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오랜만에 보미는 친구들과의-고등학교 1학년때 친했던-만남에 들떴다. 벌써 우리가 대학교 3학년이야! 아~~완전 늙었어 하면서 떠들고 웃고 여대생들의 시끄러운 파티가 시작됐다. 야 너 완전 바닷가로 내려갔다며? 헐 대박 바닷가?부산? 아니 그런데 말고 어디라더라?거제?삼천포? 아니야아 그런곳 왁짜지껄하게 5년가량 못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야 근데, 오경민 안와?" 맞아 맞아, 걔 왜 안와. 7명이 다들 각자 얘기를 하다 동시에 집중해서 듣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보미의 얼굴이 굳어버린 순간이었다. "야 정은지 너 걔랑 같은 반 아니었냐, 너 몰라?" "나도 몰라.. 너네도 다 알지않냐." "뭘?" "걔 잠적타는거." "아 맞아 나 들었어." "헐 잠적?왜?" "몰라, 걔 수능 대박나서 한화여대 회화과 붙었는데 안갔대." "헐 대박 한화여대?" "헐 헐 미쳤어 거길안가?? 왜?? 난 진짜 원서도 못넣는곳을 ㅋㅋㅋ" 그니까, 미쳤다고 걔. 대박이지않아? 걔 수시 심지어 해진대 넣었는데 최종면접까지 붙었는데 안나갔대, 헐.. 대박이야 해진대면... 와 진짜 오경민 돌았다. 거기 요즘 미대 톱이라며. 그니까. 난 걔 대학 잘갈줄 알았어. 잘그리잖아. 근데 왜 안간대? 그니까 미쳤다고~ 야 근데 너네 요즘 잘 지내냐? 나 완전 이번학기 학점 대박이잖아. "아 근데, 윤보미 너도 오경민 소식없어?" "맞다, 너가 제일 친하지않았나?" "어어?" 보미의 표정에 불편함이 숨겨지지가 않는데도 친구들은 보이질않는지 아니면 보이면서도 묻고싶은지, 캐물어댄다. "나도몰라, 걔.. 연락안해봤어." "아..그래." 괜히 들떴던 기분이 가라앉았다. 오경민때문에. * 술기운에 잠들었다 일어나니 속이 매스껍다. 아이씨.. 돌아가기싫어. 물 한병을 사서 뚜껑을 돌리며 버스 좌석에 앉았다. 나도 서울에있는 대학 갈수있는데, 이게 뭔고생이야. 그냥 좀 낮은 대학이라도 서울에서 살걸.. 지금이라도 재수를할까.. 버스안에서 멀어지는 터미널을 보며 별 생각이 다 든다. 이웃도 무슨 그런 이웃을 만나서.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갑자기 문득 단호하게 "싫어요."하는 세훈의 얼굴이 떠올랐다. 짜증나는데, 근데 나쁜사람 같진않은데. 나를 왜그렇게 싫어하지? 칫, 친해지고싶은데. 버스에서 보미는 다짐했다. 세훈씨랑 친구가 되야지. 아마 그건 보미가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 "아 뭐야!! 이거 왜 안켜져?" 전구가 나가서 불이 들어오질 않자 보미가 당황섞인 짜증을 뱉는다. 아이씨, 차라리 낮에 꺼지든가, 저녁에 보이지도 않는데.. 어두운 방에서 빛나는 핸드폰 액정에 "PM 09:26"가 떠있다. 진작에 들어올걸. 전구 어떻게 갈지? 똑똑, 하고 문두드리는 소리에 세훈은 또 짜증섞인 표정으로 일어섰다. 열린 문에는 설마 했지만 역시나 "저기.. 혹시 안바쁘시면 저.." "바쁜데요." 하고 닫으려던 문을 보미의 발이 막았다. "잠시만요.. 지금 전구가 나갔는데 저 갈 줄을 몰라요.." 울상이 다 되서 보미가 칭얼댄다. "저도 몰라요." "아니 잠시만..! 제발 도와주세요.." 또 한번 닫히려던 문을 보미가 막고 간절하게 부탁했다. "101호 가서 도와달라고해요." "가봤는데 어디나갔는지 없어요.." "그럼.." "주인아줌마도!! 안계세요" 보미가 세훈의 말을 자르면서 대답했다. 사실 보미도 굳이 세훈에게 부탁하고 싶진않았다. 이렇게 거절당할게 뻔하고 문이 닫힐거란 것도 예상했지만 정말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 예상은 했지만 세훈이 점점 얼굴이 굳어져선 쳐다보니 좀 무섭다. "제가 해보려고했는데 키가 안닿아요.. 좀 해주시면 안되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세훈을 쳐다본다. 앞머리를 쓸어올리면서 세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 "오!! 켜졌다!!" 보미의 방에 불이 깜빡, 깜빡 하더니 들어왔다. 보미의 얼굴에도 환하게 켜졌다. 세훈은 지금 당장 이 방에서 나가고싶은 마음 뿐이다. 말 없이 나가려고 하는 세훈의 팔을 보미가 붙잡았다. "완전 고마워요!!제가 다음에 꼭..!" "됐어요." 또 말이 잘려서, 그것도 또 이렇게 거절당해서 보미의 얼굴이 일순간 굳어졌다. 하지만 애써 웃으면서 감사하다고 연신 말한다. 102호로 돌아온 세훈은 의자에 털썩 앉아서 스케치만 되있는 캔버스를 바라본다. 내가 이래도 되는걸까. 내가 너를... 웃통을 벗고 화장실에 들어간다. 거울 속에 세훈이 보인다. 속이 울렁거린다. 자신의 모습이 너무 역겹다. 씨발, 하고 물을 튼다. 하얀 벽을 보니, 보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화가 났다. 윤보미를 내 인생에서 지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시작한 건 나지만.. 더 이상 도망갈 수 없게 어딘가에 묶여버린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정말 잘못한 게 없다 라고 정당화를 시켜버린다. 세훈이 나온 화장실에서 물이 뚝, 뚝 하고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