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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마자 소파에 뻗어버린 선우를 내려다보던 정환이 나 먼저 씻을게. 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무 대답이 없는 선우를 힐끗 보고 괜찮겠지, 생각하며 씻기 시작했다. 팔꿈치에 물이 안 닿도록 씻으려다보니 힘들었는지 중간중간 선우의 욕도 했다. 화장실을 나온 정환의 눈에 피곤했는지 그새 잠든 선우가 보여. 야, 일어나. 라며 선우의 다리를 발로 툭, 툭 건드리자 선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얘 왜 이래…?
"…헐. 야. 일어나라. 니 미칬나??"
"…왜에……."
"니…니 빨리 바지 걷어봐라. 빨리!"
"……."
회색 트레이닝 바지 밖으로 베어나온 탁한 붉은색을 보고 정환이 기겁하며 소리쳤다. 선우가 뚱하게 있자 결국 정환이 먼저 다가가 바지를 걷었다. 으으, 찬 공기에 닿으니 상처가 쓰렸는지 선우가 짧은 신음을 뱉었다. 정환이 팔꿈치를 다친 것보다 훨씬 더 넓게 까진 무릎에서는 피까지 새어나오고 있었다. 아까 넘어졌을 때 다친 모양이었다.
"닌 감각이 없나? 이 다리로 뛰어가서 약도 사왔고?"
"그 땐 안 아팠어."
"그래도 다친 거 알았으면 약이라도 바르던가. …나만 나쁜 주인 만들고……."
"…주인."
선우가 씨익, 웃으며 정환의 귓가에 속삭였다. 지금 나 걱정해주는 거야? …이 새끼가 진짜……. 정환이 무어라 욕을 해주려다 그래도 꼴에 펫이라고 주인이 다쳤다니까 아픈 다리로 달려가 약을 사왔던 모습이 아른거려 차마 그러지 못하고 한숨만 쉬었다. 그래, 걱정했다. 작게 대답한 정환이 화장실에서 수건에 미지근한 물을 적셔와 선우의 무릎을 조심스럽게 닦았다.
"어디 싸돌아다니지 말고 이러고 소파에 누워있어."
"뉘예 뉘예~."
"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전화해. 오는 길에 사올게."
"역시 주인도 이제 나를 인정하는거지?"
응. 병신으로 인정하는거지. 정환이 포스트잇에 자신의 휴대폰번호를 날려쓴뒤 냉장고에 붙였다. 사고치지 말고 얌전히 있어? 알게쯤뉘다아~ 장난스럽게 대답하는 선우를 한 대 칠까 고민하다가도 아픈데 아무 기색 안 하는 것이 신경쓰여 그냥 놔두기로 하며 정환이 겉옷을 입었다. 팔꿈치에 붙어있는 밴드가 행여나 밀려서 떨어질까 한 번 만지작거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
참 이상했다.
"나 다녀올게."
"어."
"다녀온다니까?"
"다녀오라니까?"
평소와 달리 자신을 잡지 않는 선우를 의아하게 보다가 문을 닫고 나왔다. 오늘따라 왜 저래? 얼마 전에 다리를 다치더니 철이 들었나? 정환이 중얼거리며 길을 나섰다.
"…형은 또 왜 나왔어요?"
"내 가게인데 내가 나와있는 것도 뭐라고 하는거야?"
"그렇게 본인 가게가 좋으시면 평소에도 나오지 그러셨어요."
"그게, 오랜만에 집에 엄마가 오셔서……. 자꾸 나를 애 취급하시잖아."
난 어르닌데 마리야. 그러치 아나? …뭐라는 거야. 정환이 완성된 커피를 서빙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맞다. 새로 알바 들어왔는데 니가 교육 좀 시켜라. 네? …참나, 알바생한테 알바 교육시키라는 사장은 형밖에 없을거에요. 알아요? 알게 뭐야. 이따가 올거야.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
"주인."
"으아악!"
뭔데 여기 앉아있어? 정환이 부엌에서 커피를 만드는 동안 몰래 들어왔던 모양이다. 제 앞에 놓인 커피를 한모금, 홀짝인 선우가 인상을 찡그리고는 옆에 있는 음료수를 집어들어 삼켰다. 트로피카나 스파클링 포도맛.
"내가 집에 있으랬잖아."
"그러려고 했는데 목이 너무 말랐어."
"물 마시면 되지."
"탄산이 너무 마시고 싶었어. 갑자기."
"탄산이 먹고 싶은데 커피는 왜 먹으러 왔어!"
"아 그게……."
딸랑. 카페 문이 열리는 것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정환의 고개가 돌아갔다. 엄마야. 동우형은 왜 여기에…….
"정환아 알바 왔어!!!"
"정환이요?"
…왜 자꾸 나한테만 이런 일이 있는거지 진짜로?? 정환이 제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분이 안 풀리는 듯 선우의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주인 왜 내 커피 마셔. 그것도 내가 마셨던 쪽으로……. 닥치고 있어. 정환이 선우의 머리를 한 번 톡, 치고는 동우의 앞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형은 왜 여기 있어요?"
"뭐야. 너 알바한다던 데가 여기였어?"
"네에……."
