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환] 뱀파이어와 동거 #2
w.들이가좋아
어제 피를 빨려서 인지 아님 그저 피곤함에서 인지 공부를 하는데 눈도 슬슬 감겨오고 머리에 들어오는 내용이 하나도 없다. 그래도 오기로 펜을 붙잡고서 책을 노려 보기를 1시간째. 결국- 내가 져버렸다.
"아이씨-!"
"왜, 뭐가 잘 안되?"
"네, 뭐 좀 그러네요"
오늘간다고 했는데 언제 갈련지, 내침대에 엎드려 만화책 감상중인 뱀파이어씨다. 오늘까지만 볼 사인데 굳이 이름을 묻기도 뭐하고, 클럽에서 만난 남자라 조금 찝찝스런 마음이 있는건 사실이다. 아, 그나저나 언제 나가려고 그러냐.. 있을데도 없다는데 내보내기도 뭐하고..어느새 川(내천)자를 그리고 있는 미간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려 펴고는 공부도 안 할 겸 말이나 붙여보려고 뒤를 돌았는데-
"...!"
"인상 쓰지마. 인간들은 인상쓰면 주름 금방 생기더라"
얼굴을 가까이서 들이대고서 한다는 말이 저거다. 하-참 웃겨! 뒤가 바로 책상으라 피하지도 못하고 얼굴만 멀찌감치 떨어뜨리자 서운한 기색을 보인다. 그리곤 또 표정이 변해서는 싱긋. 웃는다. 아니 무슨 기분이 이렇게 빨리빨리 변해. 혹시 조증이라던가..아닌가 뱀파이어라 그렇진 않으려나. 여전히 떨떠름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쳐다보았다. 그 뱀파이어라는 남자는 자신이 가져온 가방-언제부터 매고 있던건지는 모르겠지만- 에서 배즙처럼 생긴 음료를 꺼내더니 쯉쯉 소리를 내면서 빨아먹고는 질문을 하더라.
"니는 뱀파이어가 무섭다 던가 그렇진 않나보다?"
"애초에 뱀파이어라기엔 너무 이상한 이미지로 보였어 가지고요."
"뭐- 어찌됬든 간에. 나 땜에 불편했어?"
".....아. "
"그럼 진작 애기하지. 법공부하는 가시나가 똑뿌러지질 못해. 그럼 나 간다. 이따봐-"
"..아, 네.네 미안해요 잘가요."
그래도 내쫓은거 같은 기분에 미안하다하고는 문을 닫았다. 그렇게 티났다. ..그런데 이따 봐 라니. 설마 이리로 다시 온다거나 그런건 아니겠지..? 불안한 마음을 애써 무시하고는 문제집에 고개를 박고는 열심히 풀고 있을 무렵 배가 고파서 고개를 들어 시계를 쳐다보니 벌써 저녁 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기지개를 쭉 켜고는 뭐라도 먹을까 라는 마음으로 책상에서 일어서서 부엌-그래봤자 현관이랑 같이 쓰는-으로 향했다. 간단히 라면이라도 먹으려 냄비를 찾는데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뭐 찾아?"
"..?!"
"넌 매번 봐도 매번 놀래는 구나. 나야 나"
"..어떻게 들어왔어요? 내가 문 안 잠궜나.."
또 바보 같은 표정으로 놀랐겠지 싶은 한심한 생각이 들어 자괴감에 빠져있다가 또 혼자 실실 웃다가 어깨를 톡톡 치길래 쳐보다았더니 반대편 손에 매우 익숙한 향기를 풍기는 그것이 들려 있었다; 치킨이예요..? 응. 왠지 좋아할 것 같아서. 이런다. 들어가서 먹자 이러고는 등을 살며시 밀면서 데리고 들어가는데 문득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보니 키가 한참 위라 놀랬다. 앞에서 봤을 때엔 그렇게 커보이지 않았는데. 정말 뱀파이어들은 다들 우월 유전자만 가지고 태어나나.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서 치킨을 잡아 들었는데 사람 뻘쭘하게 정작 사온 사람이 손도 안대고서 빤히 쳐다보고만 있다.
