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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피니트/성우] 명탐정 김성규의 사건집 | 인스티즈

[인피니트/성우] 명탐정 김성규의 사건집 | 인스티즈

 

 

 

 

 

1. A Study in Black

 

 

일주일 째에는 사람이 아니었다. 월급이 들어오려면 이주나 남았는데, 이렇게 퀘퀘한 모습으로 변해서는 더 이상 버틸 수나 있을까 의심이 든다. 같이 알바하는 소현 누나도 사흘 째 같은 체크남방을 입은 내게 야릇한 눈빛을 보내오고 있었다. 여자친구가 많이 드센가봐? 응? 아니지, 혹시 남자친구? 누나는 다 이해할 수 있어 우현아. 그러니까 이틀 밤동안 얼마나 했는지 좀 털어봐. 나는 기에 짓눌려서 아니라는 한마디를 겨우 내뱉었다. 하길 뭘 한다는 거야 대체! 그런 상상력은 어디서 길러오는 건지 모르겠다.

 

 

"애인이랑 그렇게 좋아요, 우현아? 오늘은 집에 가야지?"
"누나 진짜아!"
"얼굴도 까만게 빨개지기는. 귀엽게."

 

 

흥흥흥. 기분 좋은 콧노래를 부르며 누나가 커피를 만들기 시작한다. 자기 할 말만 하고 쏙 빠진다니까. 목 언저리에서 해명의 단어가 바글바글 모여 있었지만 꿀꺽 삼키고 나도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하아……."

 

 

아, 정말이지.

 

커밍아웃은 언젠가 할 거라고 막연히 계획해두고 있었지만. 그런 식으로 하고 싶지는 않았다. 충동적인 성생활을 즐기는 것은 절대 아니었고, 술을 먹다가 정신이 나가버릴 줄은 더욱 더 상상조차 못했다. 평생 해볼 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하룻밤에 완성했다. 술을 먹다가 충동적으로, 라니.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마침 아들놈의 빈 냉장고가 걱정되신 어머니는 다음날 아침 일찍 자취방에 방문했다. 그리고 난 길거리에 나앉았다. 쫓겨난 거다. 그 때 삐긋한 허리를 부여잡으며 생각했다. 공들여 쌓은 탑이 한 순간에 무너지랴? 예, 무너집디다.

 

 

"우현아, 이거 2번 테이블로."
"아, 네!"
"무거우니까 조심하구."

 

 

그래도 알바 자리라도 있는 게 어딘가. 이성열이 구해준 자리다. 친구 따먹었다는 죄책감에 옷가지 여러 벌을 보내준 데다 자기가 운영하는 -정확히는 아버지께 받은- 카페에 일도 시켜주고. 내가 입기에 약간 큰 이 옷도 이성열 것이었다. 병주고 약주는 꼴이지만, 원망하기도 고마워하기도 애매해서 그냥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지낸다.

 

물론 녀석은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가슴 한구석이 찔리지만 딱히 알리고 싶지도 않다. 스트레이트인 녀석이 나와 거사를 치뤘다는 것은, 그 하룻밤의 참사에 성적 취향은 전혀 상관없단 뜻이 되니까. 내가 여자에 환장하는 놈이었어도 일어났을 거란 말이다.

 

정신을 차리고 서빙트레이를 받아드는 순간 팔이 휘청였다. 일곱 개의 알록달록한 머그컵이 가득 올려져 있어서다. 뭐 하는 사람인데 혼자 이렇게나 많이 주문할까. 평일 오후에 혼자 온 남자가, 그것도 어두칙칙한 올블랙 정장을 챙겨입은 남자가 커피를 종류별로 시켜놓은 모양새는 많이 수상했다. 손바닥을 모아 턱 밑에 두곤 눈을 감은 채다.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
"머그컵은 일곱 종류가 전부입니까?"

 

 

컵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자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다.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남자가 눈을 뜨고 여기라는 듯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린다.

 

 

"여기 맞습니다."
"네?"
"머그컵. 일곱 종류."
"……."
"알고는 있지만 확인차 묻는 겁니다."
"아, 네. 네, 맞아요."