"난 오전동안 알바하려고. 오전에 강의가 없어서……. 그래서 나랑 겹치진 않을거야."
"아니 겹치는게 문제가 아니라……."
지금 차선우가 자꾸 이 쪽을 보고 있다는게 문제라구요……. 정환이 동우의 등을 떠밀어 부엌으로 이동했다. 무슨 일인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멀뚱히 서 있는 동우를 놔두고 정환이 카운터로 나왔다. 다행히도 더이상 선우는 이곳에 시선을 주지 않고 창밖을 보며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멀쩡하게 가만히 있으니까 얼마나 좋아. 정환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다.
"야. 사람을 이렇게 가둬놓고 나가면 어떡하냐."
"그게 그럴만한 일이 있어서……."
정환이 말을 돌리며 커피 내리는 법부터 배워요!! 눈에 띄는 오버와 함께 박수를 짝짝 쳤다. 영 어색한 정환의 행동에 무슨 일이냐 물어보려던 동우가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벌써 4시가 넘어가는데도 혼자 구석자리에 앉아있는 선우를 힐끗 보고 정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 테이블만 쳐다보았다. 저 손님 왜 저렇게 오래 있지이…? 어색한 말투로 진영에게 들으라는 듯 정환이 중얼거리자, 원래 카페가 그런 곳이지 뭐, 그냥 놔둬. 진영이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 이 형은 왜 이렇게 쓸데없이 친절하지? 정환의 말에 혼자 샌드위치 만드는 연습을 하고 있던 동우가 밖을 내다보고는 물었다.
"너네 사촌 아니야?"
"…아, 그, 그러게요……."
그 때 선우와 가까운 테이블에 앉아있던 여대생 무리들 중 한 명이 일어나 선우의 앞에 앉았다. 긴 생머리에 청순하게 생긴 얼굴을 가진 여자는 수줍은 얼굴로 선우에게 무어라 말을 걸었다. 저 손님 번호 따이는 것 같은데? 진영이 선우를 힐끗 보며 정환에게 말했다. 번호요? 정환이 되묻자 진영이 턱으로 선우를 가리켰다. 어느새 선우의 앞으로 자신의 휴대폰을 내미는 여자가 보였다. 차선우 능력 좋네. 정환이 속으로 생각했다. 번호 줄까? 줄까? 의도치 않게 시선이 자꾸만 선우의 손끝으로 갔다. 선우는 말없이 휴대폰을 받아들고 번호를 꾹, 꾹 찍어주기 시작했다. 짜식, 그래도 남자라고……. 붉어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난 여자에게 한 번 웃어준 선우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생각보다 인기 많다……."
"왜 그래? 잘생겼는데."
"잘생겼나……."
그래. 솔직히 말하면 잘생긴 편인데……. 근데 쟤 진짜 언제 가지? 정환이 미간을 좁혔다. 그 때 갑자기 선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카운터로 패기 넘치게 걸어오기 시작했다. 주문 받아라. 진영이 시선을 노트북에 두고 말했다. 정환이 한숨을 쉬며 부엌에서 나와 메모지와 볼펜을 꺼냈다. 통통한 볼에 볼펜 끝부분을 꾹, 누른 정환이 선우를 보지도 않고 말했다.
"주문받을게요."
"주문?"
"…뭐가 더 필요하시냐구요."
"주인의 사랑?"
이 새끼가? 어금니를 꽉 깨물고 말하던 정환이 눈을 치켜뜨고 선우를 노려보았다. 진영이 일에 집중하느라 듣지 못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선우가 카운터와 가까운 테이블을 가리켰다. 저기로 자리 좀 옮기려구요. 옮기든지. 정환이 메모지를 도로 넣으며 대충 대답했다. 정환을 잠깐 흘겨보던 선우가 제 자리로 가 커피와 빈 음료수캔을 들고 이쪽으로 달려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정환이 조심스럽게 그 옆으로 다가가 주문을 받는척 말했다.
"언제 가려고 그래?"
"뭘?"
"언제 갈려고 지금까지 죽치고 있냐구."
"주인 방해 안 하고 있잖아. 왜그래?"
선우가 눈꼬리를 접으며 웃었다. 아, 그러고 보니까 너 번호……. 휴대폰도 있었어? 정환이 선우에게 묻자 선우가 어깨를 으쓱, 해보이며 말했다. 내 휴대폰은 모르겠고, 아까 그건 주인 번호야. 뭐????????? 정환이 저도 모르게 큰소리를 치고 말았다. 그러라고 있는 번호가 아닐텐데?
일요일 밤은 월요일 아침보다 나빠요 |
지금 뼈저리게 느끼고 있어요 ㅠㅠ 내일부터 다시 야자에 학원에 시달릴 생각하니 앞이 막막하네요 너는펫 쟁여놓은 분량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이렇게 짬내고 올리고 갈 수 있다니..
3편에 댓글 달아주신 두 분 감사해요.. 가뭄에 단비같은 사람들 (박력) 제 똥글에 관심 가져주시는 모든 분들 언제나 사랑합니다 제가 우와한년을 기다리는 만큼...★
근데 그거 아세요? 내일 월요일ㅎ.yeah. |
암호닉 |
제 첫 암호닉 김치님을 워.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