"좀 먹어요. 자, 여기"
"아, 나 친구만나면서 뭐 먹고 와서 일단 너 먹어"
"그럼 말구요. 이따 딴 소리 하지마요"
그렇게 덕분에 오랜만에 치느님과의 행복한 만남을 30분만에 끝마치고 손을 말끔히 씻고 나오니 자기 옆자릴 톡톡 친다. 의문가득한 표정으로 쳐다보니까 와서 좀 앉아 보란다. 아니, 어제부터 왜자꾸 오라가라. 그리고 왜 이 늦은 시간 까지 여기 눌러 앉아있는거야. 내쫓지도 못하게.. 그치만 방금 치킨을 얻어 먹었으니 일단 말을 듣기로 했다. 그랬더니 또 침대쪽으로 밀치어져 목에 고개를 쳐박고 계신 뱀파이어씨 되겠다.
"아!!! 진짜!!!"
하면서도 뗴어내지 못하는 이유는 일단은 어차피 힘으로는 밀려도 한참 밀릴 현실을 직시해 버려서 이고, 왜인지 괜히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랄까. 그리고선 마실만큼 마셨는지 핏빛이 조금 도는 듯한 빨간 혓바닥으로 입술을 슥-햩는 걸 지켜보고 있자니 그모습은 또 영락없이 영화속에서 보아오던 뱀파이어였다. 인간보다 눈에 띄게 뾰족한 송곳니 까지. 그리고 급작스레 몰려드는 두려움. 만난지 고작 하루 됬는데 너무 가까워 진 거 아닌가. 그렇긴 했다. 클럽에서 만났는데 집도 따라오고, 한 침대에서 자고, 어쩌면 오늘 밤도 여기 있을 지도 모르는, 그니까 뱀파이어다-라는것 말고는 아는 것도 없는데. 이상하게 거부감을 느끼지 못한 나도 문제가 있기는 한것 같다.
"놀래지마. 영화에 나오는 애들 같진 않으니까. 정말 순전히 생존목적으로 피마시는거야"
"......."
"그거 아니면 우린 죽거든."
"뭐. 피면 다 되는거 아니에요? 다른 동물들 많잖아요"
"아, 그거야 옛날 먹을거 없을 떄 얘기고.. "
고개를 끄덕끄덕 이자 피곤하다 잘래-이러며 또 침대에 드러 눕는다. 아무리 밤이라지만 고작 8시뿐이 안됬는데. 근데요. 집도 없으면 전엔 어디서 살았어요?
"아- 그냥. 클럽에서 본 애들 집에서 하루씩 돌아가면서?"
"..아...?!! 뭐..뭐라고요?!"
경악스러운 표정을 그대로 얼굴에 녹여 보여주자 또 손사레를친다.
"아, 니 생각하는 그런거 아니야!! 불순한 의미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그럼 앞으로는 어쩔 생각이세요."
"....생각 중이야 지금"
"...정말 집이 없어요...?"
"정말 없다니까. 못믿겟어?"
아무리 집이 없기로 서니. 클럽에서 본 여자들 집에서 잔다니. 불쌍하다 불쌍해. 그렇지만 나 혼자 지내는 이 원룸에 다른 성인 남자를 들이자니 그것도 또 고민이 되었다. 쓸떼없는 동정심이 도져서는 고민에 빠져 있자 웃으며 말을 건네온다.
"그렇게 까지 안해줘도 돼. 불편하면 말해. 바로 나갈께"
"아!!아니예요 쫌!! 그냥 오늘까지 자요. 좀더 생각해보고 말해줄꼐요. 졸리다면서, 잠이나 자요"
"일로와. 어제 내가 그랬잖아. 옆에 사람 있어야 잠온다구"
왜인지 기분 좋은 칭얼거림이였다. 중학교를 공학으로 지낸 이후에 여고를 다녔던 이유로 남동생과 아빠를 뺴고서 남자랑 같이 있는건 꽤-아주- 오랜많이였다. 마지못해 옆에가서 누워주니 아기가 곰인형 끌어안듯 끌어안고서는 바로 색색-거리며 잠든 모습에 괜스레 떨리는건-, 그냥. 지금 너무 가까이 있어서 겠지?
