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어디를 다쳤어, 응?"
"밴드 하나 주시면 될,"
오늘도 여지없이 김종인은 의무실에 제 발로 걸어들어왔어. 이미 체육복은 흙투성이가 되어있었고 나는 아, 김종인이 또 축구를 하다 굴렀구나. 짐작할 수 있었지. 내 앞 의자에 앉아서 밴드하나만 달라고 하는데 옷 상태를 봐서는 밴드 한개가지고 될 문제가 아니었어.
"피는 닦고 밴드를 붙이는거예요."
"제가 닦겠습니다."
"종인이 부끄럼타나? 동기는 나가 있을까?"
종인이를 옆에서 부축하듯이 온 동기한테 먼저 가있으라고 했더니 종인이가 씩 웃어. 이제 자기 세상 열렸다 이거지.
"밥 먹었어?"
"김종인, 너 자꾸.."
"또 안먹었네."
김종인이 뭐라하든 살짝 앉아서 체육복 걷어 올리니까 정강이에서 피가 엉겨붙어서 옷이랑 잘 떨어지지도 않아. 알코올 솜으로 문질러가면서 살살 떼내고 피 닦아 낸 다음에 연고 바르고 거즈로 막아버렸어. 이렇게 많이 까여놓고선 밴드 하나를 붙이겠다니, 말도 안되는 소리였지. 혹여나 떨어질까 싶어서 꼼꼼하게 테이핑하는 것까지 종인이는 아무말 없이 지켜보기만 해. 테이핑 다 하고 상처난 곳 팡팡 두드리면서 다됐다!하니까 괜히 아픈척 인상 찡그리구, 꼭 치료 다 하고 끝났을 때는 아픈 척 하거든. 돌아가기 싫다고.
"너 자꾸 이런식으로 훈련 열외하면 다 보고해버릴거야."
"혼자 있으면 심심하잖아."
"심심하기는! 할 거 엄청 많거든?"
"군의관님은?"
"오늘 학회때문에 안나오셨어, 너 자꾸 반말 할래?"
"아무도 없는데."
이 새끼가 진짜..나는 뻔히 장교 계급 달고 있는 사람이고 김종인은 일개 예비장교일 뿐인데, 보는 사람 없으면 끝까지 반말쓰는거 있지. 이젠 익숙할 만큼 듣긴 했는데 그래도 혹시나 누가 들을까봐 나만 항상 맘 졸이고 있어. 종인이는 사관학교 생도였고, 나는 그 학교 의무실에서 일하는 간호장교거든. 어찌보면 정말 남자가 들끓는 군대에 몇 볼 수 없는 여자라고 할 수있는데, 그걸 김종인이 낚아채 갔으니 능력 좋은거지 종인이는. 그게, 장교랑 생도랑 사귀는 게 이상한 건 아니야 사실. 근데 그게 같은 학교에 있는 장교랑 생도면 말이 또 달라져. 규율로 정해져있는 건 아닌데 그냥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 그런게 있단 말이야.
"이러다 너 한번 걸리면 징계 단단히 먹는다?"
사실 종인이랑 나는 계급장 떼고도 2살이나 차이가 나는데, 자기는 소위님이나 누나라는 호칭이 그렇게 싫대. 왜 싫으냐고 물어봐도 그냥 싫대. 그냥이 뭐야, 그냥 자기가 나보다 낮은 계급이라는 사실이 싫은거겠지. 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어. 사실 같은 학교 안에 있으니까 좋은 점이야 많아. 매일같이 얼굴보고 종인이가 매일같이 의무실을 들락날락거리니까..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건, 다른 장교님들이나 종인이 동기들이랑 같이 있을 땐 종인이가 나한테 꼬박꼬박 경례하고 존칭을 한다는거, 종인이는 제일 싫어하는 건데 나는 제일 좋아하는 거야.
아무래도 나는 이 크나큰 학교에 한명밖에 없는 간호장교니까 여기저기 많이 불려다녀. 애들 체력단련 할 때도 옆에서 구급함 들고 대기해야되고, 애들 어디 단체로 견학 나갈때도 나는 후송차량 타고 같이 가거든. 그 과정에서 매일 군의관님이랑 붙어있는데 종인이가 그걸 정말 아니꼬워해. 사실 의무실에는 나 혼자 있을 때가 많아. 군의관님은 따로 방이 정해져 있어서 거기 계시다가 한번씩 애들 진료봐줘야 될 때만 의무실 들르거나 그러시거든. 근데 외부활동 나갈 때는 나랑 항상 동행하시니까 그럴 때마다 김종인은 눈에 레이저를 켜고 쳐다보곤 해.