 

 

남자는 매우 작위적인 미소를 슬쩍 날리고는 다시 표정을 굳히고 집중하기 시작한다. 커피를 먹을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이리저리 카메라에 담기 바쁘다. 제대로 초점이 맞는 것도 아니고. 다 흔들려서 알아볼 수도 없고. 생크림은 점점 녹아가는데 한 입도 먹질 않고. 요즘 돈지랄은 참 신박하구나. 한참 동안 이상한 행동을 하는 남자를 지켜보며 테이블 앞에 서있었다. 아차 싶어서 고개를 꾸벅 숙이고 뒤돌아 가려는데, 남자가 입을 열었다.

 

 

"본의 아닌 외박이 꽤 오래 지속되고 있네요. 열흘 정도."
"……네?"
"찜질방에 주로 있었고 종종 친구의 집이었죠."
"……."
"대학생이지만 현재 휴학 중. 군 복무는 마친 상태고."
"저기요 손님, 지금 무슨 말씀 하시는,"
"서빙은 밀렸군요."

 

 

날 뚫어져라 올려다보는 남자에게 화라도 내며 대꾸해야 했다. 물론 내가 알바생이 아니었다면 말이지. 남자의 말은 분하게도 정확했다. 멍청하게 손님 앞에 서있는 내게 누나가 눈치를 주기 시작한다.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피하고 나서도 뒤통수가 간지러웠다. 그 작은 눈으로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기나 한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안 거지. 집에서 쫓겨난 게 그렇게 티났나. 팔을 들어 셔츠에 코를 묻었다. 킁킁. 땀냄새는 없는데. 처음 보는 얼굴이라 부모님께서 아는 분일 리는 없다. 나한테 스토커가 있었나. 설마. 내가 마성의 게이라지만 말야.

 

아니, 진짜일지도 모른다. 스토커가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잖아. 미행하면서 대놓고 상대의 신상을 줄줄 읊는게 이상하긴 하지만.

 

 


우현아, 저 남자분이 꼭 너한테 계산을 하셔야겠다는데.

 

내 어깨를 툭툭 치는 누나 때문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왜 그렇게 놀라. 빨리 가봐. 아는 사람이야? 혹시 우리 우현이 사흘동안 집에 안 보내준 정력의 그분? 누나가 얄궂게 웃었다. 아 무슨! 변태같은 소리 좀 하지 말라니까! 쩔쩔매며 부정하고는 다시 남자의 테이블로 시선을 옮겼다. 의자에 등을 깊게 기대고는 나를 바라본다. 눈빛으로 건물도 태우겠다.

 

 

"네 손님. 계산 도와드리겠습니다."
"계산은 됐고. 도움은 필요해요."
"계, 계산……."
"됐습니까."

 

 

귀찮은 듯 남자가 집히는 대로 돈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둔다. 저도 모르게 눈이 휘등그레해졌다. 헉, 오만원이 몇 개야? 하나로도 충분한데 카페에 버릴 돈이면 차라리 나한테나 버려주지…… 복잡한 얼굴을 하자 남자가 다시 입꼬리만 올려 웃는 척 한다. 눈은 날카로운데 입은 즐겁게 휘어 있으니 퍽이나 괴기스럽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남았거든요. 가장 중요한 이야깁니다. 남자가 깍지낀 손을 턱에 괸다.

 

 

"이유는 커밍아웃인가? 할만한 위인은 안돼 보이는데."
"네? 무슨?"
"게이냐는 말입니다."
"아닙니다. 그런 거."
"알고 있어요. 확인차 묻는 겁니다."

 

 

뻔뻔한 멘트에 대꾸할 말을 잃었다. 태연한 척 돈을 앞주머니에 넣으면서도 심장이 크게 벌렁거렸다. 지금껏 누구에게도 들킨 적이 없었다. 그 날을 제외하면 아주 사소한 실수도 하지 않았으니까. 앞주머니에 넣은 양 손이 벌벌 떨렸다. 남자는 여유롭게 나를 아래위로 훑을 뿐이었다. 힘주어 올린 머리와 몸에 딱 맞는 수트, 작위적인 미소는 연예인 같기도 했다.

 

 

"…뭐예요."
"……."
"누구신데 저를 알고 계시는데요."
"아는 게 아니라 본 겁니다."

 

 

남자가 몸을 일으키곤 구겨진 수트의 모양을 잡는다. 줄곧 내려다보았던 시선이 약간 위로 올라간다. 키가 나보다 조금, 아주 조금 커서 묘하게 상하는 자존심을 애써 부인했다. 영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다. 어서 이 남자에게서 최대한 멀어지고 싶었으나, 남자가 먼저 반질반질한 구두로 내 앞에 바짝 다가왔다. 고개를 숙인다. 입술이 귀에 닿을 듯한 거리였다. 제 셔츠의 깃이 살짝 들춰진다.