-
결국은 한 잠도 못잤다. 괜히 자세를 바꾸면 깨어날 것 같고 처음 안긴 자세는 너무 불편해서 잠이 들 수 없었다. 그런데 이 남자가 일어나려는 기척을 보여 얼른 자는척 눈을 감았다. 그러더니 먼저 일어나서 달그락달그락 거리는거 보니 부엌에 있나보다. 궁금한데 지금 바로 일어나면 너무 티날 것 같고. 그렇게 마음 졸이며 누워서 자는 척을 하는데 너무도 맛있는 음식냄새들이 내 코끝을 자극하기에 몸을 일으켰다.
"우..으.."
"잠이 꽤 많나보다? 지금 10시야"
잠이 많은게 아니라 못잔겁니다. 그쪽 때문에...그냥 아무 대꾸없이 졸린눈 만 꿈뻑거리고 있으니 '얼른 씻고와!' 이러면서 욕실로 밀어넣고는 다시 부엌-다시 말하지만 현관과 함께 쓰는-으로 가버렸다. 그런 이유로 일단 씻고 나와보니 눈앞에 보이는 상다리 휘어지는 진수성찬은, 우리집에 있던 재료들로는 도저히 만들 수가 없었을 텐데..
"다 직접 만든거에요 이걸?"
"어. 당연하지"
입을 쩍벌리고 쳐다만보고 있자 앉아서 일단 먹자고 말을 붙인다. 심지어 맛도 있다. 어쩜, 정말 어릴 떄 엄마게 해주던 것보다 맛있는 음식은 지금먹는게 처음인것 같다. 신선한 충격에 처음으로 요리하는 남자가 멋있어보인다는 친구의 말을 공감하며 밥을 먹고있는데 옆에 앉아서 흐믓하게(?) 웃고있던 뱀파이어도 밥을 한술 두술 퍼먹기 시작했다. 처음엔 밥을 먹느라 뭔가 이상한데 그게 뭐인지 모르겠는 기분에 고개만 갸웃하고 마저 밥을 먹었는데 다 먹고나서 생각났다. 그 묘한 이상함이 무엇이였는지
"밥. 밥도 먹어요? 피말고?"
아직 다먹지 못한 밥에 숟가락을 입에 물고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그리곤 입에있던 밥을다 삼킨건지 그에 부연 설명 까지 해준다.
"정말 오리지널로 피만 먹고 사는 애들도 있는데, 그것도 능력이 되야 할 수 있는거고. 왠만해서는 인간들 먹는 음식도 먹어. 다만 피도 먹어줘야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거지"
그렇구나..하면서도 아직도 내 눈앞에 있는 남자가 뱀파이어라는게 현실로 받아들이기 조금 힘들다. 워낙 현실성 없는 얘기여야 말이지. 그래도 눈으로 보고 확인한게 있어 믿을 수 밖에 없다. 근데 진짜 이 남자 어떡하지..갈데 없다는데 내보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데리고 있기는 좀 걸리는 부분이 없잖아 있고. 생각에 잠겨 설거지를 하다보니 어느새 멍때리고 서서 가만히 있었는지 그 남자가 와서 다 해버렸다. 아, 얻어먹고 설거지 까지 하면 미안하잖아요! 이러니까 괜찮다며 웃어보인다. 뱀파이어라는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게 꽤 웃음이 헤픈것 같다. 보통 막 멋있는척도 좀 하고, 과묵하지 않나? 그런데 뭐만 하면 좋다고 실실 웃네.
"저..있지 오늘 바빠?"
"왜요?'
"오늘 하루만 내좀 도와주라. 오래 안걸릴꺼야 응?"
-----------------------------------------------------------------------------
분량이 많이 짧죠 ㅠㅠㅠ 앞으로 더 많은 분량으로 찾아올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