난 또 그렇게 질투하는 종인이가 너무 귀여워서 한 번씩 놀리곤 하는데 종인이는 애닳아서 죽을 지경이지. 저번에 학교 외부로 나갔을 때 종인이가 손가락에 피멍이 들었던 적이 있었거든. 원래 사관생도들은 품위유지에 되게 예민해서 다친 곳을 가리고 다녀야해. 그래서 다리를 다쳐서 깁스를 하거나 그러면 외출 외박 금지되고 그러거든. 깁스를 하고 밖에서 정복을 입고 돌아다니면 보기에 안좋다는 그런 이유야.
학교 외부로 나간게 그 때 되게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차 안에만 있기가 싫은거야, 그래서 군의관님이 나보고 밖에 구경이나 하자 그러는 바람에 같이 나와서 벚꽃핀거 구경하고 둘이 사진찍고 놀고있었어. 사실 내가 둘이 뭐 팔짱을 끼고 찍거나 이런 것도 아니고 서로서로 찍어준 것 뿐인데 종인이는 그게 무척이나 마음에 안들었나봐. 내 앞에 빠르게 와서 충성, 하고 경례하길래 받아줬더니 갑자기 자기 손가락을 내미는거야.
"응, 종인이 손 왜?"
"피멍. 들었습니다."
"어디 봐, 음..이거 그냥 밴드로 가려도 되지 않을까?"
"빼는 게 편할 것 같습니다."
"그래? 가자 그럼."
저 다녀올게요, 꽃구경 하고 계세요. 하고 내가 군의관님한테 말했더니 알겠다고 고개 끄덕이시길래 종인이 데리고 우리가 타고왔던 차로 갔어. 종인이는 버스타고 왔겠지만 우리는 승용차타고 왔거든. 차로 가는 내내 아무말도 안하길래 아까 바닥에서 주웠던 꽃만 계속 빙글빙글 돌리면서 손장난 치고 있었어. 차에 도착해서 구급함 꺼낸 다음에 종인이한테 손, 하고 손바닥 내밀었더니 얌전하게 자기 손 내미는거야.
"그냥 밴드로 가리지, 뭐하러 손에 바늘구멍을 내."
"꽃, 나 줘."
"왜?"
"마음에 안들어."
참나, 니가 마음에 안들다하면 내가 버려? 하고 종인이 손에 멍든 곳 바늘로 살짝 찔렀더니 피가 퐁 나오길래 휴지로 닦아주고 피 멎을 때 까지 기다렸어. 피멍이라 그런지 금세 아물어서 이제 가자, 했더니 가기 싫은지 버티고 서서 내 주머니에 꽂힌 꽃만 멀뚱히 쳐다봐.
"꽃이 그렇게 마음에 안들어요?"
"나랑도 못 간 꽃놀이를."
"에이, 저게 무슨 꽃놀이야."
"꽃놀이지."
"어유, 우리 종인이 왜 또 심통이 났을까."
"심통 아니야."
"엇, 군의관님 오신다."
내가 종인이랑 실랑이하느라 늦어서 그런가 저 편에서 손에 꽃들고 오시는거야..군의관님은 나랑 계급이 같아서 딱히 경례같은 건 안했지만 종인이는 옆에서 살짝 목례했지. 군의관님 손에도 나랑 같은 꽃이 들려있었는데, 종인이가 그걸 집요하게 쳐다보는거야. 하하, 우리 종인이..또 삐지겠다 싶어서 급하게 주머니에 꽃을 그냥 쑤셔넣었어. 아예 안보이게.
"종인이 이제 합류해야지? 같이 갈까?"
어색한 내 말에 네, 하고 대답한 종인이가 내 왼쪽 뒤편에서 걸었어. 원래 자기보다 계급 높은사람이랑 걸을 때는 왼쪽 뒤편에서 걸어야 되거든. 덕분에 나는 옆에서 군의관님이 거는 말에만 대답하고 종인이는 자연스럽게 입을 꼭 다문 채로 걸었는데 속으로 아주 나만 애타고..
"김종인 생도는 괜찮아요?"
"괜찮아요, 손에 살짝 피멍든거라 방금 빼줬어요."
"김소위님이 김종인 생도 굉장히 예뻐하네요."
"종인이요? 제 동생이랑 나이가 같아서, 동생같나봐요."
"그렇겠네요. 저도 딱 소위님만한 동생이 있어서."