 

 

"잘 숨기고 다녀요."

 

 

단추는 잠그는게 좋을 것 같군요. 흔적을 보니 꽤나…… 즐겼던 것 같은데. 적어도 상대편은. 남자가 흰 손가락으로 집었던 옷깃을 놓고 눈을 휘며 웃었다. 무, 무, 무슨. 어버버하고 있는 동안 남자는 유려한 발걸음으로 카페를 나섰다. 그 뒷모습을 보고 있다가 얼굴이 확 붉어졌다. 경직된 손을 겨우 들어 목 부근을 감쌌다. 망할, 망할.

 

 

"망할 이성열!"

 

 

아무리 생각해도 이성열은 인생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

 

 

*

 

 

당장이라도 때려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어쨌든 오늘 근무시간을 전부 채웠다. 때려쳐도 오늘 일당은 다 받아야지. 먹고 살려는 의지 하나는 끝내주는 남우현이니까. 그건 현실을 잘 알고 있다는 서글픈 뜻이기도 했다. 시간은 열한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거추장스러운 앞치마를 벗어 던지고, 오후에 내게 수치심을 선사했던 사흘 된 셔츠의 단추를 톡톡 풀어내렸다. 아빠 셔츠 뺏은 애마냥 헐렁한 셔츠 따위. 길바닥에 내버릴 테다.

 

이를 으득으득 갈고 있는데 윗주머니에 빳빳한 뭔가가 걸리적거렸다. 손을 넣어 집어들려고 하니 종이가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보아하니 명함인데. 흰 티셔츠부터 꿰어 입고는 떨어진 것을 주워들었다.

 

 

Genius K.

 

Consulting Detective

Woollim Street 2112

010 - 0000 - 0000

 

 

검은 종이에 흰 글씨라곤 저것 뿐이었지만, 누구의 것인지 고민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검은 머리에 검은 셔츠. 검은 휴대전화. 명함까지 까마귀마냥 까맣고 음침하다. 제 옷깃을 잡던 허여멀건한 손가락이 눈앞에 스쳐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인간은 흰게 피부 뿐인가. 주먹을 꾹 쥐어 구긴 명함을 쓰레기통에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삑삑삑. 삑.

 

그리곤 휴대폰에서 이성열의 전화번호를 찾아 당장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시간이 늦었고 어쩌고는 중요하지 않다. 언제 전화해도 자는 시간 외에는 한가할 것이었다. 카페는 알바생에게 맡겨두고 나몰라라 놀러 다니는 망나니가 바쁠 리 없다.

 

 

- 어, 남우현.
"나 오늘부로 그만둘거야."
- 뭐? 여보세요?
"내 통장으로 2주치 알바비 입금해놔. 끊는다."

 

 

전화를 끊자마자 배터리를 분리시켜 가방에 던져넣었다. 이성열은 아쉬울 것 없겠지, 뭐. 다소 충동적이었지만 후회는 없었다. 내가 이 알바를 그만 둔다고 해도 괜찮을 거라는 무언의 확신이 들어서였다. 가볍기 짝이 없는 짐가방을 옆으로 매고는 무작정 울림 가로 향했다. 기억해둔 여덟 숫자의 번호를 속으로 중얼거렸다. 뜸들일 하루조차도 없었다.

 

 

 

 

-

 

위의 성규사진 보고 생각나서 후딱 쓴 대놓고 셜록 패러디.

유쾌하게 쓰려고 노력했지만 내용물은...ZIP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어요


 
비회원6.115
와 겁나 좋습니다 이런거ㅜㅠㅜㅜ 취향 저격이에요 아주 브금은 또 뭔데 나를 이렇게 몰캉하게 만드는지ㅜㅜㅠ♥ 브금 제목좀 알려주시고 제 사랑 가져가세요...♥♥
10년 전
잘해요
David Holmes - Yen On A Carousel(Ocean's Twelve) 입니다~
10년 전
비회원48.121
커헑 대박...이런 거 좋아요 성규가 탐정이라닛...!
10년 전
독자1
ㅋㅋㅋㅋㅋㅋㅋㅋ미쳤다 진짜 어쩜 그리 글을 잘 쓰세요 아주 그냥 제 사랑 받으셔야겠어요 강제 사랑이요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가요 노래랑 되게 잘 어울려요 짱 짱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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