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훈x민석
1.노란 병아리는 햄스터를.
K 모교 앞 편의점, 총총거리는 걸음으로 바삐 움직이는 민석은 땀을 뻘뻘 흘리며 편의점 안으로 급히 들어갔다.
내가 지구를 떠나든가 해야지. 유독 더위에 약한 민석은 혼자 중얼중얼 짜증을 부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오후 2시, 오전 타임을 맡은 종대의 바톤을 이어받은 민석은 평소와 달리 후덥지근한 기운이 그득한 편의점에 의아했다.
"뭐야. 에어컨 안 돌렸어?"
민석은 툴툴거리는 말투를 숨기지 못하고 툭 질문을 던졌다. 더운 걸 어떡해. 더워!!
"고장 났데. 하루 에어컨 없이 사는 게 뭐 어렵나."
실없이 웃는 종대를 슬쩍 쏘아보았다. 저게, 지는 날씨 선선한 오전 타임 알바니까 속 편하게 저런 소리나 하는 거지.
하루 중 가장 덥다는 오후 2시부터 에어컨도 안 나오는 편의점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있어야 하는 민석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괜한데 불똥 튀기지 말고.. 그럼 난 약속이 있어서 간다!"
민석의 살벌한 시선에 살짝 움찔한 종대는 활짝 열린 편의점 문 사이로 빠르게 사라졌다.
2시 4분, 편의점에는 후덥지근한 기운과 축 늘어진 햄스터마냥 골골대는 민석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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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인지, 다행인지 학교 코앞에 위치한 편의점은 오고 가는 사람이 별로 없어 한산했다.
피크타임이 있다면 고딩들이 휴교하기 바쁜 5시쯤이었다.
컵라면 국물을 테이블에 아스트랄하게 흩뿌리고, 눈은 발바닥에 달린 건지 '비닐'이라고 떡하니 적혀있는 쓰레기통에 컵라면 용기를 버리는 일도 다반사.
야외에 비치된 두 개의 테이블은 고딩들이 한번 떴다 하면 아수라장이었다. 생각만 해도 진절머리가 나는 민석은 몸을 부르르 떨며 카운터에 볼을 갖다 붙였다.
열어놓은 문으로 뜨거운 공기를 안고 들어온 바람이 훅 끼쳐왔다.
"더워.."
카운터에 볼을 붙인 민석이 몸을 뒤척뒤척거렸다. 덕분에 모서리 부분에 아슬하게 걸쳐있던 민석의 휴대폰이 툭 하고 떨어졌다.
"에라이. 진짜"
카운터에 떡처럼 붙어있던 민석이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느릿느릿 몸을 숙여 핸드폰을 집어 들고 다시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
민석의 시선이 정면을 향했을 땐 카운터 위로 머리를 내민 리락쿠마 얼굴 모양을 한 선풍기가 보였다.
리락쿠마를 들고 있는 손도.
한참을 멍하니 리락쿠마와 눈을 맞춘 민석은 '아' 하는 자그만 탄식을 내뱉었다.
"너에요?"
리락쿠마를 쥔 손이 잘게 떨렸다. 맞구만.. 덩칫값 못하고 저게 뭐 하는 거야. 민석은 슬쩍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키도 멀대같이 큰 게 쪼그려 앉아 리락쿠마 얼굴만 카운터로 빼꼼 내비춘것이 상상해보니 우습기도 했고.
"거기 쪼그려 앉아서 뭐해요?"
그제야 리락쿠마 선풍기의 주인이 벌떡 일어나 멋쩍게 웃으며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형, 더위 많이 타나 봐요?"
노란 교복을 입은 남자는 다리가 저린지 엉거주춤한 자세로 민석에게 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리락쿠마에 시선을 뺏긴 민석은 앞에 선 교복쟁이는 안중에도 없었다.
"이거.. 형 가져요!"
민석의 시선이 향한 곳을 확인한 남자는 다짜고짜 민석의 손을 끌어다 쥐고 있던 선풍기를 넘겨주었다.
얘도 취향이 참.. 남고생이 리락쿠마가 뭐야, 리락쿠마가.
민석의 앞에 선 노란 교복을 입은 남자를 한번. 자그만 손에 들린 리락쿠마를 한번. 눈을 굴려가며 열심히 관찰했다.