하하..원래 우리 이렇게 어색한 사이가 아니었는데 뒤에서 걷는 종인이 때문인지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거야. 아니, 나만 어색했던 것 같다. 군의관님은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말 같은데 그걸 종인이는 하나하나 곱씹을거구, 동생이라는 말 제일 싫어하는 종인이는 방금 내가 동생이라고 언급한 것 때문에 심기가 불편했을거고..나만 아차 싶어서 어색하게 웃고 있었지.
그렇게 나만 어색한 길을 걸어서 종인이 동기들 있는 대열에 도착하고 종인이는 경례하고 떠났어. 어찌저찌 외부 견학 끝내고 다시 생도대로 돌아와서 밥을 먹는데, 나 또 혼자 밥먹고 있었거든. 사실 난 군의관님 없으면 항상 혼자 밥먹어야해. 가끔 당직서는 생도들이랑 시간 맞으면 같이 먹기도 하고. 오늘 반찬이 너무 맛이 없어서 혼자 깨짝깨짝 젓가락질하고 있는데 생도 한명이 내 앞에 앉는거야.
"충성, 김소위님!"
"어, 찬열이 오늘 당직생도야?"
"네, 그렇습니다! 오늘도 혼자 드시는 겁니까?"
종인이랑 친한 친군데, 정말 에너지가 넘치는 친구야. 종인이랑 나랑 연애하는 걸 유일하게 알고 있는 아이이기도 하고, 나한테 굉장히 싹싹하게 잘 하는 애거든. 찬열이는 당직일 때 항상 창문으로 기웃거리다가 내가 밥먹으러 가는 거 보이면 같이 먹겠다고 달려와. 당직은 2명이 서는 건데 둘이 번갈아 가면서 밥을 먹어야해. 쨋든 오늘도 내 밥먹는 시간 맞춰 달려와준 찬열이 덕에 휑한 식당에서 같이 먹을 수 있게 되었지.
"김소위님, 종인이랑 무슨 일 있으십니까?"
"종인이? 왜?"
"아무 말도 안합니다. 원래 말이 없긴 했는데, 단 한마디도 안했습니다. 제가 말해도 무시하고."
"그래?"
"아, 아니다. 한마디 했습니다. 김소위님 2시까지 식당 안가시면 데리고 가서 먹으라고 했습니다."
귀여운 종인이, 어쩐지 나한테 카톡하나 없고. 원래 시간 날 때마다 뭐하냐, 어디냐 카톡 날리던 애였는데 오늘 따라 아무 말도 없었거든. 아까 꽃놀이 사건도 있고 했는데 사실 내가 너무 바빠서 종인이가 토라졌다는 걸 깜빡 잊고 있었어. 내가 그냥 조용히 웃으니까 찬열이가 계속 왜그러냐고, 둘이 싸웠냐고 묻는거야.
"싸우셨습니까?"
"아니, 싸우긴."
"아, 맞다. 김소위님, 김종인 책상에 글쎄.."
"종인이 책상에?"
"오늘 견학가서 주웠는지, 벚꽃이 한 봉지 담겨있습니다. 혹시 김소위님이 꽃 좋다고 하셨습니까?"
예쁜 내새끼. 이 맛에 종인이랑 연애하지. 내가 아까 군의관님이랑 꽃들고 놀았던게 그리 마음에 안들었는지 아까 견학가서 꽃을 쓸어담아왔나봐. 종인이는 그렇게 예쁘고 아기자기한거 별로 안좋아하는데 꽃 주워서 봉투에 담았을 거 생각하니까 너무 귀여운거야. 항상 찬열이가 나한테 종인이가 수업시간에 졸았고, 체력측정 때 1등을 했고, 종인이 라인으로 들어온 애가 여자가 걸렸고,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해줘서 나는 말없는 종인이의 생활을 거의 다 알고 있었어. 가끔 종인이는 그런 찬열이를 맘에 안들어 하는데, 찬열이는 신경쓰지 않고 나만보면 마냥 좋다고 종인이얘기를 줄줄 하거든.
그렇게 유쾌한 찬열이와 식사를 마치고, 팔에 달린 당직사관 표식을 울상으로 쳐다본 찬열이는 당직실로 돌아갔어. 나는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휴대폰을 꺼내서 지금쯤 꽁해 있을 종인이한테 카톡을 보냈지.
종인아, 꽃 안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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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카디였는데, 내 군인 카디.ㅠ_ㅜ백현이썰쓰다가 카디로 넘어가니까 너무 힘들다는..나 근데 의사썰 뒷얘기 더이상 못쓰겠어요 어떡해..ㅋ..ㅋ메일링..어떡해...ㅋ.ㅋ..ㅋ...
아..왜 간호사를 놓지 못하고 다시 간호장교로 돌아왔능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