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대 같은 남자와 같이 사는 썰 02
(스티로폼의 변장)
벌써 이사를 몇 번째 하는 건지
저번 집은 비만 오면 물이 뚝뚝 떨어지고
저 저번 집은 방음이 안 돼서 옆집, 앞집, 윗집, 아랫집에서 뭘 하는지 다 들리고… (부끄)
저 저 저번 집은 불만 끄면 삭삭- 동물이든 벌레든 활동을 시작해서 이사 간 지 일주일 만에 나오고
저 저 저 저 저 ㅂ… 아이고 말하기도 힘드네 머리 아파
이삿짐을 다 옮기고 이제 짐 정리 대충 하고 자야겠다
이사를 몇 번이나 했지만 새것이라는 생각은 언제나 내 마음을 들뜨게 한다
새 집이라는 생각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상자를 하나씩 열어보며
당장 필요한 것만 하나씩 꺼내놓고 몸을 일으켜 베란다에 걸어놓은 커튼을 양쪽으로 쳤다
역시 여기가 부동산 아줌마 말대로 야경이 좋구먼
한참을 밖을 바라보다 커튼을 다시 닫고는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9시
지금 씻고 누우면 대충 10시는 되겠지?
대충 시간 계획을 세우곤 속옷과 입을 옷을 품에 안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
새 집에서 상쾌한 마음으로 신 나게 씻고선 이대로 자는 건 아깝다는 생각에
이사 오면서 새로 산 TV를 틀어 놓곤 소파에 앉아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놨다
예능프로그램이라 그런지 웃을 장면이 많아 혼자 미친 듯이 웃어 되며
깔깔거리던 그 순간
‘아, 존나 웃겨’
...
?
이게 뭔 소리죠?
처음 듣는 남자 목소리에 긴장하며 눈 알만 이리저리 굴렸다
이게 뭔 소리지?
…귀신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귀신을 무서워하는 난 혼자 벌벌 떨며 웅크려 앉았다
에라이 여기 귀신이 사는 거야? 그런 거야? 그래서 가격이 쌌던 건가?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무서움에 떨고 있는데
목소리가 갑자기 가까워져 온다
‘왜 새끼야, 아니 나 집이지… 오려면 오던가’
????????????????
내 뒤에서 바로 들리는 듯한 목소리에 귀신이 뒤에 있나?라는 생각을 해봤지만
지금 내 뒤에는 소파 등받이라 벽밖에 없는데…?
그럼 방음이 안 되는 건가?
우선 귀신이 아니라는 생각에 살짝 뒤를 돌았더니 역시 내 눈앞에 보이는 건 새하얀 벽
눈앞에 귀신이 아닌 벽이 보이자 살았다는 한숨을 쉬곤 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아 벽에 귀를 됐다
‘뿅뿅뿅-‘
이젠 게임을 하는 건지 핸드폰 게임 소리가 들린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방음이 안 되는 집에 살아봐서 아는데 방음이 안 된다고 해도
이렇게까지는 아닌 거 같은데? 왜 바로 옆에서 게임을 하는 것처럼 소리가 크게 들리는 거지?
점점 이런저런 의문이 들어 벽을 이리저리 눌러봤다
역시 딱딱한ㄷ…
?
밀렸다
뭐가 밀렸냐고?
…
벽이 밀렸어!!!!!!!
어떻게 벽이 밀릴 수가 있지?
그만큼 내가 힘이 센 건가? 설마 사람 힘이 무거운 벽까지 뚫을 정도는 아닐 텐데?
벽이 밀렸다는 무서움에 벽을 밀었던 내 손을 바라보았다
…나 천하 장산가? 에이 나도 여잔데… 가녀린 여잔데 설마...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서 정신을 차리고 다시 벽을 쳐다봤다
집 안엔 내가 아까 틀어놓았던 예능프로그램 소리만 들리고
아까 들었던 남자 목소리도 게임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설마 하는 마음에 한 번 더 손을 들어 벽을 살짝 밀었…더니 밀려!!!!!!!!!!!!!!!!!!!
으아 엄마 이 딸이 천하장사였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어렸을 때부터 남자애들을 때려눕혔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ㅠㅠㅠㅠㅠㅠㅠㅠㅠ
툭툭
?
이건 또 뭔 소리야
내가 서 있는 쪽이 아닌 반대쪽에서 소리가 난다
(음 이걸 뭐하고 해야 이해 할까?
-----------------------------------------
▽ 소파 ○
툭툭 나
이렇게 하면 이해가 되려나? )
툭, 쓱- 툭, 쓱- 툭, 쓱-
반대편에서 소리가 날 때마다 난 내 앞에 있는 벽을 밀었다
천장과 맞닿은 벽을 올려다보니 가로였던 벽이 이젠 대각선을 향하고 있다
이거 설마 옆집으로 향하는 건가?
아까보다 쉽게 밀리는 벽에 조금만 더 힘을 주어 쑥 하고 벽을 미니...
