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eta
신부(神父)를 사랑한 소년, 소년을 사랑한 신부ㅡ
04
충동적으로 저지른 그제의 장면이 떠올라 내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 눈을 떠보니 꿈속이었다. 세훈의 눈앞이 꿈임을 증명하는 것은, 성당에서만 보던 주(主)의 형상이 또렷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훈은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잔뜩 뿜어져 나오는 찬란한 빛이 감히 주를 쳐다보지 못하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세훈은 잔뜩 구겨져 오는 미간을 펴대며 애써 당당한 모양새를 나타내기 위해 고개를 빳빳이 치켜들었다. 그것이, 자신이 저지른 일은 죄악이 아니라는 것을 유일하게 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세훈의 앞에 나타난 형상은 침묵했다. 그저 가만히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그저, 아무 말 없이, 세훈의, 앞에, 우두커니. 발버둥쳤다. 세훈은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 그저 제 앞에 나타났다는 것만으로도 저를 옥죄여오는 형상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고통에 겨운 몸짓으로 움직여대는 세훈에도 아무 말 않던 그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동성애는 죄악이니라.
“……….”
세훈의 움직임이 멈췄다. 꿈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세훈은 두려움에 가득 찬 몸짓을 멈춰버렸다. 아니다. 당신의 말은 잘못되었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죄가 아니야. 난, 적어도 나에겐…
“…제가 믿은 건, 당신이 아닌, 신부님입니다.”
그를 사랑했기 때문에, 당신을 믿을 수 없어.
등판이 흥건했다. 잔뜩 식은땀을 흘린 탓에 입고 있던 반팔이 축축이 젖어 있었다. 세훈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반팔티를 벗어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 시간을 보니 새벽이었다. 지금쯤 신부님은 새벽 미사 준비에 한창이겠지. 기분이 찝찝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준면의 형상이 여간 불안한 게 아니었다. 그 일이 저질러진 이후 주말 내내 준면을 보지 못해서였을까? 잠시 침대에 걸터앉아 생각하던 세훈은 이내 화장실로 향했다. 부디 준면이 저를 기다리고 있길.
급하다 싶을 정도로 준비를 마친 세훈이 성당을 향해 빠르게 걷고 있었다. 성당의 앞에 다다르자 양복을 갖춰 입은 몇몇 남자들이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보통 새벽엔 사람이 없기 마련인데 오늘따라 얼핏얼핏 보이는 사람의 형상에 세훈이 또다시 인상을 잔뜩 구기며 성당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믿을 수 없었다.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로, 편안히 눈을 감은 채 누워있는 준면의 모습을.
“……이게 대체…”
“아, 세훈아.”
오후 미사 담당이었던 또다른 신부가 세훈에게 다가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모든 걸 묻고 싶었으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넋이 나간 표정의 세훈이 신부를 가만히 쳐다봤다. 세훈의 시선을 느끼며 작은 한숨을 내쉬던 신부가 찬찬히 입을 열었다.
“…비공개로 미사를 봉헌할 예정이야.”
“……….”
“시대가 변했다 해도, 여전히 자살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신자들이 많으니까.”
준면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주저앉아 버리는 세훈에 깜짝 놀란 신부가 세훈에게 괜찮냐 물으며 얼른 일으켜 세웠다. 세훈은 슬프지 않았다. 심지어 덤덤한 기분까지 들었다. 그런데도 자꾸만 차오르는 눈물에 힘없이 고개를 떨굴 뿐이었다. 전혀 실감 나지 않는 것들의 투성이로 둘러싸인 준면의 죽음에도 성당은 여전히 준면을 보내기 위한 준비에 한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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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개인 블로그와 인티 글잡에서 동시 연재되는 글입니다.
* 이 글에는 브금을 넣지 않기로 했습니다.. 털썩.
종교에 관한 소재는 역시 민감한 소재인 것 같네요
괜히 설쳤나 봅니다.
오늘도 열심히 봐주시는 모든 독자님들 제 사랑 퍼머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