리락쿠마 얼굴에는 제법 큼지막하게 이름까지 쓰여있었다. '오 세 훈'이라고.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오세훈이라는 아이는 어느 한 곳 모자란 곳 없었다.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기고, 줄이지 않은 교복 핏은 깔끔하게 떨어졌다.
냉미남 스멜을 폴폴 풍기며 뭇 여성들 마음을 돌팔매질할 것 같이 생긴 아이가 리락쿠마라니. 거기다 이름까지 썼어..와..
역시 이상한 애야..
"오늘은 또 왜 왔어요?"
경계심이 잔뜩 낀 눈을 한 민석이 물었다. 벌써 며칠째 편의점에 들락날락하는 세훈이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매상 올려준다는데 뭐가 어떠냐 싶을 수도 있지만, 그도 그럴 것이 세훈은 물건을 계산하면서 선물이라며 민석에게 무언갈 자꾸 안겨주었다.
사탕이며, 초콜릿이며 자잘한 간식, 이번엔 미니 선풍기까지. 원체 낯가림도 심하고 숫기 없는 민석은 처음 본 사람의 호의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무엇보다 처음 본 자신에게 선물을 주는 의중이 뭔지 알 수 없었다. 역시 쟨 경계 대상이야..
민석의 물음에 음료수 하나를 집어온 세훈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형 보러요"
얘가 지금 뭐라는 거야..설마 뭐 그런 의미는 아니겠지? 나한테 관심이 있다 뭐 그런 건 아니겠지..?
물론 나는 동성애에 대한 편견 같은 걸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워낙 남들 일에 무심한 터라 남들이 동성애를 하든 말든 그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제 할 일하기 바빴다.
벗뜨, 그건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 이야기라고만 생각해왔고 내가 동성애자가 될 수 있다는 상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나한테 관심 같은 거 있어요?"
세훈은 골똘히 고민하는 민석의 모습을 눈에 담다 민석의 돌직구에 '풉'하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고민하는 모습도 햄스터 같잖아?
"관심 정도가 아닌데?"
헐..진짜였어. 나한테 관심이 있는 거였어.
벙찐 표정의 민석과 좋아죽겠다는 듯 웃는 세훈 사이에 잠시 적막감이 감돌았다.
그 사이에 사라질뻔한 이성을 재빨리 되찾은 민석은 세훈을 마주하는 게 불편해졌다.
이 자식이 편의점에 온 걸 보면 하교 시간인 게 분명한데? 왜 없어!! 개미 새끼 한 마리 없어!
안절부절못하고 엉덩이를 들썩들썩 거리며 문 쪽을 확인하는 민석을 본 세훈은 민석의 의도를 눈치 채고 슬쩍 웃었다.
"오늘 기말고사라 일찍 끝났어요. 저는 내일 볼 과목 공부 좀 하다가 지금 나온 거구요."
왜 하필.. 종대가 맡은 타임에 이미 편의점을 거쳐 갔을 고딩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나 지금 존나게 불편해요'라는 걸 얼굴에 써 붙인듯한 민석은 세훈이 들고 온 음료수를 뺏듯이 채가 계산했다.
"950원이요."
초조한 듯 발을 퐁퐁 구르기까지 하는 민석을 본 세훈은 입을 가리고 웃으며 지갑을 꺼내 계산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민석은 불편함을 얼굴에 가득 띄우고 생각을 정리하느라 세훈은 안중에도 없었다.
생각을 정리한다기보다는 불편함에 눈도 못 맞추는 것에 가까웠지만.
"많이 불편해 보이는데 이만 가볼게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나 지금 혼란스러우니까 꺼져!!
환하게 웃으며 손까지 흔든 세훈은 문 쪽으로 향하다 뒤돌아서서는 카운터에 놓인 리락쿠마 선풍기의 전원을 켜서는 민석의 손에 쥐여주었다.
"내일 봐요, 형~"
휘파람까지 불며 유유히 편의점을 나서는 세훈의 뒷모습을 보며 민석은 그저 멍한 표정을 했다. 내일..? 내일..
알바 그만둘까. 민석은 울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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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선풍기가 리락쿠마인 이유 ~_~ |
하하하..하하 망했어 제목부터 망했어..하하핳ㅎㅎ
저지르기는 했으나 그 다음은 나도 모르겠다(도망)
댓글 하나도 없으면 펑하고 꽁지빠지게 도망갈지도 몰라여..이게 은근 상처야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