탁, 통- 소리를 내며 벽이 쓰러... 응? 통? 뭔가 귀여운 소리에 쓰러진 벽을 확인하니
...이거 벽이 아니라 스티로폼 아니야? 반 쪽으로 쪼개진 스티로폼
아무튼 벽인 척 변장하고 있었던 스티로폼이 쓰러지면서 보이는 건...
우리 집 구조와 비슷하지만 우리 집과는 분위기가 너무 다른 집
...?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진짜 옆집이야?
당황스러움에 이리저리 둘러보니 나와 반대쪽에 서있던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
"..."
아무 말없이 서로 쳐다보기만 하던 우리 둘
"... 아, 안녕하세요?"
"... 예? 아, 네 안녕하세요"
상대편에서 먼저 인사를 걸어와 난 당황한 표정을 감추곤 같이 인사를 했다
"하하... 벽이 아니라 스티로폼이었네요 이거... 하하"
"아, 그래요? 하하하..."
다시 한 번에 어색한 정적이 찾아올까 급하게 화제를 돌리며 어색하게 웃으니
그 남자도 같이 따라 웃는다
하지만 정적은 피할 수 없었던 건지 다시 한 번 조용해졌다
조용함에 눈만 이리저리 굴리다가 남자를 쳐다봤다
키도 크고 얼굴도 저 정도면 괜찮은 편... 아니 내가 왜 저 남자를 관찰하고 있는 건데?
고개를 도리도리하며 저 남자에 대한 생각을 떨쳐내는데 풋 하고 웃는 소리가 들린다
남자를 쳐다보자 숨긴다고 숨기는 거 같은데 웃는 게 다 보인다
지금 내 행동이 웃겼나? 지금 처음 보는 사람을 비웃는 거야? 저거 무례한 사람이네
기분이 나빠져 인상을 찌푸리자 남자가 내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아, 웃으려고 했던 게 아니라 그게..."
"이제 이 벽 좀 어떻게 해보죠"
남자에 말을 끊곤 정색하며 내 할 말만 하니 남자가 당황해하며 어버 거린다
"아, 우선 옆집인 거 같은데 서로 통성명은 하죠?"
방금 어버 거리던 남자는 어디 갔는지 갑자기 나에게 손을 내미는 남자
"저는 23살 박찬열이라고 해요 백수는 아니고 학생"
"... 아, 나도 23살 오징어라고 해요.."
건네는 인사에 당황해 어색하게 손을 맞잡아 흔드니 해맑게 웃는 남자
웃는 모습도 괜... 아니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건데!!
"우리 이거 내일같이 부동산 아줌마한테 가봐야겠죠?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그 말을 끝으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박찬열
뭐야, 자기 할 말만 하고 들어가는 거야?
나도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에 내 방에 들어가 혹시 몰라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잠이 들었던 거 같다
다음 날 내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앞에 있는 건 분명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있었던 부동산 가게가 없어졌다
???
당황스러움에 옆에 박찬열을 쳐다보니 나와 같은 표정을 지으며 난감하게 서있다.
"우리 사기당한 거 맞죠?"
그 말을 끝으로 우리 둘이 머리를 맞대어 생각해 본 결과
집은 내 집과 박찬열 집이 한 집이었는데 부동산 아줌마가 집을 두 개로 나누며
하나하나씩 팔 넘긴 것으로 얘기가 맞혀졌다
아, 새로 이사 온 집이 사기 맞은 집이라니...
"그쪽 학생이죠? 돈도 없고"
"... 네"
뭔가 자존심이 상하는데? 근데 맞는 말이라 뭐라 반박할 수도 없다
이번에 이사 오면서 돈을 다 써버렸으니...
"그럼 우리 룸메이트 하는 겸 칩시다"
"지금 당장 이사 갈 돈 없죠?"
"네? 당연하죠 학생인데..."
"나도 같은 입장이니까 어쩔 수 없네, 룸메이트 하는 거 칩시다"
...뭐?
뭐라고?
여자가 아닌 남자랑?
그 말에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 뒤로 이어진 박찬열의 말에 고갤 끄덕였다
"돈도 반으로 줄고 뭐든지 반으로 줄면 나가는 돈이 반으로 주는 거고
설마 남자 여자라고 꺼려하거나 그러는 건 아니죠? 내가 이렇게 보여도 착한 사람이거든요"
박찬열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더니 박찬열의 말대로 나쁜 사람 같지는 않고
힘으로는 내가 이길 거 같... 이건 아닌가?
그래도 진짜 허튼짓을 할 사람은 아닌 거 같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하고 고갤 끄덕였다
그때 내가 고갤 끄덕였던 걸
지금 이 순간 엄청나게 후회한다
"징어야, 징어야"
"왜"
"무슨 여자가 그렇게 단답이냐"
"넌 내가 여자로 보이냐?"
"..."
"왜 아무 말도 못 해? 진짜 내가 여자로 보여?"
"너 어디 아파? 나 진짜 놀랐다"
"니가 그럼 그렇지"
박찬열의 말에 발끈 하여 또 한 번 주먹질을 한 건 안 비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