좀 주심 안될까요... 하하. "
+
" 성이름 남자복 터졌네 아주. "
복도 끝 사물함 쪽에서 울려퍼진 심술궂은 쾅 소리는 이름이한텐 안 들렸답니다^^.
*
헝.. 저 혼자 끄적이다 말 글일 줄 알고 아무 생각 없이 지내고 있었는뎅
늦게 온 마당에 턱 없이 짧고 보잘것없는 글 들고 와서 죄송해용..
ㅠㅠ앞으론 미리미리 써놓겠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